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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비 Sep 15. 2022

공간에 담긴 사람과 일에 대한 철학

트레바리_큐브, 칸막이 사무실의 은밀한 역사(니킬 서발)


나는 그리 짧지도 길지도 않은 직장생활동안 2번의 본사이전을 겪고, 총 3개의 회사건물에 출근을 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미쳐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곰곰히 떠올려보니 사무공간에 바뀔 때마다 그 공간에는 사람과 일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담겨있었던 것 같다.


우선 첫번째 건물은 굉장히 오래된 건물이였고 아주 전형적인 따닥따닥 붙어있는 칸막이식 사무실이었다. 별다른 특색이 없던 그 건물은, 사무실은 단지 정말 일을 하기 위한 곳, 이라는 단순한 철학이 담긴 다소 삭막하고 어두운 곳이었다.


번째 건물로 이사오면서 개개인 직원의 공간이 훨씬 넓어졌다. 그만큼 개인의 자율성과 업무 독립성이 강조되었고, 사무공간이 단지 일만 하는 곳이 아니라 일상의 많은 시간을 보내는 개인의 고유한 영역이라는 인식이 더 생긴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누구나 앉을 수 있는 비지정식 좌석들로만 구성된 사무실들이 별도로 생겼다. 노트북만 있으면 어디서든 펼쳐서 일할 수 있다는 생각, 일의 즉시성과 속도의 중요성이 담긴 공간이였으며, 일을 함에 있어 이전에 비해 준비물이 훨씬 간소해졌고, 심지어 클라우드 시스템 때문에 굳이 내 노트북이 아니어도 어디서든 접속해서 일을 할 수 있게 된 변화의 흐름 역시 반영된 공간이였다.


언젠가는 짧고 효율적인 회의문화 도입을 위해 한장짜리 보고서 방침과 함께 회의실 공간도 확 바뀌었는데, 모든 의자가 사라지고 높이가 긴 테이블이 공간을 차지하게 되었다. 자리에 앉아 쓸데없는 이야기로 시간을 소모하지 말고, 할 말만 하고 결론을 빨리 내고 흩어지라는, '서서 하는 미팅' 을 위한 공간 배치였다.


지금 세번째 건물로 오면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사무공간 못지 않게 휴식공간에 많은 관심을 쏟았다는 것이다. 각 층마다 사무공간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부드러운 원목, 알록달록한 쇼파와 의자 등을 배치하고 커피머신 같은 편의기구를 갖추며, 식물 등의 조경에 힘쓴 휴게공간들.


사람들은 더이상 회사에서 일만 하고 싶어하지 않고, 좀 더 인간답게 존중받고 싶어하며, 일 잘 하는 것만큼 잘 쉬고 싶어한다는 인식의 변화가 가능케 한 공간이 아닐까 싶다.


또한, 그와는 반대로 흡연자들을 위한 공간과 배려는 건물을 이사다니면서 나날이 줄어들고 있는데, 그 큰 건물에 흡연부스는 지하철 한 칸의 반도 안 되는 크기의 달랑 하나 밖에 없는 걸 보면, 앞으로는 금연이 답인인가 싶다.


어쨋든 책을 통해 사무실에 담긴 역사와 철학들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로웠고, 늘상 일하러 출근하는 이 공간 역시도 그런 사람 일에 대한 관점이 담겨있구나, 생각해볼 수 있게 되어서 새롭고 좋았다. 역시 모든 건 아는 만큼 보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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