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언
자, 그럼 쓴다 쓴다 하던 [정신분석 입문] 요약을 시작해 봅니다. 5년 전에 아무것도 모르고 한 번 읽었는데요. 이제 라깡 이론을 조금 장착 하였으니 다시 도전해 보려 합니다. 라깡쌤 텍스트를 더 읽어야 합당하겠으나 점점 어려워짐에 손에서 멀리하게 되니 이런 식으로 게으르게 라깡을 읽느니 차라리 근본도 다질 겸, 지난 5년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가늠할 수 있는 계기도 될 것 같아 감히 원본에 손을 대봅니다.
이 글은 프로이트 박사님이 1915년부터 빈 대학에서 초년 의사들이나 일반 청중을 대상으로 강의한 내용으로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입문서입니다. 제 요약이 재미있다면 나중에 원본 읽기를 추천드립니다. 2년 넘게 강의한 자료로 적지 않은 분량이라 끝까지 요약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이미 정신분석 문헌을 많이 접한 분들은 넘기시면 될 정도로 간단한 기초를 다루는 글이지만 처음 접하시는 분들에게는 분명 좋은 마중물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시작합니다.
김양순 선생님이 번역한 글을 사용하였습니다. 독문학을 성신여대에서 전공하시고 뮌헨대학에서 심리학을 추가로 공부하여 심리치료사 자격증을 획득했으니 영어로 된 프로이트 2차 저작이 아닌 독어 원작을 보셨으리라 예측합니다. 거기에 심리학자라니, 미국에서 유학한 경제학자가 번역한 흔한 프로이트 번역서보다 공신력은 훨씬 크다 보입니다. 그럼 안심하고 가겠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제 노력입니다.
제1부 - 착오
첫 번째 강의 - 서언
신경증 환자를 의학처럼 치료하는 것이 정신분석이라는 것 정도는 여러분도 알 것이다. 하지만 정신분석은 의학이랑은 전혀 다른 분야라는 것, 종종 상반되기까지 하다는 것을 이 강의를 통해 여러분에게 보여주려 한다.
의학은 환자에게 새로운 치료법을 시도할 때 그에 따르는 고통은 적게 해 주고 믿을만하다는 희망을 주지만 정신분석에서는 양상이 다르다. 우리는(정신분석가) 내담자에게 이 요법은 어렵고, 긴 시간이 걸리며, 꾸준한 노력이랑 희생이 필요하지만 그 효과는 약속을 못한다. 오히려 내담자에게 당신은 솔직하게 분석 과정을 따르고 인내하여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이러니 보험 회사도 기피하는 요법이 됨-_-;).
내가 벌써 여러분을 신경증 노이로제 환자처럼 다루고 있는데 행여 이것이 불쾌하다면 다음부터 내 강의에 올 필요가 없다고 충고한다. 아무리 진지한 노력을 한다쳐도 여러분은 이 강의를 통해서 얄팍한 정신분석 지식을 얻기도 힘들 것이다. 또 강의가 진행되다 보면 지금까지 여러분이 받아온 모든 교육이랑 이미 얻은 사고방식으로 인해 심한 적대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이 강의를 통해서 여러분은 정신분석 연구 순서는 고사하고 치료 방법도 결코 배울 수가 없음을 확언한다.
나아가 정신분석을 직업으로 삼으려고 온 분이 있다면 빨리 단념하라고 충고하겠다. 이걸 전공해 봐야 대학에서 채용해 줄 가능성도 희박하고 개업해 봤자 시장은 차갑게 반응할 것이며 주변에서는 돌팔이를 보듯 의혹에 가득 찬 눈길을 주다 못해 기회만 있으면 공격을 할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진리를 배우기 위해서라면 어떤 고통도 감내하는 자들은 어디에나 있음을 안다.
도대체 정신분석에는 어떤 어려움이 있는가 궁금할 것이다. 여러분은 의학을 공부하면서 눈으로 보는 것에 익숙해졌다. 해부실 표본, 화학반응 침전, 신경자극으로 인한 근육 수축, 병 증상, 조직 변화 나아가 분열 상태, 병원균까지 말이다. 외과 경우 수술을 관찰하며 스스로 메스를 들고 집도도 했을 것이며 정신과에서조차 실물교시가 있어 환자 표정, 말투, 행동 등을 세밀히 관찰하며, 의학교수는 여러분에게 박물관을 구경시켜 주는 안내자 노릇을 해왔다.
미안하지만 정신분석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분석 시에는 단지 분석가랑 내담자가 말을 나눌 뿐이다. 내담자는 자신이 겪은 경험이나 현재 느낌을 이야기하고 증세를 호소하며 자기 원망 섞인 감정을 고백한다 (aka 자유연상). 분석가는 내담자 말에 귀 기울이고; 그 사고 흐름을 어떤 방향으로 돌리려 시도하거나; 다른 일을 회상시키고; 주의를 한 점에 집중시키거나; 설명을 해주고; 내담자에게 일어난 긍정 또는 부정 반응을 주의 깊게 관찰한다 (서문에 아무것도 배울 것이 없다고 겁을 주셨으나 막상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정신분석 요법 과정이 여기에 담겨있습니다. 박사님은 엄살쟁이..)
내담자 중에 교양 없고 생각이 짧은 놈들은 '대화만으로 어떻게 증상을 고칠 수 있냐'라고 덤빌 것이다. 그런 무식한 사람들은 단순히 마음속으로만 신경증을 앓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여기서 마음은 '무의식'을 고려하지 않은 '의식'을 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문장입니다.)
말은 원래 마술에서 기원했다. 오늘날 (1915년)에도 말은 마력을 다분히 지니고 있다. 말로 남을 기쁘게 할 수도 있고 반대로 절망으로 밀어버리기도 한다. 말을 통해서 우리는 배움을 얻고 청중은 감동하며 결심을 좌우한다. 말은 감정에 불을 붙인다. 말은 서로 영향을 주는 보편 수단이다.
문제는 분석가랑 내담자 사이에 방청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방청이 허용된다며 여러분은 한결 쉽게 정신분석을 배우게 될 것이다. 하지만 방청은 허용되지 않기에 분석에선 실물교시란 있을 수가 없다. 정신의학 강의에서 종종 교수가 노이로제 환자를 데려다 보여주는 경우는 있지만 그때 환자는 병력이나 고민 정도만 호소할 뿐 그 이상은 말하지 않는다.
분석에 주요한 이야기를 얻을 수 있을 때란 내담자랑 분석가 사이에 특별한 감정 결합 (aka 전이)이 성립되었을 때뿐이다. 만약 제삼자가 듣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내담자는 금방 입을 다문다.
왜냐면 그 이야기는 내담자 정신생활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부분이고 알려질 경우 사회에서 매장될 개인사로 남에게는 반드시 숨겨 두어야 하는 것이며 스스로도 견디기 힘들 지독한 반인격성 욕망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러니 여러분은 건너 건너 이중 교수법을 통해 이 요법을 배울 수 밖에는 없는 실정이다. 여기서 교수에 대한 신뢰 문제도 발생한다. 여러분이 얼마나 교수를 신뢰하는지 깊이도 정신분석을 배우는 과정에서 주요한 요인이 된다. 이러니 정신분석을 정식으로 배운 사람은 손가락에 꼽는다.
다른 글에서 말씀드렸지만 이 문제는 프로이트 선생님 본인도 원죄로 가지고 있는 부분입니다. 정신분석 창시자로서 당신께서는 정신분석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본인이 창시자이니 당연한 순환 논리인데, 문제는 정신 분석가는 교육 분석을 통해서만 길러집니다. 브로이어 박사에게 최면 요법 등으로 박사님도 정신분석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으나 브로이어 박사가 정신분석가가 아니듯, 그 경험도 정신분석이 아니었으며 이를 간파한 영민한 제자 칼 G 융은 자신이 분석을 해드리겠다고 박사님께 제안했으나 노발대발 건방진 자식이라고 화를 내면서부터 둘 사이가 멀어졌다는 썰도 있습니다. 그러니 정작 프로이트 박사 자신은 자기 무의식을 마주한 적이 없습니다.
그럼 정신분석을 배우는 방법이란 없다는 말인가? 우선 여러분은 스스로 정신분석을 시도하고 자기라는 인간을 연구하는 것으로 출발하라고 조언하겠다. 정신현상에는 자주 일어나는 [보편 유형]이 많다. 자기 정신 현상을 관찰하고 기록할 수 있다면 그 현상을 분석재료로 쓸 수 있다. 문제는 이 방법은 어느 순간 한계에 부딪치게 되는데 그 시기가 오면 분석가에게 교육분석을 받아야 한다 그 체험 속에서 여러분은 분석가가 사용하는 미묘한 분석 기술을 습득할 기회를 갖고 발전한다.
다음으로 여러분은(의사들) 정신 활동을 생물학 혹은 해부학 관점에서만 접근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우리 복잡한 생체 기능 절정에 있는 정신 활동은 심리학을 더해야만 해석이 가능한데 그렇다고 누구처럼 신비주의에 빠져 신에게 빌고 무당이나 찾아가거나 시인 같은 환상을 따라갈까 걱정된다. 이런 잘못은 환자 정신 외모만 보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를 가지고 있으면 돌팔이 신비주의자가 된다 (칼 융을 말씀하시는 듯.. 뒤끝 ㅎㄷㄷ).
이런 지적을 하면 여러분이 어떤 변명을 할지도 잘 안다. 여러분은 의사라는 직업을 수련하면서 철학이라는 보조학문이 결여된 것이 확실하다. 정신의학은 관찰된 정신장애를 기술하고 임상증상으로 종합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순수하게 기술만 연구하는 것이 과학이라는 이름에 합당한 지 정신의학자들조차도 답하지 못한다. 병상을 이루는 증상이나 메커니즘, 상호관계 등은 아직도 알려져 있지 않다.
정신병은 뇌과학 측면에서 완전히 일치하는 설명을 할 수 없으며 해부학으로 신경증자랑 정신병자 간에 차이나 변화를 찾을 수도 없다. 정신장애는 어떤 기질 질환이 주는 부차 산물이라고 볼 때만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일부 라까니언들은 프로이트 박사가 실패한 원인이나 한계를 그가 의사로서 실증과학을 버리지 못한 태도로 파악하지만 박사님은 이렇게 이미 실증과학이 가진 문제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극복을 했느냐는 또 다른 문제이지만요.
정신분석이 메우려는 지점이 여기이다. 정신분석은 지금까지 정신의학에 결여되어 있던 심리학 기초를 만들어 주고자 하며, 신체장애랑 정신 장애가 동시에 일어나는 이유를 설명해 주는 바탕을 발견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우리 분석가는 해부학, 화학 혹은 생리학 가설에서 벗어나 어디까지나 순수한 심리학 개념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시키려 한다.
정신분석이 다루는 것들은 세상 지식이 만들어 놓은 편견이랑 상반되며 아름답지도 않고 노여움마저 초래한다. 이런 편견은 인류가 진화하면서 필요해진 필수 단계에서 파생된 부산물로서 대단한 위력을 가지고 있기에 이것이랑 싸우며 공부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정신분석 첫째 주장은 정신현상 자체가 무의식이며, 의식은 정신생활 전체 중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제는 여러분은 정신(무의식)이랑 의식을 같은 것으로 여기는 습관이 있다. 의식이란 분명 정신을 규정하는 특질이고 심리학은 의식 수준에서 감정, 사고 욕망을 연구하지만 정신분석에서는 무의식 수준에서 사고랑 욕망을 연구한다. 이 때문에 냉정한 과학자들에게 우리는 사이비로 취급받기도 한다 (무의식은 실증 과학이나 해부학으로 검증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단언컨대,
무의식 존재를 인정해야 비로소 우리 인식과 학문은 새로운 장을 마주한다.
무의식 존재가 정신분석에서 논하는 첫 번째 주장이라면 두 번째 주장은 "성 SEX"에 대한 욕구 충동이 신경증이나 정신병을 일으키는 요인이라는 것이다. 내 생각으로 이 두 번째 주장이 세상으로부터 욕을 먹고 반감을 사는 핵심 원인이다 (이것도 모자라 유아 성욕까지 나가셨으니, 사랑하던 제자들도 다 떠나고...).
정신분석에서 문화란 생존경쟁 압력 속에서 본능인 욕망을 희생시켜 창조된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공동체에 가담한 개인은 전체를 위하여 자기 본능, 쾌락을 희생시키는 일을 되풀이함으로써 문화는 계속 창조된다. 이렇게 억제된 성 욕망은 [승화]라는 힘이 되어 본래 목표에서 전도되어 사회에서 한층 높은 차원을 목표로 향한다.
하지만 승화란 불안한 구조이다. 성본능을 억제하고 제어한다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 마음 밑바닥에서 불타는 성본능은 승화를 깨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다른 논문 <문명 속 불만>에서 승화는 더욱 자세히 다룹니다).
성본능이 억제에서 해방되어 원래 목표로 돌려질 때만큼 사회가 위기를 느낄 때는 없다. 그러므로 사회는 누구도 그 기초가 되는 부분을 건드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회는 정신분석 연구 성과를 용납하지 않고 불편해하며 아름답지 못하고 타락한 위험이라고 비난하고 낙인찍으려 한다.
하지만 학문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감성 비난에 동요하지 않는다. 적어도 반박을 하려면 공부를 좀 하고 다시 덤비라고 말하고 싶다. 인간은 원래 지가 싫어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고 비방하고 그 증거를 찾으려 다닌다. 사회도 마찬가지로 정신분석에 대해 감정만 앞세운 논거를 내세우고 대들지만 편견에 지나지 않는 고집이다. 우리는 이처럼 비난이 쏟아져도 절대 굴복하지 않을 것을 공언한다. 우리는 심혈을 기울여 연구한 발견에 대한 인정을 받으려는 것뿐이다.
이제까지 말한 것은 여러분이 정신분석을 배울 때 만날 어려움 중에 한 두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으로 첫 번째 내 강의를 마친다. 이렇게까지 내가 권고했음에도 이 학문을 배우겠다는 결심이 흔들리지 않았다면,
지금부터 내 강의를 듣도록 허락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