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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eamHunter Aug 13. 2023

불칼 2023 - 제 이 화 과거

작은 이야기 - 小說

제 이 화 과거




6.

그렇게 술이 몇 순배 돌자 녀석도 얼굴이 벌개지며 입을 열기 시작했고 나도 두려움에 호기심까지 더해 녀석의 말에 귀를 기울였는데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정말이지 내 상상을 초월하는 일대사건이었다. 지금 와서 다 소용없는 말이지만 그래도 혹시 그날 내가 치도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쩌면 지금쯤 평범한 호주 이민자가 아닌 연대를 나온 의사로 서울에서 돈 잘 벌고 잘살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7.

치도는 고등학교까진 졸업하긴 했으나 말 그대로 졸업장만 있는 일자무식한 이었다. 수학이라야 가감승제를 겨우 하는 정도였고 영어로는 이름자나 겨우 쓰는 수준이었으니 고등학교도 졸업한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하형이 나를 좀 도와줘야겠수.”


“아니, 뭘 어떻게 도와 달란 말입니까?”


“내가 대학엘 꼭 가야겠는데 이게 막막하단 말이유.”


“아니 그래도 우리학원 연고대반까지 온 사람이.. 나더러 서울대라도 보내달라는 겁니까? 내가 서울대 총장도 아니거니와 이렇게 말하면 서운하시겠지만 솔직히 제코도 석잡니다.”


“실은 나 어거지로 그반에 들어간 거요. 실제 실력으로 따지자면 중학생 만도 못합니다. 그래서 내 이렇게 하형 한테 부탁하는 것 아닙니까.”


하면서 순간 눈을 번뜩 이는데 나는 등골이 오싹하고 섬칫한 것이 무어라 거절을 할 수가 없었고 이 사태를 어떻게 모면하느냐 만이 최대 관심사 였다. 그때 심정 같아서는 문을 박차고 도망이라도 치고 싶었고, 여자였다면 그냥 주저앉아 엉엉 울고 싶음에 남자로 태어난 것이 후회스러울 지경이었다.



8.

하지만 나도 어려서 축구 좀 찼고, 반장이라고 완장까지 찬 마당에 울상을 지을 수는 없었다.


“좋습니다. 그럼 제가 무얼 어떻게 도와드려야 하는지 우선 말씀부터 해주시죠.”


“하형도 보아하니 시골에서 올라온 촌출신 같은데 나랑 같이 지냅시다. 나는 마침 출가해 서울 계시는 누님집에 살고 있는데 여기서 얼마 멀지도 않고요.”


“허허, 참. 이거 본 지 몇 시간 됐다고, 지금 저랑 동거하시자는 말씀인 것 같은데 제가 잘못 들었나요?”


“제가 생각해도 좀 무리가 있지만 맞습니다.”


“하하, 진짜, 이거 웃음 밖에 안 나오네. 제가 왜 그래야 합니까?”


“제가 아버지께 한 약속이 있습니다.”


하면서 오른쪽 손등을 보여 주는데 나는 그만 끼약~하고 비명을 지를 뻔했다. 손 등에는 아직 채 아물지도 않은, 심하게 데인 큰 구멍 같은, 상처가 뻥뻥뻥! 뚫려 있었다.



9.

“이게 뭡니까?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제가 아버지 앞에서 맹세한 흔적들입니다.”


너네 집은 부자지간에 그런 식으로 대화하냐 하는 말이 갑상선까지 올라왔으나 그렇게 말했다가는 네 번째 구멍이 내 몸에 찍힐것 같아 꾸욱 참고 오히려 침착하게 물었다.


“옥형, 뭔가 깊은 사연이 있으신 것 같은데 아무래도 사람 잘못 찾으셨습니다. 저는 뭐 그런, 일종의, 그러니까, 제 겉모습을 보시고 뭔가 착각하신 것 같은데, 저는 그저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옥형의 그 깊고 뜻있는 맹세에 도움을 줄 만한 위인이 전혀 못 되는 범생이올시다. 우리 이제 그만 여기서…”


“좋아, 다 얘기하지!”


하며 갑자기 마시던 잔을 깨져라고 쾅! 때려놓는데 술집에 있던 다른 손님들도 기겁하며 우리를 바라보았고 나는 오늘 완전히 미친개한테 물렸구나 돌아버릴 것 같은 심정이었다.



10.

사단- 대한민국 조직깡패 역사에서 세 손가락에 들어간다는 집단으로 나도 신문에서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70년대 박통 시절에 태백산 카지노 사건으로 호되게 철퇴를 맞은 이후로 지금은 많이 수그러 들었다지만 그래도 1980년 중반인 지금까지도 사단은 충남을 거점으로 기세 좋게 존재하고 있었다. 태백산 카지노 사건이란 그 당시에도 현찰 수십억이 걸린 불법도박이 벌어진 일이다. 영업장 샤따를 내린 체 물주인 큰손들과 그의 뒤를 지키는 각 지방 주먹들이 득실 거리는 가운데 밤은 정적 속에 담배 연기만 자욱해져 갔고 결국 새벽녘에 시작된 불화로 도박장은 아수라장 말 그대로 아비귀환 지옥풍경이 되었고 좁은 공간에서 일어난 칼부림에 대여섯 명이 즉사하고 기십 명이 함께 인생하직 할 뻔한 주먹계 희대의 사건이었다.



11.

치도는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사단에 스카우트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 중학교 복싱 부원이었는데 사단에서 중간 보스쯤 되었던 선배의 눈에 띄어 수시 특채임용 되었다고 했다. 치도의 권투실력은 그 당시 전국 체전에서 일 이등을 다투었다고 했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에는 치도의 체급인 빤탐 급에선  더 이상 한국에선 상대가 없을 정도였다고 했다. 아니 단 한 명이 있었다고 했다. 바로 국가대표 일진을 하고 얼마 전 세계 챔피언 2차 방어까지 달성했던 국민 영웅 최철수가 유일한 상대였다고 했는데 그도 고등학교 3 학년 때까지 다섯 번 싸워서 3승 2패였다고 하니 치도는 권투에 타고난 소질이 있는 친구였다. 



12.

원터치로는 상대가 없었다는 치도는 단순히 무식한 깡패가 아니었다. 그는 알지 못하게 사람을 제압하는 기운 같은 것이 흐르고 있었다. 그것이 원래부터 그에게 있던 것인지 오랜 조직생활 가운데 길러진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어쨌거나 그는 좀 과묵하다는 것 만으로는 설명 되질 않는 위압감 같은 것을 뿜어내고 있었다. 중학교 2 학년 때 처음 발을 디딘 사단에서 그는 승승장구했다. 그리고 사단 역사상 최연소 두목이 되었다고 했는데  그의 나이 약관 스물. 바로 작년 이야기다.




제 삼 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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