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뜻 생각하기에 '언어학'이라고 하면 유구한 역사를 가진 것 같지만 이제 겨우 백 년을 넘긴 신생 학문으로 무의식을 연구하는 정신분석이랑 비슷한 시기에 나왔습니다. 이 두 학문은 생일이 비슷하다는 것 말고도 비슷한 점이 많아서 라깡 쌤에 이르러는 언어에 대한 연구를 하는 것이 정신분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었고, 언어란 분석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이며 나아가 무의식이란 그대로 언어라고 거칠게 말하겠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배울 때는 은유랑 환유는 문학에서 사용하는 수사학 기법 정도로 치부했습니다만 지금은 그 단계를 넘어서 은유랑 환유는 우리 언어 전반에 사용되며 우리 의식 구조도 결국 그 안에서 이루어 짐을 설명합니다.
1. 은유 vs 환유
먼저 은유하면 자주 나오는 문장 "내 마음은 호수요"를 봅시다. 추상 명사인 원개념 '마음'을 설명하기 위해 '호수'라는 사물을 보조관념으로 선택했습니다. 장르로 따지면 상징이랑 낭만이 가득한 시詩입니다.
옆에 AI 시를 보면 별빛을 눈동자에 비유한 것이나 달빛이 은은하게 대상을 비추는 것을 사람이 타인을 포옹하는 듯한 장면으로 은유했습니다. 그리고 '사랑'을 '한 줄기 빛'이라 표현한 선택도 은유로서 좋았다 채점은 하겠지만 이미 만들어 놓은 기존 서류를 참조하여 만든 것이니 진부하기 그지없고 새로운 기표를 탄생시키지 못하였으니 문학으로서 가치는 거의 없다고 보입니다.
반면 환유는 개념으로서 혹은 물리학상 거리가 가까운 인접성이 있는 단어를 사용하여 원관념을 보조관념으로 대체하는 기법입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라는 문장에서 '펜'은 지식, 문인을 환유한 것이며 '칼'은 무력, 군인 등을 비유한 것입니다. 환유는 앞뒤 문맥이나 문화 배경을 모르면 비문이지만 적절한 환유가 들어간 문장은 큰 저항감 없이 뜻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사실을 기반으로 한 산문이 이 장르입니다.
다시 AI가 만든 시를 보면, 눈빛이 진실을 말하는 장면은 진실한 마음을 담은 가진 두 사람이 서로 눈을 바라보는 장면을 표현한 환유 기법 맞습니다. [커피 한 잔]이랑 [대화]라는 두 개를 [나눈다]는 동사로 함께 묶었는데 이것도 환유입니다. 커피 한 잔 안에 있는 액체 형태 커피콩 진액을 마시는 것을 "잔"이라는 것으로 축소하는 양상은 환유가 가진 특징이고요. 행복이라는 추상 명사가 마치 연기처럼 피어오르게 하는 기법도 환유겠습니다. 아쉬운 것은 역시 새로운 가치가 있는 기표란 보이지 않네요. AI가 인류를 멸종시킬 수는 있겠으나,
기표랑 기의를 따로 가지지 못한 그놈들은 새로움을 만들 수 없습니다.
2. 예시를 통한 은유 & 환유
예시를 좀 더 보겠습니다. 우선 우리가 사랑하는 영화들에서 이런 수사법은 많이 쓰입니다. 주인공, 캐릭터, 사건을 선택하는 행동은 은유로 미장센 mise-en-scene이라고도 하며, 환유는 그것들을 맥락 있게 결합하는 편집으로 플롯이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내용은 별 것 없으나 제목으로는 역대급이라는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1997)는 포스터랑 제목만 보아도 이 세련된 환유가 상상력을 마구 자극합니다. 그리고 이 정도 환유 센스가 있는 작가가 쓴 영화라면 믿고 극장표를 결제해도 된다는 믿음까지 생기게 되고요.
이런 수사법은 광고에 많이 발견합니다. 가끔은 시를 능가하는, 짧지만 기발하고 감동까지 주는 광고 문구는 새로운 유행어나 기표를 숱하게 양산해 내고 있습니다. 은유랑 환유를 '영역'을 가지고 비교할 수도 있는데요. 은유는 유사성을 기반으로 하기에 다른 영역에 있는 것을 사용하는 반면 환유는 인접성에 따라 동일한 영역 안에서 활동합니다.
이처럼 은유는 색다른 관점에서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기에 처음 뜻이 다른 뜻으로 바뀌는 '전이'가 핵심입니다. 이 효과를 극대로 만들려다 보조관념을 원관념이랑 너무 유사한 것으로 선택하면 동어 반복처럼 되어 김이 빠져 버리고, 너무 동떨어져 있으면 공감을 얻는데 실패합니다. 좋은 예를 보기 전에 나쁜 사례 두 가지만 먼저 보겠습니다.
I SEOUL YOU
이거 지금도 서울시에서 밀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이를 본 호주 사람이 이게 무슨 뜻이냐며 오히려 저에게 묻자, 제가 영어를 못하기도 하지만 도무지 연상되는 것도 없고 인접한 개념도 떠오르지 않아서 '헤헤~' 웃고 말았습니다. 그렇다고 I SEOUL YOU 만드는데 백만 원 들지는 않았을 텐데요. 만들고 나서 영어권 사람들에게 한 번 읽어 보라고 검증도 안 해보고 공무원 몇 명이서 좋다고 낄낄대는 환상만 눈앞에 그려지고 끝입니다.
댕댕이
강아지를 '멍멍이'라고 표현하는 비유는 개가 멍멍하고 짖는 것에서 착안한 인접성으로 좋은 환유라고 하겠는데요. 이 멍멍이라는 표현이 식상한 우리 mz 중에 일부는 새로운 기표를 만들려고 노력하였으나 도무지 "개"랑 "댕"이 발음 기표로서 혹은 문자 기표로서, 뭘로도 연결이 되지 않아, 볼 때마다 저는 아주 불편해 죽을 지경입니다. 뒤에 이야기하겠지만 수사학에서 랑그 (보편 언어)가 되려면 파롤 (개별 언어)은 공동체에게서 동의 내지 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과연 댕댕이가 멍멍이 위치까지 오를 수 있을지 지켜보겠습니다.
지금부터는 잘된 예만 보겠습니다. 2009년 현대자동차 그랜저 광고 [대답]편에 나왔던 은유로 질문에 답을 다른 사물로 전이하는 장면이 나오는 TV 광고입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말에 그랜저로 대답했습니다. 당신의 오늘을 말해줍니다. 그랜저"
다음은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를 수십 년째 사용하는 유한킴벌리 라디오 광고 [지구 해열제] (2016)에 나오는 문구입니다. 숲이라는 원개념을 해열제라는 보조개념으로 전이시킵니다. 그 안에는 기업이 추구하는 환경보호 노력을 넘어서 어떤 정직함, 따스함, 섬세함까지 발산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들리세요? 소나무 숲이 지구의 열을 내리는 소리. 숲이 지구의 해열제입니다."
확실히 공무원이나 일부 계층이 억지로 미는 표현보다는 기업이 사활을 걸고 진검으로 승부하는 시장에서 탄생한 표제나 표어들 중에 좋은 사례가 많네요. 몇 개 더 보고 넘어가겠습니다.
"생각이 에너지다." (에스케이)
"상조는 믿음이다." (예다함)
"보험은 사랑입니다." (삼성생명)
"양말도 옷이다." (제미유통 싹스탑)
"Coffee is Gold." (동서식품 맥심 모카골드)
원개념도 생략하고 보조 개념만으로 다 설명이 되는 사례도 있습니다. 더 높은 단수입니다.
"꾸밈없는 맛" (빙그레 뉴면)
"젊은 날의 커피" (동서식품)
"하늘 위의 쉼표" (티웨이 항공)
환유는 원사물 속성이나 개념을 연관 있는 보조 관념을 이용해서 유추하게 하며 나아가 원사물 개념까지 이해시키는 효과가 있는데요.
"좋은 집이 평생 보약" (대동주택)
"마흔은 두 번째 스무 살" (이세탄)
"머리 달린 복사기가 왔다." (신도리코)
"바퀴벌레 최후의 만찬" (동아제약 바킬라)
"내 손 안의 반찬 가게" (배달의민족 프레시)
"고백에 필요한 것은 용기가 아니라 술이다." (이자카야 훗코리)
"눈물 젖은 입술을 먹어 보지 못한 자는 사랑을 논하지 말라." (선우-결혼 정보 회사)
3. 기교에서 본질로
이렇게만 보면 은유랑 환유는 문학 작품이나 특정 장르에서 사용하는 기교라는 인식이 다시 강해지지만 인간이 생각하는 방식 자체가 은유랑 환유로 돼있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시간'에 관련된 예를 먼저 보겠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문법만 놓고 본다면 비문일 수 있습니다.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시간에 속도감을 삽입)
추석이 코 앞에 있다. (추석이라는 기간을 사물처럼 거리상 배치함)
어느새 겨울이 왔다. (겨울이라는 계절이 사람처럼 내게 온다)
우리는 시간이라는 추상 개념을 이렇게 공간이나 사물 심지어 의인화처리 해서 이해합니다. 다른 문화권에서도 마찬가지로 시간만을 위한 고유한 단위를 발명하지 않고 기존에 있던 공간 개념을 그냥 가져다 쓰고 있습니다. I spoke to her in the morning. 영어에서도 안 (in)이라는 공간 개념을 시간에도 그대로 적용하죠.
그럼 왜 우리는 은유랑 환유를 쓸까요? 기능 측면에서 보자면 이 기법은 특정 상황에서 효용도가 높습니다. 특히 새로운 사물이나 현상에 이름을 줄 때도 이미 있던 것들을 사용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은유나 환유로 비유한 개념이 우리 뇌에 그대로 인지된다 것입니다. 예전 하숙집 형이 컴퓨터가 바이러스 걸린 덕에 나도 옮아서 기침이 난다고 진지하게 말했을 적에 기암을 하며 세상에 저렇게 무식한 놈이 있나 싶었지만 그는 환유 개념을 충실히 따랐을 뿐입니다.
(컴퓨터) 마우스 / 바이러스 / 백신
(이메일) 골뱅이
이런 새 개념들은 기존 단어를 환유해서 사용한 것으로 모양이나 기능에서 인접성을 따랐습니다. 생활에서도 쓰이는 경우를 하나 더 보겠습니다. 새로운 고객이랑 싸우고 난 후에 집에 와서 배우자에게 그 일을 설명해야 합니다. 우리 회사 새로운 고객이니 당연히 배우자는 그에 대한 정보도 이미지도 없습니다. 이때 우리는 그 고객을 위한 새로운 단어를 개발하거나 기표를 창안할 수는 없으니 기존 것 중에 유사하고 인접성이 뛰어난 단어를 이용합니다.
"마치 살찐 불독처럼 생긴 남자인데, 관상은 과학이라고, 어찌나 욕심은 많던지.."
이렇게 환유나 은유로 가득한 문장으로 시작을 하면 상대방에게 다음으로 내가 전달하려는 뜻 (기의)이 원활하게 진행될 거라 기대합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관상"이 탄생합니다. 관상에서 주요한 기법 중에 하나가 상대방 꼴이 생긴 것 중에 비슷한 동물을 찾는 기법이 있습니다. 말처럼 얼굴이 길면 말상으로 온순하며 겁이 많고 길게 늘어진 얼굴이니 생각도 길어 차분하다는 식입니다. 성경에도 착한 사람을 설명할 때는 사슴이나 온순한 초식 동물로 비유하고 사악하고 포악한 인간은 독사나 사자 등 맹수 형태로 그리는 장면이 많습니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마태복음 23:33)
이렇게 원대상을 설명함에 비교대상을 이용하는 은유나 환유는 어휘를 확장하고 새로운 뜻을 만드는 효과가 있으며 이로서 기표는 창조되고 우리 언어는 시간을 뚫고 나아갑니다. 심지어 환유가 반복되고 시대를 거치며 원래 뜻에서 일부를 담당했던 부분이 새롭게 자리매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령 '지치다'는 본래 '설사하다'는 뜻이며 '힘'은 '근육'이랑 같은 의미였지만 지금은 추상 개념으로만 존재합니다. 아직 완전히 분리가 안 되어서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 것들도 많은데요. 시간이 지나면 이것들도 방금 예시처럼 다른 단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아침 먹으러 갈래? (아침 = 아침 식사)
머리 자르고 왔어. (머리카락을 다듬고 왔다)
뚜껑 열리기 일보 직전이다. (화가 난다)
사람이 그릇이 작다 (속알 머리가 좁다)
경제학 측면에서 줄임말도 환유라고 봅니다. 현타/베프/야동/종부세/Maccas(맥도날드) 등은 특정 시대 특정 계층에서 쓰이거나 전문가 집단에서 소속감 강화를 위해 쓰기도 하며 언어유희를 목적으로 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쓰임이 있습니다. 이렇듯 비유란 수사학이나 문학 기교를 넘어 인지 전략이며, 우리 기본 사고 구조를 이루는 축입니다.
제가 볼 때는 예전 유행하던 혈액형을 통한 성격 구분법: AB형이라 이상하구나 혹은 요즘 유행하는 MBTI 성격 구분법: 역시 저 새끼는 [T]야 이런 것도 큰 범주에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이런 비유 중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의인화인데요. 사물에 인격을 부여하면 어쩐지 감동이 올라옵니다.
"이젠 잊어야만 하는 내 아픈 기억이
별이 되어 반짝이며 나를 흔드네.
저기 철길 위를 달리는 기차의
커다란 울음으로도 달랠 수 없어.."
(사랑한 후에, 1987, 들국화)
저에게 의인화 끝판 왕은 [인격신]입니다. 완벽한 존재이지만 어인 일로 우리랑 같은 감정이 있어 기뻐하고 사랑하며 기대하고 분노하다 질투까지 하는 완벽한 존재 PERFECTION 그 자체라니요! 대충 보아도 이 논리는 지독한 형용 모순이지만 인격신 스토리는 어느 문명 어느 시대에나 메가 히트 장르이며 가장 인기 있는 신神 유형입니다.
증상 측면에서 보겠습니다. 은유랑 환유를 사용하는 것이 원활하지 못하면 증상이 될 수 있습니다. 로만 야콥슨이라는 언어학자는 실어증을 연구하면서 은유형이랑 환유형을 구분했습니다. 은유형은 적절한 단어를 선택하지 못하는 장애로 듣는 사람은 수수께끼를 듣는 기분이며, 환유형은 단어를 연결하지 못해 전보를 듣는 것처럼 매끄럽지 못한 문장을 마주하게 됩니다.
정신질환 진단 통계 편람 DSM-5에서 비슷한 것을 찾아보니 사회적/실용적 의사소통 장애(social/pragmatic communication disorder, F80.82)가 있습니다. 진단 기준에는 이렇게 되어 있네요.
자기 순서에 대화하기, 알아듣지 못했을 때 좀 더 쉬운 말로 바꾸어 말하기, 상호작용을 조절하기 위해 언어적 비언어적 신호를 사용하기와 같이 대화를 주고받는 규칙을 따르는 데 있어서의 어려움
4. 정신분석 속 은유랑 환유
정신분석은 언어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약물 치료를 하지 않고 오직 대화로 내담자를 다루는 정신분석 특성상 당연한 것인데요. 정신분석에서 쓰는 자유연상이나 꿈해석은 담화로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꿈해석도 풀어 쓰자면 <언어로 재현된 꿈 해석>입니다. 분석가는 내담자가 꾼 꿈을 실제로는 볼 수 없습니다. 만약 그런 영상을 제공하는 기계가 생긴다고 하여도 볼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면 정신분석이란 꿈 내용을 그대로 재현하는 작업이 아니며 그 이미지, 내용을 본 내담자가 이차 텍스트인 언어를 통해 말하는 과정을 듣는 과정에서 이루어지기에 꿈 내용이 많이 왜곡되거나 심지어 쌩 거짓으로 지어낸 이야기라도 괜찮습니다. 꿈 내용을 설명하는 언어 뒤에 있는 의미를 분석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언어학이 정신분석이랑 비슷한 점이라면 파롤이라는 개별 언어 이면에 숨겨진 하부구조를 찾는 과정이라고 하겠습니다. 단 언어학에서 하부구조는 랑그 (보편 언어)이며 분석에서는 당연히 무의식이라는 차이만 있습니다.
더 큰 차이는 다음입니다. 언어학에서 기표랑 기의는 단순 우연으로 그 둘 간에 아무런 동기 따위는 없습니다. 개가 영어에서 [dog]이고 중국에서 [犬]인 것은 그냥 그 문화에서 그렇게 정해진 것이지 개 본질하고는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중국은 상형 문자이니 모양이 비슷한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기표는 발음도 포함하기에 그것을 읽는 기표를 생각하면 됩니다).
하지만 무의식은 그것이 표현되는 실수나 농담, 꿈 등 언어 기호 이면에 '충동'이라는 필연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무의식 안에 억압된 그 충동이나 욕망 따위는 자아 검열을 통해 은유나 환유를 이용해서 다른 모습으로 튀어나옵니다. 그러니 분석 상황에서는 그 '관계'를 찾아내는 것에 집중합니다. 이것이 언어학이랑 정신분석이 다른 가장 큰 지점입니다.
꿈에서 뱀을 보았다면 해몽가들은 재수 없는 일이 있을 테니 오늘 조심해라고 하겠지만 어려서 고무파이프로 대학 시절까지 맞은 사람에게는 그 상처가 흉악한 모습을 한 뱀으로 변하고 아버지를 원망하는 감정 따위가 변해서 꿈에서 뱀이 됩니다. 반면 어려서 개구리 잡고 뱀을 따라 놀던 아이로서 추억이 가득한 이에게 뱀은 피눈물 나는, 이제는 그리워도 갈 수 없는 고향입니다 (물론 실제 분석 상황은 이렇지는 않다고 합니다. 예를 든 것뿐입니다).
언어학을 몰랐기에 은유, 환유 대신 압축, 전위라는 단어를 쓴 프로이트 선생님이지만 언어학을 알았다 하더라도 이미 꿈을 [꿈-내용]이랑 [꿈-사고]로 분리하는 업적을 이룬 선생님은 압축, 전위라는 단어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은유]를 [압축]으로 [환유]를 [전위]로 공식처럼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그렇게 일대일 매칭은 불가능합니다. 위에서 길게 설명한 은유랑 환유 역시도 이분법을 나뉠 수가 없습니다. 은유가 유사성을 기반으로 한다지만 그 과정에는 인접성으로 시작하며 환유 역시 유사성이 없이는 결합 능력을 발휘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압축 작용이 출발하려면 인접성 축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은유를 통해 만들어진) 합성 언어의 경우에 있어서 (중략) 압축 작용이 일어나기 직전-이것을 우리는 압축 작용의 준비 과정이라고 부르자-까지는 인접성의 길 (환유적 과정)을 따라 나아가다가, 정작 압축 작용에 이르러서는 은유적 과정으로 돌변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고유한 의미를 갖고는 있지만, 꿈속에서는 그러한 의미로 사용되지 않을뿐더러, 자신의 고유한 의미와 다른 여러 가지 의미를 압축하고 있는 말이 나타나게 된다." (꿈의 해석, 1900, 프로이트)
다음으로 [전위]를 [환유]랑 함께 보겠습니다. 프로이트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전위란 방어기제 개념으로 불쾌한 감정이나 욕망을 완곡하거나 왜곡하여 자아 검열을 피해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올라오는 대체 현상으로 일차 작용은 인접성 축 위를 미끄러져 가기에 환유라 할 수 있습니다.
"꿈-내용에서 본질로 보이던 요소가 꿈-사고에서는 단지 아주 미미한 역할만을 수행하는 경우가 있고, 역으로 꿈-사고에서는 분명히 본질이던 것이 꿈-내용에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꿈은 말하자면 꿈-사고랑 다른 중심점을 갖고 있다. 즉 그 내용은 꿈-사고랑 다른 요소들 주위에 정돈되어 있다." ibid
그렇다고 이 과정에서 은유-유사성 원리가 배제되는 것은 아니기에 전위 작용을 지배하는 양식은 인접성을 가진 환유이지만 유사성을 기본으로 하는 은유 양식이 도와야 합니다. 요약하자면,
전위랑 압축이 일어나는 방식은 너무 흡사하여 이 둘은 같은 작용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이로써 수사학 [은유]는 정신분석 [압축]이라는 논리는 깨집니다. 나아가 은유랑 환유도 실제로는 무 자르듯 확연하게 구분할 수가 없다네요.
모든 환유는 약간은 은유를 포함하고, 모든 은유는 환유 색채를 띠게 된다.
- 야콥슨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은유랑 환유를 통해서 우리는 더 큰 감동을 받고 내가 느끼는 지금 감정을 타인에게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종교라는 것도 생겨나고 무수한 오해도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이것은 언어 구조가 우리 뇌를 작동시키는 운영 체계이기 때문이며 언어가 없으면 뇌는 작동할 수가 없습니다. 좋고 나쁘고 덕성을 논할 수도, 다른 운영 체계로 갈아탈 수도 없는 기본 구조입니다.
훌륭한 시나 시나리오를 쓰고 싶은 사람, 사랑받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이 글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시드니에서
References:
"한-중 신체 관련 '기쁨' 관용표현 대조 연구 - 환유와 은유를 중심으로-" 최빈, 2018. 동국대학교 대학원
"광고 문안(카피)의 은유와 환유" 김병희, [특집]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은유와 환유의 힘
"영화에서의 은유와 환유" 강유정, [특집]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은유와 환유의 힘
"일상 언어의 은유와 환유" 박재연, [특집]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은유와 환유의 힘
"경제 기사에 나타난 개념적 은유와 환유 연구" 이유교, 전남대학교 대학원
"꿈의 작업에 있어서 은유와 환유" 임진수, 1989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 DSM-5-TR
"마태복음" 개혁한글, (재)대한성서공회
"꿈의 해석" 프로이트, 1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