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절개로 출산을 하고 아이에게 4일 만에 젖을 물렸다. 모유수유에 대한 의지는 강했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몰랐다. 의욕이 넘쳐 수시로 젖을 물렸지만 잘못된 방법이었다. 얼마 못 가 젖몸살이 왔다. 모유수유를 하면 할수록 고통은 커져만 갔다. 아프다고 젖을 물리지 않을 수도 없었다. 모유양이 점점 줄어들었는지 아이는 오랜 시간 젖을 먹어도 충분하지 않아 계속 울어댔다.
산모들은 일정 시간 수유 텀을 갖는다. 쉬는 동안 또 모유가 차올라야 다음 타임에 아이에게 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수유 텀이 거의 없다시피 계속 물렸다. 아이도 채워지지 않는 모유양에 짜증이 난 듯 하루에 19번 먹어도 매번 울어댔다.
속상해하는 나를 위해 친정엄마는 돼지 족 우린 물을 보내줬다. 고약한 냄새가 났지만 모유양이 는다는 말에 꾸역꾸역 먹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엄마가 해주고 싶은 모든 것을 해 줄 수 있을 줄 알았다.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그 징그러운 모성애가 극성을 부리며 스스로 스트레스를 가중시켰다. 아이는 먹성이 좋았고 모유수유만 하기에는 내가 상황이 안 좋았다. 유선은 시도 때도 없이 막혔고 아이는 시도 때도 없이 밥 달라고 울어댔다.
그러던 중 생후 80일이 되던 날 아이가 아파서 입원을 하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입원생활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80일 동안 해오던 육아의 루틴이 한순간에 깨졌다. 정해진 시간에 젖을 물리고 일정한 시간에 낮잠을 재웠고 그사이 밀린 집안일을 하며 한숨 돌리던 일상이 사라졌다.
병실에 오면서 그 어떤 것도 하던 대로 할 수가 없었다. 간호사는 열체크를 위해 수시로 드나들었고, 옆 침대에 아이는 많이 아픈지 자주 울었다. 낮잠을 재워도 다른 아이 우는 소리에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아이랑 나는 꼭꼭 숨어있듯 커튼을 치고 있었다. 커튼을 활짝 열고 “아이가 어디 아파서 입원을 했어요?” 서로 안부를 물으며 입원 생활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루틴이 예기치 못한 상황에 의해 깨졌다는 것이 너무 화가 났다.
아이가 아픈 것 다음으로 모유수유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입원 첫날 가려진 커튼 뒤에서 수유를 시도했다. 1인용 병원 침대 위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알싸한 소독약 냄새가 나는 병원 베개를 수유쿠션 삼아 그 위에 아이를 올려놓고 젖을 물렸다. 한번 먹으면 한쪽에 30분씩 먹는 탓에 한 시간을 꼼짝없이 등도 대지 못한 채 다리를 구부리고 젖을 먹여야 했다. 게다가 간호사는 밤낮없이 체온 측정과 항생제 투입 체크를 위해 수시로 들락날락거렸다. 심지어 남자 간호사였다.
‘와 도저히 못하겠다.’
모유수유에 대한 집착이 날 피폐하게 만들었다. 출산 전부터 병원에서는 이런저런 브로슈어를 나눠 준다. 그 속에는 올바른 모유수유 방법과 장점이 적혀있다. 정답이란 건 없는데 마치 모유수유가 정답이라고 스스로 학습한 결과이다. 그 누구도 모유수유를 강요하지 않았지만 나는 선택했다. 자연분만으로 출산하지 못한 미안함으로 반드시 완모 하겠다고 다짐했던 것이다. 그런데 자연 분만 또한 정답이 아니지 않은가. 여러 출산 방법 중에서 내가 선택했던 한 가지였고, 그것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 의해 변경됐을 뿐, 잘못된 건 아닌데 나는 내 선택에 집착했던 것이다.
제왕절개를 했다는 사실에 대한 미안함, 완모를 하지 못했다는 미안함은 곧 내가 만든 집착이었다. 나는 입원 2일 차에 그 집착으로부터 벗어나기를 결정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부터 단유를 했다. 아이는 젖을 달라고 보채지 않았다. 분유만 주어도 너무 배부르게 잘 먹었다. 모유를 주지 못하는 내 마음이 민망해졌다. 집착에서 벗어나니 홀가분해졌다.
아집이 센 엄마는 되고 싶지 않다. 유연하게 생각해야 행복한 육아를 할 수 있다는 것을 6인실 입원이라는 극한 상황에서야 깨닫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