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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eamHunter Apr 20. 2024

군중심리 2부: 3장

지도자가 가진 설득 수단

요즘 유튜브만 켜면 나오는 말이 '가스라이팅'입니다. 누군가를 조정할 목적으로 단순한 암시를 반복해서 주며 고립시키는 기술 같습니다. 10년 전쯤 유행하던 단어는 사이코패스였습니다. 학술용어도 아니고 의학용어도 아닌데 지금은 권위 있는 연구자나 치료자들도 쓰는 말로, 공감 능력이 부족해 지삐모르지만 남사정에 관심이 없으니 판단 능력이 빠를 수밖에 없고 행동에 거침이 없어서 섹시하게 보이지만 해부학상 전두엽에 문제가 있어서 위험한 사람이라고들 이해하고 있지요.


구스타브 르 봉 쎔이 쓰신 <군중심리> 2부 3장은 이런 이야기를 연상케 합니다. 너무 오래된 예는 날리고 현실감 있는 것으로 대체하려 했으나 봉쎔이 그토록 좋아하신 나폴레옹 형 이야기는 날리다 날리다 결국 여기서는 넣기로 결정했습니다. 봉 쎔 책에 백번은 넘게 나오는 나폴레옹 형 이야기 중에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이야기 같아서 살렸습니다. 시작합니다.




학습목표: 군중이 지도자에게 복종하려는 욕구를 알아보자. 지도자가 가진 심리. 오직 지도자만이 신념을 만들어내고 군중을 이용해 조직을 만든다. 지도자가 행하는 독재. 지도자 분류. 지도자 행동 수단 세 가지: 확언, 반복 & 전염. 끝으로 위엄에대해 보자.


지난 시간 군중 정신 구조를 보았고 군중에게 영향을 미치는 동기도 살폈다. 이제는 그것이 누구에 의해 사용되는지 알아보자.


지도자

사회성을 가진 모든 생명체는 모이기만 하면 우두머리에게 자신을 맡겨버리려는 본능이 있다. 특히 군중 지도자는 여론을 형성하고 일치시키는 중요한 핵심 역할을 한다. 그들은 먼저 파벌을 조직한 후 군중을 끌고 나간다. 이런 지도자가 없는 군중은 주인이 없는 노예에 불과하다.


지도자도 처음에는 노예 일부였지만 그는 어떤 사상에 최면이 걸리고 그를 신봉하다 그것에만 몰두하고 그 사상에 어긋하는 의견은 전부 오류나 미신으로 치부해 버린다. 그러니 지도자란 사상가가 아니라 행동가다. 이렇다 보니 통찰력이란 그들에게 있을 수가 없다. 통찰력이란 보통 회의감을 주거나 행동을 주저하게 만들기 때문인데 지도자란 거의 발광하기 직전에 있는 신경증환자나 정신병자 중에서 나온다.


모든 이성 논리는 지도자들 (많은 경우 터무니없는) 확신 앞에서는 전혀 먹혀들지 않는다. 멸시랑 박해는 오히려 그들을 더욱 흥분시킬 뿐이다. 그들은 자신뿐 아니라 가족 동료 등 모든 걸 다 희생시킬 수 있다. 자기 보존 본능이 망가진 상태로 유일한 보상은 순교이다. 이렇게 강렬한 지도자들 신념은 그들이 하는 말에 매우 강한 암시력을 부여한다. 군중은 이렇게 강렬한 의지를 가진 사람 말에 귀 기울일 준비가 항상 되어 있다. 군중을 형성한 인간은 일체 의지력을 상실하고선 의지력을 갖춘 개인에게 의존하려는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TBS

모든 민족에겐 지도자가 반드시 있고 지도자란 무릇 추종자를 만들어낼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확신에 들떠 있어야 한다. 이런 지도자는 대개 능란한 웅변가여서 오직 개인 이익만을 추구하고 저열한 본능을 부추기며 군중을 설득하려 애쓴다.


군중 영혼을 흔들기 위해선 확신에 가득 찬 신조를 보여야 하며 그래야 신념이라는 엄청난 힘이 군중 속에 심어진다. 이 신념을 통해 지도자는 군중을 그가 꿈꾸는 완전한 노예로 만들 수 있다. 이런 영향력은 매우 크지만 오래가기는 힘들다.


신념은 다양한 대상을 가질 수 있다. 사상, 종교, 정치, 작품 심지어 어떤 인물에 대한 신념도 있는데 이것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강력한 지도자이며 그만큼 영향력도 강해진다.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모든 힘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힘은 언제나 신념으로 복음서가 주는 신념은 산을 움직일 힘을 군중에게 당연하게 부여한다. 즉 인간에게 어떤 신념을 심는다는 것은 곧장 그가 가진 힘을 열 배로 늘리는 일이다. 역사상 큰 사건은 오직 지만 아는 보잘것없는 자들이 일으켰다. 세계를 지배한 종교나 광대한 제국을 건설한 것은 학식을 갖춘 자도 아니고 희의론에 빠진 철학자도 아니다.


독재자, 아니.. 지도자를 달라!

이런 지도자들은 도처에 있다. 나라를 통치하는 절대 권력자부터 동네 당구장에서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서 본인도 잘 모르는 애매한 문구를 쉬지 않고 떠벌리며 주변 사람을 능란하게 선동하는 놈들까지 다양하다.


개인은 군중이 되면 바로 이런 지도자가 만든 법아래로 들어가고 자기 전문분야를 뺀 나머지 모든 상황에서 논리력을 상실당한다. 군중은 스스로 인도할 능력이 없다 보니 지도자가 자연스레 안내자가 된다. 인간 지도자를 거부하는 경우에는 하다못해 저급한 정기간행물이라도 따라야 속이 편하다.


이렇게 탄생한 지도자는 독재를 통해서 권위를 행사해야 인정받는다. 독재는 군중을 그 어떤 정부보다 더 고분고분하게 복종시키는데 만약 지도자가 사라지고 즉시 교체되지 않으면 군중은 흩어진다. 군중 영혼을 지배하는 것은 자유에 대한 욕구가 아니고 노예가 되고 싶은 도착이다. 군중은 복종하고 싶은 욕구에 잔뜩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자신이 지도자라고 공언하는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은 본능이다.


만해 한용운 선생님 시 '복종'을 읽고 있으면 짜릿한 쾌감이 드는 것으로 보아 저도 이런 복종 심리가 강한데요. 얼마 전 다른 작가님이랑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가 자유를 거부하는 이유에는 어떤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분석했습니다. 즉, 자유란 불확실성을 내포하기에 인간이 가장 두려워한다는 그 불완전함이 주는 공포에서 벗어나려는 심리이며, 복종이란 정확히 그 반대쪽에 위치했다는 것이죠. 다시 말해 복종을 한다는 것은 지도자에게 애매한 선택을 위임하는 행위로 위험을 분산시키는 기제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위임을 기꺼이 받고 싶어 하는 자들은 사이코패스들이라 아주 궁합이 딱딱 맞는 거죠.


지도자는 두 부류가 있다. 첫 번째는 정력 넘치며 강하지만 오래 못 가는 지도자이로 난폭하고 용감하며 대담하다. 이놈들은 특히 위험을 무릅쓴 채 군중을 이끌어나가고 능숙한 솜씨로 통솔하는 재주가 있다. 문제는 이 힘은 오래 못 가는 자극제다. 이런 영웅들은 평범한 일상으로 복귀하면 놀랄 만큼 허약한 인물이 되어버린다. 그토록 리더십을 발휘했던 인간이 일상생활에서는 깊이 생각할 줄도 모르고 단순한 상황에서도 버벅거리는 모습이다. 사실 이런 종류 지도자는 자신을 이끌어주고 자극하며 우월한 인간이나 사상을 품었던 경우이다.


두 번째는 강하면서도 지속력을 가진 애들이다. 화려한 면은 덜하지만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데 주로 종교 지도자들이나 큰 기업가에게 많이 발견된다. 그 어떤 반대나 고난도 이런 유형을 절망에 빠트리거나 좌절시키지 못한다.


지도자가 쓰는 수단: 확언, 반복 & 감염


군중을 당장 감동 시켜 약탈을 감행하거나 목숨을 걸고 요새를 사수하게 만들어야겠다면 가장 신속한 방법은 암시를 주는 것인데 자세한 예를 통해서 전달하면 더 효과가 좋다. 대부분 군중은 적당한 상황에서 암시에 걸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지도자는 위엄을 보여야 한다.


YTN, 실무자 실수로 올린 개사과 사진.

위엄보다 먼저 지도자는 확언, 반복, 감염 등을 이용해야 한다. 논리나 증명 따위는 개나 주고 순수하고 간결한 확언이야말로 군중 정신에 어떤 사상을 주입하는데 가장 확실한 수단이다.


확언이 간결할수록 증거랑 증명은 더욱 불충분해지지만 오히려 권위는 더 커진다. 모든 시대 경전이랑 법전을 보라 모두 간결한 확언으로 되어 있다. 이는 정치가나 광고 전문가들이 가장 잘 쓰는 방법이기도 하다. 확언은 지속해서 가능하면 똑같은 용어로 반복해 줄수록 실전에서 효과가 좋다.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수사법은 '반복'이라고 나폴레옹 형이 말했다고 알고 있다.


확언은 반복을 통해 군중 정신에 자리를 잡고, 결국 그것은 증명된 진실이 된다.

 

명필름, 신문에서 이 분 빨갱이라고 하던데..

반복은 높은 식견을 갖춘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안다면 군중에게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리라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반복 암시는 우리 행동에 동기를 생성하는 무의식 심층에 서서히 각인된다는 것이 무섭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누가 반복된 주장을 했는지는 알지 못하고 그 주장만 믿게 된다. 광고는 이 힘을 이용하는 것이다.


특정 정치인이 빨갱이라는 기사를 신문에서 항상 읽는다면 결국 군중은 그것을 사실이라고 믿어 버리게 된다 (심지어 빨갱이가 어떤 어원을 가지고 어떤 뜻인지도 중요하지 않다).


이렇듯 확언이랑 반복은 우월을 가릴 수 없을 만큼 각각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다. 어떤 확언이 충분히 반복되어 일체감이 형성되면 사람들은 여론이라는 흐름을 만들고 강력한 감염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주변 사람 몇 명이 느닷없이 공포에 사로잡혀 무질서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면 군중은 곧바로 이 감정을 공유하며 공포에 감염된다. 정신착란증같이 뇌를 혼란에 빠뜨리는 것도 감염되는 것으로 정신병을 치료하는 의사들이 정신병 발병률이 높은 것은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특정 공포증은 인간에게서 동물로 전염되는 경우도 발견되었다.


이 기저에는 '모방'이 있다. 이것은 고등 동물들 본성으로 인간에게도 큰 욕구이다. 조건은 하나인데 흉내내기 쉬워야 한다. 이른바 유행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영향을 주는 소수가 존재하고 무의식으로만 행동하는 군중은 그들을 모방하는 것이 이른바 유행이다. 만일 그 소수 중에 모방하기 너무 어려운 쪽으로 발전하는 놈은 영향력을 잃고 시대를 앞서 갔다고 하기도 한다. 간극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군중 여론이랑 신념은 감염으로 전파되지 이성을 기반한 추론으로 되지 않는다.


군중이 가진 신념은 확언, 반복, 감염을 통해 만들어진다.


위엄

확언 반복 감염을 통해 유포된 사상이 엄청난 힘을 갖게 되는 것은 결국 위엄이라는 신비함이 있기 때문이다. 군중을 지배하는 모든 것은 위엄이라는 단어가 표현하는 저항할 수 없는 힘을 통해 강제되었다. 이런 지배력은 비판정신을 마비시키는 대신 놀라움이랑 존경심을 가득 채워준다. 마치 최면술에 걸린 상태랑 비슷하다고 하겠다. 단연코 위엄은 가장 강력한 지배력이다.


한때 지구를 지배했던 위엄..


신神, 왕王, 여자도 군림하기 위해서는 위엄이 꼭 필요하다.


위엄도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습득한 위엄으로 이름, 재산, 명성 따위가 부여하는 것으로 두 번째 개인 위엄이랑 무관한 것으로 호주 판사들이 지금도 흰 가발을 쓰고 법복을 입는 이치로 그런 위치에서 복장이 주는 위엄이면 누구 지갑이던 털 수 있다.


스페인은 춤에 대한, 독일은 음악에 대한, 프랑스는 혁명에 대한 영국은 귀족에 대한 애착을 타고 난다.


사람뿐 아니라 여론, 문학작품 같은 것들도 위엄을 행사할 수 있다. 그것들은 대부분 역사라는 이름으로 축적된 반복일 뿐 누구도 진실성을 입증하려 노력하지 않고 학교에서 배울 뿐이니 감히 아무도 손댈 수 없는 이름이 되어 버린다. 지금 우리가 고전이라는 지겨운 것을 읽는 끔찍한 일이 그래서 일어난다 (봉쎔 책은 예외^^).


위엄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하고 우리 판단력을 완전히 마비시키는 속성이 있는데 모든 주제를 대함에 기존 견해가 있어야 하는 군중 심리랑 딱 맞아떨어진다. 이런 견해가 성공하는 것은 진실성이 아니라 그것이 위엄을 지녔느냐 하는 물음에 달려있다.


다음으로 타고난 위엄에 대해 알아보자. 이것은 직위나 재산이랑 무관하게 소수만 가진 능력으로 주변이랑 동등하고 지배수단이 없는 상황에서도 자기감정이랑 사상만으로 군중을 조련할 수 있는 특수한 능력으로 부처나 예수 마호메트 나폴레옹 수준을 말한다.


나폴레옹 사례를 보자. 무명 장군으로 후견인 덕에 원정군 총사령관으로 부임했을 시절로 이 젊은 불청객을 기다리던 기세 등등 한 장군들이 개박살 나는 일화이다. 날고 기던 장군들은 교양 없고 난폭하며 키도 작은 인물을 처음 보는 순간 그 용감하고 위대한 풍모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굴복했다.


나중에 나폴레옹 군에서 원수까지 승진한 오주로 장군은 이 키 작은 인물을 늘 못마땅해하며 볼품없는 외모에 수학자 같은 몽상이나 일삼는 어린놈을 처음 본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나폴레옹이 지시 내린 병력 배치를 듣기만 했다. 사령부 밖으로 나와서는 마세나 장군 (나폴레옹은 신이라고 후대에 칭송한 프랑스 장군)이랑 길길이 뛰며 욕을 했지만 나폴레옹 앞에만 서면 절간 색시가 되는 자신들 모습을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들보다 더 난폭하고 정력이 넘치던 방담 장군은 신도 무서워하지 않는 자신이 나폴레옹 옆에만 가면 온몸이 바들거리고 명령만 내린다면 불구덩이에도 뛰어들고 싶은 충성심이 생긴다고 했다.


나폴레옹은 자신에게 접근하는 모든 사람을 그렇게 완전히 사로잡았다. 타고난 자기 위엄을 알던 그는 주변 유력 인사들을 마부처럼 취급하면서 위엄을 더했는데 뷔뇨라는 프랑스 정치인을 국무회의 중에 하인 대하듯 무례하고 거칠게 다루면서 "야, 이 멍청아! 이제 정신 좀 차렸나?"라고 소리치자 키가 큰 뷔뇨는 허리를 깊이 숙였고 나폴레옹은 그 귀를 잡아당겼다. 뷔뇨는 훗날 이렇게 회상한다.


"그분이 호의를 표시하는 친숙한 동작이었기에 인간미가 느껴져 기분이 몹시 좋았다."


위엄이 사람을 어느 정도까지 비굴하게 만들 수 있는지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고 강력한 독재자가 왜 주변 사람을 심하게 멸시하면서 총알받이로 취급하는지 알 수 있게 되는 대목이다.


나폴레옹은 탈옥해서 프랑스에 두쪽만 가지고 나타나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프랑스 모든 권력을 뒤흔들어 놓았다. 전쟁에 나가서는 동맹국들을 자기 마음대로 요리하고 섬멸 일보 직전까지 압도하기도 했으며 죽고 난 뒤에도 그 위엄은 지속되어 커졌다. 이름 모를 조카를 황제로 만든 것도 그 위엄이었고 그를 기리는 영화가 호주에서도 2024년에 개봉되는 것을 보면 그 그림자가 얼마나 크고 강력한지 알 수 있다.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

이런 사례는 역사에 몇 없는 것이긴 하지만 대형 교회나 강력한 신조들, 제국들이 어떻게 탄생하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알아야 한다. 위엄이 군중에게 발휘하는 위력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런 것이 어떻게 탄생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위엄이 타고난 영향력이나 세상 권위를 통해서만 유래하지는 않는다. 엄청난 의지력도 일조한다. 물론 주변 사람을 사로잡은 매혹은 일정 부분 필요하다. 수에즈 운하를 만든 레셉스 Lesseps 선생은 한결같은 사람들 반대를 이겨내는 의지로 결국 매력도 만들어 낸다. 특히 그 계획을 가장 극렬하게 반대했던 영국인들 조차 그가 영국에 가자 그 계획에 찬성하게 된다. 자기 자신을 신뢰하면서 개인 이익은 따지지 않고 모든 난관을 극복하려는 과감한 모습을 대중은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천재는 빈틈이 많다. 너무 신중하면 결코 활동 반경을 넓힐 수 없다.


끝으로 이런 위엄은 언제나 성공을 중요한 요인으로 갖는다. 성공한 인간에게 군중은 더 이상 반박하지 않는데 문제는 그 성공이 소멸되는 순간은 위엄도 없어진다. 어제 영웅도 오늘 실패하면 곧장 야유당한다. 몰락한 영웅은 군중이 자신이랑 동등하게 보게 되며 사라진 우월함을 마주할 때면 내가 저 놈에게 머리 숙였다는 사실에 앙갚음을 해야 한다. 동상을 항상 미친 사람처럼 때려 부수는 인간들은 바로 그 신도들이다. 


성공이 뒷받침하지 못하는 위엄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이의가 제기되기 시작하면 그 위엄은 흔들리기 시작하기에 오랫동안 위엄을 유지해 온 신들은 자신에 대한 반박을 절대 허용하지 않았다. 군중에게 찬양을 받으려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출애굽기 20:7 KR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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