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매일 살아가면서 대화를 한다. 그것이 공적인 대화이든 사적인 대화이든 대화를 통하여 그 속에서 인간관계를 맺어 나간다. 설사 사찰 등에서 묵언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기 위해 정진하거나 또는 홀로 나만의 시간 속에서 타인과의 접촉을 하지 않는 경우 대화라는 것을 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그 또한 달리 생각해 보면 구도하는 대상이나 나 자신과의 대화일 수도 있다.
대화에 대하여 위키피디어에서는 “Conversation is communication among people. (대화는 사람 사이의 소통이다.)”라 하고,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음. 또는 그 이야기”라고 정의하고 있다.
대화에 대하여 언어학, 사회학 등에서 연구하듯이 전문적으로는 생각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다양한 대화의 종류를 생각해 볼 때 대화라는 것이 위키피디어 정의처럼 ‘사람’ 사이의 소통만은 아닐 수 있을 것 같다. 둘레길을 가다 길 옆의 이름 모를 야생화와 대화를 하거나 반려견과 대화를 할 수 있다. 또는 인공지능과의 문답을 통한 대화를 생각할 수 있다. 야생화나 반려견과의 대화는 우리가 주관적으로 생각하는 대화일 수도 있겠으나 요즘 ChatGPT와 같은 인공지능과의 문답은 새로운 형태의 대화의 범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대화를 어떻게 정의하든 우리는 인간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자연이나 사물과도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그러한 소통에 대하여 ‘대화’ 등의 표현을 쓰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서 그 대상과 교감을 한다거나 대화를 한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나 또한 산행 속에서 본 꽃이나 나무를 그것이 마치 사람인양 대화를 나눠 본 경험이 있다. 이러한 종류의 대화를 잘하는 사람이 어쩌면 시인과 같은 문인일 수도 있겠다. 반드시 인간의 언어가 아니더라도 그러한 대화를 할 경우 우리는 서로 소통한다고 믿고 싶거나 믿으려 한다. 마치 ‘아바타’라는 영화 속에서 서로 다른 종이지만 아바타의 머리카락과 다른 생물체의 촉수를 연결하여 소통하듯이…
대화가 가능하려면 여러 요소가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대화의 기술적인 요소 외에 가장 중요한 것은 어쩌면 ‘과거’에 대한 상호 이해인 것 같다. 어느 사람은 이것을 대화에 있어 대화의 상대방에 대한 이해 또는 문맥의 이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대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과거’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한 것은 예를 들어, 어느 특정 주제에 대한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중간에 들어와서 들은 사람은 대화에 금방 끼어들 수 없다. 그것은 그 이전 시간의 대화 내용을 모르기 때문이다. 즉, ‘과거’에 대한 공통 이해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거’가 내포하는 기간은 대화의 종류에 따라 단기일 수 있고 장기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요컨대 대화의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유의미한 대화를 위해서는 ‘과거’에 대한 기억의 공유와 이해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최근 기술 변화와 연계하여 생각해 보면 구글 검색과 ChatGPT의 기능 간의 가장 중요한 차이 중 하나도 바로 이 ‘과거’에 대한 기억일 것 같다. 인공지능에서 RNN이나 LSTM이 과거의 요인들을 기억하는 기능이 추가되어 시계열분석에 적합한 인공신경망이 되었다는 것과 같은 기술적인 내용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시간상 과거에 대한 기억이 중요한 것 같다. 현재의 구글이든 네이버는 내가 질의한 사항에 대하여만 그 결과를 보여준다. 그런데 ChatGPT는 질문과 대화를 하는 동안 그전에 했던 질문이나 대화의 맥락을 기억하고 그것에 따른 결과를 보여준다.
인간 사이의 대화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이해, 맥락에 대한 이해 즉, 과거에 대한 이해인 것과 같이 인간이 아닌 다른 종과의 대화에서도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과거’에 대한 공유일 것이라 생각해 본다.
나에게 주어진 삶 속에서 가족이나 벗들과의 풍부한 대화를 위해서도 역시 ‘추억’이라고 하는 ‘과거’에 대한 기억을 많이 공유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부분을 많이 못해 아쉬움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