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서평 모음

나도 너만큼 다 알아!

- 톰 니콜스, <전문가와 강적들>

by 어스름빛


지식인’이라는 단어에서 ‘지식을 갖춘 사람’보다는 네이버의 지식iN이 먼저 떠오른다. 이러한 변화는 2000년대 초반 ‘지식인에 물어보라’던 네이버 광고가 누구나 다 알 정도로 유명하기 때문일까? ‘지식인’이라는 의미가 ‘사람’에게는 걸맞지 않을 정도로 정보가 넘치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지식인이라고 불릴 만큼 지식인다운 사람이 없어졌기 때문일까?

이 세 가지 중 정답을 고를 수는 없다. 어느 하나의 영향이라 특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지식인(知識人)’이 없는 사회에 산다. 각 분야의 ‘전문가’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전문가’들도 신뢰받는 세상은 아니다. 그들은 자주 만날 수도 없고 가끔 등장할 때마다 틀리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누가 전문가인지도 모르겠다. 수없이 넘쳐나는 정보들 속에서 어떤 정보를 믿어야 할지는 개인의 몫이다. 그런 정보들이 많이 쌓이면 누구나 전문가가 될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러나 정말로 그럴까?

<전문가와 강적들>은 이 문제를 다룬다. 서론과 결론을 포함하여 총 8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전문가가 누구인지, 일반인(?)은 왜 전문가가 되기 어려운지, 전문지식은 여전히 의미가 있는지, 무엇이 전문가를 신뢰하지 못하게 만들었는지 등을 분석한다.

이 책의 저자 톰 니콜스는 러시아 문제 전문가인 자신에게 러시아에 관해 자기를 가르치려 드는 온라인 ‘비전문가’들에 화가 나 책을 쓰게 됐다고 한다.

전문가는 누구인가? 한 마디로 말하면 “한 주제에 관해서 나머지 우리보다 상당한 정도로 더 많이 아는 사람이며, 우리가 특정 분야에서 그동안 인간이 축적해 온 지식을 필요로 할 때, 조언이나 교육, 또는 해결책을 구하는 대상”이다. “전문가가 특정 주제에 관해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니지만 “관점이 더 신뢰할 만하다거나 옳거나 정확하다는 말에 가깝다.(61쪽)”

전문가를 어떻게 알아볼 것인가? (설사 자격주의나 학력주의라고 비웃는다 해도) 자격증이나 학위는 분명 성취의 증거이자 “단순한 애호가(또는 가짜 전문가)와 진짜 전문가를 구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중요한 표지”(63쪽)이다. 이는 시작점일 뿐이다. ‘진짜 전문가’는 타고난 재능과 전문 분야에서 쌓은 경험을 갖춘 사람이자 다른 전문가들에 의해 평가와 비판을 받는, 보증받은 사람이다.

독학으로 전문가가 되는 경우는 매우 보기 드문 예외에 해당하며, 단기간으로는 전문가가 될 가능성이 없다. 평범한 사람이 투지와 기발한 재주만을 가지고 전문가보다 뛰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면 (<굿 윌 헌팅> 같은 미국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처럼, 어쩌면 미국으로부터 기인한) 환상에 불과할 뿐이다.

전문가를 신뢰하기보다는 스스로가 전문가의 수준이라고 착각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학생 즉 고객이 왕이 된 대학 교육, 인터넷으로 인한 정보 과잉, 신저널리즘에 의한 폐해와 (전문가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빠질 수 있는 확증편향, 미신, 속설, 음모론 등의 영향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전문가들이 틀리는(혹은 실패하는) 경우를 목도하는 경험들은 전문가들을 신뢰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실패는 한 종류가 아니다. 과학의 실패, ‘상대적인’ 전문지식으로 인한 실패, 설명의 영역을 예측의 영역으로 넘어가려 할 때 발생한 경우와 마지막으로 저자도 우려가 되는 실패인 전문가가 자신의 전문지식을 한 분야에서 다른 분야로까지 억지로 확장시키려 할 때 등으로 다양하다. 전문가가 작정하고 사기와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극단적인 경우도 있다. 즉, 전문가들의 실패는 다양하고 복잡한 이유들이 얽혀 있다는 의미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전문가 집단 전체를 신뢰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저자는 일반인들은 자신의 지식 부족에 더 책임감을 느껴야 하고, 자신들만의 정밀한 논리로 전문가들의 주장을 평가할 줄 알아야 한다며 버트런드 러셀의 에세이를 인용한다.

“내가 옹호하는 회의주의는 결국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1) 전문가들의 의견이 모두 일치한다면, 정반대의 의견은 맞다고 볼 수 없다. (2) 전문가들의 의견이 서로 다르다면, 어떤 의견에 대해서도 비전문가는 맞다는 확신을 가져서는 안 된다. (3) 그럴싸한 의견처럼 들릴지라도 전문가들이 하나같이 충분한 근거가 없다고 이야기한다면, 일반인들로서는 마땅히 판단을 유보해야 한다.”(355-356쪽, 저자의 말에 의하면 1928년에 러셀이 발표한 에세이의 일부라고 함.)

결론에는 전문가와 일반인 간의 균형을 찾고 이 둘의 충돌을 줄이기 위한 방법을 제시한다. 방법은 전문가와 일반인 사이의 관계에서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다. 전문가와 일반인 사이의 관계 붕괴는 민주주의 자체의 기본 기능을 방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식에 대한 이해력이 곤두박질치고 의도적 무지가 증가하는 이런 현상은, 일반인들과 공공 정책 사이의 유리가 만들어 낸 악순환의 고리 중 일부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통치받고 있는지, 혹은 그들의 경제적, 과학적, 정치적 구조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고 신경 쓰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런 과정 전부가 점점 이해하기 힘들어지면서, 갈수록 많은 소외감을 느낀다. 그 복잡함과 어려움에 압도당한 사람들은 아예 교육과 참여의 기회로부터 등을 돌려버리고, 다른 것만 뒤쫓게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일반인들의 능력은 더 떨어지게 되고, 악순환의 고리는 더 강해지게 된다. 사람들의 이러한 도피 욕구가 다양한 여가 산업의 손쉬운 먹이가 되면서, 그 현상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예전에는 평생 상상도 못 했던 도구가 등장하고, 편리함이 넘쳐난다. 그 결과 미국인들은(그리고 공정하게 말해 다른 서구인들 역시)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들의 방향을 검증하는 데 필요한 배움을 거부하고 있다. 거부하는 태도도 거의 어린아이 수준이 되어 버렸다. 이런 현상은 적극적인 시민의식을 붕괴시키고 있으며, 다른 해로운 결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게 만들고 있다.”(374-375쪽)

이러한 현상이 심해질수록 행정 관료나 소수의 지식인 집단이 국가와 사회의 일상적인 방향을 결정하는 일을 사실상 모두 맡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신들 스스로가 공공선이라고 여기는 것에만 관심을 두는 효율우선주의자들”(375쪽)에 의해 지배받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일반인이 받아들여야 할 ‘불편한 진실’은 “전문가와 일반인의 관계는 ‘민주적’이지 않고 모든 사람의 재능이나 식견의 수준은 똑같지 않고 그럴 수도 없다”(397쪽)는 것이다. 민주주의란 모든 사람들이 “실제로 동등한 상태”가 아니라 “누구나 하나의 투표권을 갖는” 정치적 평등을 의미한다.

어쩌면 ‘엘리트주의’처럼 비추어질 저자의 견해는 그가 제시하는, 총 419쪽인 이 책 속 근거로 인해 설득력이 있다. 전문가가 아닌 (이 책에 번역에 의하면 “일반인”인) 시민이라면 불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자신이 쌓은 ‘지식’ 분야에서의 ‘전문성’을 주장할 뿐이다. 즉 저자가 모든 면에서 우위에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시민은 모두 ‘자기 삶의 전문가’다. 그러나 공공 분야의 전문가는 따로 있다. 그들을 신뢰해야 할 이유를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깨달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시장에 가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