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 아름 8기 1회] 2025년 9월 모임후기

by 어스름빛

9월 20일, 독서모임 아름 비문학 8기 첫 모임을 했습니다. 다양한 이력을 지닌 분들이 모여 다채로운 시선에서 이야기를 나누어 풍성한 모임이 되었습니다.


독서모임 아름의 모임은 이렇게 진행됩니다.


1. 운영자의 책 전반 흐름과 맥락 정리

- 작가, 제목, 머리말, 목차 살피기, 책 선정 이유 등을 정리


2. 발제자들이 요약한 내용 발표

- 각자 맡은 분량을 A4 1-2장 사이로 요약하여 발표


3. 책의 내용과 관련된 질문과 논의

- 모든 모임원이 함께 질의응답



1. 책 전반의 흐름과 맥락


저자 소개: 역사학 전공자로, 미국기업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하며 역사와 문화, 기술과 문화의 상호작용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이자 팟캐스트 진행자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제목 : 원제는 <The Extinction of Experience: Being Human in a Disembodied World>(2024)이며, 우리나라에서는 <경험의 멸종 – 기술이 경험을 대체하는 시대, 인간은 계속 인간일 수 있을까>라는 제목으로 2025년에 번역 출간되었습니다.


목차 : 책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고 총 7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논리적인 구성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 선정 이유

우리는 이미 디지털이 일상을 지배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보급이 사회를 바꿨고, 이어 코로나19 팬데믹과 생성형 AI의 등장은 또 다른 변화를 불러왔습니다.


이 변화의 특징은 이 책에서도 말하는 것처럼, ‘직접 경험의 멸종’입니다. 이 책을 통해 경험이 사라지는 상황이 어떤 문제를 낳는지, 또 그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 보고 싶었습니다.



2. 발제 생략




3. 책의 내용과 관련된 질문과 논의


1) 전체적인 감상


명* 님: "기술로 매개된 매끄러운 경험은 삶에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혼란과 마찰을 제거해 버림으로써 근본적인 변화를 만드는 가능성을 상실했다"라는 문장이 와닿았다. 얼마 전 유발 하라리의 <넥서스>를 읽었다. 그 책에도 AI에 대한 경고가 많아 이 책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었다.


기술 낙관론자로서 ‘스마트한 기술’을 좋아하는데 너무 매끄러운 경험을 원한다는 점에서 반성했다. 저자는 ‘근본적인 변화가 불편함에서 나온다’고 했다. 통제된 편리함에 익숙해진 일상 속에 묻혀 살다 보면 변화를 만들어 낼 원동력은 상실하는 게 아닐까 싶어 반성하는 마음이 들었다.


클** 님: 책을 읽으며 스스로 해야 할 일을 타인에게 맡기며 비용을 지불하는 현실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인간이 과거에는 자연스럽게 하던 운동을 이제는 PT처럼 돈을 내고 다른 사람에게 배운다. 인공지능의 사용도 마찬가지이다. 이 책에서도 이런 맥락에서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비대면 만남이 늘어나면서 타인과 교류하며 배우는 인간적인 경험을 놓치고 있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그런 점에 공감했다. 하지만 인간은 경험에 대한 욕구가 있기 때문에 해소하기 위한 방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말하는 멸종은 과거에 우리가 경험했던 경험 방식의 멸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정원 님: (이 책의 4장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최근 학부모들이 과거에 비해 양육 면에서도 인내심을 많이 잃어버렸다는 생각을 했다. 붙들고 씨름하려는 노력이 예전에 비해 굉장히 많이 줄어들었다고 느꼈다. 너무 매끄러운 현실, 즉 뭐든지 알아서 해주는 것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렵지만 노력해 보자가 아니라 더 쉬운 솔루션을 주는 공간(온라인, 인공지능 포함)으로 이동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걱정스럽다. 하지만 나부터도 불편함을 견디려는 노력이 줄어든 것 같아 반성했다.


그러나 매체를 통한 것도, 경험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진 모르겠다. 여행 유튜브를 보는 것으로 대체하고 직접 여행을 가는 것을 줄이는 것이 대리만족이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나쁜 건진 모르겠다.


원* 님: 문제의식에는 공감한다. 누가 공감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나 너무 기술 비관론으로 몰아세우는 지점이 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의 사용만 하더라도 자주 사용할수록 멍청해진다고들 하지만 사용하지 않기는 어렵다. 따라서 디지털 (매개) 기술은 불안한 공존에 가깝다.


기술 비관론으로 몰고 가니 결말에 힘이 없다. 또 미국 책의 특징이기도 한데 굳이 안 써도 될 이론이나 사례까지 끌어다 썼다. 분량을 줄이고 핵심에 충실했으면 더 매력적인 책이 되었을 것이다.


운영자: 극단적인 기술 비관론이라는 평가나 대안 제시가 부족하다는 점에 공감한다. 다만, 직접 경험의 멸종이 젊은 세대들에게 문제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식에 동의한다.


기다림이나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는 현상, 과거에 비해 교육에서 손 글씨 쓰기가 줄어들어 생기는 문제, 학생들의 집중력 하락 등이 기술(여기서 ‘기술’이란 컴퓨터, 스마트폰, 스마트 스피커, 웨어러블 기기, 미래에 등장할 삽입형 기구, 번역 소프트웨어, 알고리즘, 인터넷 플랫폼과 이런 도구들을 통해 경험하는 가상현실과 증강현실도 포함된다. 12쪽)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벤야민의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 대한 오독은 너무나도 아쉽다. 오독을 발견하니 저자의 인용이나 사례 제시에 대한 믿음이 줄어들었다. 오히려 인용이나 사례를 들어내고 핵심만 제시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또한, 번역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어색한 번역으로 인해 책의 매력이 많이 줄어들었다.



2) 각 장 관련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1장 직접 경험의 내리막


직접 경험과 간접 경험의 경계는 무엇이며, 간접 경험은 경험이 아닐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특히 '잘파(Zalpha) 세대'가 생각하는 경험의 정의는 기성세대와 다를 수 있다는 거지요. 그들은 디지털 환경 속에서 계속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경험이 멸종됐다'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현재 학생들이 공부하는 방식 즉, 태블릿 등을 이용해서 실시간으로 해외 저널을 찾고 토론하며 공부하는 방식은 과거 도서관을 이용하던 세대보다 효율적인 방식일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2장 대면 상호작용의 필요성


잘파 세대가 주변 사람들을 게임 속 NPC(Non-Player Character)나 투명 인간처럼 취급(65쪽) 한다는 지적에 공감하는지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탑재된 이어폰을 사용하면 주변 세상과 완벽히 차단되어 타인에게 전혀 신경 쓰지 않게 된다고 합니다. 공공장소에서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통화하는 사람들을 보면, 공포감을 느낄 수 있으니 이런 행동은 사회적 불안감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3장 손으로 써야만 배울 수 있는 것


경험에 대한 강조가 오히려 계급화를 낳을 수 있다는 비판이 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읽고 쓰는 행위는 극소수의 지배층과 중상류층의 특권이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손글씨 쓰기가 인류의 보편적 경험인 듯 일반화하는 것은 복고주의적이고 근시안적인 접근일 수 있습니다. 또한 '몸으로 부딪히는 경험'을 강조하는 것이 '구별 짓기'이자 계급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예를 들어, 부르주아 보헤미안을 뜻하는 '보보스' 계층은 의도적으로 거친 질감의 제품(울퉁불퉁한 나무 장난감, 투박한 도자기 등)을 선호하고, 돈을 내고 고생스러운 체험(템플스테이, 오지 탐험 등)을 즐깁니다. 이런 경험이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고 타인과 구별 짓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경험의 복원'이 과연 경험 멸종 시대의 본질적인 해법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게다가 경험에 돈이 든다면 아무나 경험할 수 없기에 또 다른 사회적 양극화를 초래할 뿐이겠지요.



4장 기다림과 지루함의 기능


4장을 읽으며 줄을 설 때조차 스마트폰을 보는 자신의 모습에 뜨끔했다고 말하는 분이 계셨습니다. 저도 최근 손 글씨 쓰기를 너무 힘들어하거나 가만히 앉아 있는 것조차 어려워하는 학생들을 많이 만나서 특히 공감이 되었습니다. 또 공부가 어려워지면 쉽게 포기하는 학생들도 자주 봅니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역시 디지털 기술이겠지요. 지루하거나 심심할 틈이 없게 만들어주니까요.



6장 기술로 매개된 쾌락


이 장에는 블로그만 보고 찾아간 여행지에서 위험을 인지하지 못해 사고를 당하는 사례가 나옵니다. 이처럼 기술이 우리가 느껴야 할 감정을 차단하고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에 혼란을 줄 수 있습니다.


최근 관광지에서는 실제 풍경을 감상하기보다는 남의 SNS 사진 구도를 그대로 따라 찍거나 특정 영화의 장면을 재현하는 등의 풍경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토대로 '멈춰서 생각하는(Stop and Think)' 능력이 사라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라고 말하며 경험의 본질보다 기록에 집착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한 분이 최근 반려견을 잃은 후 사진으로 위로받았다는 경험담을 공유하며 기술이 인간의 기억과 심상을 강화하는 '보조 도구'로서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음 또한 지적했습니다.



7장 소멸하는 장소, 개인화된 공간


제 생각에 이 책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인간이 사회적 존재임에도 공동체 의식을 점점 잃어가고 있음을 지적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생성형 인공지능의 확산 이후 개인의 고립이 심화되었고 가족 단위에만 의존하게 된 것처럼 보입니다. 가족에 의지할 수 없는 사람들은 더욱 소외되는 현실이 되었지요. 바로 이런 현실로 인해 범죄가 늘어나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최근 AI를 친구 혹은 애인처럼 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도 고립의 심화가 원인 아닐까요? 그런데 AI는 과연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AI와의 대화나 상담은 사람과 달리 판단받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지만, AI와의 대화 이후 자살을 선택했다는 기사도 있어 의문은 계속 남습니다.


한 분이 경험 멸종 시대의 해법으로 '독서모임'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책을 읽고 함께 모여 토론하는 과정 속에서 사람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 과거에는 비슷한 생각을 했었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매체보단 그 매체를 다루는 사람들의 가치관이 더 중요하단 생각이 들거든요.


이 이야기로 모임을 마무리했습니다.



논의하고 싶은 내용을 준비했지만 이야기하지 못한 내용이 많았습니다. 제 질문보단 모임에 오신 분들의 질문이나 생각이 더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아쉬워서 여기에라도 올려둡니다.


1장 직접 경험의 내리막


- SNS, 모바일 메신저 앱의 소통(28쪽)으로 최근 사람들 사이에서 대화가 되기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결과 상호 간의 의사소통이 잘 안 된다고 느꼈다. 여러분의 생각은?


- “기술 기업들은 경험을 마케팅에 활용하는 추세를 선도한다.” “우리는 자신이라는 브랜드의 매니저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광고가 되었다.”(38-39쪽) 네이버블로그, 브런치 등의 온라인 플랫폼에서 자신을 브랜딩 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고 느꼈다. 여러분의 생각은?


-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자살 시도 혹은 자살이 일상 오락거리로 전락(43쪽)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여러분의 생각은?


2장 대면 상호작용의 필요성


- 요즘 Z세대(1990년대 중/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 출생)나 알파세대(2010년~2024년 출생)들의 특징 중 하나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NPC 취급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표현에 따르면 “투명 인간 취급”(65쪽)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생각에 동의하는지, 저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매개된 기술의 영향이라고 생각하는지?


- 이 책은 ‘매개된 기술’에 대해 부정적인 관점을 보인다. 그러나 최근 생성형 AI의 긍정적 효과를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노인 돌봄 서비스와 관련하여 휴머노이드 로봇(73쪽) 개발이 초노령화 사회로 나아가는 현실에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한다. 여러분의 생각은?


3장 손으로 써야만 배울 수 있는 것


- 손으로 쓰는 것의 중요성을 계속 느낀다.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기에 “손 글씨는 아이의 읽기 능력 습득을 촉진한다(인디애나대학교 블루밍턴의 신경과학자 제임스, 98쪽)”는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손 글씨는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다”(102쪽) 고도 생각한다. 워드로 쓰는 것보다 손으로 쓸 때 기억이 더 잘 난다. 그러나 공교육의 현실은 그 어느 때보다 손 글씨를 쓰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문제라고 생각한다. 여러분의 생각은?


- 코로나 시기 온라인 교육 역시 실패라는 평가(116~117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 아동 시기 놀이의 중요성은 《도둑맞은 집중력》에서도 언급하는데 이 책에서도 놀이 기반 학습이 중요하다(119쪽)고 한다. 여러분의 생각은?


4장 기다림과 지루함의 기능


- “속도에 길들여짐에 따라 모든 것에 대해 점점 더 참을성이 없어지고 있다. 거기에는 일상생활의 상호작용도 포함된다.”(143쪽) 지루한 시간이 사라지면 자신의 생각과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다.(150-151쪽) 백일몽을 약화시킨다.(152쪽). 즉, 창의성이 사라진다. 통제할 수 없는 기다림은 인내심을 키우고, 경청하는 습관을 만든다.(158쪽) 여러분의 생각은?


5장 감정 길들이기


- 소셜 미디어가 통제 불가능한 질투와 같은 부정적 감정을 키운다.(185~186쪽) 《도둑맞은 집중력》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페이스북 같은 소셜 미디어 개발회사가 앱에 오래 머물게 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사용하는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2020)에서 다룬다는 내용도 나온다. 이와 관련하여 온라인에서 주목받고 싶어서 자극적인 행위를 한 사진이나 영상을 일부러 올리는 것도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 임신한 지 8개월이 되어 낙태한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서 문제가 된 경우, 대구 간호사들이 신생아를 비웃는(“낙상 마렵다”) 사진을 올린 것 등등처럼. 여러분의 생각은?


- “공감은 상상력과 의지가 필요한 행위다.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공감은 물리적 신체를 통해 다른 사람의 움직임과 표정을 관찰해야 가능하다.”(187쪽) 하지만 나는 공감이 가능하려면 보다 근본적으로 비슷한 경험이 겪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여러분의 생각은?


6장 기술로 매개된 쾌락


- 2014년 전 세계 가장 많이 검색된 질문은 “사랑이란 무엇인가?”이고 2022년엔 “무엇을 볼까?”였다. 저자는 육체와 분리된 방식으로 우리 몸에 집착하는 “탈육신”의 시대에 접어들고 있으며 육체적 소외 즉 우리 몸과 다른 사람의 몸에 거리를 두고 있다는 철학 교수 리처드 카니의 말을 인용한다. 이러한 현상은 포르노 소비로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연예예능’이나 이혼 관련 예능으로 드러난다는 생각을 했다.


7장 소멸하는 장소, 개인화된 공간


- 저자는 휴대전화로 인해 장소성이 사라졌다는 점을 지적한다. 하지만 ‘당근’처럼 지역을 기반으로 모임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앱도 있긴 하다. 그럼에도 이런 앱에서의 모임이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이나 참여로 이어지는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여러분의 생각은?


- “우리는 사회적 존재다. … 마크 버논은 “우리는 가족, 애정, 공동체, 사회로 연결된 타인들이 어떤 사람인지 발견함으로써 우리가 누구인지 알아낸다””(309쪽)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점점 더 공동체의식이 사라지고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저자처럼 디지털 기술과 도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러분의 생각은?


에필로그 이 혼란에 저항하라

- 어떻게 하면 저항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디지털 기기나 기술을 포기할 수 있을까? 또 나 혼자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결될 일일까? 최근 취임한 최교진 교육부 장관은 초․중․고등학생을 포함한 전 국민의 AI 교육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AI 기술이 개인 역량을 증폭시키는 부분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마냥 거부할 수도 없는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직접 경험이 멸종되지 않게 할 수 있을까?




덧 -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작년에 과학독서모임에서 읽은 <감각의 미래>가 생각났습니다. <감각의 미래>는 <경험의 멸종>의 반대편에 서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기술을 만난 인간의 감각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지 낙관적인 입장에서 이야기하고 있거든요. 함께 읽어보시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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