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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맘다해 Oct 18. 2021

IPR을 한다는 것 #2

첫 번째 기관 투자자를 만나다.

전임자의 갑작스러운 퇴사로 인해 IR 담담을 하라는 상사의 말을 듣고 주어진 시간은 한 달이었다.  아니, 한 달이라는 시간을 만들었다.  본 업무였던 공연이 한창 상연 중이라 공연장에서 살다시피 했기 때문에 새로운 업무를 파악할 시간이 부족했다.  기관 투자자가 미팅을 요청하는데 일정을 언제로 할지 전화로 물어 오는 팀원에게 무조건 한 달 뒤부터 하라고 했다.  그렇게 만든 시간이었다.  공연장에서 뛰어다니느라 미팅 일정도 직접 잡지 못 했으며, 내부에서 뭔가를 파악하기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해야 했다.  공연이 종연되는 날로부터 2주 뒤에 첫 미팅을 잡았다.  


IR 왕초보 아마추어인 내가 기관과의 첫 미팅을 위해 떨리고 겁나는 마음으로 준비했던 건 두 가지였다.  먼저 미팅 시 사용하는 IR자료-IR Book이라고도 한다-를 최신 내용으로 업데이트했다.  PPT를 만들어 주긴 했지만 전임자가 내용을 조금씩 수정했던 터라 그 자료를 회사의 최신 상황에 맞게 업데이트했다.  두 번째로 했던 건 휴대폰을 뒤져서 찾아낸 전임자의 미팅 녹음 파일을 달달 외우는 것이었다.  IR에 관해서 아무것도 배운 적이 없고 가르쳐 준 사람도 없던 터라 녹음파일을 통해 파악한 전임자의 방식대로 미팅을 진행해야 했다.  전임자의 코멘트도 PPT로 만든 IR 자료에 메모했다.


드디어 IR 담당자로서 처음 기관투자자 미팅을 하던 날.  자산운용사에서 두 명이 회사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해 찾아왔다.  이렇게 기관투자자가 회사를 찾아오는 걸 ‘탐방’이라고 하는데, 관심 있는 회사에 투자를 결정하기 전에 회사에 대한 설명을 듣고 현황을 파악한다던가 궁금한 사항을 직접 물어보고 성장 가치 등을 알아보기 위함이다.  ‘탐방’은 IR 담당자들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이다.  미팅이라는 걸 한 두 번 해 본 건 아니지만 우리 회사의 주식을 살 가능성이 있는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하는 미팅은 엄청나게 떨리는 일이었다.  


IR 자료 순서대로 회사 개요부터 비즈니스 모델, 자회사 현황, 재무상황까지 설명하고 질문을 받았다.  달달 외우긴 했지만 긴장해서 까먹을 수 있어 전임자의 미팅 내용을 노트북에 띄워 놓은 IR자료 한편에 페이지 별로 메모를 해 놓고 설명했다.  이해하기 쉽도록 최대한 쉽게 설명했다.  질의응답에서 나오는 질문들 중 답변을 하지 못했던 질의사항은 “죄송하지만 업무를 담당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아직 파악을 다 못했습니다.  확인하고 메일이나 유선으로 회신드리겠습니다”라고 정중히 양해를 구했다.  IR 미팅을 하면서 모르는 사항을 마치 아는 것처럼 꾸며서 얘기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투자자로 하여금 회사에 대해 오해를 하거나 혼동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약 1시간가량의 미팅이 끝났다.  대부분의 탐방 미팅은 1시간 내외로 이루어진다.  아마도 방문했던 기관 투자자들은 초짜에 아마추어와 미팅했음을 금방 간파했을 것이다.  IR의 대상인 우리 회사를 파악하는 것도 정신없는 상황이었는데 기관투자자들은 그때 당시 급부상하고 있던 자회사에 더 관심이 많았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전임자의 미팅을 녹음했던 것처럼 기관투자자와의 첫 미팅도 녹음을 했다.  왕초보 아마추어가 두 번째, 세 번째 미팅에서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실수투성이 첫 미팅을 교과서로 활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미팅 내용을 복기하면서 기관투자자가 했던 질문들을 정리했다.  답변 못했던 질문들을 해당 부서와 확인하고 메일로 답변을 하면서 회사에 관심 갖고 방문해 주어서 감사하다는 인사도 전했다.  이때 아마추어 IR 담당자로서 규칙을 만들었다.  미팅을 하고 나면 반드시 당일이나 다음 날 안에 감사 이메일을 쓰겠다고.  2천여 개가 넘는 그 많은 상장회사들 가운데 우리 회사에 관심을 갖고 시간을 내서 찾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감사 이메일을 쓸 만하다.  그리고 IR 왕초짜로서의 이미지를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며, 회사를 대표하는 IR 담당자로서 투자자들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인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IR 미팅에서 중요한 것은 담당자가 회사를 얼마나 매력적으로 소개하는지, 회사의 성장성과 사업 전망에 대해 얼마나 자신감을 갖고 이야기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 자신감은 투자자들에게 우리 회사에 대해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투자를 결정하는 계기가 된다.  주식 1도 모르고, IR 담당이 어떤 일을 하는지 전혀 몰랐지만 우리 회사를 소개할 때만큼은 자신 있게 설명했다.  IR 업무를 막 시작하는 직원이라면 그 어떤 기관투자자들보다 우리 회사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라는 자기 암시가 필요하다.  탐방 미팅을 통해 우리 회사의 주식을 사고 함께 성장할 수 있어 고맙다는 말을 기관 투자자들로부터 들었을 때, 햇병아리 IR 담당자이지만 틀리지 않게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기관투자자 탐방 미팅을 위한 5가지 Tip


1. 미팅을 위한 IR 자료는 회사의 최신 내용을 토대로 만든다.  

    단,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사업 내용은 반드시 제외한다.  


2. IR 자료는 회사개요, 연혁, 사업 모델, 업황, 성장 전망, 재무현황을 담아 만든다.
   처음 미팅을 하는 기관 투자자들에게는 전체 내용을, 

   여러 번 미팅을 했던 기관 투자자들에게는 회사와 관련된 최신 업데이트 내용을 중심으로 전달한다.


3. 최대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말로 설명한다.  

   투자자들은 시장 전문가들이지만 우리 회사 전문가는 아니다.  초등학생들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설명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 개인 주주들의 문의를 받을 때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줄 수 있다.


4. 미팅에서 나오는 공통적인 질문들은 정리해서 IR FAQ로 만든다.  

    미팅 중에 답을 못 했다면 당황하지 말고 양해를 구하고 반드시 그날 안에 확인해서 답변한다.


5. 미팅 후 감사 이메일을 발송하고 탐방일지를 작성한다.  

    탐방일지에는 날짜, 기관명, 방문자, 소속, 연락처, 주요 미팅 내용 및 특이사항을 기록하고 

    추후 재 미팅 시 활용한다. 명함 관리 앱을 사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 초짜 IR 담당자의 경험을 토대로 한 의견입니다.  담당자들마다 다를 수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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