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몽 아님 주의
무당이랑 관련된 영화나 소재 따위는 불패입니다. [곡성]이나 [파묘]는 관객이나 평단 모두 열광하며 천만에 육박하는 흥행을 이루었고 심지어 일부 내용을 차용한 [신명]까지도 독립영화 치고는 선방했으니까요.
이제는 예능에서도 무당 서바이벌 오디션이 인기를 모으니 무당은 AI가 이렇게 발달하는 시점에서도 엄연한 직업으로 확고하게 우리 사회에서 인정받습니다.
혹자는 정신분석도 여기에 포함되는 식으로 분류해 버립니다. 사실 분석 상황이란 것이 기록으로 남기기도 힘들뿐더러 분석 과정이나 절차도 분석가마다 다르기에 정해진 매뉴얼은 고사하고 자격증도 정부에서 관리하지 않습니다. 분석가 협회는 있지만 정신분석이란 일관되고 정해진 규격을 만들 수 없는 성격이다 보니 협회는 오히려 국가가 분석가 자격증을 만들고 시험 제도를 만드는데 반대하는 실정입니다.
실전에서 가장 큰 문제는 면담 회기가 너무 길어서 보험회사도 거절한 항목이라 현금으로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의료 보험에서도 빠진 치료법이라 시장에서는 점점 도태되어 갑니다. 하지만 정신분석은 무의식을 다루는 유일한 실천이기 겨우 살아남은 분석가들이 그 명맥을 유지하는 상황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늘은 지난번처럼 저에게 분석 상담을 의뢰하신 사연자가 있으니 제가 아는 수준에서, 정신분석을 공부한 것을 나눈다는 의도에서 씁니다. 진단이나 명확한 분석 결과는 애초에 기대할 수 없는 글이지만 오늘은 오랜만에 드림헌터 필명처럼 꿈을 다루는 글을 만들어 보지요. 그렇다면 제 브런치에 가장 적합한 소재를 다룬다 하겠습니다. 꿈 이야기를 보내주신 사연자에게 감사드립니다.
주의할 점은, 이 글은 꿈을 통해서 무의식을 해석해 보려는 제 노력인 만큼 무당-만신들이 하는 꿈 해몽하고는 전혀 다릅니다. 또한 꿈에 구름이 나왔으니 형체가 없는 기억이 무의식에 떠다닌다는 식으로 개인 특이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접근법도 곤란합니다. 우리 무의식이 언어 구조로 되어 있으니 구름이 그런 특성을 가진 것이 그런 환유를 일으킬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렇게 가지 않겠습니다.
너무 일반론을 따르자면 쌀로 밥 짓는다는 식상한 결론으로 가기도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꿈 소재 하나하나를 잡고 따라가다 사연자 꿈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고 그 꿈을 보고 느낀 제 감정을 분석하는 엉뚱한 길로 빠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을 주의하면서 시작하겠습니다.
기본 틀은 프로이트 기조에, 상세 툴은 라캉 분석을 참고해 보겠습니다.
먼저 사연자에 대한 배경 정보입니다. 평소 영화를 보면서 이미지를 즐기기보다는 책을 읽으며 기표를 통해서 상상하기를 즐기는 30대 여성입니다. 취향이 영화나 드라마는 보지 않기에 독서량이 많습니다. 대학에서는 수학을 전공했지만 인문학에 관심이 있습니다. 정신분석은 어린 시절을 탐색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이분 경우 아홉 살 즈음 친부를 여의였습니다. 신기한 것은 평소 아주 세밀한 사항까지 기억하고 표현할 수 있지만 이상하게도 아홉 살 이전 기억은 없습니다.
20대에 가끔 답답하고 우울한 마음이 생기기다 가슴이 훅 떨어지는 느낌을 받아서 심리 상담을 받으러 간 적이 있으나 상담사는 질문이 정확하지 않다고 상담 거부를 했다고 합니다. 그 후로는 이 증상이 별일 아닌 것이라고 자기 위로하며 극복했고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가끔 메모하면서 본인 욕망을 스스로 마주하고 정리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크게 세 가지인데 이 글에서 온전히 답을 하지 못하겠지만 요약하면 아래입니다.
이 짧은 글로 무의식 구조를 복기했다면 그건 사기입니다. 꿈 해석은 분석가랑 내담자 사이 오랜 시간 대화를 통해서만 확정되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 시도하는 해석은 지극히 좁은 분석 사례 하나정도로만 이해해 주세요. 그리고 인터뷰 결과 3번 질문에 대한 가정을 세워봅니다. 상담자가 상실한 아홉 살 이전 기억 '억압'은 아버지 사망이랑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래는 사연자가 풀어낸 꿈에 대한 자유연상입니다. 사연자는 꿈에서 10대로 인식되기에 배경은 늘 학교라고 하네요. 같이 보시죠.
제가 꿈에 대해 생각하면 가장 처음 떠올리게 되는 건 색감이에요. 제 꿈은 특이하게도 색감이 또렷하고 화려해요. 그 다음 떠올리게 되는 것은 어느 순간부터 반복해서 꾸는 꿈으로 내용은 반복하지 않지만 반복해서 등장하는 인물은 있어요.
여기까진 평소 꿈이고 제가 기억하는 꿈은 따로 있어요. 바로 우리 엄마가 저에게 말씀해 준 꿈 이야기인데 그것들이 기억에 남아요. 엄마가 저를 가졌을 땐 꾸었던 해몽 이야기들 말이에요.
이건 꿈이야기는 아니지만 평소 생각하는 제 습관을 말해주고 싶어요. 저는 한 가지 생각을 계속하다 보면 함께 떠오르는 것들이 늘 있는데요. 꿈에서도 의식 중에 일어나는 이런 생각 흐름이 비슷한 순서로 나타나는 것 같아요. 큰 흐름에서는 깨어있을 때 의식이랑 꿈꿀 때 진행되는 구도가 같다고 할까요?
아주 최근 꾼 꿈에서는 감정이 반복되는 장면들을 보아요. 평소처럼 반복되는 인물들도 등장하고 어머니가 말씀하셨던 태몽에 대한 내용도 나오는 식이라서 역시 순서에 흐름이 있어요. 재미있는 것은 평소에는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종종 다른 길로 빠져나가는 경우가 꽤 많은데 꿈에선 의외로 일관된 점이 또 신기했지요.
제가 이름 지은 특별한 상황이 있어요. 바로 "전시회 꿈"이라고 명명한 상황이에요. 제가 종종 꾸는 꿈 중에 저런 색채가 보이는데요. 어려서 그 꿈 처음 꾼 날에는 꿈에 외할머니가 나오셨어요. 꿈속에서 나는 할머니에게 물었죠. "할머니 오늘은 하늘이 왜 저래?" 하니까 "오늘은 구름 전시회 하는 날이라서 그래"라고 저에게 대답해 주셨는데 이 첫 꿈 이후로는 할머니는 꿈에 더 이상 등장하시지 않지만 그 이후엔 꿈에서 구름이 전시회를 하는 장면이 나오면 "아 오늘이 또 그날이구나"하고 꿈속에서도 하늘을 쳐다보고 있어요.
이 "전시회 꿈"은 항상 갑자기 하늘이 저런 색채로 바뀌면서 시작돼요. 늘 다른 내용이다가 갑자기 하늘이 이렇게 바뀌면 저는 꿈속에서도 알죠. 구름 전시회 꿈이 시작되는 '그날'이 다하고요. 근데 그 꿈은 위 그림이랑은 다르게 해는 없이 하늘에 구름만 무척 예쁜 모습으로 떠가요. 늘 이런 식으로 갑자기 그 꿈은 시작이 되는데요. 꿈에선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기에 스스로도 왜 이런 장면이 나오지? 궁금해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여요.
우선 사연자 꿈이 보여주는 특징을 나열해 보겠습니다. 제가 주목하는 것은 우리랑은 다르게 강렬한 색채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위 내용에는 없지만 사연자는 이것을 '남들이 흑백 꿈이라면 자신은 컬러 꿈을 꾼다'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꿈속에서 펼쳐지는 풍경을 전시회 같다고 표현했으니 장면 디테일도 뛰어난 꿈으로 보입니다.
반복되는 인물을 거론했는데 어차피 꿈은 의식 상에서 논리는 작동하지 않기에 친구 얼굴에 강아지 몸통이 달린 생명체가 나오기도 하는 식으로 이것은 크게 주목할 사항은 아닙니다. 다만 그 혼합 인물이 누구인지를 그때마다 분석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프로이트 선생님은 <꿈의 해석>에서 기술하셨습니다.
외할머니가 최초 꿈에서 해석을 제공했다고 했는데 이것을 잘못다루면 칼 융처럼 도사가 됩니다. 칼은 이것에 분명 집중하고 열광할 테니까요. 그가 말하는 "큰 꿈"에 딱 맞을 소재로 그 할머니 현신을 예언이나 예지로 다루는 것이 <분석 심리학>이나 여기는 <정신 분석실>입니다. 칼 쌤 이야기는 제 다른 야한 글에서 소재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두 번째로 특이한 것은 흔히 말하는 "자각몽" 상황입니다. 사연자는 꿈속에서 “이미 알고 있는 꿈”을 마주합니다. 하늘이 바뀌면 “아, 오늘은 구름 전시회를 하는 날이구나”라고 꿈에서 이미 인지하는 구조는 정신분석 측면에서도 매우 주목할만한 특징이고 흔치 않은 현상입니다. 프로이트 박사님도 <꿈의 해석>에서 반복되는 꿈을 주요하게 다루는 장면이 나옵니다.
저는 이런 자각몽이나 반복된 꿈을 라캉식 분석 측면에서 보려 합니다. 바로 상징계, 상상계 측면에서 사연자 꿈을 보자면 사연자는 꿈에서 나오는 규칙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사연자는 무의식을 특정 체계나 패턴을 이용해 포획하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평소에 이미지보다 기표를 선호하는 성향이라고 말한 것에서 착안했는데요. 사연자는 영화보다 소설을 선호하는 노력이 상상계에 고립되지 않고 상징계로 극복하려는 모습 같네요.
그럼 사연자는 기표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주체라고 1차 결론 내리겠습니다.
여기부터는 1차 결론하고 반대로 <상상계에 몰입한 사람>이라는 가정으로 풀어보겠습니다. 왜냐면 대부분 사람은 불안한 상징계를 보완하는 역할로 상상계로 퇴행하는데 사연자는 오히려 상상계를 벗어나려고 상징계로 가는 형태이기 때문이죠. 제가 볼 때 이것은 우리 신경증자랑 반대되는 행로입니다. 즉 정신증자 혹은 분열자 특징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그가 가진 강렬한 색감을 나타내는 꿈은 분열증자들이 말씀하시는 꿈 하고도 비슷합니다. 정신 분열증을 가진 분들은 우리랑 꿈이 다른 것이 첫 번째 지점으로 그들 꿈은 색감이 풍부하며 현실이랑 구분이 모호할 정도로 자세하고 명확하고 현실성을 줍니다.
물론 그런 성향이 보인다고 해서 다 정신분열증을 가졌다고 판단 내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일부 분열증 자랑은 다르게 사연자는 신경증자들이 만들어 놓은 상징계에서도 잘 지내는 모습니다. 언어 구사가 명확하고 가진 어휘가 풍부하며 글에서 표현이 다양하고 적절한 행태는 막대한 독서량 때문에 분열을 극복한 것으로 보일 뿐일 수는 있으나, 아무래도 분열증자 모습이랑은 확연하게 다릅니다.
추가로 꿈에서도 패턴을 자각하는 모습도 분열증자랑 다른 점입니다. 분열증을 가진 사람들은 많은 겨우 현실을 꿈이랑 착각하기에 꿈에 나온 할머니 모습에 집착하고 그것을 확대해석하는 식으로 가지만 (무당들이 할머니 음성이라며 환청에 사로잡히는 것도 포함) 사연자는 할머니 현신에 그다지 무게를 두지 않고 오히려 꿈에서 이것은 현실이 아니라 환상이라고 판단하는 모습을 보여주니, 굳이 저더러 하나를 찍으라면 정신증자보다는 신경증자에 걸겠습니다.
특히 자신 꿈 내용을 기술하는 장면에서도 사소한 소재에 집착하기보다는 그 안에 구조랑 흐름을 관찰하는 말투로 덤덤하게 기술합니다. 마치 자기 분석을 하는 분석가처럼 자기 꿈을 해석 모습이라 특이하고 놀랐습니다. 참고로 사연자는 정신분석에 대해 잘 모릅니다.
전시회 꿈에 태양이 없다는 사연자 첨언은 단순히 태양이 아버지를 상징하니 아버지가 없는 것을 표현했다는 일반론은 접겠다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꿈은 강렬한 색채로 덮여있는데 이를 비추는 태양은 없다고 하는데 여기에도 분명 특이점이 녹아있겠으나 더 분석해 봐야 알겠습니다.
아홉 살 때 친부께서 사망하였고 아홉 살 이전 기억이 없다는 두 가지를 연결하려고 저는 지금 애쓰는 중인데요. 정신분석에서 이런 아동 기억 단절이 흔한 것이며 아버지 죽음으로 촉발되는 경우가 자주 나타납니다. 이것은 심리학에서도 자주 다루는데 인과관계는 뻔합니다. 아버지 사망이라는 큰 충격이 관련된 모든 기억을 봉인했다고 누구나 생각해 볼 수 있지요. 관련하여 더 궁금하기는 했으나 아픈 개인사라서 듣기만 할 뿐 더는 묻지 못했습니다.
다시 그가 가진 무의식 구조로 가보겠습니다. 사연자는 색채에 민감한 것 같은데 저는 이것이 이미지로 표현된 상상계를 상징으로 사로잡으려는 노력으로 보았습니다. 색이라는 상징을 언어대신 사용하는 것으로 말이죠. 상징이라는 꼭 언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기에 논리를 부여할 수 있다면 기호나 심지어 색상이라도 상징이라 하겠습니다. 아지만 이 논의가 맞으려면 사연자는 꿈속 화려한 색채를 명확하게 "보라색, 노란색"이렇게 표현했어야겠지만 아쉽게도 그런 대화는 아직 없고요.
혹시 할머니가 무의식을 설명해 주는 존재로서 아버지가 없는 자리를 대신하는 대타자-대리인으로 볼 수 있을까 생각도 해보긴 했습니다. 할머니는 꿈을 해석해 주는 역할까지 했으니까요. 이 부분 역시 추후 논의해 볼 만하겠지만 더 이상 정보가 없으니 멈추겠습니다.
꿈에서는 늘 자신을 10대로 설정하는 것도 흔히 일어나는 일어나는 퇴행인데요. 왜 10대일까요? 추가로 돌아가고 싶은 과거 시점이 있다면 언제일까요?라는 제 질문에 여덜살 즈음이라고 사연자는 대답을 했는데요.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버지를 기억하고 싶어서라고 답해서 놀랐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상담자 무의식으로 들어가는 열쇠가 있다고 저는 확신했지요.
아시겠지만 '퇴행'이란 정신분석에서도 쓰이는 용어인데요. 특정 기간, 보통 상상계가 명확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려는 시도로 상징계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흔히 보이는 방어기제입니다.
프로이트 박사님께서 꿈은 억압된 것을 돌려서 표현한다 했습니다. 그렇다면 사연자 무의식은 전시회 꿈을 통해서 어떤 장면을 억압하려는 것일까요? 꿈은 피하고 싶은 기억 대신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기로 합니다. 혹시 그 안에 이미지 파편이 있을까요? 아니면 "전시회"라는 기표가 주는 실마리가 있을까요?
자, 다음으로 상담자가 20대에 경험했던 심리 상담 경험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답답하며 우울감을 느꼈고 가슴이 훅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는데 정신분석에서는 특정 심리가 신체 감각을 통해서 나타난다고 보았으니 이 역시도 분석대상이라고 하겠습니다.
아쉽게도 심리 상담사는 내담자가 첫 질문을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하니 상담을 시작할 수가 없다고 세 번 거절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사연자는 어쩔 수 없이 상담을 포기한 후에 스스로 치료법(?)을 발견했다는데요. 자세한 치료 기법을 말씀하지는 않았지만 평소 독서 습관이 일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작은 사례에서 느낀 것은 상담자는 정신분석에는 매우 잘 반응할 내담자 기질을 보유했다는 것이라서 그렇게 말씀드렸더니 무척 호기심을 보였고 결국 이런 글까지 나오게 되었네요.
제가 그분에게 드린 말씀은 당신은 이미 스스로를 분석하고 있는 주체다이고요. 그래서 심리 상담사는 어려움을 느꼈다입니다. 보통 심리 상담은 문제나 감정을 내담자 말로 표현해야 시작할 수 있고 그래야 서로 이해 가능한 언어로 결론을 도출할 텐데요. 우리 사연자는 언어로 포획될 수 없는 무언가를 느꼈고 그것에 대한 막연함을 분석해 달라고 했으니 심리 상담 영역은 아니었죠. 그래서 심리 상담사는 “문제가 명확하지 않다”라고 치료를 거부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쪽 매뉴얼에는 없는 질문이니까요.
다음으로 자기 욕망을 메모하는 습관에 대해서는 당신은 욕망을 기표로 잡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고 사연자에게 말씀드렸는데요. 왜냐하면 우리 욕망은 원래 흐릿하고 계속 변하기에 언어로 포획할 수 없기에 사연자는 정신분석을 따로 공부하지 않았지만 사로 잡히지 않는 욕망을 기표를 이용해 추적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에게 지금 욕망하는 것을 써보라고 하면 남자들은 흡족한 섹스, 돈, 차 이런 것을 copy & paste 하듯이 옮겨 적기 마련이고 여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렇게 우리들 욕망 비슷비슷한 이유는 우리가 어려서부터 언어를 배우며 타자 욕망도 같이 배웠기 때문이라고 지난 글에서 설명드렸습니다. 이런 욕망은 상징계에서 돌아다니는 남들이 준 목록이라 진정한 욕망이라고 보기 힘듭니다.
반면 이 여성 상담자는 자기 상상계를 이미 깊게 경험한 듯합니다. 메모라는 기록을 통해서 수시로 자기 욕망을 점검하고 마주하려는 노력을 하기에 건강한 사람이라고도 보이고요. 아쉽게도 그 메모를 본 적은 없으나 자기 욕망을 마주하려는 용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의미 있는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외모 쪽으로 눈을 돌려 봅시다. 상담자는 화려한 장신구를 좋아하는데요. 공학을 전공하고 평소 독서를 통한 논리 사고를 이용해 상징에 친숙하지만 늘 백일몽을 꾸듯 환상을 그리는 취미랑 어떤 연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정신분석 핵심 단어는 <형용 모순>인데요.
<형용 모순>이야말로 <무의식>을 한 마디로 요약한 말이라 봅니다.
상담자는 강력한 언어를 기반으로 논리가 정연하고 풍부한 어휘를 쓰지만 강렬한 감성을 누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그 때문에 형용 모순이 강렬하게 작동한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짧은 인터뷰였기에 그분이 말하는 논리에서 아직 허점이나 균열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 균열을 통해서 어린 시절 쾌락(주이상스)이 분명 흘러 들어오고 있다고 보는데요. 그러기 위해서는 오랜 상담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것도 높은 수준 분석가를 통해서, 생각합니다. 가끔은 사치스럽게 보이기도 하고 왕관처럼 평소에는 엄두낼 수 없는 장식도 탐내는 모습은 논리가 정연한 말투랑 정 반대되는 이상한 지점으로 남아있습니다. 그 안에 어떤 감정이 이런 화려함을 탐내는 것으로 작동한 것일까요?
끝으로 20대에 느낀 우울은 아홉 살에 기억 상실 사건이 원인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은 사건이 지금 상담자가 가진 무의식에 큰 부분을 구성하고 대표가 되면 주된 감정이라면 충분히 20대에 우울증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고 보니까요.
그렇다면 그 우울증이라는 증상은 아버지입니다. 사연자는 우울증을 지금까지 그대로 지니고 살지만 삶에 지장을 주지 못하는 수준에서 억제하며 누르고 있다 했습니다. 즉 우울증이 올라오는 순간은 아버지가 유령처럼 그에게 다가오는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증상이라는 유령은 계속해서 우리를 찾아오니까요.
사연자는 무엇을 욕망할까요? 상담사가 거부할 정도로 깊게 상상계를 탐험하는 자이니 상상으로 구성된 욕망을 언어로 정리하고 표현한다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그가 쓴 메모를 보는 것이 다음 상담 핵심이 될 거라 보입니다. 과연 무엇이 적혀있을지 그곳에서 다음 분석 단초가 나올 것입니다. 이는 상상계 중심의 사고를 상징계로 옮기려는 시도이기 때문이죠.
어렵게 말하자면 사연자는 무의식 속 결핍을 스스로 언어화, 구조화하려는 습관을 가졌다고 하겠는데요. 정신분석에서 보면, 이 행동은 스스로를 치유하려는 시도입니다. 왜냐하면, 상징계가 완성된 지 못한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이버지 상실 이후 봉인된 기억은 언어로 잡지 못한 채 남아 있고, 그 결핍을 화려한 장면(구름 전시회)으로 대체해 왔으며, 이제 성인이 된 사연자는 그 결핍을 언어로 다시 구성하려고 메모하는 습관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제가 느낀 사연자는 현재 자신 세계를 아주 정교하게 잘 유지하고 계신 '강한 주체'입니다. 하지만 가슴이 내려앉는 예전 증상이 언젠가 다시 찾아오신다면, 그것은 무의식이 사연자님에게 보내는 어떤 신호일 수 있을 테니 너무 두려워하실 필요는 없지 않을까 결론 조언해 드립니다.
추신:
글 제목을 "아버지가 살던 세계"로 할까 고민했는데요. 너무 막연할 것 같고 분석글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다음에 이 관련하여 소설을 쓰게 되면 그때 이용해 보겠습니다.
https://youtu.be/_VyA2f6hGW4?si=HPUjMicAlgHWkaL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