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의 더하기와 빼기
2021년 새해를 맞으며 새로운 계획들을 세운 지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어느새 2월 말이 되어가고 있다. 메릴랜드 집에 이사 온 지 벌써 1년이 되어간다는 것도 믿기가 힘들다. 사실 작년과 재작년에는 미국 이민을 준비해서 떠나오고, 온 가족이 새로운 땅에 정착하는데만 온 에너지를 집중했기에 개인적인 계획이나 다짐을 실행하는 걸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2021년 새해를 맞으면서는 마음가짐이 조금 달라진 걸 느꼈다. 이제는 이곳이 내가 속한 곳이고, 여기가 내 집이고 내 나와바리라는 생각이 확 들기 시작했다. 내가 중심을 잡고 지금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자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
성경통독을 시작했다. 기독교인들의 신년 목표 중 연초에 가장 빈번히 등장했다가 결국 실패하는 건 아마도 성경일독일 것이다. 나도 매해 성경을 1회 이상 읽어보려고 노력하지만, 스스로의 의지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읽은 것은 딱 한 번 뿐이었다. 구약성경의 레위기나 민수기, 역사서나 예언서를 읽다가 삼천포로 빠지거나 덮어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몇 년 전 지인이 소개해준 성경통독 카톡방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 방에서 매일 할당해주는 분량을 따라가다 보면 연말이 오기 전 성경 전체를 한 번 읽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2년에 걸쳐 2 회독을 했는데, 이민 과정의 어마어마한 노동량으로 도저히 이어갈 수가 없었다. 2021년 새해를 맞으며 예전 카톡방의 방장에게 연락을 했더니 놀랍게도 그 그룹은 여태 지속되고 있었다. 나를 다시 좀 끼워 넣어주십사 부탁을 드렸다. 1월 초부터 하루에 4장 정도 분량을 읽고 묵상 내용을 카톡방 멤버들과 함께 나누며 이제 민수기를 거의 다 읽어간다. 하루에 15-20분만 할애하면 되는데 그게 왜 혼자서는 잘 안 되는 걸까. 역시 나처럼 게으른 사람에게 필요한 건 의지가 아니다. 시스템 속에 나를 밀어 넣는 것이 좋은 습관을 유지하는 유일한 길이다.
홈트(홈트레이닝)를 살살 시작했다. 집과 동네에 콕 처박혀 지낸 겨울 동안 중부지방이 점점 두터워지는 걸 느끼며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게다가 연초부터 앞집에 사는 미국인 가족과 함께 새로 오픈한 실내 트램펄린 파크에 멤버십을 끊고 다니기 시작했는데, 두 시간 동안 아이들을 쫓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체력이 완전히 방전되어 버리는 내가 좀 한심하게 느껴졌다. 고등학교 소프트볼 스타플레이어 출신의 앞집 아줌마가 여름에는 아이들 데리고 같이 동네 수영장에 다니자고 하는데, 내 저질체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겠다 싶어 운동을 결심했다. 21일 동안 하루 10분씩만 꾸준히 운동하면 운동 습관이 붙는다고 하기에, 더도 말고 딱 10분씩만 꾸준히 해보려고 노력했다. 물론 트램펄린 파크에 다녀온 날은 쿨하게 제꼈다. 운동한 지 한 달쯤 지난 지금은 한 번에 풀스쿼트 100개 정도를 할 수 있게 되었는데, 하고 나면 여전히 온몸이 쑤시고 기진맥진, 아직 체력이 올라온 상태는 아니다. 봄에는 동네 YMCA에서 헬스와 수영을 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여름에는 아이들과 일주일에 두세 번 수영장에 다니면서 코피 쏟지 않을 각오로 야심 차게(?) 체력을 길러 보리라.
영어 가르치는 일을 다시 시작했다. 미국으로 이민 오기 전 한동안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이웃에 사는 주부들에게 영어를 가르쳤었다. 둘째 아이를 낳고 집에 있으면서 한없이 좁아졌던 나의 세계를 내 학생들이 넓혀주었고, 그 시간은 그냥 영어만 가르치는 시간이 아니었다.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었고, 학생들과 서로의 생각과 의견은 물론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이야기들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연초에 옛 학생에게서 다시 영어 수업을 시작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이 학생도 새해 계획을 세우며 코로나로 놓고 지내던 영어를 다시 잡아보리라 다짐했던 것 같다. 나와 줌(Zoom)으로 수업을 하기 위해 노트북까지 새로 장만했다는 말에 감동을 받았다. 1년 반 만에 다시 만난 우리는 얼마나 서로를 그리워했던지. 비록 대면해서 커피 한 잔을 홀짝이며 대화를 나눌 수는 없지만, 이제 영어뿐만 아니라 미국 생활에 대해서도 영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으니 수업 시간이 더 알차고 즐거워졌다.
영어로 불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들과 너무 잘 지내는 옆집 중학생 아이가 학교에서 불어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너무 어려워한다는 소식을 듣고 도움을 주기로 했다. 회현동 알리앙스 프랑세즈에 수년간 다니며 배운 불어를 사용할 일이 없어 거의 다 잊어가고 있었는데, 이런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불어를 가르쳐본 적도 없는 데다 영어로 불문법을 설명하는 건 더더욱 처음이라 헤매고 있지만, 배운 것을 활용해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어 기쁘고 보람 있다. 천사 같은 내 학생, 처음에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하더니 “Oh... now I get it! It makes sense!”라고 무릎을 칠 때, 나는 희열을 느낀다. 사람이 무엇이든 배워놓은 것은 언제든 어떻게든 쓰임을 받는 것 같다.
SNS에 사용하는 시간을 대폭 줄이고, 대신 e북을 읽기 시작했다. 미국으로 이민 오면서 내 SNS에 '시카고 일기,' '메릴랜드 일기'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고, 수시로 일상의 사진과 짧은 글을 올리며 친구들과 소통을 했었다. 코로나 시대의 외로움을 극복하는 길이기도 했고, 글쓰기 연습도 할 수 있었고, 일기의 소재들을 이용해 브런치에 조금 더 긴 호흡의 길도 써 브런치북도 만들 수 있었다. 분명 유익한 점도 많았지만 '소통'이라는 핑계로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내 모습이 보였다. 좋아요와 하트, 댓글을 확인하고 반응하느라 일상에 온전히 집중을 하지 못하고 온라인 세상에서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친구들의 개인적인 소식을 보는 것은 반가웠지만, 정치에 대한 과격한 표현들, 댓글들로 피드가 오염되면서 영혼이 점점 피곤해졌다. 내친김에 핸드폰 바탕화면에서 브런치를 제외한 SNS 계정들을 싹 다 지워버렸다. 내가 궁금할 때만 앱 스토어에 들어가서 계정을 열어 들어가 보고 있다. 이렇게 해두니 로그인 자체가 귀찮아서 하루에 한두 번만 들어가게 된다. 궁금한 사람들 소식만 휘리릭 속독하고 하트만 누르고 조용히 나온다. 밤에 아이들 재워놓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자는 대신, e북을 리더기에 다운로드해놓고 몇 장이라도 읽다가 자려고 노력한다. 요즘 시기가 시기인 만큼 경제와 투자에 대해 나름대로 공부를 하고 있다.
아이들을 챙기고 삼시세끼 밥 해 먹고 살림하는 루틴에 성경통독과 운동과 독서, 이웃들과의 교류, 가르치는 일이 조금씩 들어오면서 코로나 일상에 활력이 더해지고 있다. SNS를 조금 멀리하면서 유행에는 살짝 뒤처지는지 모르지만, 아이들과 둘러앉아 보드게임을 하는 저녁이 많아지고 있는 건 분명 좋은 일일 것이다. 2021년의 상황이 2020년과 비교해 얼마나 달라질지는 잘 모르겠고, 그건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다만 연말쯤에 돌아보았을 때,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내 모습은 조금 달라져 있었으면 좋겠다. 좋은 습관들이 자리 잡아 조금 더 건강하고 단단하게, 행복하고 활기차게 일상을 살고 싶다. 조금 더 좋은 엄마와 아내, 이웃이 되고 싶고, 조금 더 나다운 내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