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곳이든 창작의 고통은 있다
회계라고 하면 많은 이들은 따분한 일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숫자이기에 수학(?)을 어느 정도 잘해야 한다고 막연히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지금은 별로 그런 용어를 쓰지 않지만 예전에는 '부기(簿記, book keeping)'라는 이름으로 불린 적도 있다.
회계에 대하여도 여러가지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고 회계 교과서에서도 회계에 대하여 정의하고 있다. 그러한 정의를 떠나 일반적으로 '비지니스 분야의 언어(language of business)'라고 이해될 수 있다. 가볍게 생각하면 회계라는 것은 어떤 대상에 대하여 그것에 대한 실상을 화폐 단위 등을 통하여 '표현'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표현'이란 단어를 써 보았다. 사진기가 발명되기 전 사람이나 풍경 등은 화가의 손에 의해 그려졌거나 문필가의 펜을 통해 그려졌다. 수단은 다르지만 모두 표현이었다. 미술이나 문필 등에 비추어 회계는 다소 무미 건조하고 세속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감히(?) 예술에서의 표현과 비교하는 것에 반대할 목소리가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회계도 분명 특정 대상에 대하여 화폐 단위나 다소 딱딱한 문장을 통해 표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느 회사의 자산, 부채, 자본이 얼마이고 또는 기업의 가치가 얼마이라고 하는 것은 그 자산이나 부채 등에 대하여 화폐 단위로 표현한 것이다. 이는 물감이나 오선지 또는 펜으로 대자연과 우리의 온갖 감정 등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예술과는 다를 수 있겠지만 분명 표현을 하는 것에 있어서는 동일하다.
최근에 일반인에게도 많이 회자되는 인공지능에서도 중요한 개념 중 하나로 특성 (feature) 또는 표현(representation)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어떤 대상을 기계(즉, 컴퓨터)가 알아볼 수 있도록 표현해 주는 것으로 특정 인공지능의 구조보다 이러한 표현이 근원적으로 더 중요한 경우가 많다. 기계를 위한 표현이 중요하듯이 회계는 예술처럼 감동적이지는 못하지만 해당 대상, 예를 들어 국가나 기업의 자산이나 부채 등에 대한 정보를 이를 이용하고자 하는 사용자가 이해하기 쉽고 의사결정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잘 표현해 주는 측면에서 중요하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 사용에 따라 우리 인간 삶에 더 영향을 주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이러한 표현을 하는 경우 표현 방법은 다양하다. 그림의 경우에는 화가의 감성에 따라 그리고 사용되는 재료에 따라 동일한 대상도 다르게 그려질 수 있다. 동일한 대상도 인상파 화가가 그리는지 아니면 점묘파 화가가 그리는 지에 따라 다르고 또는 서양화인지 동양화인지에 따라서도 다르다. 그림이나 음악과 같은 정도로 다양성이 크지는 않겠지만 회계도 그러한 부분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회계기준이다. 국제적으로 통일된 기준의 사용으로 과거에 비하여 유사한 부분이 많아진 부분도 있으나 회계의 종류에 따라 또는 국가별 회계기준에 따라 동일한 기업이나 거래도 달리 표현될 수 있다. 나아가 회계기준이 동일하다고 해도 대상을 바라보는 사람의 관점 등에 따라 다르게 표현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표현에는 책임이 따른다. 예술도 사회적으로 또는 그것을 감상하는 사람에게 심대한 영향을 줄 수 있겠으나 사실 그 표현에 있어 상당한 자유가 보장되는 면이 있다. 그러나, 회계의 경우에는 표현에 있어 상당한 책임이 따르고 표현에 있어서도 예술에 비하여 제약되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그 직업의 특성상 사회에 대한 공적 책임이 있기에 그 표현이 전문가적 윤리와 경험에 근거하여 상당히 절제되고 윤리적이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이러한 책임이나 윤리적 부분이 회계 분야에서 표현을 하는 경우 요구되는 본질적인 제약 사항이다.
요컨대 미술이나 음악, 문학 등이 표현이듯이 회계도 표현이다. 예술 작품을 완성하는데 작가들은 창작의 고통을 느끼듯이 회계도 그 영향력이 있는 작품일수록 책임감과 전문가적 윤리에 의한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비록 예술품처럼 감동을 주지 못하고 사라지지만 회계도 분명 신이 준 소명에 의해 행해지는 부분이기에 그러한 고통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소 세속적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책임감과 윤리 의식을 가지고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러한 표현이 탐욕과 책임 중 어느 것에 의해 표현되고 있는 지에 대하여 그 표현하는 전문가들은 그 무게를 진정 얼마나 알고 있을까? 탐욕의 도가니 속에서 실질을 표현하려는 진정한 창작의 고통을 느끼는 작가가 있다 한들 그 작가와 그 작품을 구분이나 할 수 있을까? 마치 공중화장실에 놓여진 누가 그린 줄도 모르는 소액자와 같은 취급을 받는다면 ...
그 옛날 마태오와 같은 결정을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