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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스름빛 Jun 20. 2017

왜 학교에는 이상한 선생이 많은가?

김현희의 <왜 학교에는 이상한 선생이 많은가>를 읽고

도발적인 제목의 책이다. 한 번쯤은 묻고 싶었지만 감히 묻지 못한 질문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내 학창 시절에도 ‘이상한 선생’은 많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초등교사다. “교사 생활을 시작한 지 10년이 된” 저자는 “학교에서 이상한 사람들을 꽤 많이 만나왔다”고 한다. 그뿐이 아니다. “다른 조직보다 교사 사회에 이상한 사람들이 더 자주 나타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이 “아주 조심스러운 주장”(21쪽)을 학교 현장에서 직접 겪은 구체적인 경험을 근거 삼아 제기한다. 


왜 학교에는 이상한 교사가 많은가?’라는 문제의식을 정확하게 표현하자면교사의 직업 환경이 그들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 가능성을 높이는가?’이다. (34, ‘2장 권력에 취한 교사들’)


대체로 ‘보통 사람들’이던 교사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상하게 변하는지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한다. 그 과정에는 교대 교육과정, 관료주의, 학교 교육과정, 학교 조직의 체계 등이 다양하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힌다. 


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10년 이상 일했던 터라 저자의 이야기에 공감이 많이 되었다. (나는 중등교사였고 작가는 초등교사지만 학교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 뒷부분(9장 이후)의 이야기는 공감이 되면서도 배울 점이 많았다. 공교육에 대한 날카로운 직설을 넘어 저자의 분명한 교육관이 제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깐, ‘똑똑하다의 기준을 짚어보자각자의 기준이 물론 다를 것인데내가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기준은 다음과 같다똑똑한 사람은 불편하고 불쾌한 상황에 처했을 때 본인의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가 아닌, ‘이것이 옳은가그른가?’에 집중한다똑똑한 사람은 의뭉스러운 부분이 있으면 의심한다끝까지 ?’라는 질문을 놓지 않으며 대충 퉁치고’ 넘어가지 않는다똑똑한 사람은 타인과 사회에 대해 공감하는 영역이 넓고각자의 생각이 자유롭게 오가는 속에서 두려움이 아닌 즐거움과 쾌감을 느낀다.”(130-131, ‘9장 교대는 바보 양성소’)


우리는 스스로의 도덕성에 만족하는 순간 도덕적으로 퇴화한다불완전함을 인정하고끊임없이 돌아보며 나 자신의 도덕성을 의심하려는 노력 속에서 완성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 뿐이다.”(192, ‘11장 참을 수 없는 도덕 교과서의 경박함’)


사람들은 연예인의 역사 상식 부족관습에서 벗어난 사생활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그러나 정작 자신의 삶을 규정하는 보편적인 규범이 어긋나는 상황에서 도덕적인 분노를 표출하지 않으며 이를 바로잡고자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그간의 도덕교육이 관습에 불과한 것들을 마치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규범인 양 규정하고 강제해왔기 때문이다관습 너머의 것들을 고민할 기회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은 까닭이다.”(203, ‘12장 유아 수준의 대통령어린이 수준의 학교’)


‘교대는 바보 양성소’라고 단정 지어 말하거나, ‘도덕 교과서의 경박함’을 논하거나 ‘유아 수준의 대통령, 어린이 수준의 학교’라고 비판하며, ‘급식도 교육이다’라는 주장을 펼칠 수 있는 이유는 충분히 고민해서 내린 결론이기 때문이리라. 


특히 마지막 장(15장 교사의 지적 헌신 그리고 민주주의)에서는 통쾌함을 느꼈다. 그동안 내가 읽은 공교육에 관한 논의 중에서 가장 공감이 되면서 가장 의미 있는 이야기였다. 


배경지식 없이 사고 방법의 연습만으로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를 기를 수 있다고 보는 것은 망상이다탄탄한 지식을 갖춘 전문가의 사고 기술을 학생들에게 교육한다고 해서학생들이 전문가처럼 사고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다인지과학 분야의 연구들도 이를 뒷받침한다초보자와 전문가는 인지구조부터 다르다전문가는 기능’, 즉 심층구조를 중심으로 추상적으로 사고하는 반면 초보자는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과 피상적인 특징에 주목한다초보자가 전문가처럼 사고하기 위해서는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축적하고 끝없는 반복훈련연습을 해야 한다.”(279)


흔히 기존의 주입식 교육을 지식 위주의 교육이라고 말하는데 내가 볼 때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우리가 악몽처럼 떠올리는 교육 형태는 지식 위주가 아니라 정보 위주의 교육이었다


정보는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다인터넷 검색주식시장 전광판물건 가격표 등을 통해 누구든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다그러나 지식은 중요성정확성유용성영향력을 바탕으로 의미 있게 체계화된 구조로서 단순한 정보와는 엄연히 다르다


기존 교육은 배운 내용이 삶과 어떤 영향을 주고받고이것으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고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담아내지 못했다파편화된 정보의 주입식 교육은 학습자의 삶과 배움의 순환을 끊어버린다교육을 통한 사회변혁의 에너지 또한 소멸시킨다.”(282-283)


남의 생각에 휘둘리지 않고다수의 의견에 매몰되지 않고편견과 고정관념에 휩쓸리지 않고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독자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누리는 자유를 말한다자유로운 인간이 되기 위해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구조화할 수 있어야 한다


교사의 궁극적인 목표는 학생들이 교사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지식을 습득활용창조하는 인간이 되도록 돕는 것이다.”(286)


인간이 이상으로서 간직해야 할 순수함은 피를 흘리며 지켜내는 것이다이런저런 풍파를 겪으며 강하게 다져진 순수함이 아닌무지에서 비롯된 어설픈 순수함은 오히려 화를 부른다이런 나약한 순수함이 만연할 때즉 구성원의 지적 수준이 집단적으로 하향 평준화우민화될 때 민주주의는 그야말로 최악의 정치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먹고사는 문제에만 혈안이 되어 있고시민의 의무와 권리에는 무관심하고자신의 계급적 이익에 반하는 의사결정을 하고선동의 먹이가 되고민주주의의 원칙을 짓밟는 지도자를 선출하는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인류가 어렵게 쌓아올린 민주주의의 가치를 파괴한다그런 사람들을 길러내는 교육은 존재할 필요도 존재할 가치도 없다.“(287


온갖 추상적이고 멋있어 보이는 이야기(이 책의 말을 빌리면 ‘융합’이나 ‘창의’가 되겠다)를 조합하면 교육에 관한 논의가 된다고 착각하는 부류들을 많이 봤다. 그런 무의미한 말이야말로 교육을 좀먹고 있기에 저자의 결론에 격하게 공감하며 앞으로 이 선생님이 걸어갈 길을 응원하고 싶다. 또 공립학교의 ‘맨얼굴’을 보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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