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해석한다는 착각
많은 분들이 정신분석을 처음 마주하게 되는 것은 프로이트 선생님이 쓴 "꿈의 해석"(1900)을 통해서입니다. 명작 중에 최고이며 고전 중에 으뜸이라니 누구나 혹하며 제목에서 풍기는 희망, 마치 누군가 꿈을 해석할 수 있게 된다는 그 기대로 책을 품습니다. 목차를 보아도 대략 나정도 교양을 갖춘이라면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용기도 가지게 하고요.
그리고 차근차근 진도를 나아가면서 이것이 얼마나 헛된 기대이고 망상인지 절감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번역가를 의심하며 아무리 보아도 비문으로 생각되는 부분은 영문을 찾아보지만 비교하면 할수록 번역자는 치열한 고민 끝에 뽑아낸 문장이라는 것만 알게 됩니다. 독일어판이 원문이긴 하지만 프로이트 선생님이 살아생전 공인한 스트레이치 선생님 영문판이니 그대로 원서라고 해도 무방하지만 저에겐 외계어입니다. 이 책이 원래가 어려운 것입니다.
내가 의사라면 조금 나을까?
내가 100년 전 프로이트 선생님이 살던 시대를 살았더라면,
문학에 소양이 깊고 독어를 쓰는 오스트리안이라면 어떠했을까?
책을 읽으면서 이런 잡생각만 나올 뿐 꿈을 해석할 수 있는 그 어떤 혜안도 능력도 생기지 않습디다. 독학으로 읽으니 그런가 싶어서 몇 년 전에 세미나를 통해 여러 전문가들 도움으로 읽기도 했지만 결과는 같았습니다. 이렇게 뭔 소리도 모르는 책을 끝까지 독실하게 매달리며 읽은 것은 아마 "꿈의 해석"이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지금은 프로이트 선생님 저작을 멀리하면서 라캉 선생 2차 저작을 주로 보고 있습니다. 프로이트 텍스트가 구약이라면 라캉은 저에게 신약을 만든 사도 바울 같습니다. 성경에 능통한 자는 신구약이 하나로 닿는다 하였으니 저도 언젠가는 라캉 텍스트를 통해 프로이트 저작이 가슴에 닿을 기대를 새롭게 해 봅니다.
2차 저작이 읽기 쉽다는 장점은 있지만 저자는 라캉에게 직접 사사받은 제자도 아니요, 라캉 본인도 프로이트를 만난 적이 없다 보니 가끔은 읽으면서도 이게 과연 어디까지 맞는 이야기인가 자신이 없습니다. 물론 그 2차 저작도 상당히 어려운 부분이 많아서 절반은 대강 대강 넘깁니다.
오이디푸스 삼각형이라는 난생처음 보는 말이 또 아무렇지도 않게 툭 나옵니다. 유도 좋아하는 사람끼리야 오노 쇼헤이 기술이 어떤 문제가 있는지 바로 설전 가능하겠지만 일반 사람들이 그게 누군지 알게 뭡니까? 이렇게 2차 저작 안에도 많은 새 개념이 나오니 하나하나 다 쫓을 수 없어서 일부는 넘기지만, 오이디푸스 개념은 정신분석에서 근간을 이룬다기에 할 수 없이 책을 멈추고 무슨 뜻인지 또 뒤적입니다.
이건 프로이트 선생님이 이야기한 것은 아니고 후대에 라캉 쌤이 팔루스 개념을 논하면서 나온 것 같습니다.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는 아시다시피 아들이 엄마에 대한 욕망을 가지며 아버지를 살해하고 엄마를 취하려는 스토리인데요. 시간 순서상 아들 자신이 주체가 되어서 끌고 가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타자 욕망을 욕망한다는 라캉 쌤을 따라 우리가 엄마를 원하는 것은 아버지가 엄마를 욕망하는 것을 보고 흉내 낸 것으로 아버지 욕망이 먼저이다는 관점으로, 제가 잘못 이해한 것일 수도 있는데, 둘 다
그럴듯해 보입니다. 문제는 논리가 아닙니다. 검산입니다. 이걸 누가 어찌 증명합니까?
어떤 미친놈이 아이큐가 200이라고 아직 말도 못 하는 유아기 시절을 기억해서 이 욕망 중에 어떤 것이 먼저인지 어찌 판결을 내릴 것이며 어떻게 전말을 밝혀내겠습니까? 이 논의를 진행하려면 니체나 스피노자 심지어 지라르 같은 처음 듣는 철학자 이론까지 튀어나오기 시작합니다. 마치 처음 보는 영어 단어를 찾아보니 모르는 우리말로 설명을 해 놓은 듯 기표가 끊이지 않고 계속 흐르기만 합니다. 그렇다고 단어 하나를 이해하기 위해 니체 철학을 이제야 공부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월요일 아침입니다. 출근하기가 싫습니다. 그냥 은퇴하고 한국에 가서 살까? 아내에게 던져봅니다. 가서 뭐 하고 먹고살래? 우스갯소리로 답변하는데 나도 웃으며 집을 나옵니다. 자세한 말은 안 했지만 정말로 회계사 일이 싫은 요즘입니다.
외주 업체로 쓰던 필리핀 사무실을 닫아야 합니다. 그곳에 직원들을 고용해고 하는데 정말 마음이 무겁습니다. 원래 내가 없이도 잘 살던 사람들이 다시 잘 살게 되리라 생각하지만 정리하는 과정이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계약을 파기하면서 나 스스로도 언젠가는 이런 운명이 될까 상상해 봅니다. 나라고 이런 상황에 처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안 그래도 요즘 대표님하고 사이가 서먹합니다. 대표님은 대표님대로 집안 대소사로 바짝 스트레스가 치고 올라와 죽을 맛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 짜증이 나에게 오는 것 같아서 조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눈치를 본다 해도 예전이랑 다르게 별것 아닌 일에도 불같이 화를 내는 모습에 나도 슬슬 부아가 치밀어 오릅니다.
하지만 직원 된 놈이 무슨 입이 있어서 찍소리 소리하겠습니까? 더구나 아예 없는 시비를 거는 상황도 아니니 유구무언 닥치고 더 조심할 수밖에요. 흑백요리사에 나오는 인물들을 살펴보니 틱장애가 있는 요리사가 종종 있습니다. 특히 정교한 요리를 하는 사람일수록 강박증은 필수이다 보니 틱이 심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나도 그런 틱을 가지고 대신 내 엉성한 계산 능력을 주고 싶습니다.
틱 받을 께 완벽함을 다오. 틱이 부럽다 못해 너무 섹시해 보입니다.
일이 하기 싫고 내게 업무 지시한 상사랑 관계가 엉망일수록 내 계산은 더욱 엉망이 되어 갑니다. 특히 회사 배당 계산을 틀립니다. 신기하게도 그 지점에서 꼭 틀리기에 그 지점을 원점 조준해서 검수하지만 그래도 내 실수는 피해 갑니다. 이렇게 황당한 실수를 보면 여기에는 분명 의미가 있을 거라는 정도는 압니다. 정신분석을 받으면 그것이 무엇인지, 왜 같은 실수가 나오는지 알 수 있겠지만 스스로는 스스로를 분석하지 못하니 그저 여기까지입니다.
정신분석을 공부해서 고작 안다는 것이 여기 문제가 있다는 정도라니 그렇게 시간이랑 돈 노력을 투자한들 뭔 쓸데없는 짓인가 싶습니다. 정신분석이 그렇게 만능키이고 세상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지식이라면 왜 아무도 공부하지 않는가? 시장에서 이렇게 철저하게 외면당하는 이유까지 다시 생각해 봅니다.
웃음기 빼고 이젠 사무실에서 일부러 초긴장 상황을 만듭니다. 누가 말을 시켜도 그냥 건조하게 예, 아니요라고만 답하고 꼴도 보기 싫은 숫자, 남 세금을 계산하는 일에 몰두하려 하지만 싫어하는 마음을 증오하는 의도를 가지고 돌이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예전처럼 다시 일을 사랑하게 되면 좋겠지만 그런 동화 속 반전을 기대할 시간이 없습니다. 업무가 밀립니다.
이를 악 물고 일을 합니다. 골치가 딱딱 아프고 내가 왜 이런 일을 업으로 해야 하는지 답답합니다. 슬프기도 하고 삶이 참 애석합니다. 기대했던 공모전도 모두 탈락하고 하는 꼴을 보니 12회 브런치북 대회도 나가리입니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이젠 동력이 다해갑니다.
그러다 대표님이 갑자기 큰 소리로 찾습니다. 또 뭔가 잘못한 일이 있나 싶어서 바짝 긴장하고 방으로 갑니다.
"헌터 회계사, 어제 말이야. 꿈에 자네가 나왔어. 자네가 아주 큰 덩치에 근육질 몸으로 나왔는데,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자네랑 내가 무슨 일을 하는데 실패했어. 그래 빨래였어! 아주 힘든 빨래를 같이 했는데 잘 안 되어서 결국 마무리를 하지 못하고 말았네. 너무 힘들어서 꿈에서 우리 둘이 같이 낑낑거렸지. 하하."
인간관계는 늘 양방향입니다. 내가 대표님을 불편해하고 멀리하면 그도 느낍니다. 고양이도 느낍니다. 모를 리가 있나요. 나는 요즘 대표님이 날 버리던 내가 이곳을 떠나던 결판을 내는 상상을 합니다. 그 누구에게도 말한 적은 없습니다. 인생 다시 비포장 도로 달리는 상상이니 얼른 접지만 생각만 해도 식은땀이 납니다.
내가 업무 중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내 안에서 이 일을 그만하고 싶은 반증일 수도 있습니다. 일부러 지독한 실수를 만들어내서 내가 원하는 이별을 사무실에 고하는 숨겨진 무의식 속 욕망 분출입니다. 욕망은 그 후에 일어날 후폭풍이나 삶에 차오를 곤고함은 모르쇠로 당장 지 꼴리는 데로 어린아이처럼 떼만 쓸 줄 압니다.
그럼 대표님 꿈은 어떻게 해석해 볼까요? 제가 근육질로 나왔다는 것은 Sexual 한 것을 반드시 포함한다고 보이며 이것은 지난주에 제가 비품실에서 자전거 복장을 벗고 사무실 복장으로 갈아입다 강제로 문을 따고 들어온 대표님에게 상탈을 보인 것에서 나온 낮잔재입니다. 이건 더 이상 알지 못하니 여기서 마무리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다음입니다. '빨래'라고 하는 기표입니다. 빨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석가가 아닌 저로서는 정확히는 알지 못하지만 '어려운 일'을 뜻하는 기표로 미끄러 진다는 정도는 알 수 있습니다. 나랑 대표님은 빨래를 함께 합니다. '함께'한다는 기표 이것이 저에게 다가옵니다. 대표님은 이 사무실을 꾸려가는 일, 어려운 세상을 사는 일을 무의식에서 나랑 같이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좋던 나쁘던 힘든 상황을 나랑 함께 하는 꿈을 보니 이 양반이 나를 떠날 생각은 없다는 확신을 합니다.
자 상대가 이렇게 소중한 꿈을 당신에게 펼쳐 보았습니다.
그럼 이제 답 해줄 차례입니다. 작가님은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저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습니다만 그 문장이 대견해 이렇게 글로 남깁니다.
그 대답 이후 저는 어느 정도 편해졌습니다.
제 대답을 들은 상대방 역시 엉뚱해 보이는 제 말에 기다렸다는 듯, 무척 만족스러운 표정을 보였기에 이것으로 제가 기표를 통해 그가 말하고 싶은 진의를 잘 이해했다는 반증으로 삼겠습니다. 아래가 답입니다.
제가 앞으로 더 잘해야지요.
이것으로 우리는 화해했고 모든 오해는 풀립니다. 엉터리 해석 아니냐고요? 그렇더라도 결과는 행복함을 주는 결말이니 된 것 아닌가요?
모두들 사랑하며
시드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