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바라보며 작지만 소중한 것들을 찾아봅니다. 아이를 바라보며 현재와 미래의 연결을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오늘도 반짝이는 별 하나 그려봅니다.
<건강하게만 자라주렴.>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 병원에 다녀오는 날이면 일기를 썼다. 처음으로 아기의 심장 소리를 들은날, 1.57cm의 콩만 한 딸에게 '건강하게 자라주렴. 사랑해'라고 엄마의 진심을 전했었다.
정말 원하는 건 그게 다였다. 콩처럼 작은 아기가 뱃속에서 건강한 심장을 만들어 '쿵쿵' 생명의 소리를 낸다는 게 신기하고 너무나 대견했다.
<엄마가 널 꼭 지켜줄게.>
잠든 아기의 손을 수없이 바라보았다. 잠에서 깰까 봐 조심히, 살금살금 만지며 참 많이도 예뻐했었다. 보고 있으면서도 신기했던 새끼손가락을 잊을 수 없다. 마카로니보다 작은 손가락에 손톱도 있고 마디도 있어 접었다 펴지는 게 어찌나 귀엽던지. 어느 날은 그 작은 손가락에 내 새끼손가락을 걸어 약속을 했다. "엄마가 널 꼭 지켜줄게."라고.
<엄마 마음의 길. 길. 길.>
아이가 자랄수록 건강하기만 바랬던 초심 위에 숱한 마음이 덕지덕지 늘어갔다. 밝은 성품을 지닌 아이가 되길, 골고루 먹고 쑥쑥 크길, 예의를 갖추길, 탐구심 강한 아이가 되길, 감수성이 풍부하길, 도전 정신을 갖길... 길. 길. 길. 엄마의 바람인지 욕심인지 모를 마음의 길이 열 갈래 스무 갈래 생겨났다. 그 마음을 채우고자 이리저리 참 많이도 기웃거리고 서성거렸다. 몸을 키우는 것보다 정신을 키우는 일이 훨씬 막막했고 아득했다.
<딸, 너를 응원해.>
엄마의 숱한 시행착오 위에 자란 딸은 12살이 되었다. 아직은 내 품 안에 있는 것 같기도 때로는 고유한 삶을 향해 한 발 내디딘 것 같기도 한, 품 안과 품 밖 사이 어디쯤인가 있는 느낌이다. 생각도 취향도 많이 닮았지만, 또 더 많이 다른 모습들을 보며 '엄마의 마음'을 자제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다만 '너를 응원해.' 모드를 선택하기로 했다.엄마의 그릇, 엄마의 테두리로 딸을 가두게 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어른으로서 빠져있던 우월감에서 빠져나오기로 했다. 아이가 자랄수록 건강한 반찬을 먹으라고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취향과 선택'의 문제들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애초에 정답이 없는 문제였다.
<아이를 키우며>
아이를 키우는 내내 최선을 다하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때로는 의욕이 앞서 아이를 힘들게 만들기도, 기쁨의 롤러코스터에 올라타 일희일비하기도, 지울 수 없는 미안함을 남기기도 했다. 속상한 마음을 한 번, 두 번 겪을 때마다 내 마음속 숱한 갈래의 마음길을 하나씩 가지치기해 나갔다. '무엇을 해야 한다.'는 번듯한 어른의 조언, 엄마의 세심한 노력은 결국 섬세한 잔소리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담백한 마음을 갖고자 노력했다. 이제는 다만 마음이 풍요롭길, 가치를 찾아가길, 철학 위에서 굳건하길 바랄 뿐이다.
<그 아이만의 빛깔>
지금까지 딸의 모습은 언제나 나의 기대보다 아름다웠다. 나의 기대 속에 얼마나 많은 '남의 시선'이 포함되어있었던가. 딸은 엄마를 반성하게 해 주었다. 지덕체를 고루 발달시키고, 자연을 사랑하며, 좋아하는 일을 하나씩 경험해가며 그렇게 그 아이만의 빛깔을 내며 행복하게 자라고 있다.
남해에서의 생활, 그 변화 속에서 차분히 삶을 가지치기할 수 있었다. 아이를 대하는 내 마음도 많이 담백해졌다. 그 덕에 아이 키우는 이야기를 글로 정리할 수 있었다. 나의 글은 아이를 키우는 방법이라기보다, 소중한 가치를 지켜가는 마음에 관한 이야기였다.
지금껏 나눈 나의 소소한 이야기가 세상의 부모님들, 아이들의 삶에 가 닿기를 바란다. 세상의 아이들 모두가 행복하게 성장하고, 그를 통해 아이들이 각자의 고유한 빛깔을 신나게 뿜어내며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