이정후는 진정한 바람의 손자
서양 문화권에서는 누구의 아들이라는 말은 자주 하지만 누구의 손자라는 표현은 거의 보기 어렵기 때문에, 바람의 손자라는 별명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는 편입니다. 실제 미국의 한 방송국에서는 바람의 손자에 대한 설명을 했는데, 이해를 못하고 아무말 대잔치로 이어지기도 했는데요, 방송 내용은 소개드리겠습니다.
"지금 읽고 있는데 별명이 진짜 바람의 손자?"
"예. 그의 별명은 바람의 손자인데, 아버지 이종범이 슈퍼스타였다. 그가 워낙 빨랐기 때문에
바람의 아들이란 애칭을 얻었고, 이정후가 야구를 시작했을 때 바람의 손자로 불리게 되었다."
==패널 질문: 할아버지도 빨랐나? 모로시 기자: 그게 아니고 이종범의 아들이기 때문에
==패널 질문: 그럼 할아버지가 바람인가?
==패널 이야기: 샌프란시스코에는 바람이 아주 심하게 분다. 아니면 영화 제목처럼 바람과 함께 사라질 것이다.
이정후의 등번호 51번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일본 이치로의 이야기가 나오자, 바람의 손자에 재미를 붙인 패널들은 그럼 이치로의 별명은 바람의 친구냐며, 바람에 얽힌 이야기를 계속할 정도로 바람의 손자에 대해 큰 관심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만일 미국에서 축구 인기가 높았다면 패널들이 바람의 아들을 잘 이해했을지도 모릅니다. 이종범보다 앞선, 원조 바람의 아들은 아르헨티나의 세계적인 축구 스타 클라우디오 카니자입니다. 카니자는 1990년 월드컵을 통해서 세계적인 스타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사실 골을 많이 넣는 선수는 아니었는데, 90년과 94년 월드컵에서 인상적인 득점을 여러 차례해서 더 강렬한 기억을 남긴 선수입니다. 굉장히 발이 빠른데다 긴 머리를 휘날리며 달려가는 카니자의 모습은 바람의 아들이란 별명과 너무나 잘 어울렸습니다. 카니자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1990년 이후부터 국내 언론에서는 발이 빠른 선수를 지칭할 때 바람의 아들이란 용어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국내 선수중 가장 먼저 바람의 아들이란 별명을 얻은 선수는 다소 낯선 인물일 수 있는데요, 바로 테니스 선수 김대식 선수입니다. 김대식 선수는 번개라는 별명으로 통하다가, 1990년 월드컵이후 바람의 아들이란 애칭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김대식 선수는 발이 너무 빨라서 볼을 받아치다가 실수를 할 때가 많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는데요, 1990년 북경 아시안게임 은메달 리스트로, 국가대표 테니스 감독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994년부터 서정원 선수가 바람의 아들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서정원 선수는 100미터를 11초 초반에 뛸 정도로 빠른 선수였구요, 날쌘돌이 또는 바람의 아들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라이언킹이 야구의 이승엽, 축구의 이동국 2명인 것처럼, 바람의 아들 역시 야구는 이종범, 축구에선 서정원으로 통하게 된 것인데요, 서정원 선수는 바람의 아들보다는 날쌘돌이를 더 많이 사용했고, 지난 94년 이종범이 놀라운 활약을 펼치면서 바람의 아들로 압도적인 인지도를 쌓게 됐습니다.
스포츠에서 발생한 바람의 아들이란 표현이 더욱 익숙해진 계기는 1995년 KBS에서 바람의 아들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모은 것도 한 몫 했습니다. 서정원 이종범에 이어 드라마까지 나오면서 바람의 아들은 국내에서 유독 사랑받는 애칭으로 정착됐습니다.
90년대 중반 SBS에 모래시계가 있었다면 KBS에는 바람의 아들이 있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히트한 드라마인데요, 출연진이 정말 화려합니다. 이병헌은 비롯해서 김희선과 신현준 등이 나오고요, 김영철과 손창민 등 화려한 캐스팅에다 드라마 내용도 좋아서 아직까지도 드라마팬들에게 회자되는 작품입니다. 바람의 아들 드라마가 히트 하다 보니 언론에서는 국내 선수 뿐 아니라 외국 선수를 지칭할때도 바람의 아들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90년대 중반 정수근 선수를 바람의 아들로 부른 기사가 여전히 남아 있구요, 고교축구 김창오 선수, 그리고 K리그에선 뛰었던 빅토리와 마니치 역시 우리나라 언론은 바람의 아들이란 별명을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육상 단거리 선수를 부를 때 바람의 아들로 부르곤 했는데요, 도노반 베일리나 마이클 존슨, 프레데릭스 같은 단거리 선수들에게 바람의 아들이란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육상 뿐 아니라 미식 축구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의 제리 라이스를 바람의 아들로 부른 기사도 존재합니다. 국내 언론이 부른 바람의 아들이 아니라, 현지 언론으로부터 ’Son of the wind’ 로 불린 선수는 육상의 전설 칼 루이스가 유일한데, 사실 ‘Son of the wind’는 자주 쓰는 표현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바람은 빠른 선수를 부르는 표현인데, 빠르지 않으면서도 바람의 아들로 불린 선수가 있습니다. 바로 골프 양용은 선수가 주인공입니다.
양용은 선수는 PGA 역사에 남는 깜짝 우승을 차지한 바 있죠? 2009년 PGA 챔피언십에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를 누르고 메이저 대회 우승을 차지했는데요, 양용은 선수 제주 출신으로 제주도 골프장에서 공줍는 아르바이트를 하다 PGA까지 우승한 입지전적인 인물인데요, 제주도 출신으로 제주도에서 자란 제주의 아들이란 의미에서 다른 선수들과는 또다른 의미의 바람의 아들로 불려 왔습니다.
이정후 선수는 바람의 아들 이종범의 아들이기 때문에, 바람의 손자가 되었는데요, 이종범처럼 바람의 아들로 불렸던 다른 선수들의 아들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아버지처럼 운동을 한 선수들은 있지만, 바람의 손자로 불린 것은 이정후가 유일합니다.
서정원 선수의 아들인 서동한 선수는 축구 선수이구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수원 삼성에 입단했습니다. 18세 이하 대표로 선발되었을 정도로 재능을 인정받고 있기도 합니다. 서동한 선수는 이제 프로 2년차를 맞게 되는데, 아버지처럼 뛰어난 선수가 되는 것이 목표인데, 이정후처럼 아버지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국내 언론으로부터 바람의 아들로 불린 제리 라이스의 아들 제라 라이스 주니어는 아버지처럼 미식 축구를 했고, 프로 입단에 성공했지만 아버지처럼 성공하지는 못하고, 2시즌 만에 프로생활을 마감했습니다.
원조 바람의 아들인 카니자의 아들은 축구를 하지 않았고, 아르헨티나에서 TV와 유튜브 등에서 방송인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대를 이어 활약하며 바람의 손자로 불린 것은
이정후 뿐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정후가 ‘바람의 손자’라는 멋진 별명을 갖게 되면서, 바람의 손자에 빗댄 기상 천외한 표현까지 등장했습니다. ‘바람의 손자’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미국 문화권에서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 별명이라고 생각됩니다. =
바람의 아들 이종범의 사위인 고우석은 바람의 외손자사위로 불리기도 하고, 고우석의 자녀는 태어나자마자 바람의 외증손자라는 별명을 얻게 됐습니다. 이정후 선수와 이름이 비슷한 이정훈 선수는 바람의 손잔이라는 특이한 별병으로 불립니다. 얼핏 들으며 이해하기 어려운 말인데요, 이정후에 니은 받침이 추가된 이름이기에 손자에 니은을 붙여 손잔이 된 것인데요, 지금은 롯데로 옮겼지만 이종범의 소속팀 KIA 출신이기에 더 어울리는 별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바람의 아들’은 원조 카니자를 뛰어넘어 국내에서 유난히 사랑받은 별명인데요, 이정후 선수로 인해 ‘바람의 손자’가 미국에서도 새로운 유행을 일으킬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