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잠들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내가 원치 않는 문장들이 먼저 깨어나 있었는지도 모른다. 방 안은 더웠고, 시트는 축축했고, 선풍기의 바람은 내 불안처럼 일정하지 않았다. 이불을 걷어차고 누운 채, 나는 천장을 본다. 하얀 천장인데, 한순간도 평온해 보인 적이 없다. 그 안에서 자꾸 무엇이 들썩인다. 까닭 없이 들리는 기척 같은 것. 누가 나를 보고 있다.
어둠은 언제나 나를 무겁게 누른다. 창밖으로는 밤새도록 이어지는 에어컨 실외기 소리, 멀리서 싸우는 고양이 울음, 그리고 간헐적으로 들리는 사람의 말소리. 모두 무의미한 듯 흘러가는데, 그 무의미함이 내겐 형벌처럼 다가온다. 어제 쓴 문장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지우고, 다시 쓰고, 또 지웠다. 내 문장은 언제나 나보다 먼저 멀어지고, 나는 항상 한 발 늦게 그것을 따라가다 넘어지고, 숨이 찬다.
방 한구석, 조그마한 책상 위에 노트북이 있다. 문장을 담은 그 어두운 함정 같은 기계. 나는 오늘도 그 앞에 앉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수십 개의 첫 문장이 맴돌았지만, 어느 것도 손가락으로 옮길 수 없었다. 내 손끝이 어두운 기운에 눌린 듯 무거웠고, 말은 입에서만 맴돌다가 말라붙었다. 오늘도 단어들은 나를 떠났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아니면 5분일 수도 있다. 나는 시간을 느끼는 감각이 없다. 시계를 보려다 말았다. 시간은 내가 붙잡으려 하면 할수록, 나를 조롱하듯 멀어진다. 대신 핸드폰을 들었다. 알림은 없다. 메신저도, 메일도, SNS도 조용하다. 세상은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가고, 나만 이 안에서 정지해 있다. 방 안 공기는 점점 더 뜨겁다. 목이 마르다. 물을 마시려 부엌으로 나가려다 멈춘다. 거실 어둠 속에서 무언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공포라기보다는, 이상한 직감. 그곳에는 내가 버린 문장들이 웅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다시 누웠다. 창문을 살짝 열었지만, 들어오는 바람은 따뜻하고, 정체 모를 냄새가 났다. 도시의 열기, 자동차 배기, 먼지, 그리고 어쩌면 어릴 적 잊은 슬픔의 냄새. 이상하게도, 이런 냄새를 맡으면 울고 싶어진다. 울고 싶지만 울 수 없다. 울 수 없는 울음은 내 안에서 곪아간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꿈을 꾼다. 꿈속에서 나는 나의 문장을 찾아다닌다. 한 단어씩 잃어버린 퍼즐 조각처럼, 벽마다 바닥마다 흩어져 있는 말들을 주워 담는다. 하지만 퍼즐은 늘 하나가 부족하고, 나는 그 하나를 찾기 위해 깨어난다. 땀이 등줄기를 따라 흐른다. 손가락은 여전히 굳어 있다. 나는 내 글을 쓰고 있는가, 아니면 글이 나를 쓰고 있는가.
바로 그때, 어떤 문장이 머리를 스친다. 너무 짧고, 너무 간단한 문장이라 나는 처음엔 무시했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누군가의 고백처럼 맴돌았다.
“나는, 괜찮지 않다.”
그 말은 너무 솔직해서,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귀를 때린다. 지금까지 써왔던 수천 개의 단어보다 강력한 한 문장. 나는 일어났다. 노트북을 켰다. 화면이 켜지고, 문서창이 열리자마자 나는 그 문장을 적었다.
나는, 괜찮지 않다.
그리고 그 아래에 문장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불안한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하지만 그 어떤 때보다도 진실하게. 나는 쓴다. 타닥타닥, 글자들이 어둠을 조금씩 밀어낸다.
새벽 4시가 넘었다. 아직도 더운 공기, 여전히 시끄러운 도시, 그리고 꺼지지 않은 실외기. 하지만 이상하게도 지금은 덜 무섭다. 글을 썼기 때문이다. 문장 하나가 나를 구해냈다. 아니, 문장을 써낸 나 자신이 나를 살렸다.
창밖을 보았다. 하늘은 여전히 검은색이지만, 저 멀리 약간의 푸르름이 보였다. 나는 그 푸른 기척을 기다리기로 했다. 오늘은 단 한 줄을 썼지만, 그 한 줄이 나를 다시 하루로 이끌었다.
그리고 나는 알고 있었다. 또다시 열대야는 올 것이다. 하지만 다음에도, 나는 문장을 기다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