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캉 쎔은 프로이트를 계승 발전 시킨 사람이라고 하지만 정작 두 분은 생전에 만날 기회가 있음에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불어를 쓰는 라캉이라지만 프로이트는 불어에도 능통했고 비행기가 다니던 시절이라 하루면 만날 거리에 살았지만 그러지 않았지요.
프로이트 선생님을 처음부터 존경했던 라캉은 그 정신분석을 계승하려는 기특한 논문을 프로이트 선생님에게 우편으로 보냈지만 끝내 답변을 받지 못해고 오지 말라는 소리로 이해하여 그 천재 둘은 결국 만나지 못했습니다.
없어진 것으로 알고 있는 그 서신 겸 논문은 분명 기가 막힐 거라 짐작만 합니다. 프로이트 선생님 역시 언어를 기반으로 정신분석을 이해하려는 그 노력에 혀를 내둘렀을 거라고 저는 생각하고요. 하지만 칼 융이 남긴 뼈아픈 추억, 유대인도 아닌 자를 아들이라고 까지 칭했으며 자신이 만든 정신분석협회장까지 추대 했지만 잔혹하게 자신을 저주하며 떠난 융 추억이 노년을 살던 프로이트에게 얼마나 큰 상처였을까 싶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융이 용서가 안됩니다. 라캉이 프로이트를 만났다면 우리는 지금 새로운 정신분석을 공부하고 있을지도 모르며 인류는 무의식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졌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융이 용서가 안됩니다.
라캉 선생은 생전에 글을 별로 남기지 않았습니다. 에크리라고 유명한 저작이 있다지만 그것 역시 본인도 읽기 힘들 정도라고 악평했을 난해한 텍스트라서 일부 학자들로부터 극렬하게 욕을 먹으며 오히려 그로 인해 사기꾼 엉터리라고 평가받는 정도입니다.
이렇게 라캉 저작도 귀하고 난이도 역시 극악하니 시중에는 2차 저작이 창궐합니다. 2차 저작은 쉽다는 장점이 있지만 작자 의도에 따라서 완전 다른 이야기가 전개되기에 조심해야 합니다. 지금 읽고 있는 2차 저작은 온통 언어학 이야기입니다. 목차를 보아도 거의 책 끝까지 언어에 대한 내용입니다.
언어학 관련 논문 읽을 순서 정리, R.S.E 그리고 에크리 2차 저작
결국 쉽게 썼다는 2차 저작도 언어학에 대한 기본 이해가 없으면 힘들기에 언어학에 관련된 논문을 먼저 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라캉을 읽는 것은 프로이트를 읽기 위한 도구임을 잊지 않기 위해 R.S.E. 영문 텍스트도 조금씩 번역해 봅니다. 읽을 것이 산처럼 쌓이고 있습니다.
무의식은 언어 구조라는 것은 '기표는 주체를 통제하고 모든 것에 선행한다'는 이야기로 갑니다. 그만큼 강력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내가 원하는 뜻 (기의)을 전달하기 위해서 고안된 기표는 주객이 전도되어서 그 자체로 주인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기표가 가진 특징 중에 하나로 소급 적용된다는 것도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 보아야 한다는 것인데요. 우리 언어란 진행 해 나가면서도 앞에 문장을 계속 염두해야하고 그로인해 전체 뜻이 모두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당신 진짜 대단한 사람이야! 옆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도 자기 일에만 관심 있지.."
뒤에 문장까지 다 들어야 우리는 앞에 문장, 문단이 해석이 됩니다. 진짜 뜻은 뒤로 가면서 계속 변하기에 말을 중간에 끊어서 듣게 되면 무슨 말인지 모르거나 가끔은 전혀 반대로 해석하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 언어는 끊임없이 지난 문장을 소환해서 전체 의미를 잡아 나갑니다. 지금 이 글도 그렇습니다. 정신분석 관련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좀 다릅니다.
Triage, 응급실에서 증상에 따라 진료 순서를 정하는 것으로 당직실 간호사가 정함. 빨리 와도 경증은 뒤로 밀림.
무의식이 있다는 것은 다 동의한다고 가정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무의식이 의식보다 강력하여 정말 중요한 순간 우리 결정에 영향을 주고 나아가 내 인생이 그렇게 간다는 논리는 이제 그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렇게 강력한 무의식은 언어, 즉 기표로 작동합니다. 그렇기에 무의식에서도 우리는 늘 뒤를 돌아보는 구조입니다.
인간만이 <기표-기의>로 나뉜 언어를 가지고 있기에 무의식도 인간에게만 존재합니다. 그래서 다른 동물들은 하지 않는 것을 우리는 늘 합니다.
인간이 인간 다운 것, 바로 후회입니다.
하지만 후회만큼 날 괴롭히고 내 인생을 낭비시키는 것도 없습니다. 프로이트 선생님도 인정한 융 쎔 '내향화' 논리에 따르면 외부로 향해야 하는 리비도 (정신 에너지라고 하겠습니다)가 안으로 눈을 돌려서 온통 내 안에 지난 시간을 검토하는 일로 평생을 보내는 인간 증상입니다.
내향화를 쎄게 겪는 인간들은 이제는 다 끝난 일들, 심지어 당사자도 신경 쓰지 않는 것들에 '나는 심취해' 헤어나지 못하고 슬퍼하며 허덕이는 인생을 말합니다. (프로이트 선생님은 이를 약간 다르게 해석하시는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무의식을 원형이라는 신비한 인류 공동 자산으로 취급하는 융은 결국 내향화에 대한 더 심도 있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융은 언어를 분석 도구로 사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기표 개념을 안다면, 우리 무의식이 언어 구조라는 것을 이해했다면 내향화를 대하는 태도 역시 달라집니다.
닥터 Josh에게 내가 브런치 작가라 우리 독자들에게 오늘 이야기 거리로 사진이 필요하다니 직접 찍어가라고 허락해 주었다.
호주 이민자 속담에 유도 검은 띠 가려면 응급실에 세 번은 실려가고 전신마취 두 번은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한 번씩만 해왔기에 알지 모를 부채감이 늘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어제 드디어 응급실 횟수 하나를 더 채웠습니다.
목요일 저녁은 저에게는 한주가 끝나는 순간이라서 기쁘지만 늘 피곤하고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순간입니다. 결국 그러다 작은 발화 지점을 만나 사고가 터졌습니다. 과도하게 큰 도복을 입은 새내기랑 스파링을 하다가 도복 자락에 발가락이 말리면서 부러지는 고통이 왔습니다.
스파링 상황에서는 극도로 흥분했기에 고통을 잘 느끼지 못했고 걱정하는 회원들이랑 학생들에게는 괜찮다면 수업을 마무리하고는 서둘러 응급실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한 동안 참고 지냈던 내향화가 시작 되었습니다.
수업을 1분만 일찍 끝냈더라면..
더 강하게 상대를 압박해서 컨트롤할 것을 왜 배려한답시고..
1년 만에 방문한 후배랑 이런 사고가 나다니, 하필 왜 다시 와서..
그 친구가 딱 맞는 도복을 입고 했더라면..
끝이 없는 후회가 밀려옵니다. 이런 후회를 하는 것이 지금 응급실로 향하는 나에게 아무런 해답도 이득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에 누르려고 애를 씁니다. 다행인 것은 화가 나거나 급격하게 감정이 흔들리지는 않고 새벽에 불편한 응급실에서 세 시간째 하염없이 기다리는 짜증이 전부입니다.
기다리다 지치고 나보다 먼저 온 환자들이 계속 나를 추월해서 응급실 안으로 들어가는 상황에 슬슬 부아가 치밀어 올라서 간호사에게 항의를 해봅니다. 얼마나 기다려야 하냐고! 마침 오늘이 시드니 전체 병원 시스템 점검 하는 날이라서 수기로 행정이 진행되다 보니 지금 당신 순번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 내일까지는 어느 병원에가도 이럴 것이라는 황당한 답을 듣자 집에 가기로 합니다. 세 시간을 기다렸는데 꼴을 보아하니 앞으로도 아무런 진척이 없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만삭인 아내가 그래도 기다린 것이 아까우니 30분만 더 참자고 하여 분을 삭이고 못 이기는 척 자리에 앉으니 5분 만에 의사가 절 찾습니다. 그리고 일사천리로 일은 진행되어서 다행히 진료를 잘 마치고 나왔습니다. 응급실에서 밤을 지새우는 어린 의사가 환하게 웃는 얼굴로 나를 맞으며 미안하다 하니 뭐랄 수도 없습니다.
“What happened to your toe?” 무슨 일 당하셨어요?
“Playing Judo..” 유도하다가요..
“Wow, what belt are you? Actually I used to play Judo at Uni. Not a professional but enjoyed.” 와, 무슨 띠에요? 사실 저도 대학 때 취미로 좀했어요.
“Oh! Really? You look Judo-smart too! I’m black belt!” 오 유도 잘하게 생기셨어. 난 검은띠예요.
“Haha thanks. I am brown. Are you a coach?” 하하 그런가요? 저는 갈띠에요. 코치세요?
“Assistant coach, we have professional coaches. Josh, this is my business card. Please visit our club some day for a trial. It’s not far.” 보조 코치인데 정식 코치 선생님은 따로 있고요. 조쉬 (의사이름), 이거 내 연락처인데 우리 클럽에 한 번 놀러 오세요. 여기서 멀지 않아요.
밤을 지새우며 일하는 짬인 레지던트 조쉬가 정말로 유도를 할 시간이 있어서 올진 모르겠지만 이렇게 안으로만 향하던 내 기표를 밖으로 다시 돌리는 노력을 하자 삶이 조금씩 변하는 느낌이 듭니다. 물론 꿈보다 해몽으로 이런 것이 스스로에게 위안이 되게 하렴을 내 무의식은 알고 속지 않습니다.
허세..
내친김에 밀고 나갑니다. 다친 것을 이용해서 완전히 다른 인생길로 갑니다. 원망도 기쁨도 아닌 그냥 일어난 사건입니다.
This is what it is...
어쩌겠나, 받아들여야지...
하지만 이렇게 인생을 예쁜 종이로 포장하려는 짓거리가 갑자기 싸구려 같이 보입니다. 내가 혐오하던 인생 조언 같습니다. 좋게 생각하며 웃다 보면 정말 웃을 일이 생긴다는 만 원짜리 명언집에서 굴러다니는 형편없는 가식입니다.
부상을 당하지 말았어야지 이게 무슨 개고생인가에 대한 마음을 외면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 부상에서 무언가 교훈을 얻자는 다분히 미국 주짓수 도사 같은 마음가짐도 버리고요. 하찮습니다.
이제 보니 과거로 돌아가려는 노력이 없으면 인간이 아닙니다. 우리를 구성하는 무의식, 기표가 작동하는 방향에 역행하면 영웅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환상에서도 깨고 싶습니다. 다만 이 일로 몇 가지 삶에 변화는 주려 합니다.
1. 운동할 때 발가락을 강화하는 훈련을 병행하자. 운동화 속에 뭉쳐있는 발가락은 아무리 하체 운동을 해도 강해지 않으니 중량 운동을 할 때 맨발로 하자.
2. 도복을 크게 입고 서성거리는 초보자들은 특히 주의해서 보자. 부상 위험이 거기에도 있다.
3. 평소 열 시간을 자도 늘 수면 부족에 시달렸는데 어제 응급실 다녀와서 네 시간 집중해서 잤더니 나름 나쁘지 않다. 일주일에 몇 번은 이렇게 수면을 최소한으로 하고 새벽에 정신분석 관련 밀린 공부를 해보자.
시드니에서
호주 응급실. 요즘 고국에 응급실이 힘들다고 들었습니다. 고통 받으시는 분들 생각하면 이런 투정은 사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