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acheraa 작가님 수업
브런치 작가가 되면 몇 가지 좋은 점이 있는데요. 그중에 하나가 다른 작가님들이랑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온라인 모임도 있고 그러다 오프에서 실제로 만나서 의견이나 사업 소재도 나누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바람직한 공간이고 소소한 행복입니다.
최근 브런치를 통해서 알게 된 소설가 한 분이 있습니다. 제가 쓴 <시나리오 쓰기> 시리즈를 보시고 조언을 주셨는데요. 나아가 저를 위한 시나리오 쓰기 실전 연습법도 지도해 주셨습니다.
제가 연작하는 <시나리오 쓰기> 중에 3편은 지인 문감독이 준 것을 다듬어 올릴 예정이었으나 그것은 4편으로 미루고요. 오늘은 boracheraa 작가님이 주신 시나리오 쓰기 핵심을 정리하여 아래 올립니다. 작가님은 매우 조심스럽게 조언을 주셨지만 저는 이를 다 수용하면서 핵심 노트 식으로 정리하겠습니다. 원 글은 아래보다 훨씬 더 자상하고 친절한데요. 제가 매뉴얼 식으로 짧게 줄였습니다. 바로 시작합니다.
[시나리오 쓰기 핵심]
시나리오는 영상 또는 공연으로 만들기 위한 위한 '설명서'입니다. 따라서 설명서는 추상어, 관념어 없이 자세하고, 명확하게 '지시'를 해주는 것이 핵심입니다. 예를 들어 에어컨 설명서만 보고 고객이 에어컨을 설치해야 하는데 "나사를 '적당한' 위치에 박으시오"라든지, "필터를 '너무 힘들지 않게' 눌러 끼우시오" 같은 표현은 피합니다.
전문가나 대가들 수준에서는 "그가 슬퍼한다." 이 한 문장만 보고도 알아서 기막히게 표현하겠지만, 시나리오를 연습하는 단계에서는 최대한 자세하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묘사하고 지시하는 연습이 중요합니다.
[실전 연습 1_하이쿠 써보기]
1. 하이쿠는 일본 전통 시조로 5, 7, 5 글자로 이뤄져 있습니다.
2. '시나리오 연습 관점'에서 잘 쓴 하이쿠는 '추상 개념'을 추상어를 쓰지 않고 '장면'으로만 표현하여 독자에게 그 개념을 이해시킨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제 생각:마치 시에서 은유랑 환유를 써서 독자들에게 시상을 전달하는 것 같습니다)
[여름 장맛비
학의 다리가
짧아지네] -마쓰오 바쇼
=> '비가 많이 내린다'라는 추상 개념을 학 다리가 짧아진 장면으로 환유했습니다.
[노란 달 아래
붉은 물 들이켜니
달빛이 붉네] -boracheraa
=> '취하는 모습'인 추상 개념을 달 색깔이 바뀌는 장면으로 은유해서 표현했습니다.
'시나리오 연습' 관점에서 못 쓴 예시도 보여드리겠습니다. ↓
『달빛 광대는
검은 막이 쳐져도
갈 생각 없고』 -boracheraa
=> 추상어 투성이에 어떤 장면을 찍어야 할지 모르시겠죠? 에어컨 설명서라기엔 난해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이런 식으로 추상 개념을 자세한 장면으로만 표현하는 하이쿠를 자주 써보세요. 추상어를 빼실수록, 관념어를 빼실수록 영상에 가까운 하이쿠가 될 것입니다.
[실전 연습 2_짧은 영상 필사]
장편 시나리오를 읽으시는 것이 힘들다면 짧은 영상을 그대로 글로 옮겨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대사가 없는 짧은 광고 영상 같은 것도 모든 컷을 정지 재생하면서 '추상어 없이', '관념어 없이' 그대로 써보는 것입니다.
대사가 없는 짧은 영상일수록 이미지 조합으로 스토리랑 감정을 표현했기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연습하기 좋은 영상이 있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Versace House Party | The Pre-Fall 2020 Campaign입니다.
https://youtu.be/HXFkg0vwLpQ?si=i1ywYrc8RQBireNd
지난밤 신나게 파티를 즐긴 소녀들이 어머니가 도착하기 전 흔적을 숨기는 '긴박한 순간'을 대사 없이 장면으로만 잘 표현하였습니다. 이 영상에서 관념어와 추상어를 제거하고 오롯이 '눈에 보이는 것'만 써 내려가 보십시오.
'소녀 1, 불안해하며 준비한다' -> X
'소녀 1, 황급히 준비한다' -> X
'소녀 1, 2, 어머니를 두려워한다.' -> X
'소녀 1, 2, 가구를 들고뛴다' -> O
'소녀 1, 창밖을 보고 입을 벌린다.' -> O
'풍선, '탁' 소리를 내며 치워진다.' -> O
이것을 다 쓰시면 짧은 시나리오 한 편 완성입니다. 소녀들이 가구를 들고뛰고, 창밖으로 어머니의 차량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입을 벌리고, 풍선이 탁 치워지는 '이미지'만으로도 이들이 어머니를 '두려워하고', 이들이 '불안하고 황급하다'라는 감정과 상황이 표현된다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필사는 훌륭한 영화 연출 '지시서'(에어컨 설명서)가 된 것입니다. 대사 없는 짧은 영상 필사는 지루하지 않고 좋은 공부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실전 연습 3_짧은 대사 영상 필사]
이제는 대사가 들어간 짧은 영상을 필사해 보는 것입니다. 미묘한 감정과 상황을 이미 훌륭한 대사와 장면으로 나타낸 작품을 그대로 필사하는 연습을 하다 보면 그 노하우가 쌓입니다.
드라마 더 글로리 보셨나요? 다음의 예시는 제가 더 글로리 '최혜정' 캐릭터의 입장에서 상상해서 쓴 내레이션입니다. 소설이나 에세이 형식에 가깝겠습니다.
나는 고등학교 때 소위 잘 나간다는 친구들과 친했다. 그들이 다른 친구를 괴롭히는 것을 보조하며 같이 우월감에 젖곤 했지만, 그들 사이에서 나는 늘 서열이 뒤처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그들과 동급으로 보여질 거라는 생각에 우쭐하다가도, 별거 없는 내 자신을 들킬까 봐 두렵기도 했다. 성인이 된 요즘도 그 친구들을 만난다. 그들은 지금도 역시 잘 나가지만 나는 아니다. 그래서 그 친구들은 나를 대놓고 비웃고 무시한다. 너무 비참하지만 그들에게 친한 척, 나도 잘나가고 있다는 척을 멈출 순 없다. 그들과 '친구'라는 명분으로 내 급을 높인다. 인맥도 내 스펙이니까.
아래 영상은 위 캐릭터의 미묘한 감정과 생각을 '사건'과 '대사'로만 함축한 장면입니다. 이렇게 거꾸로 필사를 해보시면 김은숙 작가가 지닌 탁월한 사건 선정과 대사 작문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com/shorts/unWVpux19Bg?si=6fc4KfVONlPf5Mka
세탁소 딸인 혜정이 세탁소에 맡겨진 손님 옷을 몰래 입고 친구들에게 나타나 잘난 척을 해보지만 하필 그 옷이 앞에 있는 친구의 옷인 것을 들킨 '사건', "국내에 딱 두 벌 들어온 건데", "그때 문동은 아니었으면 너였어.", "알아들었으면 끄덕여"라는 '대사'로 위 장면 속 감정, 인물 간 서열이 한 번에 드러납니다.
그렇다면 문장은 어떤 사건과 대사로 영상화할 수 있을까요?
점점 필사 영상의 길이를 늘이고, 작가님의 멋진 사유의 한 문단을 한 장면의 영상 언어로 바꿔보시는 연습을 추천드립니다. - boracheraa
아름답고 감사한 글은 이렇게 요약을 했습니다. 아직 준비도 필요하고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대신 AI는 어떻게 위에 숙제를 할지 살펴보고요. 제 글은 추후에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해요 작가님^^ 이거 치팅이지만 시간상 이렇게 해봅니다.
아래 글은 ChatGPT 작품으로 많이 부족한데요. 작가님이 말씀하신 자세한 동작 설명은 부족하고 그냥 제가 쓴 글을 내레이션으로 바꿔 놓은 수준 같아서 이 글만 보고 완벽하게 이미지가 떠오르지는 않습니다. 심지어 원작자인 제가 봐도 이런데 이 글을 처음 보시는 분들은 더욱 힘들 거라 생각합니다. 그중에 맘에 드는 것은 4번 학교 장면입니다.
INT. 조용한 방 – 밤
책과 노트가 어지럽게 놓인 방.
창가에 앉아 있는 나(화자). 창밖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한다.
나 (내레이션) 인간은 지금의 상태에 좀처럼 만족하지 못한다. 이상하게도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대개 우리가 두려워하거나 피하려 했던 것들이다. 잠시 침묵. 내게는 강선배가 그랬다. 강선배는 나와는 전혀 다른 생태계에 사는 사람 같았다. 그 사람을 사랑하기 시작하면서 내 안에는 전에 없던 불안이 자라기 시작했다. 책상 위 손이 미세하게 떨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불안이 나를 더 살아 있게 만들었다. 짜릿한 향락 같은 것.
INT. 카페 – 낮
강선배와 마주 앉아 있는 나.
둘 사이에는 어딘가 긴장된 공기가 흐른다.
나 (내레이션)
강선배와 관계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진짜 욕망이라는 것을 느꼈다.
강선배가 웃는다. 그 웃음을 바라보는 나.
나 (내레이션) 그리고 깨달았다. 내 욕망은 나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걸.
장면이 천천히 전환된다.
INT. 복도 – 해질녘
복도를 걸어가는 은주.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
나 (내레이션) 내 욕망은 은주를 통해서만 존재했다.
은주가 누군가와 이야기하며 웃는다.
나 (내레이션) 나는 은주가 욕망하는 것을 만족시켜 주기 위해 살고 있었다. 은주의 욕망이 무의식을 경유해 내 안으로 들어와 내 욕망으로 등록된 것처럼.
INT. 교실 – 낮
시험지가 나눠지고 있다.
학생들이 웅성거린다.
학생 1 야, 또 1등이래.
학생 2 진짜 미쳤다…
학생들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 집중된다. 나다.
나 (내레이션) 공부를 잘하게 되자 친구들도, 나를 둘러싼 작은 우주도 나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담임교사가 조용히 시험지를 건넨다.
담임 잘했다.
미묘하게 조심스러운 태도.
INT. 학교 복도 – 낮
학생들이 길을 비켜준다.
나 (내레이션) 그 시선은 다시 나를 바꾸었다. 누구도 감히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친구들이 조심스럽게 말을 건다.
친구 야… 이번에도 같이 공부할 수 있을까?
나 (내레이션) 자존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INT. 교무실 앞 – 저녁
담임과 부모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나눈다.
문 밖에서 그 모습을 보는 나.
나 (내레이션) 가끔은 부모나 담임마저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잠시 침묵. 우리나라에서는 학생이 1등을 하면 다른 인성 따위도 전부 1등으로 평가받는 구조였다.
창문 밖으로 석양이 비친다.
FADE OUT
Gemini나 Copilot 등도 비슷한 구조라서 더 살펴볼 가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작가님, 수업료는 다음에 시드니 오시면 정산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두들 사랑하며
가을이 온
시드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