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이 틀어져 있는 거실인 데도, 더위가 쉽사리 가시지 않는다.
찌는 듯한 여름 오후, 문득 눈 오는 겨울날이 떠올랐다.
더운 여름날, 왜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나의 마음 속에는 그날의 흰 풍경과 조용한 발자국 소리가 선명했다.
지금 벌싸 중 3이 된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였다.
임신 6개월 정도로 배가 어느 정도 불러오던 어느 눈 내리던 겨울 아침,
밤새 눈이 내려 온 세상이 하얗게 되어 있었다.
나는 평소처럼 출근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그날따라 눈이 많이 내려 많이 쌓여 있었다.
나는 별생각이 없었다. 나에게는 그냥 출근하는 눈 내리는 날이었을 뿐.
출근하려고 나서는데 아빠가 함께 집을 나서셨다.
눈이 오는데 아침부터 어딜 가시냐고 물었더니,
“볼일이 있어서 나간다”라고 하셨다.
나는 그냥 그러려니 했다.
아빠는 내 뒤를 따라 천천히 걸으셨다.
출근길 내내 나는 물었다.
“아빠 어디 가세요?”
아빠는 계속 똑같이 대답하셨다.
“볼일 있어서.”
지하철역까지 따라오신 아빠를 보며 또 물었다.
그제야 아빠가 말했다.
“눈길에 네가 넘어질까 봐 따라왔다.
말하면 네가 괜찮다며 말릴까 봐 그냥 볼일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그 추운 날에도 가슴이 따뜻해졌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아빠 앞에서 겨우 참았다.
조심하라는 말보다, 같이 걷는 발걸음으로 보여준 무뚝뚝한 사랑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눈이 올 때마다 아빠 생각이 난다.
말없이 따라오던 발걸음.
넘어질까 봐, 미끄러질까 봐 조용히 지켜주던 마음.
지금은 그 마음으로 손녀딸을 너무 예뻐해 주신다.
아빠는 그 눈 오는 날을 기억하실까?
지금은 더운 여름이다.
땀이 흐르고 햇살은 따갑지만,
기억 속의 그 눈길은 따뜻하고 포근하다.
사랑은 그렇게, 계절을 건너 마음속에 남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