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빚, 그리고 대출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 ‘도깨비‘가 생각이 났다.
대학생이 된 여주인공에게 도깨비는 선물을 한다.
가방, 향수, 그리고 오백
드라마의 주인공이 나와 살고 있다. 그 남자는 누군가에게 도깨비였다.
결혼을 하고 첫째 아이가 백일이 되기도 전이었다. 그 남자는 금요일 저녁, 집에 와서 나를 식탁의자에 앉혔다. 둘째 누나가 카드 값을 갚아달라고 해서 대출을 받아 줘야 한다고 했다. 상의가 아니라 통보였다.
그 남자에게 둘째 누나가 울면서 여러 번 전화를 했다. 카드 값도 카드 값인데 개인회생도 미납을 했단다.
분명 둘째 누나는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명품가방도 있었고, 브랜드 액세서리도 하고 다녔다. 나와 그 남자의 결혼식이 끝나고 둘째 누나는 남자 친구와 해외여행도 다녀왔다.(나와 그 남자는 신혼여행을 가지 않았다.)
그 남자의 엄마도 울면서 전화를 했다고 한다. 이번 한 번만 도와 달라 했다. 남편이 아닌 아들에게 당신 딸의 빚을 갚아 달라 한다.
그 남자의 아버지는 이 나이에도 돈을 벌고 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나에게 이따금 잘 번다고 으스대기도 했다.
나는 그 남자의 아버지도 아시냐고 물었다.
그 남자가 말했다.
“자기는 우리 아빠가 어떤 사람 같아?”
그 남자의 아버지는 돈을 끔찍하게 아껴서 ‘돈돈돈’하며 살았단다. 그래서 그 남자는 그런 소리가 듣기 싫다 했다. 그렇게 억척 떠는 모습이 싫었다고 했다. 둘째 누나가 카드 빚이 있다는 것을 알면 그 남자의 집이 ‘난리’가 날 것이라고 했다. 정확히는 그 남자의 아버지가 예전처럼 술을 마시고 집안에 물건을 던지는 모습을 볼까 봐 두려워했다.
난리는 지금 너와 내가 만든 가정에 났다. 신혼집 안에 있는 가전도 카드 할부가 아직 안 끝났는데 대출을 받는다니. 당장 급한 누나 카드 빚을 갚으면 누나가 다달이 대출원금과 이자를 납부할 거라고 했다.
나는 딸의 피부가 예민해 면 기저귀를 사용했다. 나중에 종이 기저귀를 사용하려고 보니 기저귀 값이 만만치가 않았다. 나는 어떻게든 아끼면서 살고 있었다.
능력도 안 되는 박사 과정 학생과 이제 겨우 박사 학위를 받은 그 남자가 결혼을 했다. 예쁜 딸아이가 생겼고 나와 그 남자는 그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벌이에 맞지 않는 씀씀이, 카드 빚, 개인회생. 내가 만약 빚이 있다면 부모님에게 말을 했을 것이다. 동생에게 빚을 내서 갚아 달라고는 못할 것이다. 애초에 나는 카드가 없었다.
둘째 누나의 카드값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 남자가 해외로 교환 학생을 갔을 때 둘째 누나에게 그 남자 명의 카드를 빌려줬었다. 둘째 누나는 그 카드로 카드론을 했다. 박사과정 학생 월급으로 누나의 카드 값을 갚다가 힘에 부쳐 그 남자의 어머니에게 알렸다고 했다.
그 남자의 엄마는 그러게 왜 둘째 누나에게 카드를 줬냐고 했지만 그 카드를 뺏어 주진 않았다. (그 카드는 내 딸이 4살이 된 지금도 둘째 누나가 쓰고 있다.)
머리가 아팠다. 삼십 대 초반의 나이에 개인회생이라니. 그동안 그렇게 백화점 물건만 사다 나르던 그 모습들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나와 그 남자의 결혼 선물이라며 w호텔 1박 투숙권도 그 카드 값에 포함이 되었겠구나.
그 남자의 첫째 누나는 알고 있냐고 물었다. 다 알고 있다고 했다.
그 남자의 첫째 누나는 결혼을 했다. 아이도 있었다. 그 남자의 엄마는 첫째 누나 시댁이 엄청 부자라고 했다. 딸의 시댁이 부자인 것도 그 남자의 집안의 큰 자랑이었다. 그런 부잣집에 시집간 첫째 누나도 알고 있다…
그 남자의 엄마는 항상 삼 남매가 ‘우애’가 깊다고 했다.
부잣집으로 시집을 잘 간 첫째 누나는 여동생의 카드 빚을 방관했다. 둘째 누나는 ‘아들’이라고 부르는 그 끔찍한 남동생에게 카드 값을 갚아 달라고 한다. 그런데 그 사실을 그 남자의 아버지는 모른다.
그렇게 한 주가 지난 일요일. 그 남자의 엄마와 아빠는 내 딸을 보러 신혼집에 왔다. 그 남자의 엄마는 나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둘째 누나의 카드값으로 그 남자는 여기저기 있던 빚을 다 긁어모아 3000 만원 대출을 받았다. 이자율이 2.8 퍼로 좋다며 조각조각 있던 빚을 한 곳으로 묶었다. 빚을 빚으로 갚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