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전일기 體典日記

제106회 전국체육대회 참전기

by DreamHunter

같이 운동하는 후배 JK가 10월에 부산에서 열리는 전국체전에 호주 대표 선수로 출전하기로 했단다.


술을 많이 먹어서 간이 부었나?


JK도 올해 마흔이 넘었는데 아무리 지가 소싯적에 유도 좀 했다고 지금 20대 실업팀 선수들이랑 싸운다는 말인가? 이게 얼마나 황당한 이야기냐면 중학교 때 농구 좀 했다고 40 넘은 아저씨가 갑자기 프로 농구 시합에 참전하겠다는 말이다.


문제는 이렇게 황당한 일이 행정상으론 가능은 하다. JK가 호주에 살기 때문이다.



전국 체전은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한인들을 위한 작은 올림픽이라고 생각하시면 된다. 즉 여기서 1등 하면 생기는 영광이랑 명예도 상당하다. 우선 그 선수는 협회나 자신이 소속한 팀에서 나오는 포상금이 있을 것이며 내년에 있을 연봉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나아가 이 결과로 국가대표가 되며 올림픽이나 세계 선수권 같은 선발전에 참전할 기회를 얻게 된다. 한마디로 운동선수에게는 1년 중 가장 중요한 농사이다.


운동을 업으로 하는 선수들이 사활을 걸고 싸우는 대회에 우리 같은 생활 체육인이 나갈 틈은 이제 없다. 100년 전 1회 대회 때는 생활 체육인, 전문 체육인 구분도 없었겠지만 지금은 이렇게 다르다. 물론 전국체전이 가지는 원래 취지는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체육 정신을 함양시키고 각 종목 보급을 목적으로 하니 생활 체육인들 참가를 환영하고 권장하기는 한다. 현실은 불가능하다 해도...


부산, 2025


전국 체전에는 해외 동포를 초청하여 외국에 나가 사는 한인들도 불러 모아 애국심을 높이고 함께 땀 흘리며 서로 배울 수 있는 것은 나누려는 취지도 있다. 예전에는 외국에 사는 교포들에게 배울 정보가 있었을지 몰라도 이런 정보화 시대에는 맞지 않는다. 다만 이제는 부국이 된 만큼 외국에 사는 한인들을 초대하여 축제 분위기를 내는 요소로 체육회는 우리를 초청해 주고 있다.


가끔 재외 동포들이 체전에서 메달을 획득하는 경우도 있지만 외국에 사는 우리 교포들은, 전문 선수가 많지 않다 보니 한국 선수들하고 수준차이가 너무 나서, 5개국 이상이 참가하는 종목이면 따로 우리들만 싸우는 리그를 체육회에서 만들어주는 식으로 변환되었다. 문제는 권투나 유도 같이 비인기 종목은 참가하려는 국가도 적어서 5개국을 채우지 못하니 이런 경우는 어쩔 수 없이 우리도 한국 선수들 대진표에 들어가서 싸워야 한다.


유도 같은 경우 재일교포 선수들은 단골로 참여하지만 그들 수준은 추성훈이나 안창림 같은 전문 선수이기에 무리가 없다. 그 외 다른 국가는 한국 선수랑 붙어서 이길 확률이 0에 수렴하니 참전을 하지 않는다. 승패는 둘 째치고 격투기 종목이라 다칠 확률만 높다. 이번 2025년 체전 유도 대회에는 미국에서 온 마크라는 아저씨 한 분하고 오랜만에 호주 선수가 참가해서 일본까지 계산해도 5개국 조항을 만족시키지 못해 결국 일반 대진표로 들어갔다.


회계사님도 JK랑 같이 출전하실래요?


선수당 15만 원짜리 패치


처음에는 장난이라고 생각했고 곧바로 황당하다 못해 기분이 나빴다. 나더러 부산 가서 죽으라는 이야기인가? 50을 바라보는 생활 체육 유도인더러 국가대표 선발전 성격을 띠는 시합에 나가 실업팀 20대 선수랑 싸우라고? 설마 죽기는 하겠냐만은 유도는 공중에서 떨어지는 충격으로 운영되기에 크게 다칠 것은 뻔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이렇게 불가능한 도전을 JK는 군말 없이 한다. 그럼 선배 된 나로서도 뭔가 해봐야 할 것 아닌가? 시합을 위해서 훈련 파트너도 필요한데 나도 출전하면 서로 마음으로 의지가 되는 것도 있지만 정상 훈련이 가능해진다. 내가 나가지 않으면 JK는 말 그대로 제대로 된 훈련도 잘하지 못하고 그냥 나가는 꼴이다.


음..

전국체전이라..


며칠을 고민하다 아내에게 말도 없이 나는 그 제안을 수락한다. 회계사인 내가 남들 그만두는 서른 중반에 유도를 알게 되어 지금은 사업으로 운영까지 하고 있기에 가능한 미친 짓이다. 내가 선수 등록을 한다고 하자 JK는 별 반응이 없다.


그러든지 말든지...


그리고 선수 등록을 위한 행정을 시작하여 협회에 서류를 보내고 부족한 것은 다시 준비하면서 점점 10월이 가까워졌다. 작년까지는 참가 선수들에게 비행기표 지원을 해준다고 했지만 올해부터는 예산 삭감을 이유로 7만 원이 주어졌다. 그것도 시합 마치고 살아서 돌아오면 준다고 했다. 도복에 부착할 패치를 한국에서 제작해 오는데만 15만 원이 들었고 비행기 표나 부산에서 지출해야 하는 기타 경비는 온전히 선수 몫이다.

노란색 호주 선수단복

대한 체육회에서는 작은 2인 1실 숙소랑 숙소에서 시합장까지 차비를 지원해 준다 했고 이런 우리를 딱하게 여긴 호주 체육회 선배님들 몇 분이 사비를 털어서 전달해 주셨는데 마치 이야기로만 듣던 만주에 혈혈단신 가야 하는 병사 마음이 들었다. 가서 시합 중에 크게 다치면 병원은 어디를 가야 하나; 나는 외국인이라 의료 보험 적용도 안될 텐데; 이런 생각도 들자 지금 내가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더구나 사무실이 바쁜 시즌이라 열흘 정도 생업을 멈추고 운영하는 사업체도 남에 손에 맡기고 가야 하니 준비하고 부탁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돈을 벌러 가는 것도 아니고 휴가로 가는 것도 아니며 어떻게 보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명예, 호주 교민을 대표해서 장열 하게 싸우겠다는 투지 하나로 진행하는 일이다. 선수 등록까지 마치자 기쁨이나 의욕이 더하기보다는 뭔가 심하게 잘못되어 간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너무 늦었다.


10월 16일 시드니 국제공항으로 JK랑 다른 임원분들 그리고 우리 꼬맹이를 포함한 가족이랑 함께 갔다. 우리 꼬맹이가 어려서 아내 혼자 아이를 보기 힘드니 이번 길에 같이 가기로 했고 간 김에 아내랑 아이는 좀 더 있다 오기로 했다. 이른 아침 공항에 도착하니 호주 선수단복을 입은 분들이 구석구석 모여서 뭔가 인원확인하고 종목 별로 선수들이 장비 챙기고 짐 점검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마치 나도 국가대표가 되어서 전용기를 타는 느낌이었다.


지옥행 버스

열한 시간을 날아서 고국에 도착하니 밤이었고 여기서 다시 부산으로 다섯 시간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데 공항에서 잠시라도 아들 보겠다고 늦은 시간에 부모님이 오셨다. 반가운 것도 잠시 인천 공항에서 선수단 다시 점검하며 이런저런 행정 절차를 마치고 부모님께는 아내랑 아이를 부탁하고 나는 바로 기념사진 촬영 후에 부산행 버스에 탔다. 열한 시간 여독이 풀리기도 전에 새벽 세시까지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고통은 이루 말로 할 수가 없었다.


홈경기가 선수들에게 얼마나 큰 이득인가 새삼 알게 되었고 버스 안에서는 '내가 무슨 영광을 바라고 여기를 왔냐'며 다들 죽는소리가 끙끙 들린다. 나는 너무 오래 앉은 덕에 욕창이 날 것 같아서 나머지 세 시간은 버스에 서서 졸며 갔다. 정말 시합도 전에 죽을 맛이었다.


숙소에 도착하니 우리 방 키를 누가 가져갔단다. JK는 어제 고국에 도착했기에 오늘 아침에 숙소에 와서 방 번호만 확인만 하고는 본가에서 오늘은 자겠다며 키를 어디 두었는데 호텔 직원이 잃어버리는 덕에 그걸 찾느라고 새벽 네시까지 왔다 갔다 난리 치느라 시간 또 버리고 네시쯤인가 겨우 숙소에 들어가 짐을 풀었다. 씻고 바로 누워서 잠들었는데 한참 잔 것 같아서 일어나니 다섯 시 반이다. 그 고생을 하고 겨우 한 시간 남짓 자고 눈이 떠졌는데 시합이 코 앞이라는 긴장감 때문인지 새로운 도시에 왔다는 흥분감 때문인지 좀처럼 다시 잠들지 못한다.


고마운 친구

억지로 조금 더 누워있다가 유도팀은 같이 모여서 식사하자는 문자를 보고 17층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조식 뷔페 갔는데 나름 깔끔하고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맑은 국물 국수랑 야채 과일을 담고 단백질 위주로 선택했다.


아침을 먹고 바로 나갈 차비를 한다. 내일이 우리 시합이고 오늘은 대학부 시합인데 일반부는 계체를 위해 오후까지 가야 했다. 세 시쯤 준비된 퍼레이드 행사랑 시간이 물려서 유도팀은 아쉽게도 올림픽처럼 선수단 퍼레이드할 기회를 놓쳤다. 유도 시합장에 도착하니 10월이라서 썰렁한 것 말고도 무언가 싸늘한 긴장감이 돌았다.


대학 선수들이 각자 목표를 가지고 자웅을 겨루는데 처음에 멋지다가 점점 사태 심각성을 깨닫게 된다. 대학 선수들 역시 이 시합 결과를 토대로 앞으로 선수 생활을 결정하게 된다. 실업팀에 가는 티켓도 여기서 받게 될 것이며 잘만하면 국가대표 팀에 발탁될 기회도 있을 테니 어떤 기술에 걸려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팔이 부러지더라도 참는다. 5분에 한 번씩 들것이 들어와 매트에 쓰러진 선수들을 싣고 나간다. 뼈가 부러지도라도 4분을 참겠다는 전의를 불태우는 모습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해외 동포들에게는 축제이면 새로운 경험일 수 있는 대화라지만 지금 이 선수들에게는 얼마나 절박한 시합인가! 내일 시합에 여차하면 꾀병을 부려 기권하려는 작전도 가지고 있던 나는 마음을 돌려 다치더라도 끝까지 시합에 임하기로 한다. 날 지켜보는 많은 관계자들, 가족들 그리고 무엇보다 어딘가 있다는 신神처럼 날 응시하는 눈길 때문이다. 그것이 초자아이던 내가 만든 환영이던 상관없다.


그 눈길 앞에 떳떳하고 싶었다.


매트에 쓰러져 있는 아빠를 응원하는 딸


서울에서 친구가 이런 날 응원해 주겠다고 왔다. 금요일 저녁에 퇴근하고 바로 내려와 하루 자고 토요일 시합부터 우리 일정을 쫓아다닌다는데 너무 고마웠다. 일에 찌들어 토끼 눈이 된 친구를 보자 울컥했다. 나라면 이 친구를 위해서 금요일 저녁 퇴근하고 부산으로 올 수 있을까? 아니. 나는 분명히 그럴 수 없는 이유를 금방 찾아낼 것이다. 아무리 멀리서 오랜만에 친구가 온다고 해도 나는 못 간다.


고맙네

협회 측에 부탁해서 남는 방을 찾아보겠다 했지만 부담 주기 싫다고 해서 나는 녀석을 위해 근처 여관을 찾아 주었다. 우리 숙소가 있는 부전 시장 반대편에 있는 '범죄도시'에 나올 법한 여관바리인데 나름 안은 깨끗했다. 피곤해서 잠시 누워서 이야기하자고 해서 오랜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늦어서 나도 그냥 그 방에서 자기로 한다.


사실 내 룸메이트인 JK 이 자식이 너무 코를 골아서 돌아가봐야 못 잘 것 같아, 차라리 친구랑 여기서 자기로 했다. 남자랑 호텔방에서 둘이 자는 것은 태어나서 이번이 두 번째인데 첫 번째도 이 친구였다. 그때는 와이프랑 싸우고 가출했다고 해서 마침 한국에 있던 내가 같이 하루 보냈는데 그게 고마워서 오늘 왔나?


사사로운 감정은 뒤로하고 나는 내일 시합을 준비해야 했다. 우선 계체를 하러 갔는데 태어나서 유도 선수가 그렇게 많이 모인 것은 처음 보았다. 더구나 전부 현역 실업팀 선수들인데 어려서부터 같이 운동하고 시합장에서 만나던 이들이니 그 많은 인원이 대부분 아는 사이로 형, 동생 하며 '내일 시합 잘해, 너 이번에 나오는구나, 다음에 밥 먹자, 형 잘 지냈어요?' 반가운 와중에 JK랑 나만 엄마 잃은 아이처럼 구석에서 조용히 손을 꼭 잡고 있는다. 내 상상이지만 그들 눈 길은 마치 '쟤 둘 뭐야?' 하는 것 같아서 서울대학 동문회에 서울대학 나오지 않는 이가 참석해 무척이나 어색한 느낌이라면 비교가 될까 싶었다.


내 상대 김민수 선수


나는 그때부터 내 상대인 부산 시청 김민수 선수를 찾기 시작했다. 시합 전에 꼭 할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막무가내로 부산 시청 팀 보셨냐고 지나가는 선수 몇에게 물었지만 허탕을 쳤고 결국 시합 당일 아침에 만나게 된다.


대학부 시합을 어느 정도 보고 계체까지 끝나자 선수단 만찬이 기다린다며 부산 어느 식당으로 오라고 했다. 중간에 시간이 좀 비어서 뭘 할까 하는데 문득 미국에서 왔다는 마크라는 아저씨가 떠올랐다. 호주는 두 명이라 그나마 좀 나은데 마크는 혼자서 얼마나 힘들까 싶었다. 81 체급이라고 기억하는데 미국 대표는 한 명이라 찾기 쉬울 거라 생각해서 운영자석에 계신 관계자 분에게 여쭤 보았으나 의외에 말을 듣는다.


사연 많은 도복

아, 마크 선수 오전에 만났어요.

오, 정말요? 혹시 연락처나 찾아볼 방법이 있을까요?

그것보다. 마크 선수 패치 부착을 규정에 맞추지 못해서 지금 옷 수선하러 갔어요. 호주 팀은 어떻게 했나요?


이게 뭔 소리 인가 했더니 가슴이랑 등에 부착하는 패치 규정이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준비한 도복을 보여 드리니 여기저기 잘못된 부분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고 도복이 왜 낡았냐며 규정상 깨끗한 새도복으로 출전해야 한다고 하셨다. 멀리서 오신 손님이라 협회 측에서도 이 정도는 양해를 줄 것 같은데 패치 규정은 맞춰달라고 했다.


시간을 보니 다섯 시 경이다. 지금 빨리 부산에서 옷 수선하는 곳을 찾아야 했다. 우선 숙소로 돌아와 부전 시장 아래 지하상가를 달렸다. 옷 가게가 몇 곳 보였는데 [옷수선]이라는 작은 글씨를 보고 들어가니 다섯 시 40분이다. 미안하지만 여섯 시에 닫아야 해서 이거 지금 못한다고 했다. JK는 능숙한 부산 사투리로 '에이 쫌 해주십숑~' 사정을 하는데 선수 두 명 흰 도복 청도복 네 벌은 무리라고 생각한 나는 다른 곳을 찾자고 했다.


행님! 제가 어렵게 겨우 설득해서 되는 판에 왜 껴들어서 깨는겨! 도움은 못줄 망정 시팔.


화가 머리끝까지 난 JK는 욕을 욕을 하면서 도복을 집어던지고 꼬장을 부린다. 보자 하니 지를 돕겠다는 마음에서 출발해 부산까지 온 선배에게, 이 새끼가 쳐 돌았나 싶어서 욕이 갑상선까지 올라왔지만 꾹 참았다. 늦게까지 하는 곳이 있을 터이니 더 늦기 전에 찾자고 타이르며 지하상가를 달리는데 바로 JK가 부른다. "여기 있네예!"


마침 늦게까지 운영하시는 가게를 찾아서 다행히 우리는 수선을 마치고 옷 수선하는 동안 인심 좋은 부산 아주머님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딸은 미국 회계사이고 아들은 용접 일을 한다니 마침 용접 일을 하는 JK랑도 회계사인 나랑도 인연이라고 한참 이야기하고 호주에서 싸 온 과자 선물로 드리자, 내일 시합 잘하라고 옷 수선 비용은 극구 사양하신다.


어머니, 그래도 저희가 성의 표시는 해야죠. 그냥은 못 갑니다.

에휴, 이걸 그래 얼마를 받누?


만원만 주고 가라고 하셔서 그렇게 했지만 영 맘이 고맙고 죄송했다. 멀리서 오셨는데 부산 구경 잘하고 시합에서 꼭 이기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마음이 무거웠다. 이기기는커녕 크게 다치거나 10초 안에 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면부지 아주머님도 우릴 응원하는데 사소한 일로 티격 거린 우리는 서로 머쓱해서 아무 말 없이 팔짱을 끼고 무거운 도복을 싸매고 숙소로 돌아와 내일 시합을 준비했다. JK는 호주에서 나랑 시합 준비 훈련을 하다가 갈비뼈에 실금이 간 상태라서 시합 전날까지 병원에서 X-ray 찍고 약을 먹는 중인데 의사는 시합을 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노란색을 좋아하는 김지수 선수

시합 날 아침 우리는 경기장에 모여 몸을 풀면서 연습하는 수많은 선수들 속으로 들어갔다. TV에서만 보던 스타급 선수들이랑 내가 평소에 관심 있던 선수들을 실물로 보게 되어서 무척이나 영광스러웠다. 그중에 가장 기억나는 선수는 재일 교포 출신으로 허미미보다 일찍 귀화했으나 국제 대회 성적이 그만큼은 좋지 못해 늘 아쉬웠던 김지수 선수였다.


같은 재일교포 출신 추성훈 선수처럼 노란색을 좋아해서 자주 머리를 노랗게 염색하는 선수인데 Ground 기술도 좋고 기본기도 탄탄해 보여서 예전부터 응원했다. 그날도 역시 금발에 노란색 테두리 친 아디다스 청색 도복을 입고 익히 기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 기뻤다. 축구 좋아하는 사람이 손흥민 본 거랑 비슷한 느낌인데 오늘은 너무 중요한 시합날이고 나도 같은 선수로 출전한 상황에서 쓸데없는 팬질은 하고 싶지 않아서 한 번 보고 지나갔다.


그것보다 내 목표는 명확했다. 부산 시청팀 김민수 선수를 찾아야 했다. 시합 전에 만나서 내가 누구인지 그에게 각인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호주에서 널 이기려 온 자객이 아니라는 말을 꼭 해야 했다. 그리고 부산 시청 패치가 있는 여자 선수 하나를 만난다.


김민수 선수 혹시 어디 있는지 아세요?

(이 아저씨 여기를 어떻게 들어왔냐는 눈빛으로) 아, 민수요? 아침에 같이 왔는데 어디서 몸 풀고 있을 거예요.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계속 매트를 돌면서 김선수를 찾는데 구석에서 열심히 몸을 푸는 부산시청 마크에 흰 도복을 입은 김민수를 발견한다.


김선수, 반가워요!

아.. 에.. 누구..?

저 호주 대표예요.

(매우 어색한 표정으로) 아.. 안녕하세요?


긴 이야기는 하지 못했지만 시합 전에 대기실에서 다시 만났고 부산 시청 코치랑도 같이 이야기를 더 했다. 내가 서른 중반에 유도를 시작해서 여기까지 왔다니 굉장히 놀라는 눈치였다. 옆에 있는 코치 보다도 늦은 나이에 유도를 시작했고 김선수 아버지 하고 다섯 살 차이 난다는 것도 알자 나에게 굉장히 예의를 갖추는 모습에 고마웠다.


아, 그럼 다치시면 안 되겠네요.


승부 조작 시비가 생길까 봐 김선수를 위해서 준비해 온 호주 과자는 시합 이후에 주기로 하고 나는 매트 위로 올라간다.



이것으로 내 10년 유도 인생에 가장 강력한 상대를 가장 위대한 장소에서 나는 만난다.




모두들 사랑하며

시드니에서





유도 선수로서 마지막 길



추신 1

쓴다 쓴다 하던 전국체전 이야기 이제 올려 드립니다.


추신 2

찍은 사진이 많은데 몇 개만 더 아래 올립니다. 국가대표 출신 미녀 김성연 선수도 우연하게 만나 사진을 부탁드렸는데요. 제가 정신이 없어서 "정선수 팬입니다"라고 해서 그때는 몰랐는데 무척이나 당황하셨을 거라 여기서 죄송한 말씀드리고요. 마음속으로 정부경 선수를 그때 무슨 일로 생각하다가 나온 실수이니 너그럽게 이해 부탁드립니다. 물론 이 글을 보실 일은 없으시겠지만요.



추신 3

우리 시합 응원 온다고 멀리서 와준 후배가 만들어준 짧은 영상 아래 올립니다. 고마원 정관장!


https://youtube.com/shorts/2FhLrQNV3eo?si=Io_5eLHtzlWqqh5W



쿠키 -

그래서 시합은 어떻게 되었냐고요? JK랑 저는 시합 전에 내기를 합니다. 누가 오래 버티는지 점심 내기 하자! 30초가량을 버틴 저는 10초를 채우지 못한 JK를 가볍게 이깁니다. JK는 상대 선수를 미리 만나서 사정을 전달하지 못한 것 때문으로 패배 원인을 분석해 봅니다.


"야, 가서 미리 약 좀 쳐!"

"행님, 갔는데예. 무서워서 눈만 보고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왔십니더.. ㅜ"


시합 후 김민수 선수에게는 따로 가서 좋은 시합 경험 주어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나이 많은 아저씨 다치지 않게 하려고 애써준 마음에 고마움 표시라고 과자 선물했고요. 언젠가 호주에 놀러 올 일이 있으면 꼭 연락 주고 인연이 더 닿으면 함께 우리 도장에서 운동 하자고 명함도 남겼습니다. 고맙다고 악수하는 손이 무쇠 같아서 새삼 놀랐고요. 유도에 관심 있으신 작가님들은 아래 시합 장면 보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만


https://youtu.be/X2GPHT6LIdQ?si=2AHLjC3cuwHYV9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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