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바다의 발견
9월의 끝자락과 시월을 걸쳐 다녀온 제주 여행은 잠시 여름으로 시간 여행을 한 것 같았다. 낮 기온이 29도임을 여행 전 확인했지만 그래도 가을이고 바닷바람이 셀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완연한 여름이었다. 협재 해수욕장과 함덕 해수욕장에는 바다 수영과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로 붐볐고 여행지 곳곳에 민소매 옷을 입고 다니는 이들도 많았다. 3박 4일 동안 표선면의 2층짜리 하우스 한 채를 빌려 머물렀는데 조금 외진 곳에 있는 타운 하우스여서 시골 별장에 온 것처럼 한적했다. 보고 싶었던 조카들이 옆에 있어 한없이 행복했지만 아빠 엄마까지 모두 8명이 함께 만족해야 하는 장소를 다니다 보니 조용히 즐기고 싶었던 서점이나 미술관은 가지 못했다. 대신 승마 체험 후 더마파크에서 말 공연을 봤고, 성산 일출봉을 오르고 우도를 돌며 유람선을 탔다. 아이들은 할아버지가 좋아했던 민속촌보다 송악산을 다녀온 후 탔던 제트 보트가 가장 재미있었다고 했다. 짧은 며칠이었지만 일상을 벗어난 여행지에서의 시간이 비타민 같은 쉼표가 되어 주었다. 맛집들을 투어하고 돌아와 숙소에서 이어가는 2차도 3일 연속 이어졌다.
조카들은 올해 7학년과 10학년, 한국으로 치면 중1과 고1이다. 고1인 로이드는 집안의 첫 손주라 얼마나 신기하고 사랑스러웠는지 모른다. 꼬물꼬물 그 아기가 까칠한 사춘기 청소년이 된 것인데 아빠는 유일한 아들 손주라며 필요 없는 부담을 주고 외국인 손주 맘을 눈치 없이 헤아리지 못했다. 이번에 느꼈는데 아이들은 영어에 익숙하기에 한글도 영어식으로 쓸 때가 많았다. 영어는 기본적으로 상대에게 묻는 표현이 많고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할 때 이모도 그걸 좋아하는지 꼭 물어본다. 아빠의 결정이 그리 나쁜 것도 아니고 자식 사랑하는 마음이 커서 그런 것을 알지만 모든 것이 자유롭고 선택지가 많은 시대에 일방적인 의사소통은 통하지 않는데 좀 아쉬웠다. 조카는 예민함을 보이기도 했지만 다행히 가부장적 문화 차이 때문인 것도 이해해주는 융통성을 발휘해주어 고마웠다. 건강하신 아빠와 앞으로도 함께할 많은 날들이 있을 거라 생각하니 소통 방식이 아쉽지만 결국 변치 않는 아빠의 거친 유머 코드에 당황하지 않고 대처할 수 있도록 내가 말을 담는 그릇을 좀 더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만 떨어져 달리 생각해보면 아빠 마음은 다 알고도 남으니 말이다.
제주의 바다는 정말 아름다웠다. 자주 오면서도 원래 이렇게 예뻤나 싶게 눈이 부셨다. 고운 푸르름 앞에서 뜨겁게 쏟아지는 햇빛을 맞으며 한동안 모래사장에 멈추어 감탄했다. 세상에는 너무 아름다움이 많은 게 아닐까? 바삐 걷느라 놓치는 아름다움은 없는지, 찬찬히 바라보는 여유를 갖자고 8번째 제주에서 다시금 생각한다. 제주의 신화 마고할미가 만든 제주 하늘과 땅, 한라산 봉우리와 예쁜 오름들, 좀 더 차가워졌을 그날의 바다를 다시 설레며 기다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