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야모토 테루, <환상의 빛>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아니었다면 이 책을 알지 못했을 것 같다. 일본 소설을 많이 읽는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년 여름 히로카즈 감독의 데뷔작 <환상의 빛>이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루하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니만큼 가서 봤다.
들은 대로, 좋은 작품이지만 영화 상영 중간에 나가는 관객이 있을 만큼 지루했다. 영화가 다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서니 앞자리에 잠이 든 관객도 있었다. 대사가 많지도 않은데다가 화면 또한 무채색 계열이 많이 나왔고 영화는 줄곧 잔잔하게 흘러갔다.
무엇보다도 영화가 끝난 다음에도 답답함이 해소가 되지 않아서 당황스러웠다. 바로 그 당황스러움이 나를 원작 소설로 이끌었다.
미야모토 테루의 <환상의 빛>은 서간체 소설이다. 아내가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쓰여져 있다. 그러나 아내의 편지는 남편에게 닿을 수 없다.
서른 두 살인 여자의 남편은 7년 전에 자살을 했기 때문이다. 소설의 서두에서 독자에게 그 사실을 알려준다.
독자들은 호기심이 생긴다. 아내는 무엇이 궁금하기에 자살한 남편에게 닿지 못할 편지를 아직까지도 쓸까. 아내는 지난 7년 사이 재혼도 하고 이제는 마음도 어느 정도 평온해진 것 같은데 무엇이 여전히 죽은 남편을 놓치 못하게 만들까?
‘도대체 왜 죽었을까.’
남편의 자살 이유를 몰랐기 때문이었다. 유서 한 장 남기지도 않고 죽어버린 여자의 남편은 죽음의 징조조차 예상할 수 없었던 사람이다. 여자가 남편의 죽음을 납득할 수 없었던 이유는 당연하다. 편지를 써도 이미 죽어버린 남편이 대답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이 편지의 수신자는 결국 죽은 남편이라기보다는 편지를 쓰는 여자 자신이다. 아내는 글을 써 내려가는 과정을 통해서 남편과의 죽음을 자기 방식대로 해석하고 정리한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고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사람에게 우리는 자주 말한다. 그렇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왜 죽었는지 끝내 납득할 수 없어도 산 사람은 살기 위해서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
“전 그 사람이 왜 자살했는지, 왜 레일 위를 걷고 있었는지, 그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더 이상 잠을 잘 수 없게 돼요.…… 저기, 당신은 왜라고 생각해요?”
다미오 씨는 잠자코 있었습니다. 이불 속으로 기어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저는 잠옷으로 갈아입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꽤 긴 시간이 지나고 자신이 그런 질문을 했다는 것조차 잊어먹었을 무렵, 다미오 씨가 불쑥 말했습니다.
“사람은 혼이 빠져나가면 죽고 싶어지는 법이야.”
“……혼?” (79쪽)
대체 무슨 생각에서 다미오 씨가 그런 말을 했는지, 그 후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저는 확실히 이 세상에는 사람의 혼을 빼가는 병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체력이라든가 정신력이라든가 하는 그런 표면적인 게 아닌 좀 더 깊은 곳에 있는 중요한 혼을 빼앗아가는 병을, 사람은 자신 안에 키우고 있는 게 아닐까. 절실하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병에 걸린 사람의 마음에는 이 소소기 바다의 그 한순간의 잔물결이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것으로 비칠지도 모릅니다. 봄도 한창이어서 짙은 초록으로 변한, 거칠어지기도 하고 잔잔해지기도 하는 소소기 바다의 모습을 저는 넋을 잃고 바라봅니다.
자 보세요, 또 빛나기 시작합니다. 바람과 해님이 섞이며 갑자기 저렇게 바다 한쪽이 빛나기 시작하는 겁니다. 어쩌면 당신도 그날 밤 레일 저편에서 저것과 비슷한 빛을 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81-82쪽)
사람의 혼을 뺏어가는 빛. 여자는 남편의 죽음을 이해한다. “이층 창가에 앉아 따스한 봄볕을 쬐면서(9쪽)” 겨울에 죽은 남편을 회상하고 다시금 한창인 봄볕으로 돌아와 여자는 일상을 산다.
왜 나는 <환상의 빛>이 겨울을 배경으로 한 영화라고 생각했을까. 남편이 죽은, 겨울의 기차 레일이 생생해서인지 소소기로 시집 온 여자가 바라보던 겨울바다의 웅장함이 압도적이어서인지 모르겠다.
소설 <환상의 빛>을 읽으며 남편이 따라간 빛은 역시 겨울의 빛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비록 여자는 봄 바다를 바라보고 있더라도. 겨울, 저 멀리 레일 저편에서 비슷한 빛을 바라본 남편을 이해하고 있으니까.
소설은 영화보다 친절했다. 영화가 줄곧 무채색으로 여자의 삶을 다큐멘터리처럼 그렸다면, 소설은 봄에 보내는 편지답게 무겁지 않았다. 죽은 남편을 회상하고 있지만, 다정한 연인을 대하듯 우울하지 않았다. 애도의 무게에 빠져 허우적대지도 않았다.
그래서 추천하고 싶다. 히로카즈의 영화는 영화대로 좋았지만 그래도 미야모토 테루의 진짜 <환상의 빛>을 보는 것은 어떠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