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들은 마침내 학교에
만세! 만세! 만세!
글을 시작하면서 만세삼창부터 해야겠다. 무려 11개월 반 동안 집에서 파자마 바람으로 뒹굴던 만 9세 큰아들이 드디어 학교로 돌아갔다. 비록 일주일에 두 번만 등교하긴 하지만 이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우리 카운티에서는 2월 중순부터 일주일에 이틀은 대면으로, 사흘을 온라인으로 '하이브리드 수업'을 진행하겠다고 발표를 했다. 지난 1월 중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하이브리드 수업 참여 의사를 묻는 설문조사를 돌렸었는데, 그때 참여 의사를 밝힌 학생들에 한해 등교하도록 했다.
등교를 앞두고 “Town Hall”이라는 온라인 설명회를 개최해 학교 수업, 점심시간, 등하교, 스쿨버스 등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설명해 주셨다. 우리 동네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한 명만 빼고 모두들 학교로 돌아간다기에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하이브리드 수업을 선택했을 줄로 알았는데, 나의 착각이었다. 큰 아이네 반 전체 23명 중 등교하기로 한 학생은 여덟 명뿐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게다가 큰아이 담임 선생님의 둘째 아이가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데, 선생님이 출근을 시작하시면 바이러스 노출 위험이 커져 백신 접종을 마칠 때까지 육아휴직을 하시게 되었다. 담임 선생님이 2차 접종까지 마치고 복직하실 때까지는 대체 교사가 수업한다는 이메일이 왔다. 백신 접종도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고 확진자 수도 많이 줄어들고 있지만 아직도 이곳에 두려움과 걱정이 만연해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설명회에서 학교 교실과 식당, 체육관 사진을 보여주셨는데, 교실 안에는 책상이 2미터 간격으로 떨어져 있었고 식당에도 번호가 붙어 있는 책상들이 멀리 떨어져 있어 각자 지정석에 앉아서 먹도록 되어 있었다. 수업 시간이야 그렇다 치고, 점심시간에도 친구들과 멀리 떨어져 앉아 각자 점심을 먹을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하니 마음이 짠했다. 학교에는 가방도, 학용품도, 크롬북도 가져오지 못하게 했고 오직 개인용 물통과 마스크만 가져오라고 했다. 노트와 연필, 지우개, 크레용, 가위 등 모든 학용품을 학교에서 제공하고 아이들 이름을 써붙여 놓아 절대 다른 아이들과 공유하지 못하도록 했다. 등교하는 날은 학교에서 과제를 끝내고 제출해 집으로 가져가지 못하게 했고, 혹시 끝내지 못한 과제가 있으면 하교 후 온라인으로 끝내 달라고 했다. 학교에 있는 물건을 집으로, 집에 있는 물건을 학교로 옮기다가 혹시나 바이러스가 딸려갈까 극도로 조심하는 듯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가면서 일주일에 이틀을 보내야 하는 걸까 잠시 의문이 스쳤지만, 이렇게까지 철저히 대비한다는데 못 보낼 이유도 없을 것 같았다. 스쿨버스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을 모습을 상상하니 그것만은 피해야겠다 싶어 직접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옵션을 선택했다.
첫 등교가 예정되어 있던 주에는 2박 3일간 폭설이 내려 학교 수업이 취소되었다. 겨우내 눈과 얼음비가 내리는 시카고에서는 눈이 온다고 수업이 취소되는 경우는 단 하루도 없었는데, 메릴랜드에는 눈이 자주 내리지 않다 보니 불과 몇 인치만 쌓여도 모든 게 마비된다고 한다. 눈이 오는 날은 스쿨버스들이 다니기 위험하고 오가기 힘드니 수업을 취소한다는데, 이번에는 무슨 영문인지 온라인 수업까지 전부 취소해버렸다. 덕분에 아이들은 스노우 기어를 풀장착하고 마지막 폭설을 신나게 즐겼다.
한 주를 또 그렇게 보내고 드디어 첫 대면 수업이 있던 날, 일찍 일어나 아이 아침식사를 챙겨 먹이고 학교에 데려다주었다. 등교 길, 긴장되지 않느냐는 나의 질문에 아이는 씩 웃으며 전혀 긴장 안되니 걱정말라고 했다. 화면으로만 만나던 선생님과 친구들을 직접 만날 생각에 들뜬다고 했고, 새로운 학교는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벌써 동생이 보고 싶다고 했다. 시카고에서는 한국식 보온 도시락에 밥과 반찬을 싸가던 아이가 이제는 학교 급식을 먹어보겠다고 했다. 마스크를 쓰고 물통만 달랑 들고 씩씩하게 등교하는 아이의 뒷모습이 1년 전과 사뭇 달라 보였다. 2020년 한 해가 어떻게 날아가 버린 건지 허탈할 때도 있지만, 아이가 성장한 모습을 보니 결코 헛된 시간은 아니었던 것 같다.
조잘조잘 말이 많은 큰아이가 없는 집은 그야말로 휑했다. 둘째 아이도 형아가 보고 싶다며 대체 언제 오는 거냐고 몇 번을 물었다. 쉬는 시간마다 계단을 뛰어내려와 동생하고 축구하며 놀아주던 큰아이가 없으니 나 혼자 둘째를 전담 마크해야 했다. 보드게임도 색칠공부도 비즈 공예도 베이킹도 해 보았지만 5시간 반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아이를 보내면 엄청 편해질 줄 알았는데 어째 내 시간은 더 없어진 것 같았다. (둘째야 너도 이제 유치원 가야지...?!)
하교 시간이 되어 둘째를 차에 태우고 큰아이를 데리러 갔더니 어마어마하게 긴 픽업 줄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픽업 온 차량 앞 유리에는 아이의 학년과 이름을 써붙여 놓고, 하교 지도 교사가 돌아다니면서 도착한 순서대로 이름을 적어갔다. 하교 시에도 사회적 거리를 지켜야 하다 보니 아이들은 픽업 온 차량 순으로 한 명씩 나오도록 했다. 아이들이 차례로 나와 차에 타면 교장 선생님이 “Bye!”를 외치며 손을 흔들어주셨다. 2시 정각부터 하교 지도가 시작되었는데 2시 30분이 다 되어서야 아이를 겨우 픽업했다. 스쿨버스를 탄 아이들도 예정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늦게 집에 왔다고 하니 지도 교사들도, 버스정류장에서 덜덜 떨며 기다리는 부모들도, 하염없이 버스 안에 앉아 있었을 아이들도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간다. 때르릉~ 하교종 소리와 함께 수백 명의 학생들이 학교 문을 박차고 나와 자기 부모의 차를 찾아가던 1년 전 시카고 초등학교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그런 하교 장면을 언제쯤 다시 볼 수 있을까.
첫 등교를 마치고 차에 탄 아이는 학교가 재미있었다고, 처음 먹어본 치킨 패티 샌드위치가 맛있었다고 했다. 선생님들과 친구들을 직접 보니 반갑고 좋다고 했다. 엄마 마음만 짠했을 뿐, 오랜만에 사회생활을 재개한 아이에게선 전과 다른 활기가 느껴졌다. 3월부터는 축구 시즌도 시작해 필드에서 뛰는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어느덧 날도 부쩍 따뜻해져 아이들과 개울가에서 송사리도 잡고 돌멩이도 던질 수 있게 되었다. 작년 가을까지 우리 집 앞 연못에서 지내던 황새 한 마리도 어디선가 겨울을 보내고 다시 돌아왔다. 백신 공급도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고 고용지표도 회복되고 있다고 한다. 식당과 사업장들도 인원 제한을 풀기 시작한다고 한다. 코로나로 모든 것이 제자리에 멈춰있다가 꿈틀꿈틀 움직이기 시작하는 이 느낌이 참 설렌다. 우리에게 허락된 또 한 번의 봄, 생명의 기운이 감도는 아름다운 이 계절, 무탈히 지내온 시간에 감사한다.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며 더욱 힘을 내어 사랑하며 섬기며 살리라 다짐한다. 광야를 건너 온 우리가 결코 당연히 여길 수 없는 봄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