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도 리서치를 습관처럼 한다. 그중 자주 들여다보는 분야가 바로 독서모임이다. 최근 ‘그믐’에 가입해 메일링 서비스를 받아보는 것도 요즘 독서 흐름과 모임 운영 방식이 궁금해서였다.
이 책 역시 ‘그믐’을 살펴보다 발견했다. 학원 운영과 대학원 진학 준비로 몇 년간 독서모임 활동을 쉬었다가, 다시 독서모임을 열게 된 시점이라 더욱 눈길이 갔다. 30년간 하나의 모임을 이어온 비결이 무엇일지 궁금해져, 처음으로 ‘그믐’에서 진행하는 이 책 모임에 신청하게 되었다.
저자는 번역가이자 도서관 사서다. 프롤로그에 따르면, 번역 스승의 소개로 프랑스 문학 중심의 외국 소설 읽기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고, 올해로 29년째 그 모임을 이어오고 있다. 또 사서로서 중·고등학생과 함께하는 독서모임을 직접 운영한다.
책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한 총 7장으로 구성돼 있다. 특이한 점은 장마다 제목만 있을 뿐, 숫자를 붙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아마 각 장이 하나의 줄거리를 가진 연속 서술이 아니라, 독립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재는 모두 ‘독서회’라는 공통 주제를 다루지만, 흐름보다는 개별 경험과 조언이 병렬적으로 나열된 구조다.
차례는 다음과 같다.
책은 나에게 현실도피 수단이었고 인간 심리를 가르쳐주는 학교였으며 괴로운 마음을 승화하는 장이었다. 홀로 이야기 세계에 빠져드는 시간이 무엇보다 행복했다. <프롤로그>, 6쪽
→ 유년 시절 내가 책을 읽은 이유도 현실도피였다. 저자처럼 나 역시 책을 통해 사람을 배웠고 이해했다. 현실의 친구들보다 나를 더 닮은 친구들을 책 속에서 만났기에, 그 안에 오래 머물 수 있었다.
독서회 규칙 ① 가능한 한 결석하지 않는다. ② 과제도서는 반드시 읽는다. ③ 다른 사람 의견을 부정하지 않는다. ④ 과제도서를 존중한다. ⑤ 혼자 많이 말하지 않는다. ⑥ 잡담을 많이 하지 않는다. <독서회에 참가해 보자>, 22-27쪽
→ 당연해 보이는 규칙이지만, 독서모임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의외로 지키기 어렵다는 것을. 특히 ③, ④, ⑤, ⑥은 운영자가 참여자들에게 제지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더 힘든 부분이다.
자신을 속이지 않고 인생을 되돌아보는 일은 어렵다. <문학으로 살아가다>, 88쪽
→ 헤밍웨이를 읽고 저자가 쓴 문장인데, 깊이 공감했다. 자아성찰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용기가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40대가 되면 자기 얼굴을 책임져야 한다”는 말처럼, 40대가 되면 자아성찰이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 들어 보니, 그런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독서회는 책 이야기를 나누는 게 목적이다. 멤버들을 연결하는 유일한 접점이 책이다. 그래서 서로 경력이나 가정사는 알지 못하고 묻는 일도 없다. 30년 이상 함께 책을 읽어온 동료지만 모임이 끝나면 바로 헤어져 각자 생활로 돌아간다. 그리고 다음 달에 같은 책을 읽고 같은 장소에 모여 책 이야기를 나눈다. <문학으로 살아가다>, 107쪽
→ 이 대목은, 저자가 오랜 동료였던 T 씨의 부고를 신문에서 발견한 뒤 쓴 글의 일부이다. 맞다. 독서모임에서는 타인의 이력을 굳이 알아야 할 필요가 없다.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개인사를 묻지 않는 분위기가 강하다.
20대 시절 내가 참여했던 모임은 닉네임을 쓰더라도 서로의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눴는데, 이제는 실례가 될까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그럼에도 가끔 쓸쓸하다. 모임에서 함께 책을 읽던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살아갈까. 조금 더 개인적으로 알아도 좋았지 않았을까. 저자 역시 T 씨의 죽음 뒤, 그를 잘 몰랐음을 안타까워하며 이 대목을 남겼다.
독서회를 성공으로 이끄는 힌트④ 독서회 밖 교류의 장을 만들자(145쪽)
"멤버 간 적당한 거리는 미묘하다. 낯선 사람끼리는 긴장돼서 얘기를 나누기 힘들고, 신원을 모르면 어디까지 파고들어 의견을 내야 할지 알기 어렵다. 반대로 너무 친해도 좋지 않다. 긴장감이 사라져 잡담만 나누게 되어서다. 퍼실리테이터가 없더라도 모두 책 이야기에 집중한 채 재미나면서 적당한 긴장감이 흐르는 독서회가 이상적이다."
독서회를 성공으로 이끄는 힌트⑤ 문제의식을 고취시킨다(175쪽)
"사실 혼자 읽는 동안은 이야기할 거리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럴 때는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독서회에 가지만 다른 사람의 발언을 듣는 동안 말하고 싶은 게 계속 떠올라서 멈추질 않는다. 주변 사람들한테 자극받아 스스로 의식하지 못했던 생각이 발굴되고 정제되기 때문이다."
독서회를 성공으로 이끄는 힌트⑥ 이야기한 내용을 기록해 둔다(221쪽)
"독서회가 끝난 후 이야기한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 두면 어떤 책을 어떤 분위기에서 읽었는지 기록이 된다. 무엇을 이야기했고 어떤 의견이 나왔는지, 여유가 있으면 작품 시대 배경이나 작가 정보도 적어두면 좋다."
→ 독서회를 성공으로 이끄는 힌트는 대체로 공감이 되었다. 특히, ④, ⑤, ⑥은 나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내가 운영하는 독서모임도 모임이 끝나면 뒤풀이를 하곤 했다. ④처럼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좋기 때문이다.
⑤는 ‘우리가 왜 독서모임에 참여하는지’를 정확히 짚어준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통해 생각이 깊어지고 확장된다.
⑥은 내가 ‘독서모임 후기’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와 맞닿아 있다. 내가 운영하는 독서모임 아름은 후기가 긴데, 그렇게 촘촘히 기록해 두어야 나중에 다시 읽었을 때 모임의 대화와 분위기를 생생히 떠올릴 수 있다. 후기 쓰기는 여러 인문학 단체에서 세미나하며 배운 기술(?)이다. 내게는 오래 남는 자산이 되었다.
솔직히 말해, 나에게 큰 도움이 되진 않았다. 아마 내가 독서모임에서 문학을 선호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책의 상당 부분―〈문학으로 살아가다〉, 〈번역가의 시점으로〉, 〈독서회 여운에 잠기다〉―는 모두 문학 모임에서 나눈 이야기다. 그러나 나는 그런 이야기를 궁금해한 것이 아니었다.
문학을 분석하는 이론이 있지만, 감상은 본질적으로 자유롭다. 그래서 어떤 이야기가 나오든 “그럴 수 있지”로 귀결된다. 이런 자유로운 감상은 블로그나 온라인 서점 서평만 봐도 쉽게 접할 수 있기에, 이 책에서 특별한 차별점을 느끼기 어려웠다.
내가 주로 참여했던 세미나는 대체로 어려운 철학서를 다뤘고, 독서모임 아름에서도 문학 모임은 2기(8개월) 동안만 운영했다. 게다가 일본어에 익숙하지 않고 번역 경험도 없으니, 공감할 만한 부분이 많진 않았다.
결국 이 책은 독서모임 초보나 문학 중심 모임에 참여하는 독자에게 더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