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저해지상품 해지율 논란이 드러낸 위험조정의 허점
[박규서의 보험회계 탐방-6]
2025.2.12
박규서 (한국외대/건국대 겸임교수, 경영학박사, 공인회계사, 보험계리사)
아무리 강력한 무기나 도구가 있어도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다. 기업 경영도 마찬가지다. 혁신적인 기술이나 고성능 기계를 도입했더라도 실질적인 업무에 활용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듯이, 보험산업이 IFRS17을 비롯한 새로운 회계기준을 적용하는 것도 그 본래 목적에 맞게 운영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렇다면 IFRS 17의 핵심 개념 중 하나인 위험조정(Risk Adjustment)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을까?
IFRS17을 포함하여 IFRS기반 재무제표 및 관련 정보는 기본적으로 다양한 외부정보이용자에게 유용한 재무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보험산업이 IFRS 17을 적용하면서 제공하는 정보가 외부 정보 이용자들에게 실제로 유용하게 전달되고 있는지에 대해, 업계와 감독당국은 보다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한다.
1. 위험조정이란?
IFRS 17은 ‘위험조정(Risk Adjustment)’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보험계약을 이행할 때, 비금융위험에서 발생하는 현금흐름의 금액과 시기에 대한 불확실성을 부담하는 것에 대해 요구하는 보상(compensation).”
쉽게 말해, 보험사는 미래의 보험료 수입과 보험금 지출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불확실성을 반영해 추가적인 대비를 해야 한다.
이 개념을 일상생활에 빗대어 보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여행을 계획할 때 국내여행과 유럽여행 중 어느 경우에 더 많은 예비비를 준비해야 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럽여행이 예상치 못한 변수(비행기 연착, 추가 숙박비, 의료비 등)가 많아 예비비를 더 많이 책정할 것이다.
보험계약도 마찬가지다. 미래의 불확실성이 클수록, 보험사는 위험조정 금액을 더 크게 설정해야 한다. 그리고 보험산업은 본질적으로 리스크 관리가 핵심인 산업이므로, 다른 산업보다 먼저 회계에 이를 명시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보험업만의 특별한 개념이 아니라, 불확실성이 내재된 모든 거래에서 적용되는 일반적인 원칙이다.
2. 위험조정의 특성: 너무나도 상식적인 원리
IFRS17에서는 위험조정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1) 위험 발생 빈도가 낮고, 개별 사고에 따른 보험금액이 클수록 위험조정 금액이 커진다.
(2) 같은 유형의 위험이라도 만기가 길수록 위험조정 금액이 증가한다.
(3) 미래 현금흐름의 변동성이 클수록 위험조정 금액이 커진다.
(4) 현행 추정치와 그 추세에 대해 알려진 바가 적을수록 즉, 예측할 수 있는 정보가 적을수록 위험조정 금액이 커진다.
(5) 새로운 경험 데이터가 축적되면, 위험조정 금액은 조정될 수 있다.
이 내용은 얼핏 보면 복잡한 회계나 통계 개념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위험조정이 본질적으로 상식적인 개념이듯, 그 특성 또한 본질적으로 극히 상식적인 원리다. 즉, 불확실성이 크거나 정보가 부족하면 위험조정이 커진다.
위에서 일상의 예로 든 여행의 경우를 생각할 때,
✔ 국내여행보다 유럽여행이 예측할 수 없는 비용이 많기에 더 많은 예비비를 준비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며,
✔ 1박 2일 여행보다 10박 12일 여행이 예상치 못한 추가 비용 발생 가능성이 크다는 점과도 같다.
즉, 보험사도 계약의 리스크에 따라 불확실성이 크면 더 많은 대비를 해야 한다는 단순한 원칙을 따르는 것이다.
3. 획일적인 위험조정 수준?
위험조정은 본질적으로 보험사의 개별적인 리스크 평가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국내 보험사들은 IFRS 17을 적용하면서 위험조정을 일률적으로 ‘신뢰수준 75%’로 적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사업보고서나 감사보고서의 주석을 보면 거의 모든 보험사들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75%를 위험조정 산출 가정으로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다.
“(비금융위험에 대한) 위험조정은 미래 현금흐름의 확률분포가 정규분포를 따른다는 가정하에, 75% 신뢰수준을 적용하여 산출한다.”
왜 모든 보험사가 동일한 수준으로 위험조정을 측정하는가?
각 보험사가 다루는 리스크가 다르고, 상품별 특성도 다르며, 개별 보험사의 경영전략도 다른데 왜 모든 보험사가 마치 한 회사인양 동일한 75% 수준으로 위험조정을 측정하는가이다.
보험업계가 건전성 회계 기준이나 실무 편의성 측면에서 일률적인 위험조정 방식을 채택하는 이유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IFRS 17의 근본적인 목적과 재무회계의 본질을 고려할 때, 합리적인 방식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러한 방식은 보험산업의 재무제표나 관련 공시 정보를 이용하는 외부 정보이용자의 입장에서 정보의 유용성을 저하시킬 뿐만 아니라, 실제 위험이 반영되지 않는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4. 무·저해지상품 해지율 논란과 위험조정의 부재
지난 1년 동안 보험업계에서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무·저해지상품의 해지율 논란이었다. 무·저해지상품은 납입기간 중 해지 시 환급금이 없거나 매우 적은 상품인데, 보험업계와 감독당국은 이 상품의 해지율을 어떻게 가정할 것인가에 대해 의견이 엇갈렸다.
결국 감독당국은 작년 말 새로운 해지율 모델을 제시했다. 그러나 논란을 거치며 드러난 문제는 보험업계나 감독당국이 이 상품과 관련하여 위험조정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 1년 동안 모든 기사나 감독당국의 발표를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보험산업과 감독당국 모두 이 상품의 가정을 뒷받침할 경험 통계가 부족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는 모두 동의하는 부분이고 대부분의 기사들도 그에 따른 해지율 가정이 해당 상품의 이익 과다 인식 논란의 주요인으로 보도하였다.
이익의 과다 또는 과소 인식을 떠나, 관련 가정에 대한 자료가 부족하다는 점은 모두가 동의하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투자자와 같은 재무제표 이용자는 당연히 이 상품이 높은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더욱 큰 위험조정이 반영되어야 한다고 판단할 것이다.
그렇다면 보험업계는 최적의 가정을 설정하는 것과 더불어, 다음과 같은 취지의 내용을 재무제표 이용자들 즉, 시장에 먼저 제공했어야 한다.
“무·저해지상품에 대하여는 더욱 큰 가정의 불확실성을 고려하여 어떤 방식에 의하여 얼마나 더 크게 위험조정을 반영하였다.”
가정 자체에 대한 논란도 있겠으나, 다들 동의하고 있는 경험데이터 부족으로 당연히 연결되는 위험조정에 대하여 그런 위험조정이 제대로 반영되었는지에 대하여 지난 1년간 시장에 어떠한 정보도 제공되지 않았다.
업계나 감사 등의 내부 논의는 분명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자본시장 등 외부 정보이용자들에게는 그에 대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았다.
5. 마치며
IFRS17 등의 도입은 단순히 새로운 기준의 도입이 아니다. 그것이 제대로 작동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중요성이 있는 이슈의 경우에는 그 처리나 의사소통 과정에서 관련 정보를 이용할 이용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제공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현상이 그렇지는 않다고 믿고 싶지만 보험회계가 어렵다는 선입견을 계속 전파하면서 혹시 일반 투자자나 계약자들의 수준을 과거처럼 무시하여 현재와 같은 정보의 불균형이 지속되도록 방치하고자 하는 생각에 기인한다면 이는 결국 보험산업의 신뢰성에 영향이 갈 것이다.
의사소통이 단절되면 관계가 멀어지듯, 보험산업도 투자자와 계약자 등 일반 대중과의 소통이 부족하면 결국 신뢰를 잃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