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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윤 Feb 23. 2024

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 인생은 오타니처럼  

오타니에게 배우는 삶의 지혜

2023년 3월 KBS 디지털 뉴스 라이브 방송을 위해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을 취재할 때, 일본 도쿄에서는 야구장에서 TV에서, 건물 광고에서 언제 어디서든 오타니를 만날 수 있었다. 숙명의 한일전이 끝난 뒤, 오타니는 공손하게 모자를 벗고 예의 바른 모습으로 우리 선수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비장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진 한일전에서 이런 모습을 보여준 건 오타니가 처음이었다. WBC 개막전 선발 투수로 등장한 오타니가 체코전에서 홈런을 터트린 순간, 도쿄돔의 분위기는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오타니의 홈런 타구는 공교롭게도 자신의 광고가 등장하는 광고판에 떨어졌는데, 그 광고는 오타니의 야구 인생을 상징하는 ‘이도류’를 표현한 내용이었다.      



“프로에 들어와서 삼진을 928번 당했고, 맞은 안타 숫자는 647, 홈런은 59개 맞았으며, 실점은 전부 281, 득점 기회에서 506번 범타로 물러났고, ‘이도류’가 무리라고 들은 건 셀 수 없을 정도다.”     

이 내용은 야구 소년과 20대 여성 회사원, 50대 남성 자영업자, 30대 여성 교사, 40대 남성 직장인과 10대 소녀의 목소리로 소개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드디어 오타니가 등장해 담담한 말투로 이야기 한다. 


“그러나 ‘이도류’가 무리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이도류’는 일본 검술의 전설적인 존재인 미야모토 무사시가 시작했다고 알려진 기술로, 양손에 하나씩, 2개의 칼을 들고 싸우는 방식을 의미한다. 두 개의 칼을 이용한다면 유리할 것 같지만, 동시에 칼 2개를 쓰는 기술을 익히며 실전에서 사용하는 건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실제 일본의 소서가 시바 료타로는 검 두 개가 교차할 때 틈이 생겨날 수밖에 없어 일정 수준 이상의 대결에서는 절대로 ‘일도류’를 이길 수 없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과거 사무라이들의 대결에서 ‘이도류’가 쉽지 않은 것처럼, 현대 프로야구에서 투수와 타자를 겸업하는 ‘이도류’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2012년 12월 오타니가 ‘이도류’에 도전한다고 선언하자 일본 프로야구의 원로들은 “프로야구를 얕보지 말라.”며 ‘이도류’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을 나타냈다. 일본 야구에서도 투수와 타자로 모두 성공한 뒤, 메이저리그에 도전한 2018년에도 이런 주장은 반복됐다. 일본에서는 통했을지 몰라도 수준 높은 미국에서는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타자와 투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오타니는 모든 부정적인 전망을 딛고, 2번이나 메이저리그 MVP에 오르며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다.


 WBC 결승전에서는 흙 묻은 유니폼을 입은 마무리 투수라는 낭만적인 장면까지 연출했다. 보통 투수들의 유니폼은 깨끗하지만, 오타니는 타자로 뛰면서 슬라이딩을 한 뒤 마운드에 올랐기에 지저분한 유니폼으로 마운드에 등장한 것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야구 만화인 ‘H2’의 주인공은 히로와 히데오다. 히로는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이며, 히데오는 어떤 공이라도 칠 수 있는 강타자다. 친구이자 라이벌인 두 선수는 운명의 대결을 벌이게 되는데, 사실 히로와 히데오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존재이다. 히로(ヒーロー:히어로)와 히데오(秀雄:영웅) 모두 영웅이란 뜻을 가졌다는 건 이런 해석을 뒷받침한다. 만화 속 히로와 히데오가 합쳐진 인물이 바로 오타니 쇼헤이라고 할 수 있다. 만화에서도 투수와 타자 모두 잘한다는 설정이 무리라고 생각했지만, 현실 세계의 오타니는 만화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만화를 찢은 남자’라는 별명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타니는 지금 시대를 대표하는 야구 선수를 넘어, 과거 대한민국 위인전에까지 등장했던 전설적인 선수 베이브 루스와 비교되는 반열로 올라섰다. 이런 성과는 오타니의 천부적인 재능에다, 끊임없는 노력이 어우러져 가능했다. 오타니가 대단한 점은 노력하는 천재라는 점이다. 오타니는 야구만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 생각될 정도로, 야구만 생각하는 사람이다. 야구장과 숙소만을 오가기 때문에 뉴욕 거리를 걸어본 적도 없고, 술 담배는 전혀 하지 않으며, 동료들의 식사 제안까지 대부분 거절하고 야구에만 집중한다. 야구를 잘하기 위해 하루 10시간의 수면을 지키는데 편안히 자기 위해서 항상 베개와 매트리스를 갖고 다닌다. 프로 스포츠 역대 최고 금액에 계약을 맺은 이후에도 2024년 1월부터 계속 LA다저스 야구장에 나와 훈련에만 열중하는 모습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모습은 마치 ‘야구도’를 수행하는 종교인의 모습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이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야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야구 자체를 너무나 사랑하고, 야구를 즐기는데, 더 많은 사람이 야구를 좋아하게 만들도록 최선을 다해 야구하는 것이다. 타석에 들어설 때는 심판에게 인사를 건넬 뿐 아니라 반드시 심판의 이름까지 부르면서 존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상대 투수의 공에 몸을 맞았을 때도 언제나 미소로 응답하며, 부러진 배트를 발견하면 볼보이가 잡기 편한 방향으로 직접 전해준다. 메이저리그 더그아웃은 물병과 해바라기씨로 지저분하지만, 오타니는 직접 쓰레기를 줍는다. 쓰레기를 줍는 것은 행운을 줍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야구 서적을 비롯해 자기 계발 서적을 읽으며 주로 숙소에 머물기 때문에, 오타니는 이른바 파파라치가 포기할 정도로 사생활 관리도 완벽하다. 등번호 17번을 양보한 팀 동료의 부인에게 고가의 승용차를 선물한 것도 파격적이지만, 일본의 모든 초등학교에 글러브 3개를 선물하면서 ‘야구하자’라는 문구를 적은 것이야말로, 오타니다운 모습이다. 이런 오타니는 그냥 탄생한 것이 아니라 일본의 야구 시스템이 만들어 낸 산물이다. 



주위 사람들을 배려하는 모습은 오타니의 부모로부터 배운 것이다. 오타니의 어머니는 오타니가 프로 입단 후 많은 돈을 벌 이후에도 평소처럼 집 근처 음식점에서 일하는 소박한 모습을 보였다. 아버지 역시 여전히 리틀 야구단을 지도하면서 제2의 오타니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오타니의 고교 시절 감독이자 교사인 사사키 히로시 감독은  야구 선수 오타니가 아닌, 인간 오타니를 만든 주역이라고 할 수 있다. 사사키 감독의 지시로 고 1 시절 작성한 오타니의 만다라 차트는 분명 연구 대상이다. 어린 학생이 어떻게 이렇게 자기의 몸을 정확히 알고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 있었는지, 목표를 세우고 어떻게 노력할 수 있었는지 감탄할 수밖에 없다. 실패한 야구 인생을 딛고 고등학교 교사로, 고교야구 감독으로 노력해 온 사사키 감독의 노력은 오타니의 만다라 차트로 인해 값진 결실을 맺었다. 


대학 교수 출신 프로야구 감독인 구리야마 히데키 감독은 오타니에게 ‘이도류’를 제안하며 오타니를 특별한 선수로 만드는 기회를 제공했다. 오타니는 WBC 우승으로 구리야마 감독에게 보답했다. 한국 야구계는 항상 ‘우리는 왜 오타니 같은 선수가 없는가?’라고 한탄하지만, 오타니는 메이저리그에서도 볼 수 없는 특별한 선수이다. 오타니만큼 투타 겸업으로 뛰어난 선수는 언젠가 나올 수 있겠지만, 오타니 같은 겸손과 배려, 뛰어난 인간성을 겸비한 선수는 좀처럼 보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 야구에서 사사키 히로시 같은 고교야구 감독, 구리야마 히데키 같은 프로야구 감독이 먼저 등장해야, 나중에 오타니 같은 선수의 탄생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사사키 감독과 구리야마 감독의 지도법은 뛰어난 야구 선수를 만들기 위해서보다는 훌륭한 인간, 한계를 뛰어넘는 인간을 양성하려는 방법에 가깝다. 오타니의 야구 인생을 체계적으로 돌아보면, 야구 선수만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과거 베이브 루스의 위인전을 읽고 감동했던 한국 야구 기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오타니의 모습이다. 오타니가 루스를 넘어섰느냐는 논란의 대상이지만, 오타니는 루스가 갖추지 못했던 사람에 대한 존중, 예의, 겸손함을 갖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과거 베이스 루스의 위인전이 있었다면 오타니는 감히 지금 시대 위인 반열에 올라도 좋은 인물이라고 확신한다. 과거 일본의 스포츠 스타들이 여러 이유로 우리나라에서 비판받았지만, 오타니는 일본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많은 사랑을 받는다는 것도 오타니가 얼마나 특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타니의 야구 인생은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들어주고 싶은 이야기다. 오타니가 선발로 등판한 경기, 27개의 아웃 카운트를 잡으면 승부가 끝나는 것처럼, 9이닝 27개의 이야기로 이뤄진 이 책을 보면 야구 선수만이 아닌 위대한 인간 오타니를 더욱 잘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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