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꾸는밍 Sep 13. 2024

이러닝 교수설계자 프리랜서 후기

굉장한 가내 수공업


안녕하세요, 

이러닝 교수설계자로 경력을 쌓은 N잡러 꿈꾸는밍입니다. 


브런치에서의 첫 글은 이러닝 분야에 대해서 스타트를 끊게 되었네요.


작년까지 약 1년 반 동안 이러닝 교수설계 PL로 근무했으며, 퇴사후에는 프리랜서 교수설계자로 업을 이어오고 있는데요, 정말 이제는 못하겠다 싶은 순간이 왔습니다. 그래서 적어보는 개인적인 평가입니다. 오늘은 먼저 프리랜서 교수설계자에 대해 적어보려고 합니다.


이러닝 교수설계, 이러닝 분야는 조금 생소할 수 있어요.

우리가 온라인 강의는 쉽게 접하고 있지만, 그 강의를 어떻게 제작하는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갖지 않잖아요. 이러닝 분야는 바로 이러한 온라인 강의를 만드는 업 혹은 업체입니다. 저도 평소에 온라인 강의에 관심이 많았으며, 또 교육학 전공 지식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하여 이 업에 뛰어들게 되었는데요, 직접 부딪히면서 느낀점이 많습니다. 


이러닝 분야에서 경력을 쌓으면 퇴사 후에도 프리랜서 교수설계자로 근무할 수 있으며, 또 부업으로도 활용할 수 있기는 하지만, 결코 추천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스토리보드 작성이 너무 가내 수공업 느낌이고 고되다.

영상 제작을 위해서는 '스토리보드'를 써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이 작업을 주로 파워포인트로 하고 있거든요. 문제는 파워포인트가 엑셀처럼 자동화 기능이 많지 않아 일일히 한 장 한 장 수동으로 작업을 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는 것입니다. 


특히나 스토리보드는 씬 넘버처럼 번호를 붙여야 하는데, 이것을 일일히 수동으로 작업해야 하거든요. 이렇게 하다보면 틀릴 때도 있고, 놓칠 때도 있으며, 수정해야 할 때도 있는데, 이렇게 되면 처음부터 다 수정을 해야 한답니다. 꼭 넘버링 뿐만이 아니라 페이지 번호, 사용한 이미지 출처나 번호, 사이트, 등 반복적이고 수동적으로 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서 하다보면 현타가 많이 옵니다.


요즘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잔 업무는 하나라도 줄이려고 하는 판국인데, 이러닝 분야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달라진것이 없다고들 하더라고요. 저만 이렇게 느낀 줄 알았는데 벌써 몇 년전에도 이런 얘기가 나왔더라고요. 그런데 바꾼다고 하더라도, 어떤 플랫폼이나 웹페이지 등이 개발되지 않는 이상은 파워포인트를 사용하는 수 밖에는 없을 것 같아요. 


2. 양이 너무 많다.(그에 비해 짠 단가)

사실 1번하고 연결되는 내용인데요, 기본적으로 영상 강의를 만들 때에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SME) 혹은 강사로부터 원고 및 학습 자료를 받고 그 자료를 토대로 화면 구성 및 제작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한 차시 당 기본 20분 되는 강의를 만든다면 슬라이드가 100장 정도가 나오고, 이 정도면 기본 2~3일은 걸리는데 그에 비해 단가가 낮아 계산을 해보면 최저 시급도 안 나올 때가 많아요. 그리고 거기에 더해 수정까지 더해지면 정말 많은 양을 처리하는 셈인데요, 이 업계에서는 모두가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일이 너무 많다, 이런식으로 말하기가 곤란하달까요? 


원고 양만 많으면 그래도 준수한 편입니다. 

만약 내용전문가(SME)가 원고 내용도 부실하게 주거나(복붙 수준) 기타 부가 학습 자료(퀴즈, 학습 정리, 학습 목표, 내용 등)를 정리해서 주지 않을 때도 많으며, 어쩔 때는 나래이션 윤문이나 작성까지 필요할 때도 있어요. 이렇게 하다보면 교수설계자의 업무 범위가 넓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회사나 사람 탓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애매하게 업무가 더해지는 것이라 누굴 탓할 수도 없고, 정 힘들면 이야기를 나누는 수밖에는 없는 것이죠. 사실 메인 잡은 화면 설계를 학습자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논리적으로 설계하는 것인데, 그것 외로 다른 부분까지 더해져 시간이 배는 더 걸리게 되는 것이죠. 그래도 원고가 정리가 딱딱 잘 되어 있으면 정말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질 정도로, 원고 정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잘 되어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답니다. 


저는 조금 충격(?)을 받았던 것이, 저는 교육 공학 전공자가 아니라 교직 이수를 했는데, 그 때 중요한 것이 학습 목표와 학습 내용, 그리고 정리하기도 중요하다고 배웠거든요. 그런데 처음 이 업무를 시작했을 때 내용 전문가가 학습 목표를 제대로 정리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교육에서는 기본 중에 기본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왜 이렇게 되는지 알고 보니 내용전문가도 본업이 있는 와중에 급하게 섭외를 당한(?) 경우가 많아, 너무 바쁜 나머지 신경을 못쓰게 되는 것 같더라고요. 또한 마찬가지로 들이는 품에 비해 너무 강의료가 낮다거나 하는 이유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강사가 우리한테는 선생님이지만 본업은 한 기업의 대표라든지, 전혀 강의와 무관한 직업을 가진 분들도 많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교수설계자가 이런 부분까지 설계할 줄 알아야 하는데, 문제는 하나만 가지고 하면 모르겠는데 그 양이 엄청 나다는 거죠.


어떨 때는 퀴즈를 직접 만들기도 한다던데... 저는 거기까지 가진 않았지만 정말 놀랄 노자였습니다. 만약 인공 지능 분야의 강의라면 전문가가 아니면 알 수가 없는데, 어떻게 퀴즈를 만들 수 있을지.. 


그런데 단가가 낮은 편입니다. 그러니까 그냥 딱 보기에는 한 건 당 금액이 써있으니 많아 보일 수도 있는데요, 하다보면 양과 들이는 시간에 비해 결코 높지 않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끼게 됩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최저시급도 안 나올 때가 많거든요. 여기 저기에서 이야기를 듣다보니 약 10여년 전의 단가와 똑같다고 하더라고요. 물가도 많이 오르고, 또 작업량도 어쩌면 더 많을 수도 있는데 똑같다니.. 그래서 아마 하려고 하는 사람이 별로 없을 수도 있습니다. 


3. 주관적일 수 밖에 없어 수정이 많다.

이 부분도 굉장히, 개인적으로 혼자 불만(?)이 많았던 부분입니다. 메인 일이라고 할 수 있는 스토리보드 작성 일이 상당히 주관이 많이 개입하여 수정 사항이 많아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고 업무의 성격 자체적으로 이럴 수 밖에 없습니다. 혼자 다 하지 않는 이상은 계속해서 이런 구조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영상 스토리보드를 쓸 때는 처음에는 기준이 되는 프로토보드를 써야 하는데, 이것은 중요하기 때문에 회사 내부에서 작성할 때가 많습니다.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경력이 높은 프리랜서가 쓸 수도 있고요. 어쩄뜬 이렇게 프로토보드가 나오면 그것을 기준으로 양산 보드를 작성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온라인 강의가 1주에 2~3개씩 한다고 하고 한 달을 하면 최대 15개 보드가 나와야 하는 것이죠. 이럴 때 1개의 프로토보드 외에 나머지 14개는 양산 보드라고 합니다. 


이 양산 보드 작업을 내부에서 다 할 수가 없고 다른 업무가 많으니 프리랜서 교수설계자에게 외주를 맡기는데요, 이렇다 보니 프로토보드를 쓴 사람과 양산 보드를 쓰는 사람이 달라 아무리 프로토 보드를 보고 나름대로 룰을 지켜서 작성한다 하더라도 프로토보드를 쓴 사람이 보기에는 달라보일 수 밖에 없는 거죠.


수학 공식이나 표처럼 딱딱 떨어지게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원고의 내용을 반영하는 작업이라, 사람마다 원고의 내용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표현하는 것이 달라, 프로토보드를 따라 쓴다 하더라도 결국 내용에 따라 조금은 수정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적은 수정은 별 말 없이 지나갈 때도 있지만, 많을 경우에 진짜 힘듭니다. 단가를 생각하면 더 더욱 말이 안되는 가격이 나오게 되죠. 


보통 어떤 업무를 하더라도 최대한 수정이 나오지 않게 작성 단계에서 검토를 많이 거치는 것이 보통이라고 배웠는데, 교수설계 업무는 바로 파이널처럼 작업을 하지만 또 수정이 계속해서 나오는 상태가 되어서, 그것 자체만으로도 굉장한 스트레스가 생깁니다. 굉장히 사람 자체를 갈아넣는 느낌이랄까요? 나중에는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면서 때려치고 싶게 됩니다.. 




물론 퇴사 후에도 집에서 프리랜서로 근무하며, 잘 하면 월급 이상을 벌 수 있다는 장점도 있기는 하지만, 이럴 때는 드문 것 같아요. 정말 전문으로 엄청 많이 하시는 분도 보긴 했는데, 보통 저 정도의 페이스라면 일을 많이 따오더라도 지쳐서 못 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이 업계에서 정말 신기한 점은, '어쩜 그렇게 느끼는 점이 하나같이 같냐'는 것입니다. 일을 하다보면 사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 부분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이 분야는 힘든 점, 부당한 점, 답답한 점 느끼는 점이 정말 내 생각을 읽었나 싶을 정도로 같습니다.. 그래도 이러닝 업계에 비전이 있으신 분들은 힘들지만 해나가는 느낌이고, 저와 같이 이도 저도 아니면서 자신의 한계를 느낀다면 때려치우고 다른 업종을 택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제가 쓴 느낀 점도 다른 사람이 느꼈던 것과 정말 비슷하더라고요. 정말 자신을 갈아넣어도 괜찮다, 손이 빠르다, 수정에 대해 별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싶으신 분들은 한 번 생각해보실 수도 있겠지만, 이마저도 아무래도 경력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라, 교육이라도 들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교육을 듣고 이 일을 시작했거든요. 다음에는 이러닝 교수설계 PL에 대해서 작성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