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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결 Aug 15. 2023

우리 엄마는 맞고 살았어

혼전임신, 그 남자의 부모


32살.

5개월 만난 남자친구.

임신테스트기 두 줄.

임신이었다.

이상했다. 그 무렵 나의 꿈들이

커다란 아기 코끼리가 나에게 뛰어 왔었다.

참 예쁜 내 딸이 코끼리였다.


일요일에 임신 테스트기 확인을 하고 나와 그 남자는 함께 있었다. 정확한 검사를 위해 산부인과에 갈 생각으로. 호텔에서 우리는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임신은 내가 했는데 네가 울면 어떡하니..


그 남자는 나보다 더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그 남자의 고해성사가 시작되었다. 자신의 엄마와 아빠는 서류상 이혼을 한 사이며 화목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랐다고 했다. 자신의 엄마는 고생을 많이 했고 임신 사실을 알리는 것을 두려워했다.


하.. 방금 임신을 확인한 처녀가 저런 소리를 듣고 있다니.


그 남자의 아빠는 건설 노동자로 공사가 있는 지역에서 장기간 일을 했고, 집안 살림은 오롯이 엄마가 도맡아 했다고 했다. 그 남자의 엄마는 남편의 보호를 받지 못했고 어린 나이에 아이 셋을 키워낸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 남자의 엄마는 아이 셋을 스무 살 이전에 출산했다. 어떻게 만나서 결혼을 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이 차이가 열 살은 훌쩍 넘는 그 남자의 아빠를 만났다. 그 남자의 아빠는 첫째 누나를 낳자마자 사우디로 돈을 벌러 갔고 그 남자의 엄마는 시골에서 잠시 딸을 키웠다 했다. 그 남자의 할머니가 아이를 키워주겠으니 나가서 돈을 벌어오라는 말에 그 남자의 엄마는 미싱 공장, 주방 허드레 일을 하면서 남편을 기다렸다.


그 남자의 엄마는 시댁에서 사는 동안 시아주버님과 형님의 시집살이가 더 힘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시조카들의 눈치까지.


그 남자의 아버지는 둘째 딸을 낳았다는 소식에 병원에도 오지 않았다. 그 남자의 엄마는 아이를 낳으러 가는 길도 아이를 데려오는 순간에도 남편의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 다시 시어머니에게 두 딸을 맡기고 일을 나갔다.


그 남자를 뱃속에 품었을 무렵 그 남자의 아버지는 또 아기를 가졌다며 구박을 했다. 아들을 출산하니 그 남자의 엄마는 드디어 산부인과에서 퇴원할 때 남편이 데리러 왔다.


귀한 아들이 태어났다. 그 남자의 뒤에는 세 여자가 든든히 지키고 있었다. 엄마, 두 명의 누나가.


그 남자의 아버지는 매우 무서운 사람이라 했다. 자식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까지 그 남자의 엄마를 때렸다고 했다. 불같은 성격으로 술을 마시면 집안에 물건들을 던졌고 부인을 때렸다. 그 남자의 엄마는 남편의 지속적인 폭력을 숨기지 않고 자식들에게 고스란히 보여줬다. 자식들이 밖에 나가 있으면 도움을 요청했고 자식들은 엄마의 연락을 받으면 즉시 집으로 달려왔다. 불행 중 다행인지 그 남자의 아버지는 자식은 때리지 않았다.


그 남자가 군대를 갔다 왔을 무렵 그의 아버지를 힘으로 제압했고 그 후로 아버지의 폭력은 더 이상 없었다 했다. 내가 기억하는 그 남자의 아버지는 참 힘이 없었다. 부인과 자식에게 존경받지 못하는 힘든 일을 하는 가장이었다.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였음에도 공사 현장에서 장기간 일을 하러 다니시며 빚을 갚는 성실한 분이었지만..


나중에 그의 첫째 누나가 결혼을 하고 그 남자에게 말했다고 했다. 엄마와 아빠가 그렇게 살았던 것은 아빠 혼자 만의 잘못은 아니었을 거라고. 엄마도 잘못을 했을 거다. 하지만 폭력은 잘못된 방법이다.


그 남자는 그렇게 가정에서 아빠가 해야 할 역할을 배우지 못했다. 그 남자의 엄마, 누나들의 지극한 보살핌을 받고 자랐다. 그 남자는 그 엄마의 아들이자 잘 키운 남편이었다. 그렇다. 나는 그렇게 남의 집 가장을 간헐적으로 데리고 살았었다.


자식들은 서른이 넘고 마흔을 넘어가는 그 시점에도 엄마의 말이라면 거역하는 법이 없었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우울증으로 힘들다고 했다. 그 남자가 결혼을 하고서는 운전을 하다 앞에 있는 차를 박고 죽고 싶다고도 했다. 이 말은 그 남자의 첫째 누나가 나에게 했던 말이다. 그러니 우리 엄마에게 잘하라며..


그 남자의 엄마는 그렇게 자식을 끌어안고 살았다. 지금은 자기 자식도 부족해 내 자식까지 데려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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