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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eamHunter Nov 21. 2024

안 보고 쓰는 글래디에이터 II

안 볼 결심

세월이 가면서 가리는 음식이 많아지듯, 영화 편식도 점점 심해갑니다. 그러다 보니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들 중에서 맘에 들었던 것들을 되새기는 것 말고는 새로운 영화를 피하며 살고 있습니다. 24년 전 유학생 때 호주 극장에서 보았던 [글래디에이터]도 잊지 못하는 영화 중에 하나이며 이번에 속편이 제작되었다는 광고를 마주하자 절대 보지 않겠다는 맹세를 했습니다.


그리고 예고편이랑 간단한 영화평을 몇 줄 읽어 보는 것 만으로 그 확신은 강해져가다 못해 이렇게 글로 남겨 보려 합니다. 안 보고 쓰는 영화평이니 스포는 없습니다.





악당은 검은 말, 벤허는 흰말.. 너무 뻔한..

우선 1편이 대흥행작이라서 저는 이 영화를 [벤허]랑 비교한 적이 있습니다. 주변에서는 빵! 터지면 어디 그런 판타지 역사 영화를 명작 중에 명작이라는 벤허랑 비교하냐고 한심하게 저를 보던 눈길이 생각납니다. 예측한 반응이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한번 질러 보고 싶을 만큼 1편을 사랑했습니다.


벤허에서 백미가 전차 경주라면 제가 꼽은 글래디에이터 1편에서 백미는 로마 군대에게 장난감으로 던져진 노예 오합지졸 병사를 모아서 역전하는 막시무스 장군 지휘 장면입니다. 특히 방패를 이용해서 마차를 뒤집고 그 짧은 시간에 좌중을 압도하며 리더십을 발휘하는 막장군 카리스마는, 마차 바퀴를 박살 내는 벤허 전차 경기 기발함을 연상케 했으니까요.


1편은 73회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남우주연상, 의상상, 시각효과상, 음향상을 휩쓸었고 스콧 감독 스스로도 영화가 이 정도로 대박일 줄은 몰랐을 것입니다. 한동안 그 필모에서 가장 흥행한 영화로 기록되었으니까요. 영화 [LA 컨피덴셜]에서 무식한 형사로 나왔던 원주민 혼혈 러셀 크로우는 호주 국모 니콜이랑 이혼하고 미국으로 돌아간 톰을 대신할 영웅으로 급부상했습니다. 아니 전 세계에서 탑급 남자 배우로 자리매김하였지요.


영웅본색 2

이렇게 대성한 작품을 유니버설 픽쳐스에서 그냥 둘리 없지요. 속편 제작 설은 매년 호주에서도 나올 정도로 뜨거웠지만 막장군을 죽여버린 1편 스토리상 그를 다시 살려낼 방법을 끝끝내 찾지 못하여 이렇게 속절없이 24년이 흘렀습니다. 제 생각으로 대략 방법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로 [영웅본색 2]처럼 미국 같은 다른 나라에 막장군이랑 같은 유전자를 가진 일란성쌍둥이 형제가 살고 있다는 설정으로 그 역시 막장군이 가진 서사랑 비슷한 인생 경험도 있고 자질도 충분하여 관객들은 안심하고 쌍둥이 막장군을 믿고 행군하라는 설정입니다. 쌍팔년도 순진한 아시안 관객에게도 이 설정은 무리였습니다. 아무리 24년 전이라고 해도 21세기입니다. 우리 X세대 무시 마세요. 그렇게 얄팍하지 않습니다.


엘리언 4

두 번째 방법은 아예 불가능하기에 꺼내기도 뭐 하지만 굳이 쓰자면 [엘리언 4]처럼 배경이 미래라 여전사 리플리가 죽는 시점에 흘린 혈흔을 가지고 DNA를 추적하여 리플리를 부활시킨다는 설정입니다만 아쉽게도 글래디에이터는 배경이 로마 시대입니다ㅠㅠ.


이처럼 1편에서 사망한 주인공을 다시 살려내서 2편에서 그럴듯하게 진행시킬 방법이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뭐든 지어내려면 억지로 지어는 내겠지만 관객들 집단 무의식이 호응하고 공감할 방식을 찾기가 힘든 것이지요.


배는 최대한 가리서 올려 봅니다ㅠㅠ

저 역시도 막장군을 부활시킬 방법이 뭐가 있을까 23년을 고민해 보았지만 그 사이 러셀 형이 너무 늙어 버려서 포기하고 말았지요.


결국 글래디에이터는 그렇게 역사 뒤편으로 넘어가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에 운전을 하다가 굴다리 옆에 붙은 간판에서 2편 광고를 보고 매우 염려가 되었지요. 스콧 감독이 현존하는 지금 시점에서 어떤 미친놈이 이걸 시도할까?


[로보캅] 시리즈처럼 1편 이후는 [영구와 땡칠이] 수준으로 몰락해 가는 길을 따르려는 것인가? 그 짧은 순간에도 한숨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제가 놀란 것은 2편이 나왔다는 사실보다


2편 역시 스콧 감독이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전체 플롯이 어떻게 이어져 가는가를 우선 보았습니다. 어차피 막장군이 부활하는 스토리는 아닐 것이 확실하고, 무엇보다 실망스러운 것은 2편을 만들면서 절대 해서는 안될 1편 묻어가기 형식이라는 점입니다. 1편에서 시작은 게르만 족이랑 숲 속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막시무스 장군 육탄전이며 충실한 개도 나오고 하늘을 나는 회전 칼도 등장하며 그 서사가 자연스럽게 이어지지만 2편은 그런 것들을 공식으로 만들어서 소재만 바꾸는 식입니다. 브런치에 글을 써도 그렇게 쓰면 안 될 수준으로 제작되었다는 말씀입니다.


혹자는 그런 플롯이야말로 성공한 1편을 그리워하는 관객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 선물이라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우리 언어에서 환유나 은유가 작동하듯:


1편: 나는 빵을 맛있게 먹는다.

2편: 너는 쉰밥을 깨작거리다 왕창 남겼다.


1편에서 산악 전투로 시작했으니 2편은 해상 전투씬으로 시작, 1편에서 호랑이가 나왔으니 2편은 상어 등장! 이 정도면 거의 뭐 막장 드라마 늘어지는 수준인데..


이렇게 1편 골격에 단어만 바꿔 끼우면서 형용사 같은 잔기술만 첨가한 것이니 모든 것은 1편을 그대로 답습했으며 굳이 다른 점을 찾아보라면 판을 키우기 위해 투자를 많이 했다는 것 말고는 없습니다. 안 봤지만 알 것 같고, 궁금하지만 보면 화가 날 것 같아서 피하고 싶습니다.


2편을 보면 1편에 대한 좋은 기억도 망가질 것 같습니다.


안 봤지만 몇 가지 각론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안 봤다며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하시겠지만 대략 예고편에서 본 것들 중에서 동물에 대한 것들만 보겠습니다.


한노 VS 막시무스

1. 막시무스 VS 한노

동물 이야기에 앞서 주인공부터 보고 가겠습니다. 막시무스가 보인 야성미를 능가할 배우가 2편에 안 보입니다. 주인공인 한노는 비슷한 서사에 외모를 가졌으나 down-grade버전입니다.


지금 보아도 24년 전 막시무스 장군이 바닥에 모레를 집어 올려 비비는 장면은 당할 재간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때는 일부 장면을 빼고는 CG보다는 직접 연출 비중이 커서 화면에서 사실감이 컸습니다. 진짜로 로마 검투사가 내 눈앞에서 피 튀기며 싸우는 모습을 보는 아날로그 감성을 느꼈지요. 주인공부터가 이러니 말 다했습니다.


2. 원숭이, 상어 & 코뿔소 VS 호랑이

1편에서는 호랑이가 검투사 싸움에 등장합니다. 검투사에 대한 역사는 실제 했고 기록도 좀 있는 편이라서 동물이 등장했다는 것은 실제 역사랑 일치합니다.


로마가 기독교인들을 탄압할 때에도 교인들을 잡아다가 굶주린 사자 떼를 풀어서 먹이로 주고는 잡혀 먹는 모습을 관객들에게 opening card로 검투사 대결 전에 썼다는 이야기도 있으니까요.


1편에서 호랑이는 검투사 역사를 어느 정도 반영하면서 관객에게 새로운 흥미를 주는 소재로 주요하게 작용했는데요. 고유한 혼은 없이 1편을 우라까이 하면서 판을 키우자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2편은 이런 소재도 어쩔 수 없이 키워야 했습니다.


우선 인육으로 키운 개코원숭이 떼를 처음등장 시켰다고 하는데 이것도 이미 [양들의 침묵]에서 인육으로 길러진 돼지 이야기가 먼저 이기에 전혀 신선한 소재가 아닙니다. 양들의 침묵 역시 오래된 영화라서 지금 mz 관객들은 모를 수도 있으니 혹시 인육 원숭이가 대단하다고 생각하시면 큰일 납니다. 이것도 백퍼 우라까이입니다.


다음으로 코뿔소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하지 말아야 할 것 중에 '확신'이란 것이 있습니다. 특히 상대방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확신을 한다는 것처럼 위험하고 우스꽝스러운 것도 없지요. 하지만 저는 지금 확신을 하나 하려 합니다.


스콧 감독은 [총, 균, 쇠]를 읽지 않았습니다. 인류 문명이 어찌하여 이렇게 대륙별로 다른 발전 양상을 가지고 오며 인종마다 다른 문명을 건설하고 다른 역사를 진행시키는지에 대한 답으로 이 책이 제시하는 것은 거대 가축 소유 여부입니다.


농사를 도울 수 있는 노동력을 제공할 가축을 보유했는지 안 했는지가 농업 생산량에 막대한 차이를 가지고 왔으며 그로 인해 문명 발달에 차이가 나왔다는 것입니다. 쟁기를 끌 크기에 가축이 되려면 반드시 갖춰야 할 조건들이 있습니다.


가령, 육식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사람 먹을 고기도 없는데 가축을 고기로 키울 상황이 안됩니다. 더구나 농경시대 초기에는요. 둘째로 성장 속도가 빨라야 합니다. 코끼리처럼 성체가 되는데 20년씩 걸리면 키우다 망합니다. 다음으로 감금 상황에서 보이는 스트레스 반응입니다. 대부분 감금 상황에서 자살하고 마는 아프리카 사슴류는 탈락입니다. 이런 애들은 갇힌 상황에서 교미는커녕 개체 생존도 못합니다.


잡식성이며 초식으로도 빨리 잘 자라는 회색곰이나 얼룩말은 아무리 어려서부터 키워도 사육사보다 자신이 더 커지는 시점에서 반드시 지 주인을 죽입니다. 동물원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호랑이가 아니고 얼룩말로 이런 성격을 가진 동물은 가축화에 실패합니다. 마지막으로 사회성인데요. 무리를 이루어 사는 짐승들이어야 위계를 바탕으로 건설된 인간 가축 문화에 적응 가능합니다. 양이나 개가 그런 점에서는 아주 뛰어난데 그들은 여기서 이야기하는 노동력을 제공하는 가축이랑은 조금 다릅니다. 크기가 성인 남성을 태울 정도로 커야 밭을 갈 수 있으니까요.


[총, 균, 쇠]에 보면 그 많은 야생 짐승이 있는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이 조건에 부합하는 거대 동물은 단 한 종種도 없어 소나 말 낙타 등을 보유한 유럽에 판판이 깨졌다는 자조가 나옵니다. 그리고 다이아몬드 쌤은 만약 코뿔소 한 종만이라도 가축으로 키우는데 성공했다면 그 거대한 짐승을 타고 유럽을 정벌하러 왔을 아프리카 고대 왕국을 상상하는 장면이 책에 있습니다.


스콧 감독 [총, 균, 쇠] 안 봤습니다.


이분들은 취미는 아니지만 역시 달인입니다.

마지막으로 상어입니다. 사실 상어만 나왔다고 하면 어느 정도 저는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이미 원숭이에 코뿔소까지 나온 상황이라서 이 역시 눈에 거슬립니다. 저처럼 작게라도 진심으로 어항을 만들어 그 안에 작은 열대어, 민물 새우, 수초 등 생명들을 살리기 위해 밤을 지새우고 고민한 사람이면 압니다.


흔히 물생활이라고 하는 것도 취미로 많은 분들이 즐기시는데요. 여기도 사이즈가 커지기 시작하면 상상을 초월한 분들이 많습니다. 시드니에서 물생활하는 분들을 좀 알게 되어서 이야기도 했는데 우리처럼 민물로 시작한 사람들은 결국 색채가 뛰어나고 생김이 특이한 바닷물로 발전해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닷물 하시는 분들은 겸손한 말씀으로 익숙해지면 민물보다 쉽다고 하시지만 우선 바닷물에 사는 생물을 키우려면 어항이 작을 수가 없고 바닷물을 그대로 재연하기 위해서 산소나 수질을 맞춰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염도도 신경 써야 하니 수돗물을 이용해 생물이 살 수 있는 바닷물로 만드는 과정은 저도 엄두가 안 납니다.


바다에 사는 생물이라고 다 집에서 키울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특히 빠르게 헤엄치지 않으면 죽기 때문에 엄청난 아쿠아리움 시설이 있지 않고서는 절대 키울 수 없는 것이 거대 상어류입니다.


이들은 예민하기도 하여 한정된 공간에서는 사육이 거의 불가능함으로 대부분 현대 아쿠아리움에서도 사육을 실패한 기록이 있습니다. 영화에 나온 상어가 어떤 종인 지는 모르지만 인간을 공격하는 특성을 보아서는 그중에서도 특히 까다로운 백상아리로 보이고, 스콧 감독도 관객들이 그렇게 생각해 주기를 바라는 눈치이지만, 결론은 감독님 집에는 어항 하나도 없다는 반증일 뿐입니다.


새끼 상어부터 키워서 성체로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니 그날 하루 이벤트를 위해서 성체인 상어를 잡아왔다고 변론할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 마차가 굴러가는 속도로 2미터 가까이 보이는 상어를 바다에서 포획하여 경기장으로 이송하려면 최소 이틀은 걸릴 텐데 그 시간이면 모두 폐사하고 맙니다. 우선 그 당시 기술로 산체로 거대 상어를 포획하는 것부터 불가능합니다.


마지막으로 상어도 어지간히 굶지 않고서는 사람 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원숭이랑 마찬가지로 사람 인육이랑 피로 키웠다고 상상할 분들께 미리 말씀드립니다. 상어가 사람을 무는 것은 공격이 아니고 단순 호기심에 살짝 물어보는 것입니다. 단지 그 힘이 너무 강해서 인간은 그것 만으로도 중상에 과다 출혈로 죽지만요.




글을 쓰면서, 제 생각을 정리하면서, 어떤 허점이 나오거나 반대로 2편에 흥미가 돋아나기를 바랐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괘씸해 죽겠습니다. 이렇게 이 영화는 저에게 걸리는 것이 많으니, 제가 완전히 그 서사에 몰입하여 즐기지 못할 것은 너무도 분명합니다. 차라리 1편을 한 번 더 보는 것이 낫겠습니다.



모두들 사랑하며

시드니에서



작게라도 어항을 만들어본 사람은 절대 그런 상상을 하지 못합니다. 2000년 전에 상어를 키우다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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