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게 없는 마음은 없다.

by dreamer

우울증을 앓은 지 벌써 여덟 달째다. 처음 병원 문을 열던 날이 선명하다. 의사 선생님은 생각보다 따뜻히 맞아주었고, 나는 그 앞에서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면, 혀끝이 무거워졌다. 의사는 묻지 않았다. 나를 기다려주었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눈물만 내 볼을 타고 계속 흐를 뿐이었다.


어떤 날은 몸이 너무 무거워 이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세상이 나를 짓누르는 것처럼, 침대 아래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도 어렵고, 숨을 쉬는 일조차 의식하지 않으면 멈춰버릴 것 같다. 밥을 먹는 것도, 씻는 것도, 문을 여는 것도, 모두가 숙제 같다. 그런 날엔 모든 게 느려진다. 내 자신이 없는 것 같다. 없어진것 같아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떤 밤은,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눈을 감고, 다시는 뜨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밤. 그런 밤엔 내 마음이 내 것이 아니다. 마음은 꼭 낯선 사람처럼 구석에 웅크려 있고, 나는 그저 그 마음을 멀찍이서 바라본다. 나라는 존재는 그 어둠의 가장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다. 울지도 못하고, 살고 싶지도 죽고 싶지도 않은 그 어정쩡한 채로.


어떤 날은 조금 괜찮다. 햇살이 생각보다 따뜻하게 느껴지고, 커피의 향이 좋다. 우연히 듣게 된 음악이 좋고, 지나가는 아이가 웃는 모습이 예쁘다. 그런 순간에 나는 왜 괜찮은지 알 수 없고, 이 괜찮음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하다. 괜찮음마저도 오래 머물러주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다.


우울증은 선이 없다. 보이지 않는다. 감기처럼 열흘이면 낫는다거나, 수술처럼 봉합선이 보이는 병이 아니다. 어디가, 얼마나, 얼마나 오래 아픈지를 알 수 없다. 그래서 더 힘들다. 나의 고통을 측정할 단위가 없고, 나아짐을 증명할 기준도 없다. 그저 오늘보다 내일이 조금 덜 무겁기를 바랄 뿐이다.


사람들은 ‘힘내’라고 말한다. ‘다 지나갈 거야’, ‘다들 그런 시기가 있어’, ‘네가 너무 예민한 거야’ 같은 말도 듣는다. 그 말들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어떤 말은 칼처럼 박히고, 어떤 말은 공기처럼 지나간다. 진심이라도, 닿지 않으면 외롭다. 그래서 나는 이제 조용한 위로가 더 좋다. 말없이 옆에 있어주는 사람, 억지로 괜찮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 그저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사람.


나는 가끔 내 우울에 이름을 붙인다. 이름을 붙여야 덜 두렵기 때문이다. “오늘은 검은 안개가 왔네.” “오늘은 마음이 유리처럼 깨질 것 같아.” 그렇게 말로 표현하면 내 감정이 조금은 작아지는 기분이다.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그런 날, 나는 나에게 말을 건다.


“너는 지금 잘하고 있어.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언제 끝날까, 언제 괜찮아질까, 그런 질문은 계속된다. 그런데 이젠 그런 질문에도 조금은 익숙해졌다. 끝이 보이지 않아도 나는 걸어가고 있고, 마음이 무너져도 나는 여전히 여기 있다. 매일 조금씩, 부서지면서도 살아가고 있다.


내일이 다시 무겁더라도, 나는 오늘 이 글을 쓴다. 나는 아직 여기 있다. 그것으로 충분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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