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영복 선생님의 삶을 이해하며
급기야 울었다. 『담론』의 1부를 읽으며, 왜 내가 앞서 읽은 세 권의 책(『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숲』: 실제로 책엔 위 세 권의 책들의 내용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내용들이 많긴 하다.)과 비슷한 이야기를 하실까, 선생님도 이제(이 강의를 하실 당시에) 늙으셨구나. 실망스럽다 했던 나는 이 책의 마지막장 ‘희망의 언어 석과불식’을 읽으며 울었다.
고등학교 때 읽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보다는 대학 새내기 때 읽은 『나무야 나무야』가 와닿았었다. 10년 가까이 매년 『나무야 나무야』를 읽으며 따라야 할 발자취를 확인했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선생님의 글을 품었었지만, 선생님이 살아계실 때 한 번도 뵌 적이 없다.
괜한 고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글보다 못한 사람이 너무나도 많다는 사실을 알기에 혹여나 선생님께 실망하면 어쩌나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나는 선생님의 실천적이지 않은 모습에 이미 실망했었다. 왜 선생님은 출소 후 사회운동에 참여하지 않으실까. 나는 그 질문의 답을 ‘비겁함’이라 해석했었다.
이 책의 2부를 읽으면서야 진짜 답을 알았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지만, 나는 그 답을 ‘사유의 연장선상’으로 받아들였었다. 어리석었다.
“달리기 경주 때문은 아니지만 실천이 부재한 감옥 속에서 독서만으로 자기의 생각을 키워나간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마 그 후부터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부지런히 듣게 됩니다. 아마 수형 생활 20년 동안 책 읽는 시간만큼이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살아온 이야기는 이를테면 그 사람이 실제로 겪은 과거의 실천입니다. 그것을 나의 목발로 삼아서 걸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26-227쪽)
“학교 사택에서 태어나 줄곧 학교에서, 책에서, 교실에서 생각을 키워 왔던 나에게는 엄청난 파괴력으로 다가왔습니다. 함한 세상을 힘겹게 살아온 그 참혹한 실패의 경험들은 육중한 무게로 나의 사유를 견인했습니다. 발밑의 땅을 잃고 공중으로 부양하던 생각들이 이제는 발목이 빠질 정도의 진흙 위에 서게 됩니다.”(227쪽)
“답답하기 짝이 없는 억지 주장을 펴는 사람도 있고, 사회의 최말단에 밀려나 있는 자기의 처지와는 반대로 지극히 보수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는 사람도 많습니다. 심지어는 나를 두고도 “사람은 좋은데 사상은 나쁘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 처할 경우 대부분의 먹물들은 연설하려고 합니다. 나는 그 점을 극히 경계했습니다. 우선 그 사람의 인생사를 알고 있는 경우에는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 사람의 생각은 그가 살아온 삶의 역사적(?) 결론이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다시 쓸 수 없듯이 그 사람의 생각에 관여할 수 없습니다. 반면에 나 자신의 생각 역시 옳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수많은 삶 중의 하나에 불과합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승인하고 존중하는 정서를 키워 가게 됩니다.”(229-230쪽)
선생님의 (감옥에서의) 20년은 어땠을까. 『나무야 나무야』를 반복해서 읽었으면서도 짐작해보려 하지 않았다. 20대 후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무기징역수’로 감옥에서 산다는 건 어떤 삶이었을까. 선생님의 삶은 이해하려 들지 않으면서 선생님의 글 속에 있는 공감 가는 사유를 내 멋대로 편집하려 든 것은 아니었을까.
“그 사람의 생각은 그가 살아온 삶의 역사적 결론”이라면 “역사를 다시 쓸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사람의 생각에 관여할 수 없”다. 어쩌면 서글프고 어쩌면 당연한 이 결론이 선생님을 ‘운동’과 멀어지게 했겠구나. 이제야 깨달았다. 그렇더라도, 선생님이 ‘자본주의의 진짜 얼굴’을 보여주기 위한 ‘인문학 강의’마저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면 선생님의 삶이 최선은 아니었을까. 뒤늦게서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 책의 ‘2부 21장 상품과 자본’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친절한 해설서 같았다. 이어지는 22장부터 25장까지 선생님은 현재 우리의 삶과 사회에 대한 자신의 목소리를 충분히 내고 계셨다. 자본주의가 망가뜨린 ‘인간(적 삶)’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누구의 것도 충분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계속 질문하고 계속 사유하는 것뿐이다.
“그것은 오늘날도 다름이 없습니다. 독립된 개혁의 물적 토대를 만들어 내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당면 과제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회적 공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생각나는 것이 공자입니다. “군자도 궁할 때가 있습니까?”라는 자로의 질문과 “군자는 원래 궁한 법이라네”라는 공자의 답변입니다. 궁하면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자세입니다. 독립된 공간과 집단적 지성 그리고 그러한 소통 구조를 사회화하는 일이 과제라 할 수 있습니다.”(394쪽)
이 과제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지식인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품성”은 “양심”(405쪽)이다. 선생님이 감옥에 있던 20년 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보적인) 사상’을 버렸지만 양심의 가책 때문에 함께한 사람들은 남았다. 양심은 “사람의 얼굴”(410쪽)을 볼 수 있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마지막 장에서야 선생님은 감옥에서의 20년을 어떻게 버텼는지 이야기한다.
“옆방의 자살 때문이 아니더라도 나로서는 남한산성의 혹독한 임사 체험에서부터 20년 무기징역을 살아오는 동안 수시로 고민했습니다. 나는 왜 자살하지 않고 기약 없는 무기징역을 살고 있는가?
내가 자살하지 않은 이유는 ‘햇볕’ 때문이었습니다. 겨울 독방에서 만나는 햇볕은 비스듬히 벽을 타고 내려와 마룻바닥에서 최대의 크기가 되었다가 맞은편 벽을 타고 창밖으로 나갑니다. 길어야 두 시간이었고 가장 클 때가 신문지 크기였습니다. 신문지만 한 햇볕을 무릎 위에 받고 있을 때의 따스함은 살아 있음의 어떤 절정이었습니다. <중략>
내가 자살하지 않은 이유가 햇볕이라고 한다면,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하루하루의 깨달음과 공부였습니다. 햇볕이 ‘죽지 않은’ 이유였다면, 깨달음과 공부는 ‘살아가는’ 이유였습니다. 여러분의 여정에 햇볕과 함께 끊임없는 성찰이 함께하기를 빕니다.
다음으로 ‘자기의 이유’에 관한 것입니다. 네덜란드의 의사이며 작가인 반 에덴의 동화 『어린 요한』의 버섯 이야기입니다. 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산책을 갑니다. 산책로 길섶에 버섯 군락지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버섯 중의 하나를 지팡이로 가리키면서 “얘야, 이건 독버섯이야!”하고 가르쳐 줍니다. 독버섯으로 지목된 버섯이 충격을 받고 쓰러집니다. 옆에 있던 친구가 그를 위로합니다. 그가 베푼 친절과 우정을 들어 절대로 독버섯이 아님을 역설합니다. 그러나 그에게 위로가 되지 못합니다. 정확하게 자기를 지목하여 독버섯이라고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위로하다 위로하다 최후로 친구가 하는 말이 “그건 사람들이 하는 말이야!”였습니다. 아마 이 말이 동화의 마지막 구절이라고 기억됩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말이 바로 이것입니다. ‘독버섯’은 사람들의 ‘식탁의 논리’입니다. 버섯을 식용으로 하는 사람들의 논리입니다. 버섯은 모름지기 ‘버섯의 이유’로 판단해야 합니다. ‘자기의 이유’, 이것은 우리가 지켜야 할 ‘자부심’이기도 합니다. ‘자기의 이유’를 가지고 있는 한 아무리 멀고 힘든 여정이라 하더라도 결코 좌절하지 않습니다. ‘자기(自己)의 이유(理由)’를 줄이면 ‘자유(自由)’가 되기 때문입니다.”(424-426쪽)
이 부분이 나를 울렸다. 선생님의 감옥에서의 20년이 가슴 아파서(가슴에 와닿아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셔서’, 감동받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하는 말”이 아니라 “자기의 이유”로 살아야 “자유”가 된다는 말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와도 연관된다.
앞으로도 내 멋대로’ 살 테고 내 가치관에 따라 살 수밖에 없겠다. 그러면서도 가끔 ‘사람들이 하는 말’에 흔들렸고 고민했다. “햇볕과 함께 끊임없는 성찰”이 있다면, 그렇게 살기 위해 지금까지 노력해왔다면 이제 그만 흔들려도 좋을 일이다. 선생님은 마지막까지 나를 감동시켰다.
이제 “환상과 거품을 청산”(420쪽)하고 “환상과 거품으로 가려져 있던 우리의 삶과 우리 사회의 근본적 구조를 직시하는 일”(421쪽)과 “사람을 키우는 일”(422쪽)을 통해서, “그 사회를 인간적인 사회로 만드는 일”에 매진해야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