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reamHunter Apr 03. 2024

거절 오르가즘

거절당하려는 도착

살면서 아무리 경험해도 익숙해지기 힘든 것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특히 내가 소원하는 것을 역시 사정이 뻔해 보이는 남에게 부탁해야 하는 상황에서 '미안하다'는 거절을 결론으로 마주하는 것입니다.  


원빈도 아니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입장에서 근사한 여자들을 넘보던 시절이 아직도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사실 내게 고백을 당해야 했던 여성들 입장에서는 쟤는 뭐 하는 짓인가 싶을 거고 그분들이야 말로 난처하고 황당했겠지만 거절당했다는 사실만이 제게는 남아 있습니다.


그 후로도 거절이나 유사 거절 행위는 계속됩니다. 입사하고 싶은 회사에게 거절당하기; 꿈꾸던 사업 제안서 파기 당하기; 내가 만든 세상에 초대했을 때 지루해하는 사람들 얼굴 마주하기; 내가 지지하는 정당 정치인을 욕하는 사람이랑 밥먹기; 브런치 작가님들에게 협업 제안 했다 거절당하기 등등 많죠.


심지어 내가 사준 장난감을 심드렁하게 보는 호주 고양이들에게도 심한 거절감을 느낍니다.



사업을 작게 하나 운영하고 있습니다. 늘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으며 가끔 받는 사소한 거절 공격은 이곳에서도 쌓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작은 타격들이 내 가슴속에 뼈를 계속 때리다 보니 마음에 피로 골절일 쌓여 요즘 제 삶에 금이 가고 있습니다. 증상으로는 식욕부진이랑 불면증이 있고요.


광고 협찬 문의를 다니고 있습니다. mz담당자들 앞에서 슈퍼스타 K 면접을 보는 심경으로 진땀을 빼면서 왜 당신들이 우리 행사에 돈을 협찬해야 하는지 더듬거리며 설명합니다. 진지하게 듣는 척하지만, 나이 먹고 그러고 싶니?라는 눈빛은 아무리 눈치 없는 저라도 느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명함이나 놓고 가라는 반응 정도 받으면 그나마 성공입니다. 그리고 명함을 보면 갑자기 얼굴이 바뀝니다.


"회계사세요?"

"아, 네..^^"


이때부터는 급격하게 친근한 모드로 바뀌면서 대표님께 전달해 주겠다고 하는 모습에 오히려 참았던 굴욕감이 올라옵니다. 회계사라는 이미지에 이런 식으로 반응하는 싸구려 대중심리를 마주한 것 같아서 내가 받은 치욕을 두배로 돌려주고 싶어집니다. 연락이 오더라도 내가 꼭 거절하리라 복수심이 불타 오르죠 (하지만 막상 전화 오면 잘 모시려고요. 전화 주세요 광고주님들~ 헤헤)


그렇게 돌아 나오면서 후회도 듭니다. 내가 근사한 정신과 의사였다면 어땠을까? 그럼 이 계약이 성사되었으려나? 아니지. 남에게 부탁할 것도 없이 내 돈으로 하면 되는 거지. 그런데 아무리 내가 돈이 많아도 내 돈으로 이런 행사하면 재미없을 텐데. 이런 일은 다른 사람이랑 함께하는 맛으로 하는 것인데 이걸 나 혼자 funding하고 내가 초청하고 내가 즐기겠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냥 골방에서 자위하는 거랑 뭐가 다른가?


어쩌면 나는 거절을 당하면 오르가즘을 느끼는 성도착자입니다. 20대부터 거절을 당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거절을 당해야만 쿠퍼액이 나옵니다. 그러니 나는 사업을 키우고 필요한 것을 만들어내어 날 거절해 줄 사람을 찾아다니는 것이 내 운명이고 인생이며 쾌락입니다. 생각해 보니 이것이 진짜 제 증상입니다.




20년 전쯤 읽었던 스타벅스 창업자 하워드 쎔 자서전에도 그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영업직으로 사회 생활할 때 물건을 팔기 위해 모르는 사무실을 기웃거리다가 문전박대당했던 이야기를 아주 자세하게 기억해서 실명만 거론하지 않을 뿐, 자신을 개망신 주고 쫓아냈던 사무실 대표를 저격하는 글을 썼습니다. 재벌 회장씩이나 된 분이 이렇게 속이 옹졸한가 싶으면서도 아무리 잘 나가는 백인 유태인이라도 사람이니 그때 상처가 아물지 못했구나 생각도 했습니다. 


아무리 제가 거절 도착자라고 하더라도 슈퍼스타가 되어서 날 거절했던 인간들 위에 군림하는 상상은 매번 합니다. 그런 시간이 온다면 손봐줄 인간들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가장 통쾌하고 섹시하게 복수를 할까?

그때 가서 그들에게 나도 똑같이 거절해 주면 될까? 

아니지, 그러면 자칫 거절 오르가즘을 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노노노.. 절대 그럴 순 없어. 


그래! 말려 죽이자!

한껏 웃는 얼굴로 그들 부탁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그들이 원하는 것에 10%만 제공하자.

그리고 나머지 90은 끝까지 줄듯 말 듯

여자들이 내게 했던 것처럼 끌면서

쿠퍼액 과다 출액으로 말려 죽이면 좋겠구나!




<날 사랑한 유치원생>에 나왔던 형님이 생각납니다. 살면서 한 번도 여자에게 고백한 적이 없다는 최상급 카사노바. 자신이 맘에 드는 여자가 보이면 그 앞에 현신하는 것 만으로 그 여자는 며칠 가지 못해 형에게 고백을 하게 되는 삶 속에서만 살았다는 진정한 슈퍼스타.


유학생, 이민자, 관관객 어떤 비자 상태이건; 호주, 일본, 스칸디나비아 어떤 국적이건; 의사, 변호사, 직장인, 나가요 어떤 직업군이건 모두 형 앞에서는 고분고분해지는 여성들을 볼 때면 거절이 없는 인생은 어떤 결말을 이루게 될까 그 끝을 관찰해 봅니다.


신기하게도 여자에게 거절 경험을 쌓지 않던 형은 다른 거절거리를 찾아 나섭니다. 그리고 이상한 중독을 찾아서는 기어이 가산을 탕진합니다. 돈에 치이고 비자가 취소되고 마침내 유학생활을 끝내지 못하면서 추방당함으로 3년 호주 입국 금지도 받습니다. 지금은 돈 많은 집 데릴사위로 들어가 산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멋졌던 알파 male 최후가 데릴사위라니 씁쓸합니다.


"Come down to me, little pussy~" 싫다고 거절하는 호주 고양이.. ㅠㅠ


경제학자 말로는 망나니 재벌 2세가 마약에 손대는 이유는 마약이 경제학 논리를 벗어나는 재화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자원이 한정된 우리들에게 마약 구매란 인생을 바쳐야 하는 값이지만 재벌에겐 병아리 눈물이요. 재벌이라고해도 채워질 수 없는 인간이 가진 '상실감'은, 아무리해도 질리지 않는 한계 효용이 없는 마약 성질이랑 잘 맞는다고 하네요. (약물 중독자를 치료하시는 전문의 매미 쎔 말씀으로는 꼭 그렇지는 않다고 합니다).




다시 거절로 돌아와 글을 마칩니다. 


오늘 브런치 결론: 거절은 날 살리는 마법이요. 행복한 일상에서 겪는 다반사이다. 


이렇게 정신승리로 마칩니다. 브런치가 원래 정신승리 경연대회장 아닌가요?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모두들 사랑하며

시드니에서





인생에는 두 가지 비극이 있다.
첫째는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이며,
둘째는 그것을 얻는 순간이다.
-오스카 와일드

                    

작가의 이전글 <파묘>에서 벗어나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