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맘다해 Oct 20. 2023

IPR을 한다는 것 #3

주담도 스토킹 당하는 감정노동자다.

주담의 업무


IR 업무와 주식 업무를 담당하고 가장 힘들었던 건 첫 해였다. 공연쟁이였던 내가 전혀 다른 업무를 하게 되어 어렵고 힘든 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나를 피폐하게 만든 것은 주주 응대였다.


주식 업무를 담당한, 소위 '주담' 역할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주주 응대이다. 물론 회사의 주식을 관리하는 업무이기 때문에 자기주식 매입 및 처분(회사가 갖고 있던 회사의 주식을 사고파는 것), 우리사주 관련 업무(회사의 주식을 직원들에게 배분하는 것), 자금조달을 위한 유상증자/무상증자 등 다양한 업무들도 많다. 그러나 그런 업무들은 늘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주주들 중에는 기관 투자자들도 있지만 개인 투자자들도 있다. 주담이 매일 해야 하는 업무 중 하나가 바로 그 주주들을 응대하는 것이다. 기관 투자자들은 전문가들이라 시장 상황이나 회사에 대해 비교적 어느 정도의 사전 지식을 가지고 질문을 하기 때문에 특별히 어려울 것은 없다. 그저 그들보다 내가 우리 회사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자신감으로 정확하고 공개된 정보만 설명하면 된다.


그러나 개인 투자자들은 다르다. 저마다의 목적을 가지고 투자를 하는 다양한 성향의 수많은 개인 투자자들을 응대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공연이나 전시, 이벤트를 기획하고 제작하면서 수많은 관객들을 직접 만나고 입에서 냄새가 날 정도로 하루 종일 떠들며 응대를 했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주주 응대도 비슷할 것 같았다. 그러나 주주들에게는 돈이라는 현실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관객과는 차원이 달랐다. 전임자가 가끔 목소리를 높여 싸웠던 기억이 새록새록 솟아 오른 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네, 000입니다."


주담 업무를 담당하기 직전 에 회사가 전혀 다른 비즈니스를 하는 회사의 지분을 투자하여 자회사로 만들었다. 주식 시장에서 말하는 '호재'와 '악재'에 모두에 해당하는 큰 이슈였다. 그에 따라서 주가가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며 요동쳤다.


주식 시장에서의 주식 가격은 회사의 실적이 아무리 좋고 성장성이 있다고 해서 마냥 상승하지만은 않는다. 다양한 요인으로 구성되어 있는 시장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내가 있었던 회사는 본업의 시장 영향과 전혀 다른 사업을 하는 자회사의 업종과 관련된 시장 영향을 모두 받았다. 그 때문에 주가의 변동성이 더욱 컸다.


지분 투자 이슈로 회사의 주가가 상승했다가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상승은 없이 마냥 하락하기만 하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주담을 맡고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네, 000입니다"라고 회사 이름을 시작으로 개인 주주들의 전화를 받았다.


주주들 중에는 회사가 하고 있는 사업들이 잘 되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될 건지 등 정말 회사가 궁금해서 전화를 하는 분들도 있다. 그러나 주가가 하락하는 장(하락장)에는 투자 손실에 대해 화풀이를 하기 위해 전화하는 주주들이 많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주담들과 IR 담당자들이 그런 주주들의 화풀이 대상이 되는 총알받이 역할을 한다. 일팔일팔을 비롯한 온갖 욕설은 기본이고 퇴근길 조심하라, 불 질러 버리겠다, 죽여버리겠다 등 협박을 받기도 했다.


스토커 수준의 한 주주가 있었다. 하루 동안 한 시간 간격으로 회사로 전화를 해 왔다. 한 번 전화를 받으면 짧게는 10분에서 길게는 한 시간 가까이 통화를 했다. 그렇게 한 시간 간격으로 하루에 대여섯 번 통화하기를 반년을 넘게 이어갔다. 내가 정말 제대로 알고 있는 담당자인지 테스트를 하기도 했다.


자녀들의 결혼 자금을 몽땅 털어 넣었던 아주머니, 남편 모르게 생활비를 털어 넣은 주부, 증권사 직원이 추천해서 샀다는 할아버지, 아침 경제 방송에서 좋다고 해서 샀다는 할머니까지 별의별 사연을 가진 주주들이 하락장에 번갈아 가며 회사로 전화를 했고 나는 그대로 욕받이가 되었다. 평생 들어보지 못할 욕을 IR 담당자, 주담이 된 첫 해에 몽땅 들었다. 그로 인해 나는 썩어 갔고, 피폐해져 갔다.


참 특이한 건 주가가 상승할 때는 전화를 하지 않는다는 거다. 물론 간혹 "갑자기 왜 올라가요? 회사에 무슨 일 있어요?"라고 물으며 문의를 하는 주주도 있지만 99.9%의 개인 주주들은 주가가 상승할 때는 조용하다. 그럴 때마다 혼잣말을 한다. “회사 주주들인데 회사가 잘해서 주가가 올라가는 건 왜 고맙다거나 칭찬을 안 하는 건지..” 그러면서 ‘내가 열심히 해서 회사를 알린 덕분이야’라는 말도. 그렇게라도 스스로의 자존감을 높여야 했다.



주담도 감정노동자다.


감정노동이란 ‘감정을 숨기고 억누른 채 회사나 조직의 입장에 따라 말투나 표정을 연기하며 일하는 것’을 말한다. 콜센터 직원, 텔레마케터(전화통신판매원), 항공기 승무원, 식당 종업원, 백화점 판매원, 은행 창구직원, 네일 아티스트 등이 감정노동자에 속한다.(네이버 지식백과)


지난해 한국고용정보원이 730개 직업 종사자 2만 5,550명의 감정노동 강도를 분석 비교했다고 한다. 그 결과 감정노동의 강도가 가장 높은 직업은 텔레마케터였으며, 2위는 호텔 관리자와 네일아티스트였다.


이 조사 대상에 하루에 몇 명의 주주를 상대하는지도 모르는 주식담당자도 포함이 되어 있을까? IR 담당자와 주담들끼리는 우리도 감정노동자로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넋두리를 한다. 그러나 정작 몸담고 있는 회사에서조차 강성 주주들을 대하는 주담들의 감정노동 강도가 얼마나 높은지 알지도 못하고 관심 없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건 그저 담당자의 당연한 업무라고 생각한다. 그런 우리 주담들을 누가 보호해 줄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건 주담도 감정노동자라는 사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IPR을 한다는 것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