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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결 Sep 19. 2023

멋진 언니

230918 맑은 하늘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싶은 날입니다.

죽을 뻔한 사고, 그래도 믿고 싶었던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도망갔다. 남편은 사고가 나고 지금까지 나에게 아이를 가지고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앞으로도 쭉 그럴 것이다. 아이를 보여준다고 하며 영상통화를 하고 사진 몇 장 보내준 게 전부였다. 그 영상통화도 내가 하면 받지 않았고 내가 잠시 전화를 받지 않으면 그날 나는 아이를 볼 수 없다.


영상 통화를 끊고 나면 카톡이 온다. 3살 딸아이는 엄마 아픈 모습 보기 싫다며 울먹인다. 힘들어한다. 병원에 데리고 갈 수는 없다. 그 남자는 가스라이팅을 계속했다. 둘째 아이 돌이 되는 날에는 나에게 연락도 하지 않았다. 사고가 나고 지금까지 한 번도 나에게 아이를 데리고 온 적이 없다. 지금은 보고 싶으면 와서 보고 가란다. 집 앞에 나가 줄 테니 보고 싶은 네가 와서 아이를 보고 가란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가려면 5시간은 걸린다. 보조기를 언제까지 착용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에게 할 말인가 싶다. 오죽 가진 게 없으면 저렇게 아이를 무기로 삼는지. 교수님, 박사님 이란 호칭에 상당히 가슴 졸여하는 모습은 어찌나 옹졸한지. 자신이 지금 나에게 하고 있는 모습이 부끄러운지는 아는 걸까? 사실 어제도 가슴이 너무 막혀서 감사 일기를 쓸 수가 없었다.


오늘 삼촌이 멋진 언니를 소개해줬다.

십여 년 전 교통사고가 크게 났었고 팔에는 여러 번 수술한 자국이 선명했다. 아이들과 함께 차를 타고 있었고 아이들도 많이 다쳐서 정말 힘드셨다고 했다. 아이들은 잘 자라서 제 몫을 하고 있었다. 언니는 지금 하는 직업군에서 관련한 자격증 다섯 개가 넘게 있었다. 더불어 박사학위를 받을 정도로 공부를 오래 하셨고 현재는 강의를 나가고 있었다. 이 모든 게 남편 간호와 아이 양육을 하며 이뤄낸 성과였다.


윤이 씨를 만나기까지 8년 걸렸어요. 지금 언니의 모습은 8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구나. 그녀가 말한 8년은 학위를 마친 뒤 시간이었다. 아이를 키우다 일을 시작한 날을 더듬어 올라가면 참 오래되었다. 나는 그녀의 지난 삶을 모른다. 나는 그녀가 이겨낸 몇십 년의 삶을 담은 반짝반짝 빛나는 눈을 마주하고 있다. 저렇게 되고 싶다.


세상에는 정말 가지각색의 힘듦이 존재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극복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스스로 이런 일까지 겪어야 하나 싶을 만큼 힘이 들었다. 솔직히 지금도 고통스럽다. 명치끝부터 차오르는 분노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하지만 극복해야 한다. 지금 이 분노를 반짝반짝 빛이 나게 만들어야 한다. 그저 하염없이 쌓여가는 분노 속에 허우적거리게 만들 수는 없다. 고작 치졸한 그 남자 하나 때문에 내가 망가질 수는 없다. 나의 소중한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빨리 그 집에서 빼내와야 한다.


점점 나의 집착과 화를 가라앉히는 시간이 줄어가고 있다. 나에게 계속 멋진 사람들과 만남이 있는 것에 감사하다. 나를 건져 주는 당신의 말이 참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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