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으로 본 꾀병
꾀병이라는 말은 우리 생활에서 흔하게 쓰이지만 진단 명으로도 존재한다. 정신질환 진단 통계 DSM-5에 따르면 인위성 장애(Factitious Disorder)나 허위성 장애라고 해서 환자가 증상을 꾸며내는 경우를 주로 말하는데 재미있는 것은 보상을 바라고 하는 경우가 아닌 상황에서도 종종 발견된다는 점이다.
우리가 보기에 꾀병이란 환자인 척을 하여 무언가 혜택을 얻기 위함으로 가장 먼저 보상금이 떠오르고 다음으론 책임 따위를 회피하거나 동정이나 관심을 얻기 위한 수작질을 말한다. 그러다 가끔은 전혀 이득이 없다 못해 자신에게 오히려 피해가 가는 상황에도 증상을 지어내는 경우를 발견한다. 나는 이 지점에서 정신의학이랑 정신분석이 갈린다고 본다.
정신분석에서 공짜는 없다. 남들이 보기에 환자가 반드시 손해만 보는 행위를 한다고 말할 수 없다는 뜻이다. 꾀병을 일삼는 내담자 무의식을 분석해 보면 그곳에는 분명 얻어가는 쾌락이 있고 그것이 바로 그 사람 증상이다. 자기 처벌을 통해서 어떤 쾌감을 얻으려는 것을 말하는 거 아니냐고 단순하게 반론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그렇게 따지면 자기 처벌이라는 마이너스 혜택을 누린다는 단순한 결론만 내리고는 내담자 무의식 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한다.
우선 DSM을 살펴보면 꾀병이라고 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다른 정신질환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경우로 (망상장애 따위):
증상을 조작하는 경우: 신체·심리 증상을 허위로 꾸며내거나 실제로 만들어냄;
환자 역할 추구: 자신을 아프거나 장애가 있는 사람으로 타인에게 보이려 함;
외부 보상 없음: 경제·법률상 이득이 없는 상태에서도 기만행위가 지속됨.
DSM에서 임상 시에 고려하는 사항으로 이런 장애는 의료 자원 낭비랑 불필요한 치료를 유발할 수 있으며 환자와 의료진 사이에 신뢰 손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치료 접근 방법으로는 단순히 거짓을 밝히는 것보다, 그 안에 욕구랑 결핍을 이해하고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즉 약물로는 치료할 수 없는 분야라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대화만으로 내담자를 다루는 정신분석 관점에서 꾀병을 살펴보자. 우리는 인위성 장애(Factitious Disorder)를 단순히 ‘거짓 증상’ 문제가 아니라, 주체가 언어 구조 속에서 환자 역할을 하며 자기 위치를 확보하려는 시도로 본다. 단순하게 외부 보상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무의식 차원에서 ‘환자’라는 기표를 얻어 자기 존재를 구성하려는 현상이다.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고 라깡 쌤은 보았으며 다음으로 증상은 기호처럼 나타난다고 했다. 풀어쓰면 증상은 무의식이 보내는 암호 메시지로 단순한 통증이나 우연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의식은 구조이니 전달하려는 메시지도 ‘기호/기표처럼’ 표현한다.
무의식은 직접 말로 그 안에 억압된 욕망, 갈등, 감정들을 표현하지 못하기에 ‘증상’이라는 방식으로 돌려서 드러낸다는 말이다.
증상은 [의미를 가진 행동]이라 했다. 이렇게 의미 있는 신호를 분석하는 과정이 정신분석 임상이기에 결국 우리는 증상을 없애야 할 문제로 보지 않고, 해석해야 할 [기호]로 여긴다. 그러므로 증상은 나에게 어떤 말 못 한 진실이 있음을 무의식이 알려주는 신호다. 가령, 말로는 '괜찮다'라고 하면서 두통을 느끼거나 호흡이 막히는 경우 말이다. 이런 증상이 신체 질환이 아니라 무의식이 주는 신호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반복되는가 살펴야 한다. 같은 증상이 비슷한 조건에서 같은 방식으로 발현되면 무의식이 보내는 기호라 보인다.
다시, 무의식은 직접 말하지 못하니까 상징, 은유, 행동, 신체감각 같은 방식을 사용하는데 우리는 이런 모든 것을 퉁쳐서 [기호]라고 한다. 불편한 상황에서 말하는데 헛 나오는 경우나 죽도록 하기 싫은 일을 하면 꼭 반복해서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가 신호라는 말이다. 그 안에는 어떤 저항을 무의식이 표현하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결론으로 이런 증상을 해석하는 것이 정신분석에서 가장 주요한 일이 된다. 분석가들은 증상을 없애는 것보다, 그 증상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이해하려 한다. 증상이 해석되고 무의식이 말하려는 갈등이 분석되면 증상은 더 이상 그 역할을 할 필요가 없어져 자연스럽게 약해지거나 사라진다. 효과는 치료랑 비슷하겠지만 우리는 증상이 가시는 것을 딱히 치료라고는 하지 않는다. 왜냐면 그 증상이 사라졌을 뿐 무의식은 그대로 존재하며 그 안에 저장된 다른 억압은 앞으로 다른 형태로 다른 증상으로 나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사연이 이러하니 정신분석에서는
증상이 소멸되었다 한들 기뻐할 일도 슬퍼할 일도 아니다.
다시 꾀병으로 돌아가자. 꾀병을 통해 환자는 무의식 구조 안에 있는 욕망을 드러내는 것으로 단순히 관심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환자’라는 기표를 얻어 그 위치에 도달하는 것으로 향락을 경험한다. 이는 어찌 보면 쾌락을 넘어선 향락으로 스스로를 파괴하면서 까지 과잉된 만족을 얻는 행위이다.
라깡 쌤은 나아가 우리는 항상 ‘타자의 욕망’ 속에서 자신을 규정한다고 했는데 꾀병자는 의료진이라는 ‘큰 타자’ 시선 앞에서 환자 역할을 수행하며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것일 수도 있다. 또 증상은 메시지라 했다. 다시 말해 꾀병 증상은 단순한 거짓이 아니라, 무의식이 언어를 통해 발화하는 방식으로 “나는 환자다”라는 메시지를 세상에 보내는 것이 그 사람이 원하는 자체이다.
인위 장애랑 꾀병을 혼용해서 썼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외부 보상이 없는데도 이 짓을 하는 것을 인위 장애라고 주로 칭하고 꾀병은 어떤 꼼수를 내포하니 구분하자면 꾀병은 ‘의식한 계산’에 가깝고, 인위 장애는 ‘무의식에 숨은 욕망 구조’에 뿌리를 둔다고 하겠으나 반복해서 말씀드리자면 정신분석 입장에서는 모두 무의식에서 발현한 것으로 둘 다 보상을 기반으로 한다. 제삼자가 보기에 보상이 아닌 것처럼 보일 뿐이다.
지루한 이론 이야기는 그만하고 지금부터 우리 꾀병 공주 연수를 살펴보자. 10년째 공황 장애이고 우울증에 시달린다는 연수는 과연 이런 꾀병 증상을 통해 어떤 무의식 욕망을 표현하는 것일까? 이렇게 환자 역할을 하면서 그가 얻을 보상은 무엇일까? 연수가 매일 내뱉는 그 뻔하고 단순한 거짓말은 타자 시선을 속에서 어떤 식으로 자기 존재를 확보하려는 행위이며 그 무의식에는 어떤 구조가 똬리 틀고 있을까?
퇴근하고 여지없이 연수에게 상담을 요청하는 카톡이 왔다.
ㅎㅇ (줄임말을 별로 안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딴 인사가 정말 화가 날 정도로 짜증이 난다)
안녕하세요?
네
저녁 시간에 어쩐 일로.. 또 무슨 사건이 있었나요?
고ㅏ거 썸탄 남자한테 여자가먼저 연락하면 오해하나요?
많은 경우 남자들은 그럴것 같은데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인데 그 일때문에 우울하세요?
근데 안부차연락해도되지않나요?
단순히 그 이유 때문이라면 오해할 것 같아요.
ㄱㅒ도 안부차연락햇은데요* 자기도 저 아픈거걱정도되고 머 잘지내는지궁금해서연락햇다는뎅 그것도오해할만한거아닌거요? 근데오해히지말래요
아, 남성분이 먼저 연락을 했군요. 답변 차원에서라면 이상한지 않겠어요. 그것보다 연수 씨는 그분에게 어떤 마음이 있기에 연락하고 싶은 거예요?
근데 여자가 먼저연락해도되는거지않아요? 서로잠자리까지햇는데 음 저 그 남자보고싶어서요
아, 깊은 관계를 이미 경험한 남친이군요. 왜 더 깊은 연인으로 발전하지 못했을까요?
장거리 성격차 등등 다시연락왓을때 제가 머라햇거든요
그럼 계속 만날 의지는 없군요?
그냥 생각나서연락하는그렁거잇자나요 그냥조은거요 사귈맘은없어도 조앗던추억이잇고그러니까
상대가 멀리 있다면 부담 덜 가지셔도 되지 않을까요? 그냥하고픈대로 해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첫인사부터 내 기분을 상하게 한 탓인지 오늘 피곤한 탓인지 나도 될 대로 되란 식으로, 상담사로서 본분을 잠시 잊었다-_-;)
사실 제가 그때 (상대 남성이) 막 대쉬햇을때는 좀 덜 조아햇거든요 근데 보고싶긴해요
하지만 장거리라 볼 수 없잖아요.
근데 ㄱㅒ는 그때 사귈맘으로연락한건아니다 이라길래 제가기분이나빳거든요 제 안부는 다정하게물어보면서
남자분은 마음이 없군요. 두 분은 어떻게 처음 알게 되고 잠자리까지 가는 사이가 되었나요? 마음이없는데 왜 연락하는 거예요? (연속해서 묻긴 했는데 정확한 답이 순서대로 올 거라는 기대는 애초에 없긴 했다. 어차피 자기 꼴리는 대로 지껄이는 스타일이라..)
지가 먼저 조아한다하고 그래놓고 헤어지고디시연락와서 사귈맘은없다 그냥 니 걱정됫다 이게머죠?
그 남자는 자기 감정에 충실하게 말하는 것처럼 보여요. 어느날 연수 씨가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 말하고 행여 연수 씨가가 다가오면 사귀는 것은 아니라고 상처주는 말도 하는 식으로 말이죠.
아니 자기가 사귀자해서 만난거에요 제가 헤어지자해서 헤어졋고
아, 그쪽에서 먼저 사귀자고 했군요.
다시ㅠ헤어지고연락왓고 그냥 그남자 생각이나서 함보고싶은거죠 아님 말고ㅎㅎ?
그 남자가 어떤 때 생각이 주로 나는가요?
ㅈㅇ 할때요~ (자위를 말하는 것 같다. 대충 알아 들었기에 확인하지 않았다.)
왜 그때 생각이 나죠?
제가 개랑할때 진짜 열심히 햇거덩요. 원하는데 다 빠라주고 비벼주고 그랫는데 그러다가 벼락이 내렷어요.
벼락이요? (그건 니가 날벼락 맞을 년이라 그렇다 말하고는 카톡을 접고 싶었다.)
ㅅㄱㄱ 할 때 두통 가끔 안 느껴요? (ㅅㄱㄱ 이건 또 먼가 한참을 생각했는데 문맥상 성관계를 뜻하는 것 같다. 얘는 나한테 평소 자지보지 다하다가도 누가 카톡 검열이라도 할 것처럼 이런다.)
저는 별로 두통은..
벼락같이 뭔가 강한 통증이 몸을 뚤코들어오는 그런거 몰라요?
몰라요.
음..
연수는 절정을 느끼는 순간에 극심한 두통을 느낀다고 했는데 이것 때문에 한동안 섹스를 멀리했다. MRI나 CT 등을 촬영하고 전문의를 만나도 딱히 질환 따위는 없어 보인다고 진단을 받았으니 역시 이것도 심리에서 발현된 것으로 보였다.
심심하면 자위질을 하는 연수인데 두통 원인을 찾기 위해서 이번에는 실험 목적으로 해보았단다. 그리고 자위를 할 때는 그 두통이 없다는 것으로 보아 심리가 원인이라 더욱 확신했다. 섹스랑 다르게 자위는 상대가 없다 보니 비교군으로 아주 좋은 실험인 셈이다. 이런 것은 알아서 잘한다. 즉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는 스트레스나 상대가 있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불안이 두통 원인이 아닐까 싶었다.
연수는 그래서 자기에게 두통을 주지 않고 섹스를 해주는 남자라면 결혼도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하며 은근히 날 테스트 드라이브하려는 눈길을 주었지만 이것 아니라도 호시탐탐 날 노리는 녀석이기에 이번에도 못 알아들은 척해버렸다.
성격이 이지경인 연수인데도 전 남친이 질척이는 데는 내가 볼 땐 이유가 뻔했다. 전화를 하면 세상없는 야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러다 동하면 영상을 켜고 마구 벌리면서 자위하는 모습을 보이니 전 남자 친구이라는 녀석도 그 재미에 한 번씩 건드리는 것 같았다.
연수는 절정 순간에 느끼는 통증을 계속해서 벼락이라고 했는데 그 벼락을 나는 일종에 꾀병이라고 생각했다. 무언가 연수 안에 있는 초자아가 연수를 괴롭히는 것으로 말이다. 아무리 부잣집 망나니 외동딸이더라도 그 위에 할아버지 할머니는 계셔서 여자는 몸 단속 잘하고, 정숙해야지! 이런 유교시대 조언을 가끔이라도 들으며 자랐을 것이고 그것이 싫고 미워서 무의식에 억압해 놓았지만 결국 오르가즘이라는 봉인해제 상황에서 쾌감이랑 함께 그것도 빠져나오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그 죄책감이 정신을 넘어 육체에 벼락같은 고통을 넣어주는 것이다.
감정이 촉발했지만 우리는 실제로 육신에서 고통을 느낄 수도 있다. 연수 같은 경우 그 벼락을 통해서 남자랑 뒹글고 난 이후에 초자아에게 호된 꾸지람을 받음으로써 다시 성녀가 된다는 의례를 진행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호통이 강할수록 깨끗하게 다시 세팅된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섹스가 황홀하고 오르가즘이 클수록 그 벼락도 커진다. 연수에게 벼락은 육체에서 느끼는 고통일 수는 있지만 무의식 속에서는 저 속죄합니다라는 말이 되기에 버리지 못한다.
연수에게 벼락 없이 섹스가 가능하려면 결혼을 해서 가책을 삭제하는 것이 답이 될 수도 있겠지만 벼락은 연수가 원하는 증상이며 초자아는 사라지지 않기에 그것도 잠시일 뿐이고 증상으로서 벼락은 철이 되면 소낙비가 오듯이 연수에게 기어이 돌아올 것이다.
추신 1
꾀병 임상 부분을 조금 더 다루려 하는데 생각나는 것이 없어서 우선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꾀병은 늘 관심 가지는 분야라서 나중에 조금 더 공부하고 깊게 다뤄보겠습니다.
추신 2
공황 장애는 약을 복용하면 치유가 되기에 10년씩 지속된다면 그것은 공황 장애보다는 다른 공포증일 것이라고 예전에 함께 공부하던 양지선 선생님에게 들은 기억이 납니다.
모두들 사랑하며,
오늘은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