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금지된 것을 욕망하는가?
요즘 앱스타인 file이라고 해서 온 세상이 들썩 거린다. 언론을 통해서 매일 새롭게 공개되거나 이미 공개된 자료에서 찾아내는 사실들은 가히 오징어 게임을 능가하는 충격이다.
다들 아시지만 미성년자 성추행이 골자인데 세세하게 살펴보면 온갖 성도착이 난무했던 곳으로 결국 살인도 불사하는, 돌이킬 수 없는 범죄자들 소굴이 발각되는 과정을 우리는 실시간 뉴스로 지켜보고 있다.
진짜 문제는 이런 범죄 행각들이 현실에서 벌어진 사실이며 그 범죄자들은 지금까지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다는 정치인 기업인 과학자 교수 따위라 오징에 게임이랑 비교가 힘들 지경이다. 드라마에서는 가면에 가려져 나온 VIP들이 누구인지 말하지 않는다. 황동혁 감독은 관객들이 구미에 맞게 상상력을 동원하도록 비워 두었지만 관객 누구도 그 가면뒤에 빌 게이츠나, 오바마, 촘스키를 넣지 않았다.
정신분석에 따르면 우리는 사회 규범, 즉 언어를 배우기 위해 욕망을 [억압]을 받는데 문제는 [삭제]가 아니기에 그렇게 억압된 욕망은 무의식 속에 남게 된다. 억압은 금지라고 돌려서 표현할 수도 있겠다. 신기한 현상은 여기서 벌어진다. 별 관심 없던 대상도 금지를 당하는 순간 내 관심을 사게 되는데, 모든 금지가 매력을 주지는 않고 그중에 일부만 내 기질과 맞아 떨어져 무의식을 자극하는데, 무의식 안에 억압된 기억이 의식으로 기어 나오게 되면 그때부터는 특별한 대상이 되고 만다. 그렇게 되면
나는 금지된 그 대상을 욕망하게 되는 운명에 빠진다.
이렇게 보면 금지는 우리 욕망을 삭제하는 것이 아니고 숙이고 있던 욕망에 힘을 넣어주는 행위이니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금지할 때 조심해야 한다. 자칫 당신이 내리는 지금 금지령이 그 아이 운명을 결정할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이 논의를 발전시켜 보면 우리 욕망은 금지 때문에 생긴다고도 하겠다. 틀린 말이다. 욕망이란 이미 존재하여 내가 모르는 무의식에 선행했지만, 우선은 넘어가자. 그리고 우리가 생물로서 필요한 [욕구]도 부족하면 결핍을 낳지만 문명이주는 금지는 강력한 욕망을 낳는다고 표현해 보자.
평범한 주방 서랍이지만 열지 못하게 하면 아기에겐 보물 상자가 되어 버리고 그 상자를 열지 못하는 순간부터 아이는 혹독한 결핍을 느낀다. 그리고 그 상자를 열고 싶은 욕망을 가지게 되는데 다시 말씀드리지만 욕망은 금지보다 먼저 존재했기에 이것은 잘못된 흐름이다. 다만 오늘 내가 드릴 기막힌 섹스 사연을 끼워 맞추려니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편해서 계속 틀린 순서를 인용해 보겠다.
반대로 금지되지 않는다면 그 대상은 그저 단순한 [필요]로 격하된다. 언제든 섹스할 수 있는 아내는 그저 필요한 사람정도겠지만 절대 만지지 못할 여배우는 내 욕망 대상이 되고 마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듯 금지는 그 대상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가치가 부여되기 때문이다. 내가 우연히 침대에서 벗겨 먹었던 계절학기 여학생은 10년 전에 오디션 프로에 나왔던 가수였다. 물론 젖가슴에 가수라고 쓰인 것도 아니고 나도 모든 TV 출연자를 다 기억하지 못하니 전혀 모르고 먹었다. 그리고 잊힐 뻔했으나 다른 학생들이 우연하게 걔가 연예인 출신이어서 강의실에서 친해지기 힘들다고 욕할 때 알게 된 것이다.
젊은 남학생들은 다가갈 수 없는 연예인 학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나는 다시 그 여학생을 침대로 불러들였다. 일반 범인들에게 금지된 여자라는 새로운 가치가 그 아이에게 부여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존나 웃기는 이야기다. 같은 여자인데 금지되는 순간 그 여자는 금테를 두른 여신이 된다. 흔한 몸뚱이가 아닌 새로운 [상징] 나아가 판타지 속 성녀를 먹고 싶은 욕망이 생겨버렸다.
결국 욕망이란 금지가 만들어낸 상징이다 (틀린 말이지만 그냥 가자).
거칠게 말해 금지는 욕망 구조를 만들 수도 있다. 우리는 사회나 법 부모 등 타자가 정한 욕망을 욕망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섹시하다고 말하는 여성 혹은 반대로 저급하다고 혀를차며 금지하려는 여자에게 우리는 욕정을 느낀다. TV에서는 이수만 선생님이나 박진영 PD가 섹시하다고 규정한 아이돌만 출연할 수 있으며 우리는 그들에게만 열광해야 한다. 우리가 가졌다는 욕망이라는 것은 이처럼 타인(e.g. 이수만)이 정한 욕망 판본을 그대로 가져다가 쓰는 행위일 뿐이다. 이처럼 지금까지 본능이라고 믿던 성욕도 사실은 아버지, 대타자가 정해 놓은 규정을 따르는 행위일 뿐 내 고유한 선택이 아니다.
다시 가수 학생 이야기로 돌아가서, 나를 지도 교수로 흠모했던 그 여학생을 다시 침대로 불러들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나에게 모든 것을 완전하게 허용한 상태에서 다시 그 학생 알몸을 훑고 나니 그 가수는 더 이상 내 욕망이 아니게 되었다. 욕망이 욕망으로 자리를 매김 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그 아이 몸에 사정하는 순간 깨달았다.
1. 거리
2. 금지
3. 결핍
내 침대에서 날 기다리는 그 아이는 더 이상 위 세 가지 사항을 유지하지 못했다. 근거리에서 모든 내 체위랑 변태 행위를 받아내는 그 모습은 첫 섹스보다 못한 즐거움이었다. 첫날은 그저 예쁘장한 여자라서 즐겼다지만 두 번째라는 [익숙함]이라는 기표는 [연예인]이라는 기표를 능지처참 했다. 뭔가 부족함이 없는 만족감은 늘 내 판타지를 오염시키고 망가뜨렸다.
그 학생이 정신분석을 공부했더란 내 두 번째 콜에 응하면 안 되었다. 만약 그 아이가 끊임없이 나를 거절했다면 나는 쾌락 소모품으로 여자 몸뚱이가 아니고 금테 두른 아련한 대상으로 영원히 욕망했을 것이다. 내가 미친놈이라서 그렇다기보다는 우리 무의식 구조가 그렇다. 이러니 만약 누군가를 영원히 사랑하고 싶다면 당신은 그 대상에게 결핍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지 욕망이 충족되지 않기에 영원하다. 우리 욕망은 충족되는 순간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런 욕망이 없거나 욕망하기를 멈춘 사람을 우리는 우울증자라고 부르느데 그들은 채우고 싶은 욕망이 없다는 것이 주요한 증상이겠다. 이 세상은 고요하게 채움을 유지하는 평온 상태가 병자이고 우리처럼 계속해서 뭐든, 그게 돈이던 섹스던 뭐던 채우려고 미쳐 날뛰는 인간이 정상이 된다. 나아가 단계가 지나치면 부지런한 학생이며 열정이 넘치는 사업가라고 평가도 받는다.
잘 보면 대부분 인간은 성공하고 나서 망가진다. 성공은 허탈하다는 설교를 하려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처음부터 원한 것은 특정 대상이 아니고 욕망하는 [과정]인가 싶다. 언어를 배우면서 억압된 것이 근친이라고 하지만 그것도 정확하게 증명은 힘드니 대략 [대상a]라고 치환해 보자.
우리는 그 대상a가 뭔지 모른다. 왜냐면 그것은 언어를 배우기 전에 존재했던 것이라서 지금 언어로는 표현이 불가하고 기억 저편에 넣은 것이라서 꺼내기도 힘들다. 다만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만 그 빈자리를 통해서 알뿐인데 성공이 그 공백을 메워줄 것이라고 엄마에게 학교에서 사회에서 줄기차게 들어와 문신 되었을 뿐이지 유아기 시절 내가 명상하고 판단해서 정한 목표가 아니다.
서울 대학 입학이, 의사 면허가 바로 내가 찾던 대상a라고 우리는 배웠을 뿐이다.
하지만 내 주변 서울대 출신들이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죽어라고 일에 찌든 의사 친구도 난봉질하고 사는 삼류 교수인 나를 부러워한다. 그들을 보면 내가 이루지 못한 성공을 가졌지만 막상 근본 결핍이 주는 고통에는 나보다 더 혹독하게 시달리고 있다.
어쩌면 그 차이가 지금 그들이랑 내 차이를 낳았다. 그들은 나보다 더 강력하게 부족함을 느낀다. 그 갈급이 주는 에너지가 그들을 잠 못 들고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고 멈추지 않게 채근한다. 오히려 그들은 그 욕망을 멈추는 순간 생동감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그 공허가 주는 공포는 크기에 그들은 돈을 벌기만 할 뿐 계속 쌓기만 하며 전진 또 전진한다. 내가 그들이랑 다른 점은 나는 그 중간에서 멈추는 용기를 발휘했고 작은 성공 이후에 오는 상실감을 다른 것들로 (주로 섹스) 잘 해결해 나갔다는 것이다.
성공이라는 멈춤을 나는 공허로 바꾸지 않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 성공한 사람들하고 차이점이겠다.
우리는 잃어버린 대상a를 모른다고 했으니 결국 환상 속에서만 행복할 수가 있다. 그 환상은 늘 눈앞에서 변하는 것이며 논리도 없고 개념도 도덕성도 없다. 자칫 세상이 주는 성공은 이런 환상을 파괴해 버리기에 성공한 사람들은 크게 세 가지 궤적을 보인다.
1. 더 큰 목표를 세워 욕망 엔진을 다시 켠다;
2. 갑자기 우울해진다;
3. 완전 딴짓을 시작한다 (새로운 성도착 시도 등).
지금 내가 말씀드리는 것은 명언집에 나오는 사례가 아니라 정신분석 측면에서 드리는 이야기이오니 그 끝을 아름답게 포장하지도 않겠다. 우리가 느끼는 공허함이나 결핍이 가진 본질을 사회가 설정한 [성공]이 채우지 못하기 때문이니, 의사나 판사 고객 중에 변태가 더 많다고 투덜거리던 나가요 후배에게 성공이 주는 폐해이니, 성공 못한 우리가 이해해야 한다고 정신분석 관점에서 위로해 주었다.
이렇듯 성공은 우리 판타지를 붕괴하니 결핍은 커지고 공함은 깊어간다.
지난달에 시드니 성공한 청년들 모임에 초대를 받았다. 나름 자기 분야에서 유명한 영포티들을 모으는 행사인데 심사 기준은 모르지만 뽑혔으니 기분 좋게 나갔다. 안 나갈 이유도 딱히 없었다. 아버지 빽으로 얻게 된 한직 교수 자리를 이럴 때 잘 써먹는다. 호주 박사 학위를 가진 한인 교수라는 타이틀이 세상이 보기에는 성공인가 보다.
싸구려 호텔 로비에서 그럴듯하게 차려입은 사람들 50명 정도가 모여서 서양 사람들이 영화 속에서 즐기던 파티 모습을 나름 흉내들 내면서 즐거워하고 있었다. 순간 그런 모습이 너무 유치해 보여서 근사한 여자들이 보이긴 했어도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부부 동반도 많다 보니 대부분 여성들은 출세한 신랑 덕을 즐기는 사람들 아닌가?
날 초대해 주신 학장님 눈을 피해서 대략 인사 마친 이후에 저녁이나 해결하고 뒤로 슬쩍 빠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뜸한 후미진 곳으로 야금야금 파고들며 한껏 차려입은 여자들 몸매 구경이나 하면서 도망갈 준비를 하던 차에 멀끔한 남자 하나가 다가왔다.
저기, 처음 뵙습니다. 헌트 회계사라고 합니다.
아.. 네..
집에 가려고 폼 잡는 순간에 말을 걸었으니 반가운 표정이 나갈 리가 없다. 더구나 처음 보는 남자에게 불편하다는 웃음만 보일 뿐이다.
저기 보이는 짧은 원피스 여성이 제 아내입니다.
오, 엄청 미인이시네요.
어쩌라고 이 미친 새끼야. 여기서 지 마누라 자랑을 왜 나한테하고 지랄인가 싶었는데 내가 지 여자에게 호감 비슷하게 보이자 무슨 용기를 얻었는지 기가 막힌 제안을 하기 시작한다.
저는 교수님 명성을 들어서 잘 알고 있는데요. 학장님이 실은 저랑 굉장히 친한 지인이세요. 초면에 실례가 아니라면 제 아내를 좀 더 보여드리고 싶은데요.
이 새끼 뭐지? 하면서도 호기심에 웃음을 보이자 이 남자는 내게 자신은 발기 불능을 심하게 겪고 있어서 아내를 즐겁게 해 줄 사람을 구하는 중이라고 했다. 영화에서만 듣던 설정인데 실제로 들으면 진짜 황당하다. 더구나 처음 보는 사이에 말이다.
이 친구가 가진 문제는 이러했다. 아내는 남편이 가진 이런 성도착 성향을 이해하는 대신 자신이랑 섹스할 남자는 사무직이어야 하나 검게 그을렸어야 하며, 전문직이나 건장해야 하고, 한국인이지만 영어를 할 수 있어야 하고, 40대이지만 20대처럼 탄탄한 남자를 찾아오라고 조건을 걸었다. 그런 남자면 허락하겠다고. 좋아할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보기에 내가 바로 그 조건을 만족시키는 대상이었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뭐냐는 내 질문을 허락이라고 생각했는지 그 남자는 나에게 자세한 세부 진행 사항을 공지하기 시작했다.
먼저 저기 있는 아내가 최종 승인을 하게 되면 우리는 호텔로 가서 각자 방을 잡습니다. 그리고 교수은 제가 연락을 드리면 저희 방으로 오셔서 시작하시면 됩니다.
헐, 셋이 같이요?
아뇨, 저는 어차피 불능이라 잠시 보다가 자리를 비우고 교수님 방으로 갑니다. 불편하시면 처음부터 자리 비우겠습니다.
이 친구는 학장님을 통해서인지 내가 누군지 기본 정보는 가지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싶었는데 어쩌면 내가 호색한이라는 소문도 다른 경로를 통해서 이미 알고 접근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가자 무척 기분이 언짢았고 한 편으로는 오싹하기도 했다. 그렇게 끔찍하게 아내를 생각한다는 놈이 이런 일을 한다니 말로만 듣던 도착자가 이런 모습인가 싶었다.
혹시 우리 아버지가 돈이 좀 있다는 목사라는 것도 알아서 그걸 노리고 이러나 싶었지만 그건 아니라고 장담한다. 왜냐면 그렇기에는 녀석이 그리는 환상이 너무 정밀했고 이미 몇 번 경험도 있다는 것으로 내가 지켜야 할 의례나 절차도 명확한 것으로 보아서 돈을 갈취할 녀석보다는 종교 같은 자기 의례를 진행할 제사장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사람 겪어봐야 알지만...
나도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고 집으로 왔다. 집으로 오면서 강렬했던 설렘이 사그라지고 점점 명확하게 사태 파악이 되기 시작했다. 얼마나 골똘하게 이 제안에 빠져서 며칠을 보냈는지 밤마다 꿈에 그 녀석 아내를 겁탈하는 장면을 꾸었다. 꿈에서는 죄가 아니니까. 무의식은 도덕성을 추궁받지 않는 장소이고라는 식으로 찜찜한 마음을 돌리면서 말이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시간이 흐르자 그 일을 진행하면서 발생할 위험 요소 가령 세간에 알려지거나 빌 게이츠처럼 고약한 성병에 걸리는 일 등을 고려해 보았다. 세간에 알려지긴 녀석도 마찬가지로 일 테니 서로 조심할 것이고, 성병이야 콘돔을 쓰면 그럭저럭 방어가 되지 않을까 하는 대책도 서자. 의외로 나도 이런 도착 경험을 통해 새로운 세계관이 생기려나 궁금했다.
더구나 옆 방에서 나를 지켜보는 그 눈, 우리 사소한 움직임도 주시하는 그 귀를 생각하니 몹시 흥분되긴 했다. 어차피 우리는 그런 보이지 않는 눈길에 사로 잡혀 사는 것인데 누군가는 그것이 신일 테지만, 신학대 교수이면서 신을 웃기게 아는 나 같은 놈에겐 그것은 나는 생생한 눈길, 살아있는 신을 느끼는 경험이 된다.
무엇보다 (평범한 30대 후반 유부녀지만) 남이 소유한 (행정상) 아내이며 절대 넘을 수 없는 산인데 사회가 정한 그 금지령을 깬다는 상상만으로도 쾌락이 컸다. 금지가 그 여자에게 특별한 가치를 심어준 것이다.
이렇게 마음을 정리하면서 일주일 정도 흐지부지 지나자 그쪽에서 연락을 끊었다. 아마 영포티 행사에서 나 말고 여러 놈에게 접근했을 것이 분명한데 99% 이상 확률로 다른 남성들은 바로 승낙을 했고 그 일로 지금 무척 바쁠 것이다. 그러니 뜨뜨 미지근한 나부터 정리한 것이 뻔했다. 이 일로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우리는 금지되었기에 욕망하는 것이다.
https://youtu.be/PPruFbbAkzU?si=vRCPKWeN7Lwanz3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