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이야기#1] 고양이와 낮잠, 바다와 달무리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by 윤혼자

강릉으로 이사 온지도 두달이 되었다. 카페로 출근한지는 한달 하고 열흘. 일의 순서나 레시피, 해야 할 일들은 적응이 된 것 같은데 내 몸은 아직 적응이 덜 되었나보다.

지난 14년 동안 컴퓨터 앞에서 디자인 작업하며 시간을 보내오다가 서서 일하려니 쉽지가 않다. 게다가 주6일 근무에 명절이나 공휴일도 일하지 않는가. 쉴새없는 설거지와 음료 제조, 재고 정리, 입고된 무거운 박스 옮기기, 재료 소분하기. 2-3층에 두고 간 식기들 1층으로 내리기. 이 단순한 일들에 내 무릎과 손가락 관절들은 이미 박살나버렸다. 아침에 일어나면 손가락이 펴지지도 움켜쥐지도 않고, 무릎은 앉았다 일어날 때마다 고통스러워 무언가를 잡고 일어서야 한다.


오늘은 어쩌다 보니 일주일을 일하고 쉬게 되었다. 이 얼마나 꿀같은 휴일인가. 한달 만근으로 월차도 생겨 내일까지 쉴 수 있다. 무려 이틀을 쉴 수 있다니! 서울에서는 너무나 당연해서 소중한지 몰랐던 이 휴일이 이렇게나 소중하고 행복하다. 어제 잠들며 다짐했다. 내일은 아무 일도 하지 말자. 밀린 집안일도, 밀린 분리수거도, 냉장고 청소도. 아무튼 간에 아무것도 하지 말고 온전히 쉬고 늦잠도 실컷 자자!


서울에서는 휴일이면 오후 두시가 돼야 눈이 떠지곤 했는데. 눈을 떴어도 또다시 잠들고 잠들고. 잠듦의 연속이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몸이 더 피곤한 지금의 나는 아침 아홉시에 눈이 떠졌다.


일어나니 역시나 아픈 온몸에 저절로 끙끙거리는 소리를 냈더니 내 사랑하는 고양이들이 침대로 모여들었다. 우물이가 먼저 와서 여느 때처럼 이불 속으로 파고 들었다. 창문을 열어두니 매미 소리가 듣기 좋았다. 보들보들한 내 사랑하는 고양이가 내 살결에 얼굴을 파묻고 잠든 아침. 깨어나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아침. 매미가 우는 아침. 이보다 행복할 수 있을까. 그렇게 정오까지 휴대폰 보며 멍때리다 보니 배가 출출했다. 뭘 차려먹기도 참 귀찮네. 벌이가 줄어든 만큼 배달은 정말 그만 시켜야 하는데. 오늘만 먹자는 생각으로 (매번 그러하지만) 배달을 시켜 거실에서 보이는 큰 나무를 바라보며 먹었다. 그러고 낮잠을 잤다.


깨어보니 오후 다섯 시. 티브이를 보며 고양이 뱃살과 귀, 배를 만지작거리다가 석양이 보고싶었다. 자전거 타고 경포호로 가볼까? 지도상으로는 집에서 26분 거리라는데. 지도를 믿을 수는 없다. 적어도 40분은 걸리겠군. 자전거를 세팅하고 열심히 달렸다. 초행길에, 자전거도로가 없는 시내를 가로질러야 해서 꽤 막막했지만 헤매지 않고 도착했다. 역시 예상과 달리 한 시간이나 걸렸다. 그 즈음이 여덟시였나. 이미 해는 다 졌지만 스카이베이 호텔을 배경으로 한 경포호는 아름다웠다.

경포호의 여름

경포호 반바퀴를 돌고 안목으로, 안목에서 집으로 가는 코스를 잡고 다시 출발했다. 근데 이게 무슨 일이지. 6-7년 전에 봤던 정말 큰 슈퍼문 다음으로 엄청 큰 달이 눈앞에 있었다. 하늘에 떠 있는 게 아니라 내 앞에 내려와 있었다. 경포호-안목 방면엔 자전거 도로가 잘 되어 있어 그 달을 보며 달릴 수 있었다. 나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달은 어떻게 저렇게 노랗지? 어떻게 저렇게 크지? 어떻게 저 달이 내 앞에 있지? 나 왜 이렇게 행복하지? 이러려고 서울도 커리어도 다 버리고 여기 왔구나. 나 잘했네. 지난 두달간 했던 참 많은 선택들 가운데 내가 잘못한 건 뭐였을까. 다 잘한 걸까? 최선의 선택으로 지금 내가 여기에서 이렇게 살아가고 있나. 그런 거 맞나? 맞겠지? 최저시급 받으며 사는 삶 괜찮을까? 벌써 이렇게 무릎과 손가락 관절이 다 아픈데. 아침에 일어나면 두들겨 맞은 것마냥 온몸이 아픈데. 이 일 오래 할 수 있을까? 워라벨 중요시했던 내가 이렇게 오래 일해도 되는 건가? 내 고양이들은 더 건강히 오래 살 수 있겠지? 나는? 나는 건강한가? 술을 정말 줄여야 하는데. 일주일에 일주일 먹는 삶에서 그래도 이틀은 안 먹으니 점차 나아지겠지? 아 근데 정말 기분이 째진다.

IMG_1351.HEIC 화면에 안 담기는 큰 달


생각에 생각은 꼬리를 물고 달리면서 노래 들으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니 모든 것이 감사했다. 무엇보다도 엄마에게 감사했다. 엄마가 원망스러울 때가 많았는데. 딱 십년 전 난 죽고 싶었는데. 너무 살고 싶다. 죽는다는 게 두렵다. 건강해지고 싶다. 술과 담배를 진짜 끊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건강히 큰 병 없이 살아올 수 있는 몸을 줘서 엄마한테 고맙다.


무려 세시간이 걸려 집에 도착하고 나니 무릎은 더 아파왔지만 기분은 좋았다. 샤워를 마치고 낮에 배달 시켰던 남은 밥을 먹고 노래를 틀어놓고 어제 퇴근길에 사놓은 시집과 소설을 읽었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글 읽는 게 이렇게 행복한 일인가. 하. 이 시는 또 왜 이렇게 좋아? 글 쓰고 싶어지게. 그래서 이렇게 글을 써본다.


앞으로 내가 느끼는 감정, 단상, 삶을 차근히 풀어보겠다. 물론 고양이들 이야기도.


아래는 내 고양이들 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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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우물과 둘째 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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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묘정과 막내 팅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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