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그리고 이혼 요구
5월 19일 금요일 오전 7시.
분명 주행 중이었는데 차가 멈췄다.
눈앞이 하얗고 주변에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이게 죽은 건가?
친정인 J시에서 첫째는 어린이집을 가게 되었고 여느 아이들처럼 유행병에 걸리기 시작했다. 고열에 시달리고 이름 모를 바이러스에 걸려서 돌쟁이 둘째 아이까지 함께 아팠다. 아이 둘을 전적으로 친정 엄마에게 맡긴 나는 그저 미안할 뿐이었다.
첫째 아이가 사고 전 날 목요일에 입원을 했다. 나는 아이 아빠인 그 남자에게 알렸고 그날 밤 아이 아빠가 일주일 휴가를 내고 내려왔다. 병원은 코로나 검사를 한 보호자 한 명만 상주할 수 있었다. 아이가 자고 있었고 다음 날 나는 출근을 해야 하니 아침에 교대를 해주기로 했다.
사고 당일 금요일 아침.
아이가 참 많이도 울었다. 오전에 출근을 해야 해서 옷을 갈아입는 나를 보며 가지 말라고 보챘다. 아빠가 같이 있을 거니 울지 말고 엄마는 곧 다녀오겠다고 하며 우는 아이를 뒤로하고 나갔다. 그렇게 나와 첫째 아이는 그것이 서로를 끌어안을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신호 위반한 상대방의 차가 주행 중이던 동생의 차를 받았다. 사고가 나고 정신을 차렸을 때 눈앞에 울고 있던 첫째가 아른 거렸다. 죽었다 살아났다는 말을 실감했다.
큰일이었다. 나는 2남 2녀 중 장녀였다. J시에서 살겠다고 결심 한 이유는 육아를 함께해 줄 친정 엄마와 동생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운전을 한 여동생은 갈비뼈가 4개나 부러진 거나 다름없이 희미하게 붙어있었고, 뒷좌석에 있던 남동생은 다리가 아파 걸어 다니기 힘들었다.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다. 친정 엄마 혼자서 아이 둘을 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친정 엄마는 정작 사고가 난 자기 자식의 얼굴은 보지도 못했다.
첫째 아이와 함께 있는 그 남자에게 사고를 알렸다. 출근길 교통사고가 났고 몸이 일어나질 못하겠다고 했다. 응급실에 왔고 병실에 올라가면 말해주겠다고. 혹시 시댁에서 아이들을 돌봐줄 수 있는지 물어봐 달라고 부탁도 했다.
지역 신문에 사고 소식이 났고 그날 라디오며 9시 뉴스까지 보도가 되었다. 심지어 남편이란 그 남자는 링크까지 나에게 카톡으로 보내줬다.
사고 난 저녁, 둘째 동생은 첫째 아이가 있는 어린이 병원을 갔다. 교대를 해줄 테니 누나를 보고 오라고 했단다. 그 남자는 마약성 진통제를 맞고 겨우 잠이 든 나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주 잠깐 안쓰럽게 쳐다보던 눈빛은 진심이었을까? 수술을 할지 그냥 두고 볼지 결정을 위해 여러 검사를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조심스럽게 시댁에서 내 사고 소식을 아냐고 물었다. 그 남자는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아이를 돌봐달라는 부탁은 드렸는데 왜 돌봐줘야 하는지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왜 말하지 않았어?”라고 물어보니 우물우물하다가 실은 말을 했다고 했다. 항상 그랬다. 이미 그 남자는 엄마에게 모든 것을 말했고 나에게는 말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했다. 추측하건대 아마 그 남자는 사고 현장 사진도 그 엄마에게 보여줬으리라.
그 남자의 엄마는 돌쟁이 둘째만 돌봐줄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 그 와중에 그 남자의 집에서는 ‘아들’만 데려오라고 했다.
첫째 병원에 가서 병간호를 하던 그 남자는 누워있는 나에게 온갖 불평불만을 해대기 시작했다. 입원한 어린이 병원 밥이 맛이 없어서 아이에게 밥을 먹일 수 없다. 바나나가 먹고 싶다는데 자기가 혼자 아이를 케어해야 하니 바나나를 사주지 못한다. 자기는 혼자 애기를 보느라 씻지도 못하고 찝찝해 죽겠다. S시로 가면 엄마와 누나들이 자신을 도와줄 거라 최소한 씻을 수는 있다. 사고가 나고 고작 하루 지났을 때이다.
아들만 데려오라고 했던 그 남자와 그 엄마, 누나들은 고새 맘을 바꿨다. 둘 다 봐줄 수 있다로…. 엄마가 와서 돌쟁이를 데리고 가려면 일요일에 시간이 된다면서 입원 중인 첫째를 퇴원시켜 가야 한다고 했다. 일주일 동안 휴가를 내고 아이 병간호를 하러 온 그 남자는 아이가 열도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쪼르르 자기 엄마의 말에 따라 앵무새처럼 말하기 시작했다.
선택지가 없었다. 아이 엄마인 나는 정확한 진단이 나오지 않았는데 아이 아빠는 아이를 돌보는 일이 힘이 든다 한다. 그러니 자신의 엄마에게 가야 한단다. 그 남자에게 이미 아이 엄마인 내가 안중에 없었다. 한 때 같이 가정을 꾸리겠다고 선택한 아내의 검사 결과는 궁금하지 않았고 주치의를 만나 현재 상태를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그 남자는 지금 당장 자신의 찝찝함이 먼저였다. 척추 골절로 누워있는 처와 고열로 고생하고 있는 자식을 둔 보호자임을 알고 있었을까?
나는 요추 2, 3, 4번 골절이었다. 2번 후궁이 불안정하지만 수술을 하자니 장애가 걱정이 되는 상태였다.
5월 21일 일요일.
아이들을 데려간 그 남자는 역시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폰을 항상 손에 들고 있는 그 남자는 내 연락을 의도적으로 피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아이들과 떨어졌다.
그 남자는 아이들에게서 엄마를 떨어뜨려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