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되고 싶냐는 어른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법. #제4장.
고등학교 시절, 교사의 꿈을 가지고
초등학교 교사와 중고등학교 교사를 비교해보며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중고등학교 교사는 한 과목만 가르치잖아. 너무 지루할 것 같아!
똑같은 말을 반마다 돌아다니면서 해야 하고...
난 여러 과목 공부하는 걸 좋아하니까 초등학교 교사가 좋겠어.'
라는 철없는 생각을 하며 교대에 진학했다.
교대에 다니면서 정말 지루할 틈 없이 다양한 경험을 했다.
교육학부터 시작해서 국수사과실체음미영...컴퓨터. 각 과목의 교육학적 이론과 실기까지.
지금 생각해보면 과제의 종류도 참 다양했다.
친구와 함께 2인 1조로 피아노 치기, 공연 감상하기, 단소와 리코더, 작곡,
물구나무서기, 야구 보기,
수채화, 조소, 붓글씨 등등.
미술 과제에 필요한 재료를 사겠다고 남대문 시장에 갔던 일도 있었다.
마치 미술을 전공하는 학생이나 아티스트인 것처럼.
참으로 제너럴리스트 중 제너럴리스트였던 것이다.
교사로 발령받은 첫 해,
나에게 주어진 과목은 다양한 교과를 섭렵하는 담임교사가 아닌, 영어교과 전담교사였다.
반마다 돌아다니면서 같은 지문을 읽고, 같은 노래를 부르고, 같은 게임을 하고...
하루에 5시간~6시간 수업이 끝나면
머릿속에 챈트의 가사들이 둥둥 떠다녔다.
"웨얼 알 유 프롬? 웨얼 웨얼 알 유 프롬? 아임 프롬 코리아~ 아임 프롬 차이나~ 룰루랄라"
똑같은 수업을 세 번 쯤하면 이보다 더 지루할 수는 없었다.
다음 해부터 제너럴리스트를 꿈꾸며 줄곧 담임교사를 했다.
아이들에게 다양한 교과를 가르치며 여러 교과를 융합해서 교육과정을 재구성하는 것은
나를 성장시키고 새로운 배움의 통로를 만들어내는 의미 있는 일이었다.
1교시에는 아이들과 국어시간에 토의를 하고,
2교시에는 체육관에서 협력 피구를 하며
3교시에는 과학실에서 실험을 했다.
마치 아이들이 레고를 하다가, 크레파스로 색칠을 했다가, 의사가 되어 인형을 치료하며 병원놀이를 하는 등
이 놀이, 저 놀이를 돌아가며 하듯, 나 역시 제너럴리스트로서 지루할 틈 없이 일하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애덤 스미스는 전문성과 효율성을 강조하며 분업이 효과적임을 주장했고,
이에 반하여 마르크스는 효율성보다는 흥미로운 삶이 이상적이라고 믿었다.
이에 대해 알랭 드 보통은 누가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인생을 계획할 대 어느 쪽 (스미스의 전문가 편 vs 마르크스의 제너럴리스트 편)을 선택할지는 생각해 볼 만한 문제라고 조언한다.
요즘 나 역시 이 문제에 직면한 것 같다.
조금 늦은 고민일지 모르겠지만, 제너럴리스트로서 힘에 부치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교과를 담임교사가 전문성 있게 가르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학교마다 과학, 영어, 음악 등 특정 교과를 집중해서 가르치는 교과 교사가 있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선생님들이 자료를 공유하는 커뮤니티에서도 굉장히 질 좋은 자료들은
교과 선생님들께서 개발한 경우가 많다.
나는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싶은 것일까?
요즘 이슈인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에듀테크일까?
아이들이 자기 자신을 이해하며 꿈을 찾아가도록 도와주는 진로교육?
여전히 주목받고 있는 수학, 과학 영재교육?
그래도 인성이 최고지! 세계시민교육?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어서, 어느 것이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인지 몰라서
문어발처럼 걸친 채 여전히 제너럴리스트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제너럴리스트이든, 전문가이든,
전문적인 일만 반복해서 하다 보니 지루함을 느끼든,
쉴 새 없이 빠른 전환 속에 바쁜 일이든,
나에게 그리고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일'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오늘도 내가 마주하는 생활 곳곳에서 제너럴리스트로서, 또는 전문가로서
가치 있는 일을 하고 계신 모든 직업인께 감사한 마음을 이 글에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