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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평 모음

시장에 가면

- 이명랑, <삼오식당>

by 어스름빛


5일장이 서는 마을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 유년시절 내가 살던 곳은 5일장이 서는 마을에서부터 버스를 타고 20여분을 가야 하는 인적이 드문 곳이었지만 5일장이 서는 그 마을에서 학교를 다녔다.

서울 그것도 강남에서 8년간의 삶을 정리하고, 너무나도 촌다운 그곳에서의 생활은 어쩐지 처음부터 꾸리꾸리한 냄새가 나는 유쾌하지 않은 시작이었다.

5일장이 서는 날 시장에 가면, 시장 안은 온통 여러 가지 물건들로 가득 차 재미있는 곳으로 변했다. 어묵을 만드는 냄새에서부터, 도넛을 튀기는 기름 냄새, 누구도 사 입지 않을 것만 같은 그런 옷가지들을 늘어놓고 파는 그 옷을 닮은 아줌마, 수북이 쌓아놓아 금방이라도 떨어져 버릴 것 같은 계절 과일들에서 시작해서 장 구경 나온 온갖 사람들까지 장날은 흥겨운 날이었다.

촌사람들은 살 게 없어도 "장 구경 가자"하면서 그저 그 장날의 풍경을 구경하러 가기 일쑤였고, 나 역시 그런 촌사람들이 신기해서 가끔 장 구경을 나섰다.

장날 다음날, 시장을 가면, 아직 미처 다 치워지지 않은 쓰레기들만 덜렁 남아있는 아주 썰렁한 곳이 되고 만다. 시장에 있는 가게들은 부족하기만 했고, 왠지 어색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장날이 아닌 시장은 시장이 아닌 그냥, 가게에 지나지 않는다.

삼오식당은 그런 나의 유년 시절의 시장을 생각나게 해주는 소설이었다. 물론 삼오식당이 있는 곳은 영등포의 시장이긴 했지만 말이다.

서울 변두리를 잘 알지 못한다. 서울이 아니지만 서울과 가까운 곳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성남과 성남에서 20여분이 걸리는 내 마음의 고향 광주를 알 뿐이다. 서울 변두리의 삶의 모습은 어쩌면 서울과 가까운 경기도만큼 궁색하고 초라했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이 소설을 읽으면서 알았다.

삼오식당은 활기차다. 10년쯤 아줌마의 생활을 한 사람에게 듣는 수다 같다. 시장 바닥처럼, 왁자지껄하고 수다가 가득 차 있다. 게다가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뻔뻔스럽고 이기적이고 단점들이 가득한 인물들이다.

'힘들게 살지만 그들은 모두 다 착하고 순진한 인물들이야',라는 뻔한 말은 하지 않는다. 가난하고 남루하게 사는 그들의 모습은 부끄러움도 모르고 물건값을 흥정하고, 지하철에 자리가 생기면 가방부터 던져놓는 우리 시대의 '아줌마'의 모습을 너무나도 닮아 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형편없어 보인다거나 의미 없어 보이지 않는다.


삶의 몫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남루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배워야 할지도 모른다.


미화시킨 소설은 딱 질색이다. 시장에는 선하고 순진하고 후덕한 인물들만 사는 것처럼, 넉넉한 인심과 넘치는 정만을 강조하는 그런 류의 이야기는 이제 지루하다.

삼오식당은 속물근성이 넘치고 숨기고 싶은 초라한 추억이 있는 나 자신, 어쩌면 우리의 이야기도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이 사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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