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으로 본 궁예

사치라는 가짜 결핍

by DreamHunter

라캉 정신분석을 공부하면 지겹게 나오는 것이 상상계, 상징계입니다. 라캉 말기 이론에서는 실재계가 가장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상상, 상징계를 논하는 것도 벅차기에 실재계는 빼고 오늘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image.png 거울을 보며 상상계로 진입하는 성기훈 - 오징어 게임 시즌 1

상상계는 유아가 거울 단계를 거쳐서 처음 진입하는 세상으로 인간이 짐승이랑 달라지는 첫 관문입니다. 우리는 이 상상계를 지나 언어가 지배하는 상징계로 나아가는데요. 여기서 상징이란 언어를 뜻하며 법法 규범을 말합니다. 즉 영아가 양육자로부터 언어를 배우는 시기를 생각하시면 빠르겠습니다.


상상계에서 마음껏 뛰놀던 아기는 세상이 정한, 아버지라고 하는 남자들이 만들어 놓은 문법 체계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마음대로 지껄이던 특수한 [내 언어]를 버리고 타인들이 합의한 단어랑 문법을 문신해야 합니다.


방금 내 언어를 버린다고 했습니다. 상상계에서 내가 사랑했고 내가 이름 지어 주었던 세상은 불타 무너져 내리는 참극을 뜻합니다. 모든 인간은 이를 고통스러워하며 벌거벗고 아무 걱정 없이 살면서 배고프면 먹고 자고 섹스하던 아담과 하와가 뛰놀던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는 그 고통을 맛보게 됩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렇게 원치 않는 상징계로 편입이 되고 그 짜증이 켜켜이 쌓여 우리 모두는 신경증도 덤으로 얻게 됩니다. 물론 일부 탈락자도 있지요. 바로 정신병자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언어랑 문자를 고집하기에 보편성이 각인되지 못한 특이한 언어를 구사함으로써 우리 신경증자들이랑은 소통할 수 없는 "병자"가 되어서 강제로 약을 투여받거나 감금되어 분리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정신병자들끼리도 각자 언어가 다르니 소통은 불가합니다. 농담 식으로 미친놈들끼리 잘들 논다는 비아냥은 그들을 정신병자 취급하려는 원래 의도랑은 다르게 신경증자라는 확증을 내립니다.


정신병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 사람들은 불안정한 상징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어떤 독재자도 언어체계를 거스를 수 없습니다. 그도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쓰여온 언어를 배워야 통치를 할 수 있으니까요. 오늘 이야기하련는 부류는 다음입니다. 바로 정신병자가 아니더라도 유독 상징계가 불안한 사람들 말이죠. 이것은 흑백 논리가 아니기에 국어 점수 몇 점까지 불안자인가라는 기준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관측해 볼 수 있는 것은 그 불안함이 만들어 내는 결핍이 얼마나 처절 한가입니다.


image.png 배트맨 2 - 이상한 나라에 사는 팀 버튼


우리는 누구나 결핍을 가지고 있지만 혹독하게 그것에 휘둘리는 사람들을 봅니다. 사람들은 언어 속에 진입하면서 [주체]라는 것을 만드는데 그 과정이 온전하지 못하니 자신을 언어로 설명하지 못하고 일부 설명은 늘 어딘가 아쉬움을 남기며 완전히 표현되지 못한 주체는 잉여를 남깁니다. 라캉은 이를 아래처럼 한 문장으로 설명합니다.


주체는 기표에 의해 대표되지만 완전히 환원되지는 않는다.


상징계가 불안해지면 우리는 사회생활에 지장을 받습니다. 상징계(사회)란 보편성이 전제된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회사나 학교에서는 부적응자로 낙인찍히고 법을 기반으로한 모든 곳에서 제약이 찾아옵니다. 타인들은 더 이상 나를 온전한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기에 [나]라는 의미체계, 주체가 무너집니다. 나를 규정하던 기표 체계가 붕괴하는 순간을 말합니다. 그리고는 내가 온전했던, 아니 온전했다고 믿는 그 시기를 그리워합니다. 바로 엄마품 같고 떠나온 고향 같은 상상계입니다. 상징계가 언어 문자로 이루어졌다면 상상계는 이미지로 만들어진 공간입니다.


image.png 거울 단계를 지나 상상계로 들어가는 낙오자들 - 오징어 게임


상상계는 거울단계를 지나서 편입된다고 했습니다. 아이는 거울 속 자신 형상을 보며 자신이 완전한 자기라고 그 형상에 동일시하게 됩니다. 아이 눈에는 거울 속 이미지가 완전하고 통합된 존재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기억을 떠올려 상징계에서 치이는 순간마다 결핍이 없던 (없는 것 같던) 상상계로 도망갑니다.


이렇듯 상징계가 불안한 사람은 결국 상상계로 퇴행합니다.


그렇게 되면 나타나는 행동은 과도하게 자기 이미지를 관리하며 자신을 위한 영웅 서사를 만들기 시작하며 쓸데없는 집단 동일시에 집착합니다. 자신이 신봉하는 이념이나 종교, 조직 따위에 과하게 몰입한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상징계가 불안한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서비스는 사회에 많고 이를 악용하는 사례 역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흔히들 궁금해하는 '광신도들은 왜 저럴까?'에 대한 질문도 상징계에 편입하지 못해서 오는 결핍이 상상계를 키운 결과라는 측면을 고려하지 않으면 모든 사례마다 각기 다른 대답을 도출하기에 분석도 논의도 불가능해집니다. 마치 MBTI에서 성격 나열하듯 누구는 외로워서 그런다, 쟤는 가난해서 그랬다 등등 각자 징그러운 사연만 끝도 없이 나열하다 원인 근처에도 못 가보고 지쳐 분석을 포기해 버립니다.


image.png JMS와 신도들 - 시사저널

주체는 결핍을 통해서 욕망을 구성해야 합니다. 하지만 상징계가 불안정하면 결핍을 언어(상징)로 조직하지 못하고 내 욕망이 어디서 왔는지, 타자가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 수 없어 불안해합니다. 그들에게 세계는 일관된 의미를 주지 못하기에 상징계가 제공해야 할 질서랑 안정성을 상상계에서 보충하려 합니다.


그럼 상상계는 안정한가? 아닙니다. 상상계로 퇴행한 사람들은 상상 속 자아에 매달리고 타자를 경쟁자 혹은 거울 속 나로만 이해하게 됩니다. 거울 속 이미지를 통해서 나를 규정하는 상상계 기본 구조를 생각하시면 쉽겠습니다. 요약하지면 상상계란 타자랑 자신을 비교하며 만들어진 세상입니다. 비교는 질투를 낳고 경쟁을 부르며 공격성을 동반하게 됩니다. 아이들을 좁은 교실에 몰아넣고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경쟁을 시키는 우리 현실은 오징어 게임에서도 아주 유치한 상상계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하겠습니다.


이렇게 보면 공격 구조는 상상계 근본입니다. 그러니 상징계 균열을 상상계로 메우는 것은 근본 해결이기보다는 임시 봉합일 뿐입니다. 위에서 잠시 이야기한 욕망 관점에서 본다면 상징계 속 욕망 구조가 흔들린 사람들은 상상계 속 환상을 통해 욕망 좌표를 재구성합니다. 라캉 환상 공식에 따르면 결핍을 메우는 대상이 약해지면 상상 보충물에 대한 집착이 강해지고요.


image.png 기존 문법이나 정치 공학이 아니라 정신분석으로 접근해야 들립니다.

다시, 언어가 불안전하고 사회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는 자들은 이미지가 거하는 세계, 상상계로 돌아가 과대망상, 과도한 자기애, 음모론 심취, 극단 이론 신봉을 한다 했습니다. <의미>가 붕괴된 세상을 강력한 <이미지>로 채운 결과로 그들은 논거가 박약하고 논리가 빈번히 깨지는 가짜 뉴스라도 감정만 자극받을 수 있다면 확신으로 받아들이기를 일삼고 깊은 판단보다는 관심법 같은 직관을 이용한 판단에 열광하게 됩니다.


상징계는 결핍이랑 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언어를 배우면서 결핍을 경험하니까요. 문제는 상징계에 편입이 원만하지 못하면 우리는 결핍을 언어 구조로 만드는데 실패하여 결국 주체는 형체가 없는 결핍을 견지지 못하고 상상계로 도망가 가짜 결핍을 만들게 됩니다. 내가 정말로 잃어버린 대상에 대한 결핍이 아닌 가짜 결핍 말입니다. 이들 행동을 중복되지만 다시 자세하게 기술해 보겠습니다.


“나는 완전한 자아를 가지고 있다”는 환상을 합니다;
“타자는 나를 이렇게 본다”는 확신에 쉽게 빠집니다;
“이 대상만 가지면 결핍이 사라진다”는 꿈을 지닙니다;
결국 세상을 단순한 이미지를 사용해 이해하고 마는데 궁예 관심법이랑 비슷합니다.


누구나 이런 증상을 가지고 있기에 이 중 한 두 가지만 보인다고 '너는 상징계가 박살 난 미친놈이다'라고 진단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이 기질이 너무 심각하면 (이것도 개인 판단입니다만) 그 사람 상징계가 얼마나 불안할까 예측해 볼만하겠습니다.


중간 결론 내리겠습니다. 상징계가 불안하면 우리는 자신을 사회에서 정한 기호로만 보고 그 기호 안에는 텅 비었다는 공포를 마주합니다. 그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상상계로 갑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이미지를 이용해 가짜 결핍을 만들어 텅 비었다는 구멍을 메우려는 것이지요. 결핍이 어떻게 생겼는지 우선 알아야 채우니까요. 하지만 이런 가짜 결핍은 잠시 위안을 줄지언정 근본 치유는 될 수 없습니다.


주체는 상징계가 무너지는 순간이면 상상계가 주는 환상 속으로 숨을 것이 아니라 상징계 속 결핍을 직시하고 그 안에서 자기 욕망을 가로질러야 합니다. 가짜 결핍이 아니라 진짜 결핍을 마주하고 채우라는 말같습니다만 쉬운 일도 아니며 정확하게 임상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는 저도 정신분석을 받지 못해 정확하게는 모릅니다. 다만 얄팍하게 공부한 지식을 이용해 일단락하겠습니다.


image.png 양들의 침묵


다음으로 재미있는 것은, 상징계가 살짝 망가진 우리는 신경증자라 했고 박살 나서 대화가 불가한 이들을 정신병자라 했는데 라캉은 여기에 한 가지 분류를 더 둡니다. 바로 성도착자들입니다. 흔히 변태라는 이들로 사회에서 금지한 성행위하는 자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논의를 하기 위해 상징계를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상징계 핵심은 [아버지의 이름]입니다. 여기서 아버지는 거실에 누워서 TV를 보고 계신 그 양반을 단순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법이며 금지를 뜻하는 더 큰 개념으로서 아버지입니다. 이 아버지는 우리 욕망에 금지를 도입하고 근친상간 시도를 애초에 차단하는 존재이며 우리에게 '너는 전능하지 않다'는 한계를 부여하는 역할을 하는 자입니다.


이로써 상징계는 결핍을 받아들이게 하는 구조라 다시 말하겠습니다.


그럼 도착자는 정신분석 관점에서 무엇인가요? 도착자는 상징계에 적응하지 못해 유령처럼 세상을 떠도는 정신병자랑은 또 다른 이들로 그들은 상징계를 잘 아는 오히려 너무 잘 알아서 그 법을 농락하려는 자들입니다. 정신증에서는 아버지를 배제했다면 도착자들은 아버지를 부인(deny, 와이프 아님 주의!)하고 있습니다.


우리 신경증자들이랑 차이도 살펴보면 우리는 법을 문신하여 초자아를 만들고 늘 그 시선에 감시당하며 죄책감에 사로잡혀 삽니다. 반면 도착자들은 법을 연구하고 자신은 법을 위반하는 자가 아니라 법을 실행하는 자 위치에 두거나 때로는 법을 연출하고 법을 위한 도구로 스스로를 희생시킵니다.


상징계가 불안하면 일부는 상상계로 피신한다 했습니다. 하지만 변태들은 그 상황에서 성도착으로 달려갑니다. 도착 핵심 기제는 부인이라고 했고요.


나도 공공장소에서 성기 노출이 금기인 것을 안다. 그러나 (그렇기에) 즐긴다.


그들은 법이나 윤리를 너무나도 명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로 인한 금지 역시 잘 알고요. 그 금지가 우리 문명인들을 거세했다는 것도 아는 상황에서 그들은 그 금지를 깨는 것에서 쾌락을 느낍니다. 마치 법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죠.


도착자들에게 가장 난감한 상황은 금지가 없는 곳입니다. 바바리맨이 절대 가지 않는 곳은 바로 누드비치입니다. 모두가 벗고 있는 장소에서는 노출이 금지가 아니기에 바바리맨은 절대 그곳에 가지 않습니다. 바바리맨에게 지옥이 있다면 그곳은 모두가 벌거벗고 있는 세상입니다.


image.png 금지가 없으면 도착도 없습니다.

[아버지라는 이름]이 없는 이들을 정신병자라고 부른다면 [스스로를 아버지라] 부르는 자들을 변태라 하겠습니다. 이를 토대로 도착이 작동하는 방식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1. 결핍을 인정하지 않음;

2. 대신 특정 장면이나 행위를 반복해서 연출함;

3. 그 상황에서 자신이 법 주체가 됨.


이렇게 정신분석에서는 도착을 단순하게 타락한 놈들이나 성 취향 문제가 아닌 상징계를 통해서 설명하려 합니다. 즉 결핍을 마주했을 때 선택하는 독특한 방식이라고 보는 것이죠. 그들은 결핍이 존재하는 구멍을 스스로를 희생해서 메우려는 자들로 상징계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그들은 스스로를 주체가 아닌 사물이나 도구로 자처합니다. 그들은 상징계 결핍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가지고 있으며 법을 통제하려 합니다.


노출증 환자 경우 상대방에게 충격이나 수치심등 감정을 강제로 유발하려 합니다. 그들도 압니다. 상대가 자신을 혐오한다는 것을요. 다만 그렇게 함으로써 상대방이 겪는 결핍을 메워준다는 착각을 하고 있지요. 내가 이 금기를 어길 때 비로소 그 법은 살아있음을 몸으로 증명하려 합니다.


결론 내리자면 도착증도 상징계가 불완전한 사람이 결핍을 언어로 해석하지 못하는 것에서 원인을 봅니다. 다만 상상을 통해 (장면으로) 자신을 도구로 까지 삼아 보충하려는 노력을 한다는 차이가 있고요. 한편으로 [아버지 법]은 나를 보호해주지 못한다는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스스로 도구가 되어버린 것이라고 라캉 쌤은 변태 행위를 해석하니 무언가 슬픈 기조가 깔리는데요. 대중들이 과연 변태를 대함에 그런 감정을 느낄 리 만무하니 선생님 이론이나 그를 따르는 제 글도 시장에서는 늘 냉대받습니다.


오늘 하려는 이야기는 [도착]이 아니고 [사치]인데 성도착은 제가 워낙에 관심 있는 주제라 이렇게만 정리하고 마치겠습니다.


image.png 궁예 - 드라마 '태조 왕건'


드디어 오늘 나눌 주제를 시작합니다. 우리 역사에서 주로 정신병자로 취급되는 궁예입니다. 궁예에 대한 평은 역사서랑 설화에서 극명하게 갈립니다. 승자가 기록한 역사에서 패자인 궁예는 자아도취에 빠진 정신질환자, 폭군, 살인마로 그려집니다. 특히 미륵관심법이라는 음모론에 심취해 미쳐 날뛰는 연쇄 살인마입니다.


반면 철원지역 설화에서 궁예는 민족 영웅입니다. 역사서에서도 초기 궁예는 검소하여 사병들이랑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곳에서 잠을 자고 같은 음식을 먹었다 했습니다. 늘 민중을 생각하는 개혁가이며 용맹한 군인이고 능력 있는 정치가로 쓰여있습니다. 썩은 신라를 개혁하려 골품제도를 없애고 백성들을 능력에 따라 등용했다는 것도 역사이고요. 설화에서는 관심법 실행을 인정은 하나 그 동기가 다른 곳에 있다고 하는 식으로 궁예 편을 들어줍니다.


궁예가 폭정을 하였다기보다는 그의 부인이 구미호라서 그랬다고 한다. 그 여우가 썩은 사람의 고기를 좋아하는데, 임금님은 여우에게 반하여 여우가 하라는 데로 하여 억울하게 죽이기를 많이 하였다. 그것도 아주 잔인하게 죽였다고 한다. 결국 송파에서 가져온 삼족구에 의해 여우가 죽게 되었다. - 설화, 최웅


이런 상반된 평가에 대한 논의는 역사 학자들에게 맡기도록 하고요. 저는 궁예가 꿈꾸던 환상 그리고 역사랑 설화에서 공통으로 나오는 미륵관심법이라는 황당한 사례 등 그가 보인 증상을 정신분석 관점에서 보려 합니다. 진단을 하려거나 간접 분석을 시도하려는 시도는 아니고 그저 누구나 알고 있는 그 스토리를 살펴보려 합니다.


궁예는 신라 48대 경문왕 아들로 점쟁이 말을 듣고 아버지가 죽이려다 버려진 인물입니다. 한 번도 아버지 성인 [김]을 쓰지 않았기에 그는 아버지도 성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어린 시절 궁예는 방랑생활을 하다 절에 들어가 승려가 되었으며 나중에는 도적들이랑 어울리고 끝없는 걸식 폭력 강도로 점철된 유년기를 보냅니다. 무엇보다 그 깊은 곳에 깔린 신라 왕실에 대한 복수심은 그 인생 전반에 큰 영향을 줍니다.


천복 원년 신유에 선종이 왕을 자칭하고 사람들에게 "이전에 신라가 당 나라에 청병하여 고구려를 격파하였기 때문에, 평양의 옛 서울이 황폐하여 풀만 성하게 되었으니, 내가 반드시 그 원수를 갚겠다"라고 말하였다. 아마도 자기가 태어났을 때 신라에서 버림받은 일이 원망스러웠기 때문에 이러한 말을 한 것으로 보인다. - 궁예 열전


궁예가 가진 상징계가 불온전하다고 평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궁예를 직접 분석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지만 궁예가 잘하는 일 중에 하나가 치밀하게 계획한 유언비어를 유포하고 대중을 선동하는 것이며 나아가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허무맹랑한 환상에 사로 잡혀 있는 모습을 보면 그 역시 상징계가 주는 결핍을 상상계에서 해결하려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신라에 대한 분노가 그를 흔드는 것은 확인됩니다. 문제는 다음입니다.


- 관심법 관련 이야기

이때 궁예는 반역이라는 죄명을 무고하게 덮어씌워 하루에도 몇 백 명씩 죽이었다. 장수나 정승으로서 해를 입은 자가 열에 여덟·아홉에 이르렀다. 궁예는 항상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미륵의 관심법을 체득하여 부녀자들의 음행도 알아낼 수 있다. 만약 나의 관심법에 걸리는 자가 있으면 즉시 엄벌에 처하겠다.”라고 하였다. 그는 드디어 세 자나 되는 쇠방망이를 만들어 놓고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곧 그것을 달구어 음부를 찔러 연기가 코와 입으로 나오게 하여 죽이었다. 이로 말미암아 남녀들이 모두 벌벌 떨었으며 원망과 분한 이 날로 심하여졌다. - 궁예 열전


- 잔혹한 폭군이자 미치광이 모습이 담긴 이야기

정명 원년에 그의 부인 강 씨가 왕이 옳지 못한 일을 많이 한다 하여 정색을 하고 간하였다. 왕이 그녀를 미워하여 "네가 다른 사람과 간통하니 웬일이냐?"라고 하였다. 강 씨가 말하기를 "어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하니, 왕이 말하기를 "나는 신통력으로 보고 있다"라고 하면서, 뜨거운 불로 쇠공이를 달구어 음부를 쑤셔 죽이고 그의 두 아이까지 죽였다. 그 뒤로 그가 의심이 많고 곧잘 갑자기 성을 내므로, 여러 보좌관과 장수 관리로부터 평민에 이르기까지 죄 없이 죽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궁예에 관한 사료가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다고 하지만 대략 흐름으로 보아서 이 사건들이 존재했다면 제가 감히 진단을 할 수는 없지만 상식 수준에서도 궁예는 심각한 정신 상태인 것은 맞습니다. 초기 군벌을 일으키던 민중 승려로서 궁예 모습은 검소하며 존경받아 마땅하다 했습니다.


그리고 모두에게 저주받는 폭군으로 궁예 모습은 사치 그 자체입니다. 단순히 복장이 화려해진 것을 넘어 거대한 규모로 궁궐이랑 성을 증축하고 과도하게 세금이랑 노동력을 착취하다 결국 왕건에게 권력을 빼앗기는 단초가 됩니다.


궁예는 불안한 상징계를 메우기 위해서 위대한 상상계를 탐험했습니다. 그 결과 당시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환상을 만들어 민중에게 심어주고 지도자가 되었지만 그 불안한 상징계랑 허황된 상상계로 몰락하니 궁예를 만든 것도 살해한 것도 상징계였습니다.




건너 건너 아는 후배 커플이 있습니다. 자세한 사연까지는 모르지만 고등학교까지만 고국에서 마치고 그 둘은 호주로 넘어옵니다. 영어도 부족하고 사회생활 경험도 없으니 단순직을 전전하는데요. 어느 날 호주 사람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알바를 시작합니다. 성실한 둘은 호주 사장님 마음에 들어서 다른 가게까지 담당하게 되어 인정도 받고 열심히 돈을 모으게 됩니다.


하루에 열네댓 시간을 일하니 쓸 시간도 없어서 돈은 고스란히 모이고 선순환도 이룹니다. 이를 기특하게 여긴 사장은 비자도 알아봐 주게 되고요.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자 모르는 아이들이지만 무척이나 기특하게 생각되어 보고 싶어 졌습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우연한 자리에서 그 어린 커플을 만났지만 무척 실망하게 됩니다.


남자는 신형 벤츠를 몰고 여자는 평소 가지고 싶었다는 명품백을 끼고 큰 개를 한 마리 대동해서 나왔습니다. 함께 있던 지인 역시 무척이나 당황하는 표정인데 그 아이들은 평온합니다. 어찌 지내냐는 말에 이제는 일도 그만두고 벌어 놓은 것으로 생활하면서 근사한 월세 집에서 지낸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 호주 회사에서 재고에 손을 대다가 걸려서 나오게 되었고 그때 배운 도매상 관리법으로 자기 사업을 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하는데 씁쓸했습니다.


주변에서 망가지는 사람들을 관찰해 보면 복잡하게 상징계가 무너지면서 상상계로 들어가는 과정을 따지기보다는 사치하는 순간을 주목하게 됩니다. 아버지 하고 원수이고 낳아준 생모는 알지도 못한 채로 유모에게 키워지다 그마저도 떠나서 홀로 자란 천하에 둘도 없는 고아 궁예 어린 시절이나 고국에서 먼 호주까지 와서 서로 의지하며 성실하게 지내던 커플 모습이 사치라는 거짓 결핍에 시달리는 모습에 동정심이 생기려합니다. 이런 감정은 정신분석을 논하는 이 글에는 어울리지 않죠. 쓸데없는 역전이 일 수도 있고요.


급하게 5천만 원을 빌려달라고 했던 후배를 차단시키고 6개월 만에 우연히 쇼핑센터 화장실에서 만납니다. 반쪽으로 마른 몸에 임꺽정같이 덥수룩한 수염 덮인 얼굴을 보니 신형 BMW 샀다고 좋아하던 모습이랑 너무 달라 놀랐습니다. 긴 이야기 없이 "잘 지내세요"하면서 고개 푹 숙이고 돌아서는 후배를 보면서 무엇이 사람을 사치하게 만드는가, 상징계가 무너져서일까 고민하게 됩니다.


타고난 기질이 그들을 사치로 내몰았는지 그들이 가진 불안했던 상징계가 그들로 하여금 사치하게 만든 것인지 선후 관계도 알 수 없습니다. 내가 가진 결여를 사치로 메우련다는 욕망 자체가 가짜라는 것은 확실하고요.


라캉 선생님 말씀처럼 우리가 스스로 결여된 것을 마주하고 내 욕망 구조를 알면 나를 괴롭히는 모든 중독, 운명이라고 핑계되던 그 역사에서 우리는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



그가 장성하자 중의 계율에 구애받지 않고 방종하였으며 뱃심이 있었다.
-삼국사기 궁예 열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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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역사서에서 궁예는 백성들에게 맞아 죽는 황망한 결말로 갑니다. 설화는 다르다고 하지만 비극인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왕이 이 말을 듣고 어찌할 줄 모르다가 미천한 차림으로 산의 숲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얼마 안 가서 부양 주민들에게 살해되었다.



https://youtu.be/w1qWxb1lCZs?si=BQJjfdSbuFx9QpDt



Reference:

삼국사기 권50 열전10

"설화" - 최웅 (국학자료원)

"슬픈 궁예" - 송원재

"역사 기록과 구전 설화로 본 궁예: - 최웅

"역사와 설화 사이" - 이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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