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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eamHunter Nov 08. 2023

마주馬主 이야기

말을 소유한 자

저는 시드니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생활 반경은 고만 고만해서 [직장 - 체육관 - 집]을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그러니 TV에 나오는 웅장한 호주 대자연을 저도 집에서 여러분이랑 같이 유튜브로 시청 중입니다.


아내는 늘 나가자, 여행 가자, 놀러 가자 성화이지만 나가면 고생인 것도 있지만 저는 집 밖을 나갈 때는 분명한 명문이랑 의미가 있어야 합니다. 그냥 나가자? 왜?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가령, 바다 수영을 가자. 이건 수영을 즐길 수 있으니 갈 수 있습니다. 근데 그냥 바람 쐬러 나가자는 따위는 맘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유는 저도 모릅니다.


제 무의식이 그런 사소한 것으론 움직이지 않기에 의식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윤기가 좔좔 흐르는 호주 말들.. 4천 불이라니 나쁘지 않네요.

어제 다른 일로 고객이랑 점심 식사를 하다가 말을 샀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Horse말이요? 

족보 있는 경주마가 아니면 대략 4천 불 (4백만 원) 수준에서 산다고 하고요. 호주 중고 시장을 보면 공짜로 주는 말도 있다고 하니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럼 관리는요? 

한인 마주들이 모여서 운영하는 농장이 있다고 합니다. 거대한 필지를 사서 각자 말들을 풀어놓고 키우는데 가끔씩 가서 다른 말도 서로 봐주며 품앗이 개념으로 운영된다고 합니다. 농장 주인에게 일 년 관리비 3백 정도 지급하면 알아서 운영되는 구조라고 합니다. 즉, 일 년에 3백이면 나도 그 농장을 이용할 권한이 생기는 것이지요. 


물론 아직 농장주에게 연락을 하거나 말 판매자를 만난 것은 아닙니다. 아내가 맘을 정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가끔 친구들은 제가 호주에 산다면 수영장 딸린 단독 주택에서 큰 개들 키우며 주말에는 칵테일 파티하는 모습이 상상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꼭 그 파티에 초대해 달라고 20년째 조르고 있지요 (문감독 자네 말일세).


그런 삶을 살지도 못했고 살 계획도 없으니 애석하고 꿈같은 이야기인데요. 이렇게 말을 사게되면 그 갈증이 상당부분 해결될 느낌도 들고 고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자랑할 거리도 생기는 셈이지요. 이러니 더욱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호주나라 검색 결과

조사를 해보니 저보다 말에 대한 열정이나 지식이 넘치는 분을 찾았습니다. 크게 말 농장을 소유하고 기수를 고용해서 20마리 넘게 말농장을 운영하시면서 글도 쓰고 홈페이지도 만들고 진심으로 말을 사랑하며 사업으로 하사는 분으로 이분에게 연락을 해서 추가 정보도 얻고 열정도 옮고 싶습니다.


글을 잘 쓰시는 분이라서 브런치 작가인 저를 좋아하실 것 같은 느낌도 들고요. 이렇게 내 말을 소유한다는 생각이 머리 한번 박히니 당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말이라..



원래는 보더콜리 같은 영리한 개를 키우고 싶었는데 집이 좁아서 엄두를 못 내다가 두 단계 건너뛰고 초원을 달리는 말을 소유한다니 갑자기 내 DNA 속에 숨어 있는 몽골 기마병 피가 끓어오릅니다.


고국에서 누가 오시면 내 농장으로 초대하는 상상을 합니다.


"여기 지평선 끝까지 내 농장이야"

(n빵인 것을 굳이 밝힐 필요는..)


 브런치 이력서 등에도 "마주 & 농장주" 이렇게 한 줄 추가할 수 있고요. 농장을 소유하면서 생기는 일은 브런치에 매거진 식으로 연재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호주에 사는 마주로서 농장에서 겪은 일이라니 말을 사기도 전에 이렇게 글이 나오는 데다 Daum관계자 기호에 딱 맞을 것 같습니다. 매거진 제목도 바로 나옵니다.


40대에 처음 마주한 마주馬主


건강해 보이는 호주 말들, 보더콜리도 같이 키우면 좋겠다.


기대를 가지고 연락해 본 승마클럽은 전화도 받지 않고 문자에 답도 없습니다. 뭔가 사정이 여의치 않음을 느낍니다.


여기서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 걱정이 됩니다. 호주 사람들은 호주 목장을 갈 터이니, 주로 한인들이 이용할 클럽인데 20마리 말을 유지하고 사람을 두는 것이 얼마나 힘들지 설명 듣지 않아도 애잔한 서사가 스쳐니가 갑니다. 말을 향한 그분 순수한 열정에 찬물을 씌우는 일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싶습니다.


아, 그래도 이렇게 접기는 싫은데...

호주에서 살면서 이렇게 집에서 정신분석만 읽을 거면 고국에 사는 거랑 뭐가 다른가?

말을 사면 지금 내 삶에 모든 답답함이랑 모순됨이 한순간에 해결될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 없습니다.




제가 말을 산다면 찬성할 사람들을 우선 생각해 봅니다.


고국에 있는 친구들

많은 브런치 작가님들

Daum 브런치 직원


다음으로 반대할 사람들은요.


일부 브런치 작가님들

아내

엄마


캔버라, 2023

마지막에 엄마가 걸립니다. 

매달 엄마에게 보내 드리는 생활비도 불연 떠오릅니다. 그 돈이 내게 큰 어려움은 아니지만 가끔 귀찮기도 합니다. 엄마에게 보내드리는 돈은 이렇듯 생각하면서 호주 말을 사려는 생각에는 이렇게 즐거워하니 좋은 아들은 아닙니다. 


호주에 살면서 이런 특별한 경험을 하는 것이 굳이 불효인가도 싶고 이 일을 계기로 사람도 만나야 글도 나오고 삶도 풍성해질 것습니다. 고민입니다. 내가 지금 말 키울 때인가도 싶습니다.


이런 일기 같은 글을 잘 안 쓰는 이유가 마무리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지난 종교 이야기나 영화평 따위 글들은 맞던 틀리던 제가 결론을 내릴 수가 있는데 제 삶에 일들은 제가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부분이 극히 일부분이라서 브런치 글답게 아름답고 깔끔하게 마치 지를 못합니다.




12월 20일, 브런치북 수상을 다시 기다립니다.


당선된다면 그때 말을 사자!

이 정도 명분이면 충분하겠지?

그러자, 작가로서 말이 필요하다!

그럼 말 이름은 '브런치'로 하면 좋을까?


이런 상상만으로 우리 존경하는 작가님들 사랑하는 독자님들께 오늘도 글 하나 올립니다.


모두들 사랑하며

이만 총총





오늘 마무리 사진은 뭘로 할까 하다가, 말 사진은 더 없으니 아태식품에 살던 아기 고양이 사진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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