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해를 정리하며
우리 딸아이가 태어난 시기랑 비슷하게 제 개인 사업도 탄생했기에 아이알면 미안하지만 병원 분만실에서도 한편에서는 임대 계약서 확인하고 변호사랑 통화하면서 산모 곁을 지켰습니다. 아이도 이제 한 살 남짓되어서 사람 형태를 가지니 제 사업장도 많은 분들 도움으로 슬슬 걸음마를 떼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한 살 먹은 아이가 사람 구실을 하면 얼마나 하겠습니까? 사업장도 마찬가지라 이제 겨우 아장아장 기어 다니니 이 사업장이 내게 용돈 주고 풍요롭게 삶을 변화시킬 날은 가히 꿈도 꾸지 못합니다. 그냥 임대 계약 끝나는 순간까지 큰 사고 없이 본전만 회수하자는 것이 이제는 목표가 되었습니다. 마치 아이가 정신과 전문의로 자라기를 기대하는 희망보다는 아프지만 말고 자라기를 바라는 시점이랑 비슷합니다. 물론 언제 돌별할지 모른 것이 저라는 인간이지만요.
기존에 운영하던 유도장은 후배 태권도 도장에서 샾 in샾으로 연명하다 아이들이 태권도 기물에 손을 댔다, 냉장고를 열고 갔다, 문 잠금 상태가 부실하다는 불만 따위가 이어지더니 결국 나가 달라는 통보를 받습니다. 동업자는 괜히 짜증 나서 저러는 것이니 괜찮다고 했지만 그 장소가 유도를 할 수 없는 구조였기에 애진작에 맘이 떴던 저는 이사 가야 할 열두 가지 이유에 하나가 추가 됩니다.
결국 우리는 나오기로 했고 몇 군데 살펴본 결과 싼 곳은 공장지대로 주차 시설도 미비하여 저녁에는 여성 회원이나 아이들이 다니기도 위험하고 차를 터는 좀도둑도 극성이라 보안 주차 시설이 좋은 곳으로 하라는 선배 충고를 따르기로 합니다. 요즘 경쟁력은 주차 능력이라 마침 근처 백화점에서 좋은 조건으로 제안이 와서 나름 일이 쉽게 풀려 갔습니다. 하지만 행운은 여기까지였습니다.
아무리 렌트비가 저렴해도 백화점 안이니 녹녹지 않습니다. 초기 계획은 시간을 삼등분하여 이른 아침부터 낮 시간까지는 어머니들 요가 수업을 우리 스폰서 은행이랑 연계해서 진행하고 다음으로 성인 유도 수업이 시작하기 전까지 중간 타임은 학생들 유도 수업을 넣으면 되었습니다. 학생 유도는 친분이 있던 코치가 자기 사업으로 맡아서 하고 우리에게 대관비 지급하는 구조로 계약하자고 제안하여 이렇게만 돌려도 백화점 임대료는 70% 정도 빠지는 계산이 나왔습니다. 나머지 30%는 현재 우리가 데리고 있는 회원으로 충분하고도 넘쳐서 오히려 입점만 하면 바로 순이익이나는 그림이었습니다. 아니 큰 돈도 벌 것 같았습니다.
계획은 인간이 세우나 신의 뜻만이 이루어지리라.
계약하는 과정에서 백화점 측이랑 서로 유리한 지점을 차지하기 위해 골치 아픈 투쟁을 몇 개월 피 말리게 보낸 이후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입점을 하게 됩니다. 이제 너무 지쳐서 사업을 시작할 여력도 없을 정도였으니 세상이 이런 내 노력을 알고 우리 사업을 도와주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어머니들 요가 수업을 함께 진행하려고 준비했던 은행에서 모든 일을 총괄하시던 이사장님은 마침 우리가 입점하는 달에 40년 banker로서 업무를 마무리하는 은퇴식을 하십니다. 기존 이사님들도 알긴 하지만 이사장님이 새로 부임하시는 덕에 모든 요가 사업은 중단됩니다.
낮시간 학생 유도 사업을 들어오겠다고 먼저 연락 와서 부탁하던 코치는 개인 사정으로 연락이 두절됩니다. 그러니 학생반도 입점이랑 동시에, 아니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무산되었지요. 그렇게 연락 없던 코치는 최근에 돈 빌려달라고 전화 온 것이 마지막이고요.
끝으로 기존 도장에서 20명 가까이 모았던 회원들이 남았지요. 그들만 와도 20명을 기반으로 다시 50명을 채우면 우리는 자립가능하니 그렇게 하면 되겠습니다. 하지만 동업자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기존 장소를 버리지 못합니다. 그곳을 두고 이곳에 또 열면, 왼손으로 비비고 오른손으로 비비니 두 그릇이라 했습니다.
그곳을 살려 두고 나오면 우리는 자체 경쟁으로 공멸한다.
나는 시간 한계가 있으니 두 곳은 운영 못한다.
그곳을 담당하겠다는 녀석은 이미 여러 차례 우리를 물 먹였는데 어찌 걔를 믿느냐..
이미 생각이 돌아선 동업자는 말이 없습니다. 양쪽에서 돈이 두배로 들어온다 생각하면서 실실 웃기만 합니다.
걱정 마세요. 형님 파이가 커지면 둘 다 대박입니다^^
결국 우리는, 아니 나는 백화점에 입점하면서 아무런 사업 지원 없이 회원 한 명을 데리고 시작합니다. 그 한 명 회원이 오지 않는 날은 넓은 도장에 홀로 앉아 우두커니 벽만 봅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되었는가? 이곳 임대료 계약서에 우리 집은 담보 잡혀있습니다. 외국에는 보증서는 제도가 없어서 한국처럼 곤란한 상황은 없다고 누가 개소리했나요? 담보 달라는 요청은 세상 어디나 마찬가지입니다.
넓은 도장에서 썰렁하게 나오는 에어컨은 땀을 식히는 것이 아니고 내 피를 말립니다. 텅 빈 거대한 사업장이 주는 공포는 그 어떤 공포 영화도 만들어 주지 못합니다. 이 기분은 살면서 굳이 당할 필요가 없는 것이니 부디 우리 작가님들은 제 글을 통해서만 느껴주시길 바랍니다. 이런 고생은 피할 수만 있으면 피하는 것이 맞기 때문입니다.
도장이 태어나는 시기에 늦둥이 우리 아이도 태어났습니다. 아이를 바라보는 내 눈망울은 기쁨보다는 매달 밀려오는 임대료 고지서로 말라갑니다. 아이를 보고 있어도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두 배가 되어갑니다. 날 향한 입이 두 개로 보이니까요. 내가 채워 넣어야 할 그 입은 끝이 어딘지 모르게 울기만 합니다.
아이 울음소리는 기표로 변해 임대료 고지서로 출력되어 내 책상 앞에 도달합니다. 여기서는 다 말씀드리기 곤란한 문제들이 백화점 매니지먼트랑 일어나고 우리하고 백화점 사이는 점점 최악으로 달려갑니다. 고소 직전이라 변호사를 다시 만나야 하나 싶은데 이런 소송을 기다렸다고 반기는 변호사님 얼굴이 떠올라 참고 슬기롭게 방법을 찾아보려 합니다. 그때 전화가 옵니다. 동업자입니다.
사기당했습니다.
태권도장에서 유지하던 도장은 그곳 관리자가 회원들을 빼돌리고 문을 닫는 덕에 그곳에 두고 왔던 제 지분, 자산도 모두 털렸습니다. 두 그릇이라고 기뻐서 비실 비실 웃던 동업자는 이제 우리는 같이 망하게 생겼으니 어쩌면 좋으냐, 당신이 일을 크게 벌여서 우리는 공동 판산이라고 울며 불며 저를 원망합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잠들려는 아기를 아내에게 맡기고 차분하게 내가 해결 방법을 찾아볼 테니 걱정 말고 푹 자라고 타이릅니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속이 넓은 대인배였나 스스로도 놀랍습니다. 하지만 이건 내가 대장부라서가 아니라 여기서 동업자랑 싸우면 나는 정말로 파산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참습니다. 사방이 적인데 자중지란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제가 미련해도 이 정도는 압니다.
수입이 두 배가 아니라 갑자기 출혈이 두 배가 됩니다. 낮에 사무실 일을 해도 다리가 휘청 휘청하고 하루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릅니다. 정신을 차려 인스타에 광고를 올리고 호주 마켓 게시판에 유도부 광고를 붙이고 한국에 돌아간 유학생 후배들에게 까지 연락을 해봅니다.
잘 지내지?
아, 형님 어쩐 일이세요?
요즘 어찌 지내? 시드니지?
아뇨, 돌아온 지 2년 넘었어요. 한국에서 자리 잡고 지내요.
아 그렇구나! 또 연락하자고..
그나마 한 명 있던 호주 회원도 사람이 없어서 훈련이 지루하다면 기존 태권도장에서 운영하는 유도장으로 돌아가지만 그곳은 이제 적진이고 남에 주머니이니 그냥 회원을 잃은 것입니다. 동업자는 사람이 늘지 않는다고 매번 비아냥 거리면서 근처 주짓수 클럽에 헐값에 재료비만 받고 넘기는 것이 소원이라고 기도 제목을 올려놓습니다. 그가 믿는 신에게 이 사업장을 팔아 달라 통성으로 기도하는 소리가 저에게 까지 들려옵니다.
도장만 크게 열면 당장 등록하겠다던 후배들은 전화하면 남입니다. 아예 연락을 안 받거나 이미 다른 도장에서 운동하고 있어서 오지 못한다고 합니다. 아니면 몸이 아파서 이제 유도는 그만 두려니 저더러 나이 먹고 더 다치기 전에 정신 차리라고 조심히 충언도 줍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우선 동업자 바람대로 주변 호주 사람들에게 헐값에 매각을 알아보는데 침몰하는 배에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냥 두면 침몰해서 공짜로 건질 수 있는데 지금 덤빌 이유가 없으니까요. 가난이랑 사랑이랑 재채기는 숨길 수 없다는데 궁색해서 부탁하는 사람 얼굴도 딱 티가 납니다.
다른 유도 코치 후배 한 명은 한국에 대학생들 상대하는 회사에 근무하는데 내가 예전 호주 현대 다닐 때부터 알던 회사이고 아는 인연도 있으니 물심양면 도와줍니다. 대신 한국 대학생들 호주에 연수 오면 우리 도장 소개도 좀 해주고 등록도 권유해 보라고 슬쩍 말하지만 직원인 제가 무슨 힘이 있나요. 헤헤. 농담으로 받아들입니다. 아주 틀린 말도 아니고 어린 후배에게 염치도 없어서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부탁할까 싶다가 그냥 넘어갑니다.
살면서 내 결정에 이토록 후회를 했던 적이 있던가 싶고 사람을 믿지 못하면 어떻게 살아야 하고 사업은 어떻게 유지하여야 하는가 난감해집니다. 물론 모두가 등을 돌린 것은 아닙니다. 절 돕는 분들은 분명 있고 동업자도 나름은 최선을 다해서 맡은 일을 해가니 사업은 조금씩 굴러가면서 한 달 한 달 아슬아슬하게 메꿔가고 회원은 다섯 명 열명 조금씩 늘어갑니다. 20명으로 시작했으면 40명은 쉽지만 한 명에서 열 명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참고 가는 수 밖에요. 다른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20명이 되었고 주변 도움으로 근근이 벼텨왔습니다. 10년 전부터 근처 대학이나 교육 기관 혹은 경찰서 특수팀에 유도 훈련 제안서를 보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습니다. 거절이라기보다는 무응답이 맞겠습니다. 궁색한 상황은 사람을 뻔뻔하게 만드니 지난 시간은 잊고 98번째 편지를 보내 봅니다.
그러다 108번째 편지를 보낼 즈음해서 답변이 왔습니다. 새로 부임한 스포츠 학과 담당자인데 제안이 무척 맘에 든다고 만나 잡니다. 학교 측에서 관심을 보이니 일은 물 흐르듯 진행이 됩니다. 중간중간 쉬어가는 포인트는 있지만 지금까지 그 흐름은 잘 이어집니다.
예전이랑 지금은 시장 구조가 달라졌기에 새로운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힘들었는데, 맨땅에 헤딩하는 심경으로 부딪히고 파보니 조금 분석이 됩니다. 전에는 유도나 주짓수가 생소한 운동이라 많이들 와서 경험하고 등록했지만 오히려 지금은 이 운동이 어떤 것인지 알기에 시장 수요자들은 꼼꼼하게 비교하고 등록도 까다롭습니다. 대신 한 번 등록하면 예전에 멋모르고 와서 운동하던 친구들보다 오래 남는다는 장점은 있습니다.
그리고 현 시장 구조는, 유도를 정말 모르는데 와서 등록하는 사람은 없고 이미 유도나 주짓수 경험이 있거나 관심이 있는 친구들이 검색을 통해서 옵니다. 사는 지역에 유도장을 검색하면 굳이 광고할 필요도 없이 나오기에 (유도장이란 것이 워낙에 띄엄띄엄 있어서 검색 순위 경쟁도 별로 없습니다) 전기차 시장처럼 광고를 쎄게 할 이유가 없는 구조입니다. 관심이 있는 사람은 어차피 오고 이런 격투기를 혐오하는 사람은 어차피 안 오니까요.
개별 회원은 맞춤형 개인 관리를 통해 만족도를 높혀 돌파합니다. 그러다 간혹 친구를 데리고 오면 그때서야 회원이 늘어나는 구조이니 개별 관리만으로는, 충성도는 높지만 성장은 느립니다. 뭔가 고정된 단체 회원 수급망을 만들어야겠습니다. 그래서 근처 대학이랑 한국 대학에 연계하는 방법을 만들고 있습니다.
평소 우리를 도와주시고 더 도움을 주시려는 분들에게도 이제 사업이 기지개를 켜니 막연하게 후원금 좀 넣어달라는 어색한 부탁말고 상호간 사업에 도움을 주고받을 기발한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옵니다. 마침 기숙사를 운영하시는 선배님에게는 묵는 학생들에게 50% 할인 쿠폰을 주고 단체로 회원을 받을 수 있는 구조도 만들고 한국 대학생들 호주 연수 담당하던 후배도 다시 연락하니 이제는 규모를 보고 돕습니다.
호주 대학이랑 연계가 되니 이것을 이용해서 한국 대학을 소개해 줍니다. 대학끼리 친선을 만들어 주는데 학생들이 모여서 커피 한 잔 마시고 끝나는 일이 아니라 우리 체육관에서 땀 흘리며 관계를 이어갑니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수익이 창출하니 한국 교민이랑 호주인들, 그리고 유학생을 연결해 주는 네트웤을 만드는 작업으로 흘러갑니다.
우리 활동이 커지니 각계 계층에서 유도를 했다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들은 공무원도 있고 사업가도 있으며 변호사 같은 전문직도 포함이라 일이 되려니, 잘 되는 집안은 뭐든 잘 되는 식으로 풀려갑니다.
지금 계획하는 일들이 다 잘 될 것이란 보장도 없고 또 어떤 고난이 찾아올지 예측하기도 힘들지만 가장 보람된 것은 지난 내 판단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스스로에게 이 일은 실패나 오류가 아니니 그만 자책을 멈추라고 말하게 됩니다. 또 지금 벌이는 사업이 민폐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일이라는 환상도 가지게 되니 행복합니다. 출혈은 이제 멎었으니 저는 오늘 그것으로 만족할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딸이랑 동갑인 사업장, 자식 같은 그 존재에게도 덜 부끄럽고 싶습니다. 어찌했건 내가 너희를 책임지기로 했으니 기쁨으로 간다. 아니 정말로 기쁘다. 위로하려는 수작이 아니고 진심으로 절실하게 말한다. 힘들다고 널 버리려 했던 것은 누구 탓도 아니고 내 못남 때문이다.
너희가 있어서 내가 산다. 너 없으며 나도 없다.
추신 1
'우리들의 이순신' 전 기사를 얼마 전에 보았습니다. 난중일기를 진지하게 읽은 적이 없습니다. 아마도 이순신 장군이 곤경해 처한 것을 보면서 위안을 얻을 자신을 마주하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살면서 대목 대목 마주하는 문장은 그때마다 제 가슴을 크게 울렸습니다. 그리고 이제 내 사업을 온전히 하는 상황에서 장군 님 말씀은 제 가슴에 피눈물같이 와서 흐릅니다. 고작 동네 구멍가게 하면서 장군 님을 떠올리려니 면목이 없어서 그만하겠습니다.
추신 2
글에 재미랑 박진감을 위해서 과도하게 나 자신은 중립 되게 표현하고 주변 사람은 낮게 표현한 것은 제 글 스타일이니 양해를 구합니다. 모두에게 감사하고 노력한 결과이며 잘못된 일이나 그로 인한 힘듬은 대부분 제 판단 오류나 게으름 때문이었습니다.
https://v.daum.net/v/2025121207031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