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새해 첫 글
우리 작가님들 그리고 절 찾아 주시는 독자님들 오랜만입니다. 글쓰기는 스스로에게 증상이라면서 신경증이 가라앉아 글이 나오지 않는가 생각해 보면, 그것보다는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고 핑계를 먼저 올립니다. 아이가 아파 2주간 입원하여 호주 사람들에게 신세 지면서 연말 휴가를 병원에서 보냈고요. 그것이 아니더라도 이제 뛰어다니는 아이랑 피곤해하는 아내를 보면 도무지 여유 부리며 책상에 앉아 프로이트 선생님 논문을 읽거나 잡문에 가까운 소설이나 시나리오를 연구할 상황이 못 되었습니다.
아이는 퇴원하였고 저도 이런저런 개인사를 정리하여 정신을 차리니 세상은 또 많이 변해있음을 마주합니다. 유학 시절 3년 넘게 매체를 끊고 호주 대학에서 낙제하지 않으려고 전전 긍긍하다 문득 마주한 TV가 생경했던 경험을 지금은 2주라는 시간으로 느낍니다. 세상이 그만치 빨리 졌나 봅니다.
병실에서 아이 옆에 우두커니 앉아 시간을 보내면서도 책을 보거나 인터넷 강의를 접할 여력이 없다 보니 들어오는 정보라고는 없이 고독하게 주제를 하나 정해 놓고 머릿속으로 혼자 장기 말을 옮기듯 생각하는 것 말고는 아무런 진전 없는 삶을 보냈습니다. 게으르다고 자책하지는 않겠지만 이제 점점 남은 시간이 졸아드는 인생에 아까운 시간임은 틀림없습니다.
절간 같이 고요한 입원실에서도 AI가 발전하는 소리는 들여옵니다. 드디어 인간형 로봇까지 나오는 상황이라 AI는 기어이 모니터를 뚫고 나와 현실을 살게 될 몸을 얻었습니다. 누구에게는 이것이 귀신이 모니터를 뚫고 나오는 장면 같아 기암하고 누군가는 새시대 새축복이 열렸다고 호들갑이지만, 대부분은 그 중간 값으로, 휴머노이드가 우리 사회에 만들어낼 결과물을 알지 못해 불안할 따름입니다.
AI가 가장 잘하는 일이 패턴이 있고 기존 자료가 많은 분야라고 하는데 더구나 숫자로 이루어진 세상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그 분야에 선봉이라면 바로 회계-세무사 업무입니다. 즉 우리 회계사들 세무사들은 앞으로 가장 먼저 AI에게 대체될 것입니다. 이미 고객들은 AI를 검색해서 답을 들고 저를 찾아옵니다. 가끔은 저보다 맞는 소리를 하고 저도 모르는 분야까지 척척 답을 주니 저에게도 선생님 역할을 합니다. 지금 AI는 정말로 생각을 해서 답을 주기보다는, 떠다니는 자료를 수집해서 정보를 취합하다 보니 존재하는 오류도 그 결과물에 포함어 AI말을 다 믿을 수는 없지만 저도 오류가 있기에 제가 더 낫다고 말하기 힘듭니다. 오히려 제 오류보다 적을 것 같습니다.
고객 질문에 관련해서 답하기 전에, 어디 그럼 나도 한번 AI 녀석에게 질문을 해보았더니 조목조목 답변을 요약해 주고는 끝에 이런 조언까지 하네요.
이봐요, 드림헌터. 당신은 회계사이자 세무사이신 만큼, 핵심이 입증 자료라는 점은 이미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즉, 운행기록부, 비용 안분, 그리고 명확한 사업 목적이 중요하겠지요.
뜨끔하다 못해 기분이 몹시 상해서 그 이후로는 AI에게 질문하는 것도 눈치를 보는 사정이 되고 말았습니다.
호주 회계사가 사라지는 과정은 제가 생각하기에 이렇습니다. 대기업은 모르겠지만 우리가 지금 관리하는 소상공인들이나 개인 납세자들 경우에 한정해서요. 우선 이 생태계에 거하는 우리 고객들 상거래에서도 현찰은 이제 거의 미비한 수준으로 줄었기에 호주 국세청은 우리 고객들 은행, 신용카드, 자산구매 등 99% 이상 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런 정보력을 토대로 세법을 조금만 간략하게 손을 본다면 국가는 개인 사업자 순이익을 직접 계산하게 되며 세금은 다음 아래 줄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됩니다. 그럼 세금 고지서를 bill이라고 부르던 70년대로 돌아가 국가에서 당신 소득세는 얼마라고 전기세 고지서처럼 날아오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오류는 점점 줄기에 다시 회계사를 고용해서 국세청을 상대로 항명하는 번거로움을 택하면서 우리에게 용돈을 주실 고객들도 99% 사라지게 됩니다. 그때가 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시바 존나 많네' 한마디 하고는 납부하고 말 것입니다.
AI 시대를 선도하는 사람이나 유명인들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그들이 한 말을 곱씹어 보는 것이 제가 새시대를 대비하는 유일한 강구책입니다. 이것 말고 뭐 딱히 준비할 수 있는 것도 없고요. 이 나이에 다시 코딩을 배우겠습니까, 아니면 대학원에 돌아가 뭘 더 배우겠습니까? 서울 대학에서 받아준다 해도 무슨 공부를 해야 할지 어떤 학과에 진학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프로이트 박사님을 다시 찾을 수밖에요.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정신분석에서는 이 사태를 어떻게 규정하고 바라볼까? 정신분석 임상을 경험하지 못했지만 저에게 있어 정신분석 과정을 한 단어로 요약해 보라면 "전이(Transference)"라고 하겠습니다.
내담자가 상담가에게 부모를 대하는 듯한 감정이 생기는 과정으로 이것은 분석실 밖에서도 많이 일어납니다. 우리 인간 근본 태생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유아기 시절 부모에게 받은 길고 긴 훈육 이후에 다시 학교에 가서 선생님을 따라야 합니다. 평생을 우리는 어떤 대상, 인물을 위인 혹은 멘토라고 지정해 놓고 따라가야 할 운명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전이가 족쇄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것이 없으면 나는 신이 됩니다. 사이코 패스들 성향을 거칠게 정리해 보면 전이가 잘 일어나지 않는는 인간이라 하겠습니다. 나쁘게 말해 사람 보기를 웃기에 아는 종자들입니다. 우리는 가끔 그들을 영웅이라고 높이지만 허점이 보이면 끌어내려 집단 다구리를 하기도 합니다. 다 전이로 설명 가능한 현상입니다. 내가 전이한 상대는 영웅이지만 그 마법이 풀리면 잔인하게 대합니다.
김어준 총수는 사이코패스를 만난 썰를 푸는 것으로 보아 스스로는 사패 성향이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이코패스라는 것이 진단명도 아니고 무 자르듯 규정할 수 있는 방법도 없으며 (비슷한 진단 kit가 있기는 합니다만) 제가 전문가도 아니니 모르긴 하지만 예전에 그가 '색다른 상담소'에서 했던 말이 기억이 납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는 욕구가 없다' 그리고 자신은 꿈에서 귀신이나 괴물 맹수 따위가 나오면 두려움에 도망 다니는 것이 아니고 잡으러 다닌다고 했습니다. 가히 특이한 꿈입니다. 모르긴 하지만 그는 우리 같은 범인은 아닙니다.
김총수는 아마 정신분석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분석가에게 전이 따위를 일으킬 의향이 없기 때문에 분석을 시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초자아나 따르고 싶은 큰 사물 따위가 전혀 없을까? 제가 볼 때는 반대입니다. 그야말로 노무현, 문재인을 향한 강한 애착 전이를 보입니다. 그가 매일 아침 하는 방송은 노무현을 향한 제사이고 그는 성스러운 제사장 역할을 기꺼이 합니다. 우리는 상상도 못할 엄청난 전이 행위입니다.
김총수처럼 사패 성향자라해도 인간인이상 전이로부터 자유롭기 힘듭니다.
일런 머스크도 AI 관련 산업 선두에 있는 사람입니다. 휴머노이드로 인해 노동력 단가를 0에 가깝게 만들어서 재무제표에서 경비는 사라지고 자산만 남을 것이라고 또 침소봉대하지만 과장일지언정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고 보입니다. 그는 지금 국가가 법으로 통제하는 돈 개념도 희미해지며 미래에는 에너지랑 연동된 돈(가령 비트코인)이 예전 금이랑 연동된 화폐처럼 살아남을 거라고 합니다.
우리가 화폐를 다루는 모습이랑 부루마불 돈을 대하는 차이를 다른 행성에서 온 외계인이 본다면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그게 뭐가 다르지? 저는 이 차이를 경제학보다는 정신분석학으로 이해시키겠습니다. 우리는 화폐에 '전이'를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저기 어딘가 계시는 연방 은행장이 인증한 화폐에는 국가라는 보이지 않는 권련이 보증을 한다는 믿음이 깔려 있기에 우리는 사랑하고, 누군가는 돈을 신처럼 모십니다.
모든 화폐에 그 나라가 존경하는 인물을 넣는 것도, 경제학자나 역사학자는 다르게 보겠지만 우리 정신분석 씬에서는 그 의도가 뻔합니다. 전이를 더 잘 일으키기 위해서입니다. 같은 이유로 노름에서 쓰는 칩이나 부루마블 돈에는 위인을 넣지 않습니다. 그곳에서는 전이가 필요 없기 때문이죠.
돈이 많은 사람 앞에서는 겸손해지고 가끔은 비굴하게 노비처럼 굴면서 꼬리를 흔드는 이유입니다. 돈을 좋아하는 마음이 돈이 많은 사람에게 까지 전이가 넘어가 그에게 잘 보이고 싶습니다. 김총수는 없다는 그런 자본주의 속 전이가 우리에게는 쉽게 일어납니다.
일런은 AI시대에 두 가지 철학을 내어 놓습니다.
1 인간은 AI에 의미를 부여하고 AI는 그 의미를 받는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그리고
2 미래 노동은 창의성과 정신 의미 찾기로 대체될 것이다.
이 둘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라면 우리는 앞으로 AI에게 전이를 일으키고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겠습니다. 전이는 사랑이라 우리는 연인 앞에서 아기처럼 구는 행동을 서슴없이 하며 내가 따르고 싶은 도사를 평생 찾아다닙니다. 언어를 배우면서 엄마를 잃어야 했던 우리 인류에게 주어진 공통 운명으로, 전이를 통해 우리는
스스로가 공동으로 만든 AI를 미래 우리 엄마로 모시게 될 것입니다.
이것으로 사랑하는 우리 작가님들께 제가 드리는 새해 첫 인사겸 전이 감정을 써봅니다. 브런치라는 환상 속에 거하시는 우리 작가님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시드니에서 쓴 글입니다.
모두들 사랑하며
시드니에서
추신 0
제 글을 찾아주시는 박성수 님이 댓글로 주신 내용을 추가합니다. 전이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physical 대상이 필요하다고 하네요. 실제로 분석을 받고 계신 상황이라 전이 개념이 명확하신 것 같습니다. 형상이 없는 관념은 전이 대상이 아니라고 하네요. 우리가 보이지 않는 예수는 사랑할 수 있지만 결국엔 보이는 목사에게 전이를 일으켜서 늘 사단이 일어나는 현상도요. 비트코인도 화폐보다 사랑받지 못하는 이유가 지급 보증인이 없어서라기보다는 화폐 같은 형체가 없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실물 화폐에게는 사랑뿐 아니라 전의 감정도 일으킬 수 있으니까요.
추신 1
글 제목이 오늘도 내용이랑 따로 놀지만 이렇게 하면 브런치 심사위원 눈에 띄어서 메인에 걸리지 않을까 다분히 브런치스럽게 뽑아 보았습니다. 흑백요리사를 보아도 심사위원 취향을 맞춰야 살아남더군요. 자, 평소 보던 브런치 메인 글들 제목이랑 비슷하게 했으니 이번 글은 조금 유명해지려나 기대해 보겠습니다.
추신 2
'전이'라는 개념이 임상에서만 쓰이거나 바보나 일으키는 나쁜 심리 현상은 아닙니다. 전이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심리기제이죠. 다시 말씀드리지만 '전이'가 없으면 '사랑'도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AI는 전이는 없겠군요. 걔는 우리를 사랑하지는 못할 테니까요. 우리는 걔를 사랑할지라도..
추신 3
밀린 글이 많습니다. 날 사랑한 상속녀-연수 이야기도 6편 나가야 하고 정신분석 입문도 6편 정리 해야 하는데 언제 다시 찾아뵐지 모르겠습니다. 노력하겠습니다.
추신 4
새해 인사 늦었네요. 복 많이 받으세요. 작가님!
이만
https://youtu.be/Z8tUhGJ4Y5U?si=HAaBXRMlBFy2qp_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