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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eamHunter Nov 12. 2024

왜 속지 않는가

희생만이 답인가

태어나느라 고생 많았다 우리 딸네미..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이유 없이 차오르는 갈증, 불안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없어서 그런가? 감사하게도 내 아이를 보게 되었지만 육아 선배들이 말하는 것처럼 찬란한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내 모든 삶을 빨아들이는 충만한 기쁨은 느끼지 못합니다.


내 아이는 똥도 예뻐서 땅콩 잼 같다고 살짝 먹어볼까 심각하게 고민했다는 전도사님 말씀도 기억납니다. 세상 아빠들은 이렇다는데 저는 왜 이럴까요? 이상합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꿈속에서나 그리던 환상이 현실이 될 거라 기대했습니다. 아이가 주는 행복감은 모든 피곤도 이겨내고 깊은 영감도 주어서 공모전에도 당선될 글감이 마꾸 쏟아지리라. 벌써 내가 기대하는 것들이 다른 아빠들이랑 다릅니다. 아이로 인해서 내가 치장하고 내 영광을 이룩하려는 자세입니다. 아이를 건강하게 잘 키워서 세상에서 사랑받는 의사 만들겠다는 의지는 당최 타오르지 않으니 큰일입니다.


다른 아빠들처럼 이제 아이가 태어났으니 내 삶은 그만 달리기를 멈추고 돈이나 악착같이 벌면서 아이 크는 행복에 내 모든 인생은 회색으로 바뀌어야 하는데 저는 그러지 못합니다. 나중에 변할지라도 이제 막 아이가 태어나 찬란해야 할 순간에 이런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그렇습니다. 여전히 명함에 '브런치 작가'말고 '넷플릭스 작가'를 넣고 싶고 유도나 주짓수를 어떻게 잘할까 병원에 앉아서도 궁리합니다.


아비 된 놈이 처음부터 이렇게 뜨뜨 미지근한 마음이다 보니 우리 아이는 아마도 그런 전문가로 크지는 못하겠습니다. 아이에게 자신이 가진 모든 재화 시간을 바친다고 해도 투자한 것 이상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쉽지 않다는데 벌써 이러니 자네 아이는 위대한 사람이 되기는 글렀다는 눈길이 환상으로 보입니다.





아이가 오자 불안해하는 우리 프로이트

아이는 이제 산모랑 퇴원하고 집에 왔으니 본격 육아도 시작이고 정말 가족이 하나 늘어난 느낌입니다. 이 시기를 무사히 통과한 친구들은 잠 못 자는 고통을 호소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이제 끝났다는 안도감에 은근히 자랑질입니다.


고작 며칠이지만 저도 시작해 보니 대략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원래 불면증이 있고 고양이 네 마리랑 살기도 했기에 새벽에 일어나 잠을 망치는 고통은 새삼스럽지는 않네요. 물론 절대로 적응할 수 있는 고통은 아닙니다. 수면 부족은 내성이 생기지 않는 짜증이지요. 하지만 친구들이 목에 힘주고 말한 훈장님 교훈이 저에겐 전혀 새롭지는 않네요.


미안하구나, 자네들이 기대했던 것처럼 내가 고통에 허덕이며 선배님~하고 대가리 박아야 하는데 이미 아는 맛이네.


꿈을 비교해 봅니다. 아이가 오기 전이랑 후에 달라진 것이 있을까 해서요. 아이가 주는 행복이랑 쾌감 충격이 우리 육아 선배님들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크다면 제 무의식에 분명 변화가 있을 테니 기대가 되었습니다. 아이가 집에 오기 직전에 꿈입니다.


장소는 책방이나 학교 도서관으로 보입니다. 나이가 저보다 위인 유명 여성 작가 한 분을 우연히 만났는데 아마도 한강 선생이 아닐까 합니다. 그분이랑 운이 좋게 이야기를 하는데 놀랍게도 제 글에 관심을 보이시기에 책장에서 제 책을 찾아서 드리니 몹시 좋아하십니다. 그리고 건방질 수 있지만 첫 속지에 작가님께 드리게 되어 영광이다는 글을 친히 쓰는데 한글이랑 영어 맞춤법이 계속 망가집니다. 뒤에서 기다리는 선생님 시선이 느껴지자 몹시 식은땀이 납니다. 저자라는 놈이 맞춤법을 틀려서 선물로 주다니요.


다음은 아이가 집에 오고 나서 꾼 꿈입니다. 최근 백화점에 입점하는 문제로 변호사랑 한 달째 계약서를 검토하고 현장 방문을 하면서 병원을 오가고 있는 낮현실을 반영한 것입니다. 계약은 잘 성사되어서 이제 상대측 변호사 마지막 확인 절차만 남겨둔 상태로 우리 쪽 변호사님이 만족스럽게 일을 해주어 기분이 좋습니다.


백화점 넓은 공간에 드디어 입점한 첫날입니다. 인테리어 공사도 끝이 나서 홀가분하고 많은 후배들이 와서 함께해 주니 너무도 뿌듯합니다. 오신 분들 중에 호주 사람도 있고 오랜만에 보는 후배들도 있으며 다양한 사람들 속에 섞여 행복해하는 내 모습을 벽에 설치된 거울을 통해서 힐끔 거리며 봅니다. 그 모습을 보는 것이 감격스럽습니다.


이렇듯 꿈은 95% 이상이 이미지로 나타납니다. 이러니 사람들은 꿈 하면 이미지를 기반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내려합니다. 바로 해몽이지요. 이렇게 이미지를 쫓다 보면 그 끝에는 도사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마치 몽유병 환자처럼 평생을 무의식이 만들어낸 상상이 외부에서 들어온 계시라고 착각하여 헤맬 것입니다.


프로이트 선생님에 따르면 꿈은 무의식이 발현된 것이고, 나아가 무의식은 언어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미지는 우리 욕망, 주이상스를 반영한 상상계라고 하니 우리 무의식은 언어가 시작되는 상징계안에 있겠습니다. 결과에 비추어 꿈은 상상계랑 상징계가 95대 5 비율로 섞여 있다고 보입니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은 이미지로 가득하고 법칙은 없는 상상계에만 집중하십니다.


언어는 문법을 토대로 이루어졌기에 무의식 역시 문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결국 꿈을 해석하는 작업은 이렇게 5%에 집중해야 해몽으로 가지 않겠습니다. 첫 꿈에서 한강을 만나는 장면 등은 내가 그렇게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이 있다 어쩌다 하는 것은 초등학생도 알겠습니다. 유치하다는 것이 아니고 그것은 그저 겉으로 보이는 단순 쾌락입니다. 이것 만으로는 진정 내가 겪는 갈증이랑 불안 구조를 알아내지 못합니다.


그런 이미지 말고 '글씨가 뭉개진다'는 기표를 보겠습니다. 맞춤법을 가끔 틀리는 저는 그것에서 무척 창피함을 느끼지만 잘 고쳐지지도 않고 그 실수는 아무리 검산을 해도 내 눈을 피해 내 업무나 글에 늘 녹아 있습니다. 그 오류 자체도 창피하지만 그 실수를 통해서 내 무의식을 세상에 노출한 것 같아서 더욱 불편합니다.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감추고 늘 남 이야기를 수집하는 저로서는 당연한 일입니다. 인간관계에서 정보 비대칭을 획득해 남들을 교묘하게 조종하고 싶습니다.  


두 번째 꿈 역시 이제 막 시작하려는 사업이 잘될 일인가? 따위 질문에는 답을 주는 신의 계시는 아닙니다. 설사 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헌금도 안 내고 버티는 놈에게 줄 관심이 있을까요? 그런 식으로 인격신을 믿으시는 분들이 있다면 신을 너무 한가하고 속 좁게 해석하는 처사입니다. 그분이 보낼 하루는 자신에게 온 우주, 돌멩이 하나까지도 쏟아내는 영광을 받으시기에도 바쁘십니다.


스스로는 스스로를 분석할 수 없다고 하지만 제가 보기엔 아이가 태어난 전, 후 꿈에 큰 차이는 없어 보입니다.




2018년에 엄마가 준 교회 행사 수건

아이가 나왔기에 장모님이 호주에 오셨습니다. 아이 덕분에 장모님하고도 이참에 새롭게 친근한 관계 설정이 이루어집니다. 아이가 우리를 진짜 가족으로 엮어주는 느낌 고맙습니다.


반면에 우리 엄마는 오지 못합니다. 아버지랑 함께 오고 싶다고 하시지만 그 돈을 제가 또 부담할 여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올 초에 큰돈을 보내 드려서 한 번 휘청했고 이번에 백화점 입점 껀으로 은행 융자 한도액 초과입니다. 이자가 말도 못 합니다.


그래도 엄마는 할머니 된 기쁨으로 행복이 충만하여 이런 행정 절차를 자꾸 잊으시는지 못내 오고 싶어 하십니다. 저도 자식이니 보여드리고 싶고 즐거운 시간 함께하고 싶지만 아버지랑 과연 싸우지 않고 시간을 보낼지도 자신이 없고 진짜로 돈이 없습니다. 불효자 평가보다 무서운 것이 신불자 낙인입니다.


그냥 아기 사진을 보내드리기 심심해서 예전에 엄마가 권사 취임 등 교회 행사에서 나온 수건 몇 장을 준 것이 기억났습니다. 오래 쓰다 보니 이제는 걸래보다도 못한 상태인데 그것을 깨끗하게 세탁해서 병원에 가지고가 아이 옆에 걸어 놓고 엄마에게 설정 샷을 올립니다. 여기에 아이가 그 수건 냄새를 맡게 한다는 서사를 더해서 어머님에게 드리지요.


엄마가 준 수건  → 엄마 향기  그 향기를 느끼는 손주  할머니를 상상하는 아이


뭐 이런 환유를 일으켜 봅니다. 역시나 엄마는 이것으로 한참 우셨다고 합니다. 작은 서사를 선물로 만들어 드린 것입니다. 언어에 환유 기법이 없는 동물들은 쟤들이 지금 뭐 하는가 이해하지 못합니다. 수사학이 있는 언어를 쓰는 인간만이 아는 놀이이며 행복감입니다.


네 귀여움을 이용해서 공모전에 당선되기를 바랐다만.. ㅠㅠ




느낌이 쏴하지?

고양이 연구자이다 보니 구글에게 배운 대로 고양이에게는 환유대신 진짜로 아이 체취를 전달해 봅니다. 아이가 곧 온다는 기표를 환유를 사용하지 않는 고양이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화학 전달을 사용합니다. 그 수건을 고양이에게 깔아 주었지요.


아이가 집에 오자 호주 고양이 두 녀석은 어리둥절입니다. 새로운 냄새가 집안에 퍼집니다. 병원 냄새에 젖냄새 등으로 보아 새로 온 생명체는 고양이는 아닌데 그렇다고 자기들이 아는 인간 모습도 아닙니다.


아이가 짜증 섞인 울음을 터트리자 고양이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불안함에 같이 울고 불고 저 생명체가 무엇이냐, 쟤를 좀 어떻게 해보라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자지러집니다. 아이보다 더 심합니다. 아이가 가라앉자 고양이들도 한시름 놓으며 들어와 방을 살핍니다. 그들에게는 지금 일어난 일이 고양이 신이 자신들에게 내린 형벌이라고 이야기를 만들기에는 이 글은 너무 반대편에 있습니다. 복잡한 언어가 없는 고양이들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했고 초자아도 없습니다. 결국 걔들은 혼魂도 무의식도 초자아도 없기에 신이 없습니다.




세상을 이렇게 정신분석 측면에서 모두 이해하려 하고 답을 얻었다 생각하는 저로서는 그렇지 않은 분들은 어떻게 살아갈지 궁금합니다. 이렇게 생각한다고 불안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모르는 것보다는 낫다 자부하기에 가지는 궁금증이겠습니다.


내가 공부하는 것이나 쓰는 글에 관심이 없는 아내를 봅니다. 호주 여자들은 1박도 잘 안 하고 퇴원하는데 K-엄마가 된 아내는 4박 5일이라는 전무 후부한 기록을 세우고 나왔습니다. 우리가 원했다기보다는 병원에서 한 두 가지 아기 상황 체크를 한다고 잡았습니다.


그 병원은 내규가 특이해서 보호자는 저녁 먹고 떠나야 합니다. 2인 실이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다른 호주 병원은 보호자 한 명은 받아주는데 여긴 알짤 없더군요. 제가 가고 나면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서로 낯선 아이랑 아내는 사는 방식이 각자 맞다고 주장하며 밤새 싸웁니다. 아빠가 옆에서 조금 도움이라도 주면 좋을 텐데, 한국 산후원에 비교하면 정글이나 다름없는 호주 병원에서 엄마는 홀로 드라마를 써야 합니다. 새벽에 달려가 보면 녹초가 된 엄마랑 지쳐서 잠든 아이가 안쓰럽습니다.


그렇게 말도 통하지 않는 차가운 호주 병원 안에서 아내는 4일 밤을 새웠습니다. 손 발이 퉁퉁 부은 것이 안쓰러워 기회만 되면 주물러 줍니다. 원래 손에 힘이 없어서 근육으로 누르려면 오래가지 못합니다. 다행히 유도나 주짓수에서 평생 배운 것이 골격을 이용해서 힘이 아닌 중력으로 상대를 누르는 것이라 요긴하게 써먹습니다. 하지만 저도 사람이니 근육에 피로는 쌓이더군요.


마지막날 그렇게 한 참을 풀어주고 있는데 아내가 훌쩍훌쩍 눈물을 흘리기 시작합니다. 나로 인한 불만이나 상황이 주는 짜증은 아닌 것으로 보였기에 왜 우느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지병으로 병원에 오래 계시다 작고하신 장인어른 이야기를 아침에 한 것 때문일까요, 친구 말처럼 출산 후 호르몬 분비 변화로 오는 기복일까요? 그때 저에게 미끄러져 오는 기표가 있습니다.


희생


우리 대부분은 정신분석을 받지 않더라도 대부분 잘 살아갑니다. 분석이 진리이고 아름다운 사실이라고 해도 모르고 사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그것 없이도 그럭저럭 잘 사니까요. 각자 인생에서 쾌락을 다룰 수 있는 것들이 나름 있죠. 가령 희생입니다.


여자를 임신시킬 수 없는 기형 남자인 나를 만나서 호주라는 낯선 땅까지 와서 살게 된 아내가 겪어야 하는 고충이랑 지난 미안한 일들이 깊은 곳에서 떠오릅니다. 이것은 환상이 아니고 사실에 가까운 이미지들입니다. 나 때문에 겪지 않아도 될 고난이었음을 알기에 부끄럽고 안쓰럽습니다.


내 아이를 가지는 것이 인생 최종 목표이며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최종 결과물이라 칭찬해 주시는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우리는 인생에서 그것 말고도 의미 있는 것들이 많고 아이를 낳는 것이랑은 또 다른 행복감은 큽니다. 당신들이 아무리 내게 주입을 해도 나는 끝내 속지 못했습니다.


내 아이를 본다는 쾌락이 크지만 별개로 내가 누구인지 여전히 나는 불안합니다. 호주 시민, 회계사, 세무사, 유도 코치, 무명작가, 개랑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 직장인, 한국인 이런 기표들이 나라는 실재를 설명해 주기 위해서 끊임없이 미끄러지지만 다 뜬구름 잡는 것입니다. 결코 내게 답을 주지 못합니다. 아이가 태어난 것은 무한하게 감사한 일이지만 '아빠'라는 기표 하나를 더 해줄 뿐입니다. 그런 기표들을 얻게 된 것이 기쁨이지만 그 기쁨이 제 진정한 쾌락은 아니라는 것은 압니다.


쾌락을 좇던 내 무의식은 아내가 흘리는 눈물로 멈춥니다. 끝없는 갈증으로 미끄러지던 기표들이 멈추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아빠라는 기표에 속아 보겠습니다. 먼저 있던 것들은 다 잊고 속으려 노력이라도 해보겠습니다.




모두들 사랑하며

시드니에서





신생아를 안고 있는 의사, RPA, Sydney


추신:

김 선생님에게 육아 일기를 하나 올려드린다고 하고는 이렇게 밖에 쓰지 못하네요.  쓴다고 썼는데 어떻게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속지 않는 자들이 방황한다.
-자크 라캉

                    



https://youtu.be/UWk3N9cIo5g?si=6ppg3G79A2kNzl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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