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해도 나답게 살 수 있다.

모비딕 이야기

by 자유와 예술
장엄한 일몰 - oil on painting

허먼 멜빌의 『모비딕』은 단순한 고래 사냥 이야기가 아니다.

열렬하고 간절하게 원하는 그 무엇에 대한 욕망, 마음속으로 끈질기게 추구하는 그 무언가를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열정에 관한 것이다.

낡은 고래잡이배 피쿼드(Pequod)호의 선장 ‘에이해브’. 무시무시한 흰 고래 모비 딕에게 한쪽 다리를 잃었다. 그의 유일한 인생 목표는 향유고래 모비 딕을 잡아 죽이는 것이다. 항해사 ‘스타벅’은 냉철하고 현실적이다. 그는 소득이 목적일 뿐 복수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이슈마엘’은 객관적인 시선으로 등장인물을 관찰한다. 이단아, 말썽꾸러기, 환영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에이해브 선장은 그 무엇으로도 누그러뜨릴 수 없는 대담하고 초자연적 복수에 몰두한다. 앞만 뚫어지게 바라보는 그 두려움 모르는 눈길엔 결코 흔들리지 않는 불굴의 정신,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무한한 고집이 담겨 있다. 게다가 그의 침묵엔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당당하고 강력한 슬픔이 깃든 압도적인 위엄이 묻어있다.

“내 돛대를 앗아간 놈도, 내가 의지하고 서 있는 이 죽은 다리를 가져다준 놈도, 나를 파괴하여 영원히 의족에 의지하는 가엾은 신세로 만든 놈도, 바로 그 가증스러운 흰 고래 '모비 딕'이다. 나는 희망봉을 돌고, 혼 곶을 돌고, 노르웨이 앞바다의 소용돌이를 돌고, 지옥의 불길을 돌아서라도 그놈을 추적하겠다. 그놈을 잡기 전엔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대륙의 양쪽에서, 지구 곳곳에서 그놈의 흰 고래를 추적하는 것, 그놈이 검은 피를 내뿜고 지느러미를 맥없이 늘어뜨릴 때까지 추적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항해하는 목적이다.”

그는 괴물과도 흡사한 향유고래에게 다리 한쪽을 잃은 후에 오직 복수만을 꿈꾼다. 그는 잔인한 운명에 맞서 기필코 모비딕을 죽이겠다는 뜨거운 열정에 사로잡혀 그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오직 모비 딕에게 집중한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이 세상 모든 이익을 기꺼이 희생할 각오가 돼 있다.

“고독한 삶의 고독한 죽음! 내 최고의 위대함은 내 최고의 슬픔 속에 있다. 지나간 내 생애의 거친 파도여, 저 먼바다 끝에서 밀려 들어와 내 죽음의 높은 물결을 뛰어넘어라! 모든 것을 파괴하지만 정복하지 않는 고래여! 나는 너에게 달려간다. 나는 끝까지 너와 맞붙어 싸우겠다. 지옥 한복판에서 너를 찔러 죽이고, 증오를 위해 내 마지막 입김을 너에게 뱉어주마. 빌어먹을 고래여, 나는 너한테 묶여서도 여전히 너를 추적하면서 산산조각으로 부서지겠다.”

에이해브 선장은 분노한다. 모비 딕을 잡기 전까진 결코 만족할 수 없다. 포기는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그는 복수심에 사로잡혀 파괴를 파괴로 악을 악으로 갚으려 한다. 복수는 현실을 조금도 바꿀 수 없다. 이미 벌어진 일을 원래대로 수습할 수 없다. 이미 일어난 일은 되돌릴 수 없다. 냉혹한 현실 앞에서 울부짖으며 분노할 뿐, 남는 건 허무한 갈증이다.

로랑스 드빌레르가 『모든 삶은 흐른다.』에서 말한 것처럼 “복수심에 불타는 사람은 부당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야 한다고 늘 생각한다. 그러나 부당함이 없었던 일이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기억만 선명하게 되살릴 뿐이다. 분노만 해서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 이러한 무력감 때문에 복수하려는 사람은 더 분노하며 피의 복수는 강도가 더욱 거세진다.”

작살은 던져졌다. 작살에 찔린 고래는 앞으로 달아났다. 밧줄은 불이 붙은 것처럼 빠른 속도로 미끄러져 나가다 엉클어졌다. 에이해브 선장은 엉킨 밧줄을 풀었다. 밧줄의 고리가 허공을 날아와 그의 목을 감았기 때문에 그는 소리 없이 보트 밖으로 날아갔다. 선원들은 그가 없어진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피쿼드호는 침몰했다.

분노는 복수를 부른다. 부당한 일을 당해 억울하거나 자신의 것을 누군가에게 빼앗겼거나 헌신했으나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면 자연스럽게 분노가 생긴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연결이다. 분노의 불길에 휩싸이면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없다. 상황을 왜곡하고 과장한다.

복수심에 불타 자신을 망치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로랑스 드빌레르가 말한다.

“특별한 방법은 없다. 그저 분노가 가라앉을 때까지, 파도가 잔잔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격렬한 분노도 결국에는 가라앉는다. 거센 파도도 결국 거품이 꺼지면서 잔잔해진다. 분노한 상태일 때는 행동이나 말을 막 해서는 안 된다. 그 순간은 시원할지 몰라도 이후에는 대가를 톡톡히 치른다. 분노에 휘감겼을 때는 결정을 하지 말고 분노부터 어떻게든 달래는 것이 좋다.”

나는 오랜 시간 조직에서 추방돼 한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내 이름 세 글자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숱한 타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욕을 먹었다. 사실은 땅 속에 깊이 묻힌 채 명백한 거짓이 진실인양 버젓하게 행세했다. 나는 온갖 비난고 조롱을 짊어진 채 진창 속을 헤맸다. 하지만 나는 결코 정복되지 않았다.

영원처럼 느껴지는 그 긴 시간 동안 내 영혼은 지독한 두려움에 얼어붙었다. 내가 느끼는 슬픔은 외딴섬처럼 고립돼 타인에게 전달되지도 않았다. 그때 나는 깊이 깨달았다. 나를 해방시킬 수 있는 것도, 나를 괴롭히는 것도 오직 나 자신이라는 것을. 쓸데없는 근심에서 벗어나려면 굳은 결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때 내 마음 깊숙하게 자리잡은 문장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앞에 놓인 고난과 부족한 것만 생각하고 살면 안 된다. 어려움이 닥쳐도 그건 그냥 삶의 한순간일 뿐이다. 결국엔 모두 스쳐 지나갈 순간. 어떤 것에 실패해도 그것이 실패한 것이지, 나의 존재가 실패한 것은 아니다. 나는 그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존재다. 그러니 그게 무엇이든 쉽게 포기하지 말자. 실패해도 우리는 나답게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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