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야기 - 小說
불칼
제 일 화 옥치도
1.
그는 자기가 ‘옥치도’라고 했다. 옥 씨야 그렇다 치고 이름이 ‘치도’라니 뭐 이런 이름도 다 있구나 싶었지만 곧바로 쏟아지는 그 범상치 않은 눈빛에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악수를 청한 손을 잡아 보니 작지만 제법 단단한 것이 보통이 아니겠다 싶었다. 키는 170이나 될까 하고 도수는 거의 없는 듯 얇은 안경을 썼는데 자세히 보니 왼쪽 눈아래 안경이 걸쳐져 있는 부분에 희미하게 칼자욱 같은 것이 나있었다. 아무래도 안경은 시력을 보강하려는 목적보다는 그 상처를 가리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것이 내가 옥치도를 본 첫날의 느낌이었다.
2.
중-고등학교 때 공부 꽤나 한다는 나였지만 고 2 여름 방학부터 맛 들이기 시작한 연애질에 내 성적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하더니 학력고사를 앞두고는 시험결과 걱정보다는 재수를 한다면 과연 집에서 뭐라고 나올까 하는 것이 내 솔직한 고민이었다. 어차피 연대의대는 물 건너갔지만 의사 아니면, 연대 아니면 안 된다는 내 자존심에 재수는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학력고사 결과는 예상대로였고 후기 추가모집으로 들어간 대학 화공학과는 결국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재수를 반대한 아버지 때문이었다.
3.
그렇게 한 한기는 다니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방학과 함께 나는 곧 휴학을 했고 이제 한 서너 달 쉬었으니 본격 재수학원을 알아보며 재기의 칼을 갈기 시작했다. 그래서 간 곳이 노량진에 있는 재수전문 학원이었고 나는 내 지난 학력고사 점수로, 실지 연고대에 들어가기보다 힘들다는 연고대 재수 반에 들어갔다. 평소 남들 앞에 서길 잘하고 이빨 꽤나 깐다는 사람들 중론 대로 나는 들어간 첫날 바로 반장에 뽑혔다. 그 덕에 난 젠장할 옥치도의 표적이 된 것이고…
4.
첫날은 반편성 이후 서로 자기소개 정도로 얼굴 익히고 앞으로 죽도록 공부 열심히 하자는 결의 따위로, 별 영양가 없이 끝났다. 그렇게 마치고 돌아 나오다 나를 떡~하니 막는 조그만 친구가 있었으니, 옥치도였다.
‘하추량 씨라 했죠?”
“아 예 제가 하추량 입니다만…”
“혹시 시간 되시면 우리 저녁이나 같이 할 수 있을 까요?”
“뭐 특별한 선약은 없습니다만, 남자끼리 저녁이라면, 죄송하지만 저는 사양입니다.”
“실은 긴히 드릴 얘기가 있습니다.”
제기랄 놈, 끈질 기구만. 성깔 꽤나 있어 뵈기에 더 이상 거절하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까 싶어서 나는 그가 가자는 곳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5.
옥치도는 내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대뜸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조그만 놈이 어찌나 빠르게 걷는지 안 그래도 가기 싫은 걸음에 녀석을 따라잡느라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간 곳이 조그만 대폿집. 녀석은 주인아줌마와 대충 눈인사만 하고 자리에 앉았는데도 알아서 소주 두 병과 안주가 척척 나오는 것이 꽤나 자주 오는 집인 듯싶었다.
“저, 하시려는 말씀이 뭔지…”
“하형, 우선 내 술 한 잔 받으시죠.”
하며 내게 한 잔 따르더니 자기는 사이다잔에다 가득 따라서 단숨에 두 잔을 집어삼켜 버렸다. 뭐 이딴 자식이 다 있나 싶었고 오늘 아무래도 잘 못 걸렸구나 싶은 것이 처음에 오자고 할 때 몇 대 얻어터지는 한이 있더라도라도 오지 않는 것이었는데 하는 후회가 막급 했다.
제 이 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